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광주에 사는 74살의 강제필 할머니도 북에 오빠와 조카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광주 스튜디오 연결합니다.
강제필 할머니.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예.
⊙앵커: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라 잘 모르겠네요.
⊙앵커: 오빠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셨을까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한 90살 거의 됐겠네요.
⊙앵커: 예, 그러면 이번에 확인이 됐던 조카는 어떻게 오빠의 자식일까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예, 오빠의 셋째딸일 거예요.
⊙앵커: 아, 셋째 딸이요.신청한 가족은 여럿이 있을 텐데 이 오빠와 조카만 만나게 되셨는데 헤어질 당시의 상황이 어땠습니까? 어떻게 가족들하고 헤어지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그런데 6.25 때 여기 부산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후퇴해서 올라갈 때 올라가가지고 40일 만에 다시 후퇴해서 내려올 때 같이 왔지요.
⊙앵커: 네, 형제관계는 어떻게 되세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형제가 지금 4남매인데, 그런데 오빠도 나이 너무 많으시고 또 위 형님도 나이 많으세요.
그러니까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조카들만 지금 만나볼까 싶어서 조카들 하고 시집의 큰동서, 큰동서님하고 조카들 둘, 시누 한 분, 그렇게 만나려고 지금 접수했어요.
⊙앵커: 네, 그런데 오빠가 살아계시리라고는 상상을 못 하셨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살아계신다고 연락이 왔는가요?
⊙앵커: 확인이 됐습니다.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확인이 됐어요?
⊙앵커: 예, 생존이 확인이 됐구요.
어떠실 것 같아요.
만나시면 어떤 말씀을 가장 먼저 하실 것 같아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너무 갑자기 하니까 ...
⊙앵커: 조카들 얼굴도 모르고 사실 이름도 모르고 지내오셨는데 이제 만나게 되시면 그 기쁨이 참 크실텐데요.
어떨 때 가장 외로우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외롭죠.
고향 산천 다 버리고 진짜 모두 부모님들 다 버리고 6.25때 죽느냐 사느냐 하고 지금 나온 것이 저는 딸 하나 데리고 그냥 먼저 나왔어요, 집에서.
그래 갖고는 이제 나와갖고 집을 못 들어가고 그냥 나와서 여태까지 그냥 갈라진 거지요.
⊙앵커: 그러면 따님하고 두 분만 계속 사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시동생들 두 분 하고 동서하고 만나서 한 10리 밖에 나와갖고 만났어요.
거기서 만나 가지고 계속 걸어서 걸어서 여기까지, 저 경상북도까지 가서 한 2년 살다가 영감도 만났어요.
다시 광주서 살다가 저기 어디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와서 같이 와서 여태까지 살다가 지금 작년 때 돌아 가셨네요.
⊙앵커: 지난해에 돌아가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예.
⊙앵커: 이제 오빠를 만나게 되실텐데 남매지만 또 모습이 닮으셨을 것 같은데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그렇죠.
⊙앵커: 헤어질 때 오빠는 어떠한 일을 하고 계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저는 시집을 와 갖고 농사지었어요, 거기서.
⊙앵커: 농사를 지으셨어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오빠네 농사 짓고...
⊙앵커: 오빠가 농사를 지으셨다구요?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예.
저희도 고향에서 농사 짓고 농사짓다가 그냥 이렇게 피란나오고 해서 나온 것이 여기까지 왔네요.
⊙앵커: 74살의 강제필 할머니, 가족 만나면서 그 기쁨 함께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제필(73살/광주시 임동(평남 출신)):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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