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에는 또 창원의 이산가족을 만나실 분이 나오셨습니다.
북한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흥남부두에서 가족과 헤어져서 홀홀단신으로 50평생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한정숙 할머니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안녕하세요.
⊙앵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죠?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72세입니다.
⊙앵커: 72살이세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자, 이번에 형제 두 분의 생존이 확인이 됐죠.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여동생이시라구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하나는 언니고, 한 사람은 동생.
⊙앵커: 한 분은 언니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언니 동생을 만나셨는데, 어떻게 헤어졌는지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좀 설명해 주세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당시 상황, 제가 흥남 6인민학교에 교사로 근무했어요.
그래 그때 당시에 공습이 있고 이래 가지고 임시학교 옆에 방을 얻어 가지고 며칠간 있었어요.
그랬는데 동생이 저한테 왔어요.
그때 당시에 중학교 한 2학년, 1학년...
그래 해 가지고 후퇴가 돼 가지고 남한으로 나왔어요.
흥남부두에 그랬는데...
⊙앵커: 흥남부두에서 두 분이 헤어지셨다는 얘기인가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어떻게 헤어지게 되셨어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잠깐 사이에 동생이 없어졌어요.
⊙앵커: 없어졌어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놓치신 거예요, 언니로서 동생을 놓치신 건가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제가 동생을 놓쳤지요.
제 옆에 앉아 있다가 자꾸 엄마한테 가려고 자꾸 그래서...
⊙앵커: 지금 사진이 나오고 있는데, 어머니신가 보죠?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아니예요.
저 위의 언니예요.
⊙앵커: 아, 언니세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예.
⊙앵커: 이 언니는 당시에 어디 계셨어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언니는 출가해 가지고 시가집에 있었지요.
⊙앵커: 결혼하셨기 때문에 같이 계시지는 않았군요.
그러면 이번에 이 언니와 그때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동생을 이제 만나시게 되는 건데요.
그 동생 분이 지금 북측에서 의사를 하고 계시다고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그 동생은 없다고 합니다.
⊙앵커: 네?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그 동생은 한명숙인데, 걔는 없다 하네요.
⊙앵커: 예, 제가 지금 알아 듣지를 못 했는데 그러니까 한정숙 할머니는 선생님이셨고, 동생은 당시에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2, 3학년쯤 됐는데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언니 손을 뿌리치고 이제 가서 그 이후에 지금 54년 만에 만나게 되시는데요.
동생 만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때 동생 찾지 못 한 게 못내 아쉬울 것 같거든요?
⊙한정숙(71살/창원시 대원동(함남 출신)): 항상 죄책감에 참 혼자서 마음으로 많이 아팠어요.
그런데 이번에 아이가 생존해 있다 하니까 더 말할 것 없지요.
⊙앵커: 네, 아무래도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오늘 기쁨이 너무 크신 나머지 너무 기쁨을 나눈 나머지 좀 기운이 빠지신 것 같은데 아무쪼록 축하드리고요.
동생 기쁨 속에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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