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는 이산가족들은 그 동안 상봉에 대한 기쁨과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평양에서 반세기 만에 꿈 같은 상봉을 하는 이산가족들을 성지호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전쟁 중에 유엔군을 따라 월남한 이영찬 할아버지는 요즈음 틈만나면 편지를 꺼내봅니다.
5년 전 중국에 있는 친척을 통해 간신히 북에 있는 둘째 딸과 소식이 닿은 뒤 오간 편지들입니다.
⊙이영찬(86살/방북 이산가족): 감격적인 상봉의 그날까지 귀중하신 몸 부디 만년장수하시기를...
⊙기자: 종교문제로 아내와 다섯 자녀를 북에 두고 홀로 떠나온 것이 반세기 동안 가슴 한쪽을 짓눌러 왔습니다.
⊙이영찬(86살/방북 이산가족): 미안한 정도가 아니고, 죄책감을 느껴요.
너희들한테는 내가 그야말로 죄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말을 하고 싶어요.
⊙기자: 북에 가족을 버린 채 홀로 떠난 것을 속죄하려고 14년 동안을 경북의 한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젊음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산의 한을 풀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영찬(86살/방북 이산가족): 북쪽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맡기는 데 그 대신 내가 이쪽에 있는 고아들을 내가 돌보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기자: 신앙의 힘으로 반세기를 버텨온 이영찬 할아버지, 큰 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내와 남은 자녀를 위한 기도로 상봉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방북 이산가족 중 100번째로 선정된 66살 김중섭 할아버지.
형제나 자매만 북에 살아있어 행여 이번에 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했던지라 방북하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김 할아버지가 이번에 만나는 북한의 가족은 남동생 창협 씨와, 여동생 경숙 씨입니다.
6.25 전쟁이 난 직후 평양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는 날 인민군에 징집된 김 할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일터와 교회에 가시느라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영영이별이 됐습니다.
헤어진 두 동생이 어떻게 살아왔는 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 이번에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된 부모님에 대한 생각부터 앞섭니다.
⊙김준섭(66살/방북 이산가족): 첫 마디가 부모 얘기가 나오겠죠. 뭐...
살아있으리라고만 믿고 싶었던 어머니, 아버지인데 돌아가셨다니까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기자: 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미용실을 찾은 김 할아버지.
⊙김준섭(66살/방북 이산가족): 50년만에 만났는데...
⊙미용사: 젊어보이게 잘라드릴게요.
⊙김준섭(66살/방북 이산가족): 젊어보이 멋있게 잘 좀 잘라주세요.
⊙기자: 그토록 그리던 고향 땅 평양.
김준섭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 두 동생과 뛰놀던 대동강변을 50년만에 거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뛰어옵니다.
KBS뉴스 성지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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