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이제 잠시 후면 북측 이산가족이 남측 가족의 환송을 뒤로 하고 숙소인 워커힐 호텔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이루어지게 되는 상봉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입니다.
워커힐 호텔 특설 스튜디오 연결하겠습니다.
백운기 기자!
⊙기자: 워커힐 호텔 특설 스튜디오입니다.
⊙앵커: 남측 가족들이 이미 도착했다면서요.
⊙기자: 지금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파크텔에 묵고 있던 우리 이산가족들은 이제 마지막 상봉을 앞두고 이곳 워커힐 호텔로 속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반세기 동안의 응어리를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3박 4일, 이제 잠시 뒤면 또다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해야 합니다.
50년 만에 만났는데 사흘 만에 이제 다시 헤어지는 순간을 앞두고 남측이나 북측 이산가족들 모두 착찹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곳 워커힐 호텔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황상무 기자와 함께 얘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 황상무 기자!
⊙기자: 네.
⊙앵커: 이제 잠시 뒤면 마지막 상봉이 있게 되는데, 일단 오늘 아침에 마지막으로 1명씩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이렇게 배려가 됐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올림픽 파크 호텔에 모여 있던 가족들이 한 500여 명 정도 되는데요 이 500명과 전부 다 만나서 이별을 할 수는 없다.
너무 혼잡스럽기 때문에 그래서 당국에서 지금 배려를 한 것은 각 가족당 1명씩 일단 선정을 해서 경찰 통제선 안으로 들어와서 가족들 중에 1명씩은 손을 잡고 이별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경찰 통제선 밖에서 눈인사로 인사를 하도록 그렇게 결정이 되어 있습니다.
⊙앵커: 이제 올림픽 파크텔에 묵고 있던 우리측 가족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지금 일단 경찰이 통제선을 정해 놓고 그 통제선 밖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고 그리고 그 가족 중에서 1명씩만 상봉을 하게 되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이 곳에 나온 가족들이 더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장면도 있는데요.
워낙에 지금 이 곳이 혼잡스럽고 또 이별의 장면이 워낙에 생각보다는 좀더 제대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런 것 때문에 결국 가족당 1명씩은 들어와서 경찰 통제선 안에서 손을 잡고 이별을 하게 되고 나머지는 먼 발치서 일단 경찰통제선 밖에서 서로 손을 들고 이별을 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보면 호텔 로비와 이곳 바깥에도 보면 다른 가족들이 나와서 피켓을 들고 시아주버님 안녕히 가십시오.
큰 아버지 안녕히 가십시오, 그런 피켓 들고 나와서 준비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마지막 상봉이 끝나고 난 뒤에 도 8시에 출발하게 됩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출발예정 시각 이곳에서 8시기 때문에 아마 그보다는 조금 앞서서 서울 방문단이 호텔 로비에 나오게 되고 거기서부터 아마 이별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3박 4일 너무나 짧기 만한 시간입니다.
50년 만에 만남, 그 기간 동안 3박 4일 정말 못다한 말이 너무나 많고 아직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제 떠나야 하는 가족들입니다.
야속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모두가 꿈 같기 만한 그런 시간들이 아니었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에 만찬을 끝내고 이 곳 호텔에 돌아오는 서울 방문단들을 저희들이 만나서 취재진들이 질문을 해 보면 너무나 짧다, 안타깝다, 그런 심정들이 많았고, 또 한 가지 빨리 통일이 해야 한다는 심정을 토로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고향을 꼭 찾아가서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싶다는 이런 얘기들도 했구요 그리고 서울 방문단들이 간밤에 보면 거의 잠을 못 이룬 것 같습니다.
밤늦게 취재진이 계속 지켜봤는데, 7, 8층 객실에 불이 대부분 켜져 있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이곳 워커힐 호텔은 마지막 상봉을 앞에 두고 남측 가족들과 그리고 또 수많은 취재진 그리고 많은 시민들 경비병력들이 나와서 매우 혼잡한 그런 분위기입니다.
이제 그리운 가족들을 두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야 하는 서울 방문단이 묵고 있는 이곳 워커힐 호텔, 어느 때보다도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입니다.
이제 잠시 뒤면 호텔에 묵고 있는 가족들과 마지막 상봉이 있게 되는데 이제 오늘 3박 4일 일정을 마지막으로 하고 올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돌아가게 되지요.
북측 이산가족이 우리 대한항공편으로 평양에 가고, 또 평양에서 대한항공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일정과 코스는 올때의 완전히 역순입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공항으로 가서 이번에는 대한항공기를 타고 서해로 돌아서 평양으로 가는 디귿자 형태의 항로를 따라서 가게 되면 평양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측의 평양 방문단을 태우고 다시 우리 대한항공이 서울로 돌아오는 그런 일정으로 잡혀 있습니다.
지금 서울 방문단은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식사를 끝내고 대부분 지금 객실로 다시 올라가서 마지막 여장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짐은 오전 7시부터 전부 내려와서 지금 대기하고 있는 화물차에 모두 실은 상황입니다.
⊙앵커: 이제 숙소에 묵고 있는 북측 방문단이 내려오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오찬 마지막 만찬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리운 가족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너무나 짧았던 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호텔 안 로비를 보고 계시는데요.
저 화면의 왼쪽이 엘리베이터가 됩니다.
그러니까 첫 모습을 나타내는 곳이 저 화면의 왼쪽에서부터 내려오고 그리고 오른쪽에 계단이 있는데 그 쪽 계단을 통해서도 서울 방문단들이 빠져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을 통해서 나오게 되면 바로 이곳 호텔 앞 마당으로 나오게 되고 그러면 경찰들이 통로로 만들어 놓은 이동통로를 따라서 각자 버스에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시각이 7시 34분을 막 지나고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잠시 뒤면 서울 방문단과 남측의 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별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비록 짧은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더 만나게 됐다는 그런 사실이 가족들에게는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 양측의 극적인 합의로 남측과 북쪽의 이산가족은 한 번 더 상봉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황상무 기자!
⊙기자: 네.
⊙앵커: 다행히 그 동안 여기에 내려와서도 어머니를 만나지 못 해서 애태웠던 량한상 씨가 오늘 새벽에 극적으로 어머니를 상봉을 하게 됐죠?
⊙기자: 그 취재진들도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마는 새벽에 극적으로 상봉을 하게 됐습니다.
당초에 보면 어머니 병환 때문에 워낙 어려운 것 아니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량한상 씨가 어제 저녁에 굉장히 강력하게 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결국 남북 양당국의 긴밀한 협의 끝에 가능하면 오는 방향으로 하자 이렇게 결론이 나서 가족들도 마지막 돌아가는 량한상 씨를 그냥 보낼 수 없다라는 결론 때문에 새벽에 급거 여기서 전격적으로 이루어져서 전격적인 상봉이 있었습니다.
⊙앵커: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 전에는 핸드폰으로 통화만 하지 않았습니까?
⊙기자: 그렇죠.
어머니께서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는 그런 말씀 참으로 가슴아픈 대화 내용이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남측에 있는 부인, 부인을 만나러 온 북측의 남편이 있었죠.
역시 부인은 재혼했기 때문에 죄스러워서 마냥 마음을 정하지 못 하고 ...
김 영 씨죠, 김 영 씨인데, 부인이 호텔까지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돌아가고 호텔 로비에서 취재진만 만나고 돌아갔는데 결국 이 부부도 김 영 씨 부부도 어젯밤 9시 조금 넘어서 전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잠시 만남을 가지고 50년 만에 참 그리웠던 가슴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들을 주고 받고 어젯밤에 다시 헤어졌습니다.
⊙앵커: 량한상 씨나 김 영 씨나 모두 그리던 가족들을 보고 돌아가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다.
이제 잠시 뒤면 북측 이산가족 숙소에서 내려와서 남측 가족들과 마지막 상봉을 하게 됩니다.
황상무 기자, 지금 이곳 워커힐 호텔 앞은 경비병력 그리고 취재기자, 가족들 상당히 혼잡한 그런 분위기인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게 지금 워커힐 호텔 앞에서 출발한 가족들이 500여 명 되지만 또 숙소에서 묵지 않는 다른 가족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앵커: 많이 왔어요.
⊙기자: 그래서 보면 거의 한 7, 800여 명 아마 눈 짐작으로 보면 일부에서는 한 1000명 가까이 되지 않느냐, 지금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구요.
경찰 병력도 한 500여 명 정도가 전부 나와서 일렬로 사람 통로를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찰통로 안쪽으로는 각 가족에서 1명씩 100명의 가족들이 들어와서 경찰들 안쪽에서 일렬로 도열을 하게 됩니다.
⊙앵커: 지금 화면을 보면 워커힐 호텔 앞에 8개의 버스가 서 있습니다.
저 버스는 바로 북측 이산가족을 태우고 공항으로 가게 될 버스고, 그 버스 양편으로 경찰이 통제선을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 밖으로 남측의 가족들, 보면 손에 꽃다발을 들고 전해주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을 담아온 사람들도 보이고 또 가끔 보면 플래카드가 많이 보입니다.
적은 종이인데 어떻게 하면 혹시라도 이산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담긴 플래카드죠.
⊙기자: 그 장면은 그야말로...
⊙앵커: 지금은 북한 취재진의 모습이 보입니다.
⊙기자: 북한의 조선신문과 중앙통신, 많이 몰려들었고요.
⊙앵커: 이번에는 여느때와 달리 북한 취재기자들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취재를 했다고 해요.
⊙기자: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적극적이었는가 하면 지금 각 방송사에 크레인이 워커힐 호텔 앞에 쭉 있습니다마는 어제 중앙방송의 기자가 저희 KBS 취재진들에게 와서 자신들 한 번 KBS 크레인을 타고 싶다.
지금 바로 이 장면인데 이런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야 되는데 KBS 크레인을 타겠다고 요청이 들어와서 남북이 그야말로 한 장소에서 공동취재를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마침 그 때 비가 오는 바람에...
⊙앵커: 아주 높은 곳에서 장비를 내려 찍는 이런 구도가 북한 기자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 수 있겠지요.
워커힐 호텔 앞 전경입니다.
서울 방문단을 태우고 갈 버스 8대가 호텔 앞 광장에 서 있고 그 주변으로는 경찰들이 통제선을 정해서 지금 이산가족들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울 방문단이 잠시 뒤면 상봉을 마치고 나오게 됩니다.
지금 우리측에서는 가족당 1명씩 마지막으로 상봉을 할 수 있게 되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경찰 통제선 밖에서 멀리 눈 인사로 헤어짐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와 같은 화면에 보이는 피켓들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오래 오래 사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만수무강하길 빕니다, 그런 글이 적힌 피켓들이 아침부터 많이 보이고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연은 이번 방문단에서 빠지고 또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 가족들을 적은 신상명세서를 적은 것을 가지고 북측 취재진들, 그리고 북측의 방문단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서울 방문단이 이제 객실에서 호텔 밖으로 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텔 안에는 지금 호텔직원과 가족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북측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류미영 단장이 맨 선두에 보입니다.
류미영 단장을 비롯한 북측 이산가족들, 손을 흔들면서 이제 서서히 호텔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가슴 미어지는 마지막 상봉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운 어머니에게 못다한 말이 아직도 많은데, 야속한 시간은 마냥 흘러서 이제 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모두가 꿈 같기만 한 시간들입니다.
부디 살아 계시기만을 바라면서 또 다시 만나기를 빌어 보지만 떠나는 아들이나 보내는 어머니나 이번이 마지막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방문단 호텔 밖으로 서서히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참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거예요.
⊙기자: 그래도 50년 한은 풀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비교적 그래도 조금 담담한 표정이 아닌가 이렇게 보이구요.
특히 어제 마지막 상봉에서는 오늘 서로 울지 말자.
그런 다짐들을 많이 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화면에 보면 여성박사 김옥배 씨 모습도 보이구요.
그리고 어젯밤에 극적으로 부인을 상봉했던 하 경 씨 모습도 보이구요.
지금 조주경 박사 모습이죠.
이제 3박 4일 동안 매일 같이 얼굴을 대하다 보니까 아주 낯익은 그런 얼굴이 됐습니다.
이번에는 상봉인원을 가족당 5명으로 제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참 만나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가족들이 있었는데 어제는 창덕궁에 관광차 갔던 그런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창덕궁에 많은 남측의 가족들이 몰리기도 했지요.
⊙기자: 황의분 여사도 지금 나왔구요.
서서히 버스쪽으로 이동을 하면서 곧 이제 환송 나온 가족들과 이별을 하겠습니다.
⊙앵커: 네, 이제 북측 서울방문단 한사람, 객실에서 내려와서 평양으로 한 발 한 발 옮기고 있습니다.
마지막 상봉을 한 뒤에 버스에 나눠타고 김포공항에 가서 대한항공편으로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기자: 지금 버스 안쪽, 그러니까 버스가 서 있는 마당 안쪽을 완전히 사면을 뺑 둘러서 지금 경찰들이 이동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단 이산가족들이 한 바퀴를 돌 것 같습니다.
아마...
⊙앵커: 가족들을 만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지금 통제선 밖에는 나머지 가족들이 지금 조금 이라도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을까 발돋움하는 그런 모습이구요.
지금 저희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마는 통제선 안에 이제 한 명씩 이렇게 마지막 상봉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경찰, 그러니까 인간장벽이죠 인간장벽을 사이에 두고 또다시 한 번 재회하는 모습입니다.
⊙앵커: 그래도 아쉽기만 한 만남이지만 그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만남을 가졌기 때문인지 표정이 밝아진 것 같습니다.
⊙기자: 화면에 보면 비교적 밝게 웃는 모습에서 좀 다행스럽지 않나 싶은 생각도...
⊙앵커: 량한상 씨의 모습이죠.
량한상 씨는 오늘 새벽 꿈에도 그리던 어머님을 만났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우울했던 표정에서 상당히 밝아진 그런 모습입니다.
⊙기자: 지금 제가 취재를 하면서 살펴보면 량한상 씨 오늘 아침 표정이 가장 밝은 모습입니다.
참으로 침울하고 애통해 하면서 동생들 보고 어머니를 꼭 모시고 와라, 그런 당부하던 모습과 지금의 표정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 만큼 그야말로 한을 푼 그런 표정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50년 동안 꿈 속에서 그리던 어머니, 이곳 서울까지 왔는데도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 게 아니냐 가슴 애태우면서 3박 4일을 보냈던 량한상 씨 .오늘 새벽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극적으로 만나고 이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입니다.
⊙기자: 량한상 씨의 사연이야말로 정말 전 국민들이 가장 가슴이 아팠을 만한 사연입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50년 동안 꿈 속에서 그리던 어머니, 이곳 서울까지 왔는데도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는게 아니냐 가슴 애태우면서 3박 4일을 보냈던 량한상 씨 .오늘 새벽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극적으로 만나고 이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벼워 보입니다.
⊙기자: 량한상 씨의 사연이야말로정말 전 국민들이 가장 가슴이 아팠을만한 사연입니다.
⊙앵커: 그렇습니다.
⊙기자: 아주 다행이다.
이곳 모든 사람들이 한결 같이 오늘 아침 입을 모아서 전하는 얘기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앵커: 량한상 씨가 서울에 와서 어머니를 만나지 못 하는 상황을 두고 참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저희 KBS로 걸려온 제보전화 가운데는 화상전화기를 제공하겠다, 화상전화기를 통해서라도 어머니와 한 번 얼굴이라도 보는 상봉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런 제안도 있었구요.
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한다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텐데, 만나지 못하고 가게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전화들이 많이 걸려왔었죠.
⊙기자: 지금 아마 한 가족 이별을 앞두고 뭔가 안주머니에다가 편지 같죠.
그런 걸 아마 넣어주는 모습도 보이고, 눈물을 흘리는 가족모습도 보입니다.
⊙앵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에 가족들 그 애끊는 마음을...
⊙기자: 무엇보다도 기약없는 이별이라는 점 때문에 그리고 이들 모두가 고령이라는 점 때문에 이제 떠나면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감정들이 지금 복받치고 있기 때문에 감정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마지막 상봉의 순간입니다.
분단 이후 두 번째 최대규모로 성사된 이번 이산가족 교환방문.
앞으로 면회소 설치와 이산가족 재결합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찌됐던 이번에 이산가족 상호 방문은 우리 남북관계에 상당히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청신호라고 할 수가 있겠죠.
일단 다음 달이면 또 남한에서는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있고, 먼회소 설치를 위한 적십자회담도 예정이 돼 있지 않습니까?
⊙기자: 물론 우리 국내 각 언론 반응취재도 당연히 그렇습니다마는 외국 언론들의 반응도 이것은 한반도에 있어서의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남북교류 화해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이 어떤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만남이 있어야 된다, 그런 얘기들을 할 수 있었구요.
그리고 지적해 온 통일된 의견이 바로 그런 점입니다.
결코 이것이 일회성 행사로만 끝나서는 안 되겠다.
계속 이어지는 행사가 돼야 되겠다, 이런 평가, 그리고 지적들입니다.
⊙앵커: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이번에 가족들 그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정해진 공간에서만 만났고 또 만난 뒤에는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자야 되고 가족들 입장에서는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그리던 어머니 곁에서 잠들고 싶다,
비싼 고급 호텔보다는 어머니 곁에서 한 번이라도 잠을 자 봤으면 좋겠다,
산해진미보다는 어머니가 해 준 밥, 따뜻한 밤 한 그릇 먹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정말 이런 아쉬움들이 많았는데요.
앞으로 이산방문이 서로 확대가 되면 일단 가족당 5명으로 제한돼 있는 숫자도 늘리고 또 가능하면 집에도 한 번씩 가는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자: 지금 하 경 씨하고 그 아들이 부둥켜 안고 우는 장면입니다.
⊙앵커: 하 경 씨의 아들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목 놓아 아버지를 외쳐보는 모습입니다.
⊙기자: 저 하 경 씨가 그러니까 어제 밤에 과거 50년 전에 헤어진 부인 김옥진 씨를 만나 한을 풀었구요.
지금은 아들이 아버지를 목놓아 크게 불러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앵커: 하 경 씨도 남한의 부인을 만나러 왔었는데 그 동안 참 상봉을 하지 못해서 애를 많이 태웠었지요.
어제 오후 두 번째 개별상봉에서도 부인이 결국 나타나지 않아서 부인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게 아닌가 참 가슴 많이 아파했는데 결국 하 경 할아버지도 부인을 만났지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 이미 일부는 버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마는 다른 사람들은 역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때문에 이별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참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만난 순간이고 또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순간인데 쉽게 떨어지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정말 50년 동안 참아왔던 그리움, 반세기 동안 쌓였던 응어리를 풀어내기에는 3박 4일은 너무나 짧기만 합니다.
이제 잠시 뒤면 또 다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이산가족들.
50년 만에 만났는데 사흘 만에 헤어지려니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자: 지금 화면에 나오는 할머니가 조주경 박사의 어머니였구요.
20년 동안 절에 들어가서 불공을 드리면서 아들을 만나기를 불공을 드려왔다는 분이었습니다.
손수건으로 서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들이 지금 곳곳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못다한 말이 너무나 많은데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은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자: 그나마 그래도 15년 전에 지난 85년도에 이산가족 상봉때는 만남 횟수가 번이었지만 이번에 6번 정도를 만나게 도다 보니까 그때 보다는 많이 그래도 응어리가 풀어진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백운기 앵커도 조금 전에 지적을 했습니다마는 만남의 횟수도 늘리고 방문단 규모를 좀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
⊙앵커: 그렇습니다.
⊙기자: 그리고 한 가족당 방문단이 1명씩으로 제한돼 있는데 이왕이면 한 가족당 2, 3명씩으로 늘리고 그리고 방문단 전체 규모도 늘리고 그런 의견들이 즉석해서 나오는 의견들이 그런 의견들입니다. 바로 이런 장면들이 보이기 때문에...
⊙앵커: 그렇습니다.
관련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지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형제간이 많은 가족도 있을 것이고 형제간이 적은 가족도 있을 텐데 물론 처음이고 여러 가지 규정을 정하다 보니까 5명으로 제한을 했습니다마는...
⊙기자: 그러다 보니까 사실 어제 백운기 할아버지인데요.
이쪽으로 서울 방문단 백운기 할아버지 가족들은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방문단 숫자가 5명으로 제한되다 보니까 패찰을 들고 방문을 하는데 서로 패찰을 바꿔가면서 상봉을 해서 무려 13명의 가족이 만났다고 하는 이것도 당국에서는 알고 있지만 일부러 제재를 하지 않고 놔두서...
⊙앵커: 모른 척 해 줬군요.
⊙기자: 그런 묘안도 속출했습니다.
⊙앵커: 짧은 만남, 긴 이별.
이곳 워커힐 호텔 마지막 상봉현장.
아쉬움과 눈물, 그리고 목놓아 외치는 소리들이 뒤범벅이 돼 있습니다.
⊙기자: 손녀딸을 지금 안아보는 장면입니다.
⊙앵커: 참 이번에 신기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50년 동안 그렇게 헤어져 살아 있었는데도 처음 보는 순간 아, 저기는 부자지간이 맞구나, 모녀지간이 맞구나 할 정도로 정말 닮은 얼굴이에요.
⊙기자: 그렇죠 얼굴이 워낙 닮았기 때문에 아마 첫 눈에도 저희 취재진들도 그렇게 느낀 것이 결국 혈육이라는 것은 정말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속일 수 없다.
피는 눈물보다 진하다 그런 것을 정말 실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손녀딸이 전덕찬 큰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라는 글을 써 들고 있습니다.
모두 다 가까이서 보지 못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떠나는 이산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 경 씨죠.
⊙기자: 예
⊙앵커: 하 경 씨 아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하 경 씨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선창했고 통일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 경 씨는 올해 74살, 서울에서 사진사로 일하다가 6.25때 동생 하정유 씨와 헤어졌습니다.
아까 아버지하고 부른 게 하 경 씨를 아버지라고 부른 게 아니고 두 분이 아버지를 외쳤나요, 그런 것 같죠?
⊙기자: 지금 하 경 씨의 가족을 보면 동생하고 만나게 되기 전에 부인이 있었는데 지금 안으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 이런 것 같습니다.
김옥진 씨 아들이 그러니까 한 번 어머니의 남편이죠.
안으면서 아버지를 처음 불러본 그런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화면에서 보이는 이 같은 이별의 장면들이 곳곳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한 절반 이상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앵커: 이제 마지막 작별을 끝낸 서울 방문단 한 사람, 한 사람 버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습니다.
눈물로 보내는 가족들, 이제 보면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을 것인지 50년 만에 만난 아들인데 따뜻한 밥 한 그릇 해주지 못하고 다시 북으로 보내는 가족들의 마음 정말 미어질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 상봉입니다.
업혀서 나오는 분이 계신데요.
마지막으로 가시기 전에 형을 한 번 업어보고 싶은 남쪽의 동생입니다.
⊙기자: 아까 포옹을 하면서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이 동생분이군요.
동생인데 아마 이 순간에 아버지가 생각이 난 것 같습니다.
형제들이 극적으로 헤어지다 보니까 그래서 안으면서 목메인 소리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워커힐 호텔 상봉에는 지금 이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서 각 방송사 헬기들이 도착을 해서 지금 상봉촬영을 하다 보니까 소음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김은순 씨 같은데요.
⊙앵커: 이제 10분 남았습니다.
현재 예정된 출발 시간은 8시 10분입니다.
이제 10분이면 50년 만에 만남, 그 3박 4일의 일정을 끝내고 이제 떠나게 됩니다.
8월 18일 오전 8시 이제 마지막 상봉을 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으로 많은 눈물을 닦아준 그런 시간들이였습니다.
⊙기자: 당초 출발 예정이 8시였습니다마는 조금 늦추기로 했습니다.
워낙에 상봉 인파도 많이 몰려왔고, 또 떨어지지 않으려는 가족들 그리고 취재진도 버스 안을 취재를 하자, 이렇게 의견이 정해져서 10분간 늦춰서 8시 10분에 버스가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앵커: 가족들 마음은 그랬을 겁니다.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오기 전에는 하루가 정말 1년 같고 10년 같고 이제 떠나려고 하는 순간 3박 4일은 너무나도 짧기만 했습니다.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가족들.
이제 떠나면 다시 언제 볼 수 있을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기자: 이번 취재를 하면서 취재진들도 코끝이 찡해오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장면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마는 지금 이 순간도 또 코끝이 찡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그런 장면들입니다.
이제 이별의 순간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흐르는 시간이 원망스럽고 또 이렇게 서로 각기 나누어서 운명으로 떨어져야 하는 그런 운명이 참으로 가슴아픈 순간입니다.
지난 세월을 한으로만 돌리기에는 그 운명이 너무나 모질었고 하필이면 우리가 서로 각자 그런 길을 걸어와야 하는가 그런 탄식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습니다.
지금 가족들 한 90% 정도는 전부 버스에 서울 방문단이 올라탔구요, 지금은 창을 통해서 다시 손을 흔드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앵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마지막 상봉을 한 서울방문단은 작별인사를 이제 그리운 가족들을 뒤로 남겨둔 채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제 잠시 뒤에 8시 10분이면 서울 방문단은 8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서 서울을 떠나게 되겠습니다.
3박 4일간 눈물로 얼룩졌던 이산가족 상봉, 서울 방문단이 묵고 있는 워커힐 호텔 이제 마지막 상봉의 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요?
⊙기자: 그래도 밝게 웃으려고 얘쓰는 가족들의 모습도 참 보이고 그 웃음 뒤에 숨겨져 있을 아픔이 짐작이 되기 때문에...
⊙앵커: 애써 웃음지어 보지만...
⊙기자: 참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앵커: 아직도 못다한 말이 많이 남아 있는데, 해 주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 많이 남아 있기만 한데 야속한 시간은 마냥 흘러서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꿈 같기만 한 시간들.
⊙기자: 그래도 아마 살아서는 기대를 못 했을 3박 4일 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50년을 억장이 무너지는 세월 속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그나마 한을 조금 풀었기 때문에 아마 이들은 사실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런 심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정이라는 것이 결국 또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지고 어떻게 또 헤어져야 되겠느냐 그런 생각들 때문에 결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다라는 그런 바램을 정말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아마 속으로...
⊙앵커: 아무쪼록 부디 살아계시라, 조국통일이 되면 또다시 만납시다.
떠나는 서울 방문단이나 보내는 남한의 가족들 그러나 모두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에 참으로 가슴 미어지는 그런 마지막 상봉의 순간입니다.
⊙앵커: 저희 KBS는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상봉과 또 작별인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지금 이산가족 상봉단이 버스를 타고 갈 그 곳 바로 옆에 그러니까 경찰통제선 바로 옆에 오픈 스튜디오를 마련해 놓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약간 소음이 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보다 더 가까이에서 이산가족들의 슬픔 그리고 마지막 상봉, 작별인사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해 드리기 위해서 오픈 스튜디오를 이곳 광장 앞에 마련했습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다행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여러 차례 만남이 있었고 시간시간마다 서로 간에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고 조금씩 더 만날 수 있게 한 것 그리고 량한상 씨나 하 경 씨나 만나지 못 하고 돌아갈 줄 알았던 어머니와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 모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자: 무엇보다도 온 국민의 어떤 안타까움을 풀어줬던 것이 오늘 새벽에 량한상 씨가 병원에 가서 드디어 어머니를 만난것, 이것은 그야말로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정신에 맞는 일이 아닌가 비록 남북 양측이 당초에 서로 합의했던 장소는 아니지만 이 인륜을 어떻게 끊겠느냐는 남북당국의 배려와 판단 때문에 결국 오늘 새벽에 극적인 상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앵커: 짧기만 해서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픈 상봉의 순간.
이제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 방문단 버스에 올라타서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가슴 미어지는 그런 상봉의 순간들입니다.
⊙기자: 지금 버스에서 가족들도 핸드폰으로 남측 가족들과 다시 지금 전화를 하는 그런 상황도 있습니다.
방송인 이지연 씨 같은데요.
⊙앵커: 오빠를 만났죠.
⊙기자: 리래성 씨 오빠를 만났었고, 오늘 또 떠나는 오빠를 배웅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군요.
지금 KBS 오픈 스튜디오가 있는 쪽으로도 가족들이 대거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아주 이곳도 굉장히 혼잡한데요.
바로 지금 화면에 나오는 모습이 바로 저희 오픈 스튜디오 바로 옆 모습, 그런 장면들입니다.
가족들이 우는 울음소리 그런 것이 지금 취재진의 귀에도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제 출발이 약 1분, 곧 이곳을 아마 떠나야 될 것 같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결국 시간이 속절 없이 흘렀고 이제 기약없는 이별의...
⊙앵커: 지금 보이는 분은 이영수 씨입니다.
어머니를 만나러 내려왔습니다.
용산 교통학교 재학중에 6.25로 헤어졌습니다.
이영수 씨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자전거를 구하러 갔다가 헤어져서 그 뒤로 50년,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간 뒤에 소식이 끊긴 지 50년, 저마다 애절한 사연을 안고 살아온 50년 세월, 이제 50년 만에 다시 만나서 가족들과 그리운 가족들과 손꼽아 기다려온 상봉을 했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야속한 시간은 흘러서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죠.
⊙기자: 결국 또 예정시간을 좀 넘길 정도로 헤어지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앵커: 8시 출발 예정시간이었는데요, 10분간 연장이 됐었고 이제 8시 10분이 됐지만 아직도 출발하지 못 합니다.
⊙기자: 참 갖가지 사연도 많습니다마는 어린아들과 헤어진 지 50년 만에 서로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그런 순간들이었는데 또다시 이제 헤어져야 되고 이들이 전부 고령이기 때문에 ...
⊙앵커: 그렇습니다.
⊙기자: 그야말로 이제는 아마 다시 못 보는 것 아니냐 그런 심정들이다 보니까 이것이 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들입니다.
다시 만날 것들을 말로 서로 얘기는 하지만 과연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들이 서로의 가슴에 묻혀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순간들입니다.
이제 서울 방문단은 전부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땅에 서 있고 서로 창을 통해서 손짓을 주고 받고 있고 다시 한 번 눈물을 훔치고 또 가슴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앵커: 이제 서울 방문단이 이곳 워커힐 호텔을 떠나서 김포공항으로 간 뒤에는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기자: 지금 잠시 뒤에 이곳 워커힐 호텔 숙소를 떠나면 올림픽대로를 따라서 김포공항으로 갑니다.
김포공항에서 이륙 예정시간이 당초 9시 정도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이 시각이 지켜질지 조금 워낙 늦어지기 때문에 하여튼 9시로 예정이 되어 있고 김포공항에서 특별한 환송행사는 없습니다.
바로 출발하도록...
⊙앵커: 출국수속만 하고 바로 떠나게 되겠군요.
⊙기자: 아마 지금 여기서 이 장면을 보게 되면 김포공항에서도 이런 장면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앵커: 지금 이곳에 오지 못했거나 또는 이쪽에서 상봉이 어렵다고 생각한 가족들이 그곳에 가 있을 수도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 김포공항에 있는 우리 취재진들이 알려온 소식...
⊙앵커: 방금 손을 흔드신 분은 황의분 씨입니다.
올해 84살, 주체섬유학자인 이승기 박사의 아내입니다.
이번에 남쪽에 있는 올케 강순악 씨를 만났습니다.
⊙기자: 취재진들이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북에서 온 최고령자인데 3박 4일 내내 오늘이 벌써 닷새째입니다마는 아주 건강한 모습입니다.
⊙앵커: 아무튼 처음에 오셨을 때 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진 그런 모습입니다.
⊙기자: 저 할머니 얼굴을 보게 되면 그저 우리 시골에 계시는 외할머니, 그런 얼굴과 똑 같아서 역시 우리의 한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앵커: 오늘 아침 극적으로 상봉을 했던 량한상 씨가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말을 잇지 못 하고 목놓아 울던 모습을 저희가 기억을 합니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산가족으로 보이는데요.
핸드폰을 선물한 모양인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가족들이 일단 핸드폰을 가지고 가시면서 김포공항까지 가는 중간에도 계속 전화를 하자.
우리가 전화를 걸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다고 합니다.
⊙앵커: 우리 안내원이 전달해 준 핸드폰으로 서로 통화를 하고 있는 거군요.
현재 남쪽에 있는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조금이나마 더 목소리라도 들어보기 위해서 이제 마지막 전화를 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서로 핸드폰을 건네 주면서 마지막 한마디 말이라도 더 가슴에 담기 위해서 이렇게 통화를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기자: 아마 안내원들도 곳곳에서 지금 핸드폰을 건네준 것으로 보입니다.
핸드폰을 선물한 가족들도 있고 또 가족들이 워낙 애타게 요청을 하다 보니까 안내원들이 잠시 올라가서 핸드폰을 건네 주기도 하고요.
⊙앵커: 이제 서울 방문단을 실은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기만 한 3박 4일 이제 서울방문단을 실은 관광버스가 서서히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연신 손을 흔들어 보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합니다.
반세기 동안의 응어리를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짧기만 했던 3박 4일.
이제 또다시 기약없는 생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기자: 지금 선두차가 먼저 워커힐 호텔 숙소를 출발하고 있습니다.
맨 앞쪽으로는 경찰 호위차가 나가고 그리고 방송 카메라 기자들을 가득 태운 오픈카, 무개차들이 또 서서히 출발했습니다.
⊙앵커: 이곳 워커힐 호텔 상공에도 마지막 상봉장면과 그리고 떠나는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서 방송사 헬기들이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 방문단을 실은 버스가 워커힐 호텔을 떠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기자: 버스는 지금 8대입니다.
8대에 모두 분승을 해서 서울방문단 그리고 수행원, 취재진들은 대부분 먼저 앞쪽에서 무개차를 타고 떠나고 있고 그리고 나머지 8대의 버스들도 떠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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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리운 어머니에게 못 다한 말이 아직도 많은데...
아직도 해야 할 말은 많이 남아만 있는데 야속한 시간은 마냥 흘러서 이제는 돌아가야만 합니다.
꿈 같기만 했던 3박 4일.
꿈이라면 깨지 않고 싶었던 3박 4일.
반세기 동안의 응어리를 풀어내기에는 너무나 짧기만 했던 3박 4일.
기약 없는 이별, 서울 방문단을 실은 버스가 워커힐 호텔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가족들.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면서 북으로 떠나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워커힐까지 올 때 약 1시간이 채 못 걸렸었죠.
⊙기자: 통상 1시간 정도 걸립니다마는 경찰이 통제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출발예정 시간 9시를 맞추기는 ...
⊙앵커: 너무나 아쉽고 가슴 아픈 그런 이별이지만 그래도 가족들 이번에 선택받아서 다른 이산가족들과 달리 만날 수 있었다 하는 그런 것을 위안 삼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천만 이산가족들.
하루빨리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가 제도화되기를 바랍니다.
⊙기자: 지금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이 이륙하는 시각은 오전 10시로 지금 예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북으로 떠나는 가족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만났는데 사흘 만에 헤어지다니, 짧은 만남, 속절 없는 이별입니다.
그토록 손꼽아서 만나기만을 기다렸건만 이렇게 가슴아픈 일이라면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그냥 그리운 채 살아갈 것을 하는 안타까움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서울방문단을 태운 관광버스 8대가 이제 워커힐 호텔을 떠나서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서울 방문단은 남측과 북측 적십자사의 배려로 오늘 아침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족들과 상봉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곳 워커힐 호텔 상공에는 KBS를 비롯한 방송사 헬기가 계속 워커힐 호텔 상공을 선회하면서 서울 방문단의 마지막 출발 장면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워커힐 호텔, 그리고 올림픽 파크텔, 코엑스 그리고 오찬 만찬이 열렸던 모든 현장에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쏟아낸 ...
⊙기자: 취재진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는 그런 순간이 이제 막 지나가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만큼은 울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 다짐도 억장이 무너지는 이 순간 앞에서는 지킬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워커힐 호텔 이미 떠나버린 가족 뒤에 남은 가족들의 오열이 들리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 취재팀이 밤을 새기도 하지만 대개 새벽 4시쯤이면 장비가 모두 가동이 되면서 취재를 시작하지 않습니까?
보면 여기와서 묵은 사흘 밤, 동안 계속보면 밤마다 또 새벽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객실이 많습니다.
7층과 8층에 묵었었죠.
오늘 새벽에 보니까 특히 불이 켜져 있는 방이 참 많았습니다.
역시 떠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
지금 이 모습은 워커힐 호텔에서 출발하기 전에 촬영한 화면입니다.
마지막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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