[이석재의 사건파일]1965년 중학입시 ‘무즙 파동’

입력|2005.02.28 (20:34)   수정|2005.02.28 (21:25)



⊙기자: 1965년 이맘때 서울고등법원 앞에는 수십명의 학부모들이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65년도 서울시 중앙입시 무즙파동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이곳은 1960년대 당시 명문으로 통했던 경기중학교가 있던 자리입니다.
이 학교로 자녀들을 입학시키려고 했던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나와 시위를 벌였던 일명 무즙파동.
40년 전의 사건은 입시파동의 원조라 불리고 있습니다.
1964년 12월 7일 치러진 서울시 중앙입시.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엿기름 대신 넣어 엿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정답은 디아스타제, 그러나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의 학부모들이 반발했습니다.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용이(1965년 경기중 입학): 그때 이제 정답이 디아스타제였고요, 무즙만 쓰면 틀렸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무즙 쓰고 괄호 하고 디아스타제라고 썼기 때문에 맞은 걸로 합격하게 됐습니다.
⊙기자: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자 당시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무즙도 정답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디아스타제를 답으로 쓴 학생의 학부모들이 격렬히 항의했고 그러자 교육위원회는 발표를 다시 번복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무즙 학부모들은 급기야 무즙으로 엿을 고아 시위를 벌이는 한편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당시 소송 학생: 어떻게 부모들이 움직였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좌우간 어머니께서 그때 새벽부터 나가서 돌아다니고 그러던 기억이 나요.
⊙기자: 결국 1965년 3월, 대법원은 2개의 정답을 인정하고 소송을 제기한 38명의 학생들을 추가 입학시키도록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1968년 창칼파동 등 입시파동이 계속되자 문교부는 중앙무시험 진학제도를 마련해 1969년부터 시행했고 경기중학교를 비롯한 14개 명문중학교를 차례로 폐교했습니다.
하지만 중앙무시험 진학제도는 초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그 반대로 고등학교 입시를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문교부는 1974년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발표합니다.
⊙김학일(교육인적자원부 교육연구관): 무즙파동 이후 70년대 초반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평준화됨에 따라서 학생들의 대학입시에 대한 부담은 고등학생으로 집중되게 됐습니다.
⊙기자: 1980년대 들어 정부는 대학 본고사를 폐지하고 과외를 금지했으며 대학졸업 정원제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과열된 입시경쟁은 식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시부정도 계속돼 왔습니다.
⊙김정명신(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대학입시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필요합니다.
또 그런 대책이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들 교육보다는 내 아이 일류대학만 보내면 된다라고 그릇된 교육관이 있는 한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기자: 요즘 대학입시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오늘날 입시문제들, 차라리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시위라도 벌일 수 있었던 40년 전이 속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파일 이석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