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오늘 개별상봉을 한 이산가족들 중에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앰뷸런스에 실려 상봉장소를 찾은 고령의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어제 50년만에 아들을 만났다가 끝내 혼절했던 정선화 할머니는 오늘도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상봉장을 찾았지만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상봉장소에 오지 못한 안타까운 모정도 있었습니다.
자식을 향한 애끓는 모정, 출동 3총사 오늘은 김영상 프로듀서와 이수연 기자입니다.
⊙기자: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 50년만에 아들을 만났지만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95살의 정선화 할머니.
전쟁이 한창이던 50년 8월 서울 법대에 다니던 자랑스런 셋째 아들은 어느 날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아들이 50년만에 북한 최고의 문학가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들것에 누워서도 아들 곁에 있기를 고집했던 정 할머니는 오늘도 아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기자: 잘 주무셨어요?
⊙정선화(95살/조진용 씨 어머니): 네, 모두 염려해 준 덕분으로... .
⊙기자: 아드님 옛날이랑 똑 같으세요, 아드님 얼굴?
⊙정선화(95살): 뭐라구요?
⊙인터뷰: 삼촌 얼굴 옛날이나 같으냐고...
⊙정선화(95살): 어릴 때는 동글동글했는데 길쭉해졌어요. .
⊙기자: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던 아들 기다림 끝에 정 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차례상에 아들의 밥그릇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죽은 줄로만 알아 이산가족 방문단 신청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아들을 직접 만나 얼굴도 만져보고 목소리도 들었지만 정 할머니는 아직도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정선화(95살): 이렇게 갈라져 살줄 몰랐어.
애미는 오래 살아서 언제든지 너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지척에서 아들을 만나게 되어 모자상봉을 하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좋다.
⊙기자: 노령에 혈압이 불안정해 또 다시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가족들은 걱정했지만 아들을 만나겠다는 모정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남측 적십자사 자원봉사자: 내가 가만히 있으면 좋아지겠다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밥도 한 그릇 날마다 다 잡쉈고 지금은 못하는 것 없이 내가 내 발로 조금 걷고 싶다고 그래서요, 걷고, 휠체어 안 가지고 왔어요
⊙기자: 직접 걸어 아들에게 가고 싶다던 할머니.
하지만 결국 자원봉사자의 등에 업혀 아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합니다.
오늘이 정 할머니에게는 아들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조진수(72살/조진용 씨 형): 오늘만 만나시게 하고 내일은 안만나시도록 가능한 누워계시기를 동생이 바라고 있어요.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데 동생이 걱정많이 하더라구요.
⊙인터뷰: 할머니, 아들한테 뭐라고 했어?
⊙정선화(95살/조진용 씨 어머니): 네 형, 조카, 동생들이 나한테 잘하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술 같은 거 입에 대지 말고 나라에 들어가 조심해서 잘하고 내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라 그랬어요.
⊙기자: 아흔살의 나이도 불편한 몸도 막지 못 한 모정.
그러나 이에 못지 않은 모정을 가지고도 아들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김애순(87살): 나는 못 보러가니까, 나는 곧 죽을 사람인데 우리 아들 좀 보게 해 주시오.
⊙기자: 이산가족상봉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김애순 할머니는 50년 전 헤어진 아들이 서울을 방문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평생을 기다려 온 아들.
하지만 김애순 할머니는 오늘도 상봉 장소에 가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거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김 할머니.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온 아들을 만나 볼 길이 없는 어머니의 마음은 메어집니다.
⊙김애순(87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봤으면 좋겠어요.
⊙기자: 이렇게 자리에 누운지 8년째, 이제 기력이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상봉 장소로 정해진 워커힐 호텔까지 자리를 옮길 수가 없습니다.
⊙송미덕(혜당한방병원 내과과장): 지금 할머니의 상태로 봐서는 호흡이라든가 본인이 스스로 생명유지에 필요한 여러 가지 대사들이 잘 안 되실 것 같아요.
앉아 계시는 것이 도리어 증상을 더 악화시키거나...
⊙기자: 하지만 아들의 모습이 화면에 비칠 때 마다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갑자기 소식이 끊긴 아들.
69살이 되어버린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19살 어린 아들의 모습을 찾아냅니다.
⊙김애순(87살): 몰라보겠는데 눈매는 알아보겠네. 어쩌면 저렇게 늙어?
사람은 나이먹으면 늙기 마련이지만 늙어도 보통 많이 늙은 게 아니네..
⊙기자: 직접 만날 수 없어 전화로 나누는 아들과의 50년만의 대화.
⊙양한상(아들): 어머니 어머니
⊙김애순: 누구야
⊙양한상(아들):어머니, 한상이에요.
⊙김애순: 어디 갔다 인제 왔어. 어디 갔다 인제 와.
⊙양한상: 어머니, 만나자요. 만나자요.
⊙김애순: 언제?
⊙양한상: 어머니 내 할 소리 많소. 얘기 많소.
⊙기자: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볼 수 없는 아들은 마음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양한상(69살/아들): 어머니 꼭 만나뵙고 그 동안 고생 많이 한 일에 대해서 인사를 올려야죠. 이렇게 형편이 이렇게 됐으니까 이걸 꼭 노력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그렇게 하는 방법밖에 없지 않느냐 현재는?
⊙기자: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는 노모를 꼭 뵙고 싶다는 69의 아들과 1시간 만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다는 여든일곱의 어머니.
하지만 대한적십자사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미리 정한 장소에 한정하기로 한 북측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박기륜(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우선 서울과 평양으로만 하자고 합의를 했기 때문에 집을 간다든가 고향을 간다는 것은 합의서 내용과 위반됩니다.
그래서 그런 딱한 사정을 알지만...
⊙기자: 노모의 흐릿한 눈에 어리는 아들의 얼굴.
이땅의 이산가족 모두가 마음놓고 만나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출동 삼총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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