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늙지 마시라, 오, 나의 어머니 등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한 시로 남겨온 북한 최고의 서정시인 오영재 씨도 어제에 이어서 오늘 가족들과 개별만남을 가졌습니다.
오 씨는 이 자리에서 이미 5년 전에 작고한 어머니의 영정에 제를 올리고 자작시까지 바쳐서 감동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곽정환 프로듀서가 보도합니다.
⊙기자: 어제 첫 상봉에서 50년만에 다섯 형제들을 만난 북한의 시인 오영재 씨.
⊙오영재(64살/북한시인): 그 혈육들을 만나니까 그 동안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밤이면 밤마다 생각하고 잠을, 못자던 잠을 여기서 다 잤습니다.
⊙기자: 오 씨는 그 동안 간직해 오던 부모님의 영정을 오늘 형제들 앞에 꺼내놓았습니다.
영정은 다름 아닌 돌 사진.
돌 사진은 천연 화강석 등을 쪼아 정교하게 사진을 새겨넣는 것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형제들에게는 자신만 빠져있던 가족사진에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넣은 돌사진을 선물했습니다.
⊙오영재(64살): :6형제만 사진찍어서 내가 아주 질투가 나서 그걸 이제 넣고서 컴퓨터로 기록시켜서 나를 넣었다고.
아버지, 어머니 옆에 아버지 모시고 그렇게 해서 돌 사진을 만들어 왔으니까...
⊙기자: 오 씨는 부모님께 제사를 지낼 술과 술잔도 손수 준비했습니다.
⊙오영재(64살): 이건 평양 장군님께서 제가 환갑 때 환갑상을 이렇게 크게 차려주셨습니다.
차려주면서 술잔을 2개 주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여기 가져왔습니다.
⊙기자: 북한 최고의 문학가로 계관시인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오영재 씨는 어머님의 부음을 듣게 된 5년 전부터 어머니를 그리는 시를 써왔습니다.
둘째 아들 오 씨가 없으면 사진을 찍지 않겠다며 생전에 한사코 사진찍기를 거부하셨다는 어머니.
남녘땅 어머니의 고향에서 오 씨는 오늘 50년 만에 어머니를 기리는 시를 낭독했습니다.
⊙오영재(64살/북한시인): 아침, 저녁 바라보던 어머니의 사진 통일되는 그날까지 살아계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기원한 그 사진에 눈물 젖은 손으로 검은 천을 드리웠습니다.
통일 되어 내 남향길에 오르게 될 그날, 십리 밖에서부터 어머니를 소리쳐 부르며 달려가려 했는데 이제는 누구를 부르며 고향집 문을 열어야 합니까?
그리워 눈물도 많이 흘리셔서 그리워 밤마다 뜬 눈으로 새우시면서 꿈마다 대전에서 평양까지 오가시느라 몸이 지쳐서 그래서 더 일찍 가셨습니까?
아,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니, 나의 엄마.
그래서 나는 더 서럽습니다.
엄마.
⊙기자: KBS뉴스 곽정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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