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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가족 상봉 합의과정
    • 입력2000.07.27 (17:00)
뉴스 5 200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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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이렇게 이산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공개되면서 그리던 가족과 친지들의 생사를 알게 된 이산가족들은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통일외교안보팀의 이선재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자!
    ⊙기자: 네.
    ⊙앵커: 우선 이산가족 상봉의 합의과정을 한 번 정리해 주십시오.
    ⊙기자: 6월 30일이죠.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가 됐습니다.
    단초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6월 15일날 끝난 정상회담이 끝나고 불과 보름 만에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를 했죠.
    분단 55년이 됐지만 남북 당국간 합의에 의한 이산가족 상봉은 이제까지 이번을 합해서 두 번에 불과했습니다.
    85년 첫번째 상봉은 50명의 이산가족이 상호 방문을 했었고 이번에 이제 가장 많은 규모인 100명이 상봉을 하게 되는데 이산가족 해결이라는 것이 가장 인도적이고 중요한 문제지만 이것이 이렇게 어려웠던 것을 보면 역시 분단의 벽이 높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어쨌든 6월 30일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고 그 이후에 남측에서는 무려 7만여 명의 신청자를 대상으로 컴퓨터 추첨 또 인선위원회 등을 거쳐서 200명의 명단을 북측에 전달을 했고, 어제 그 생사확인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 오늘 공개가 된 것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렇게 합의에 이르게 된 데는 사실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것도 하나의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역시 정상회담 이후부터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김정일 위원장이 당시 스스로 말을 했지만 서방 언론은 자신을 은둔자라고 부른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은둔자였던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방송을 통해서 전세계에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나타냈고 이러한 장면들은 세계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에 비무장지대 같은 데서는 대남비방 중상이 사실상 사라졌고 북한 방송에서도 우리 국가 원수에 대해서 존칭을 쓰는 등 여러 가지 전향적인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은 올 들어서도 이탈리아, 또 호주, 필리핀 등 서방 국가들과 수교를 했고 또 캐나다는 어제 북한을 승인을 했습니다.
    곧 수교가 임박했다는 얘기인데, 또 ARF 지금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죠.
    여기서는 어제 사상 처음으로 남북 외무장관이 만났고 내일은 역시 사상 최초로 올브라이트 미 국부장관과 북미 외무장관회담을 열게 돼 있습니다.
    북한은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대서방 관계개선을 하는 것은 역시 책임있는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아까 만나본 몇 분께도 꼭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말씀 드렸는데 이제 이산가족이 만나시려면 서로 어떤 절차를 남기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중요한 것은 어제 통보된 게 138명인데 나머지 62분도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우리측이 북측에 대해서 추가확인을 요청했고 북측도 수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8월 초까지는 나머지 62명에 대해서도 추가 확인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통보가 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8월 초쯤에 이산가족인선위원회를 열어서 북으로 갈 최종 100명을 선정하게 됩니다.
    이 원칙에는 일단 대한적십자사에서는 고령자, 고령자나 혹은 직계 존비속 생존자를 우선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본인 건강을 고려하고 이런 원칙에 따라서 최종 100명을 선정하면 이 분들이 8월 15일부터 3박 4일 동안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하게 됩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 사이에 사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분들 건강 상당히 유의하셔야 될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건강이 안 좋으시면 가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십자사에서는 선정 단계에서부터 신체검사를 중시했고 특히 고령자들에게는 건강을 유의해 달라, 이런 당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건 8월 8일이 되면 이제 남북 양측의 명단을 교환하는데 이산가족은 100명이지만 실제로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하는 방문단은 151명입니다.
    이산가족이 100명, 그리고 취재 기자가 20명, 그리고 지원 인력 30명과 단장 1명을 포함해서 151명의 상호 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을 하게 됩니다.
    일단 이동수단은 판문점을 통한 육로가 될 것으로 보이고 서울에서는 단체상봉, 그러니까 85년에도 있었습니다만 일단은 100명의 이산가족들이 한 장소에서 모두 만나는 단체상봉이 있게 되고 그리고 숙소나 이런 데서 개별 상봉도 있게 됩니다.
    일단 체류기간이 3박 4일로 비교적 길기 때문에 도착하는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단체상봉이 있게 되고, 그 다음 날에는 개별상봉이나 관광, 그리고 마지막 4일째는 다시 자신의 고향 북으로 돌아가는 그런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선재 기자 오늘 감사합니다.
  • 이산가족 상봉 합의과정
    • 입력 2000.07.27 (17:00)
    뉴스 5
⊙앵커: 이렇게 이산가족 생사확인 결과가 공개되면서 그리던 가족과 친지들의 생사를 알게 된 이산가족들은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통일외교안보팀의 이선재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자!
⊙기자: 네.
⊙앵커: 우선 이산가족 상봉의 합의과정을 한 번 정리해 주십시오.
⊙기자: 6월 30일이죠.
금강산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가 됐습니다.
단초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6월 15일날 끝난 정상회담이 끝나고 불과 보름 만에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를 했죠.
분단 55년이 됐지만 남북 당국간 합의에 의한 이산가족 상봉은 이제까지 이번을 합해서 두 번에 불과했습니다.
85년 첫번째 상봉은 50명의 이산가족이 상호 방문을 했었고 이번에 이제 가장 많은 규모인 100명이 상봉을 하게 되는데 이산가족 해결이라는 것이 가장 인도적이고 중요한 문제지만 이것이 이렇게 어려웠던 것을 보면 역시 분단의 벽이 높았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어쨌든 6월 30일 금강산 호텔에서 열린 적십자회담에서 역사적인 합의를 이뤘고 그 이후에 남측에서는 무려 7만여 명의 신청자를 대상으로 컴퓨터 추첨 또 인선위원회 등을 거쳐서 200명의 명단을 북측에 전달을 했고, 어제 그 생사확인 결과를 통보받은 것이 오늘 공개가 된 것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렇게 합의에 이르게 된 데는 사실 북한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런 것도 하나의 몫을 차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역시 정상회담 이후부터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김정일 위원장이 당시 스스로 말을 했지만 서방 언론은 자신을 은둔자라고 부른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은둔자였던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방송을 통해서 전세계에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나타냈고 이러한 장면들은 세계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이후에 비무장지대 같은 데서는 대남비방 중상이 사실상 사라졌고 북한 방송에서도 우리 국가 원수에 대해서 존칭을 쓰는 등 여러 가지 전향적인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은 올 들어서도 이탈리아, 또 호주, 필리핀 등 서방 국가들과 수교를 했고 또 캐나다는 어제 북한을 승인을 했습니다.
곧 수교가 임박했다는 얘기인데, 또 ARF 지금태국 방콕에서 열리고 있죠.
여기서는 어제 사상 처음으로 남북 외무장관이 만났고 내일은 역시 사상 최초로 올브라이트 미 국부장관과 북미 외무장관회담을 열게 돼 있습니다.
북한은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활발한 대서방 관계개선을 하는 것은 역시 책임있는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보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 이런 의지의 표현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아까 만나본 몇 분께도 꼭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까지 말씀 드렸는데 이제 이산가족이 만나시려면 서로 어떤 절차를 남기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중요한 것은 어제 통보된 게 138명인데 나머지 62분도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닙니다.
우리측이 북측에 대해서 추가확인을 요청했고 북측도 수락을 했습니다.
그래서 8월 초까지는 나머지 62명에 대해서도 추가 확인작업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우리에게 통보가 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8월 초쯤에 이산가족인선위원회를 열어서 북으로 갈 최종 100명을 선정하게 됩니다.
이 원칙에는 일단 대한적십자사에서는 고령자, 고령자나 혹은 직계 존비속 생존자를 우선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서 본인 건강을 고려하고 이런 원칙에 따라서 최종 100명을 선정하면 이 분들이 8월 15일부터 3박 4일 동안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하게 됩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 사이에 사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 분들 건강 상당히 유의하셔야 될 것 같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건강이 안 좋으시면 가기도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적십자사에서는 선정 단계에서부터 신체검사를 중시했고 특히 고령자들에게는 건강을 유의해 달라, 이런 당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건 8월 8일이 되면 이제 남북 양측의 명단을 교환하는데 이산가족은 100명이지만 실제로 서울과 평양을 교환방문하는 방문단은 151명입니다.
이산가족이 100명, 그리고 취재 기자가 20명, 그리고 지원 인력 30명과 단장 1명을 포함해서 151명의 상호 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을 하게 됩니다.
일단 이동수단은 판문점을 통한 육로가 될 것으로 보이고 서울에서는 단체상봉, 그러니까 85년에도 있었습니다만 일단은 100명의 이산가족들이 한 장소에서 모두 만나는 단체상봉이 있게 되고 그리고 숙소나 이런 데서 개별 상봉도 있게 됩니다.
일단 체류기간이 3박 4일로 비교적 길기 때문에 도착하는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단체상봉이 있게 되고, 그 다음 날에는 개별상봉이나 관광, 그리고 마지막 4일째는 다시 자신의 고향 북으로 돌아가는 그런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선재 기자 오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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