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때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에 알리려다 순국한 이 준 열사에 대한 생생한 자료들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보도에 이영진 기자입니다.
⊙기자: 일제의 침탈야욕이 본격화되던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렸습니다.
당시 헤이그의 현지 신문들은 이 준 열사를 비롯한 대한제국 밀사 3명의 활약상을 생생히 전했습니다.
회의소식을 전한 신문은 이 준 열사가 우리나라를 도와 달라, 일본이 우리나라를 유린하고 있다고 외치며 숨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지 의사가 작성한 이 준 열사의 사망 증명서도 처음 공개됐지만 사망원인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국회의 공식 초청국가 명단에는 우리나라의 이름이 선명합니다.
일제의 침탈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나라가 주권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또 각국 대표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일제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한 항의문은 이 준 열사 등 밀사들의 치열한 외교노력을 보여줍니다.
이 자료들은 네덜란드에서 이 준 열사 기념관을 운영하는 이기항, 송창주 부부가 10여 년간 모은 것들입니다.
⊙이기항(이준 아카데미 원장): 억울한 사정을 세계에 호소한 그런 값진 자료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고...
⊙기자: 이 준 열사의 숭고한 죽음은 90여 년의 세월을 넘어 생생하게 되살아 났습니다.
KBS뉴스 이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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