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아들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기가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한 번 보고 나면 그리움은 더 깊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50년, 막힌 길을 넘어서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갔지만 결국 만나지도 못 하고 돌아온 이산가족도 있습니다.
평양 상봉장에서 꿈에도 그리던 형제들이 이미 고인이 됐다는 기막힌 소식을 접하고 고개를 떨군 두 할머니의 사연을 이해연 기자가 소개합니다.
출동 삼총사입니다.
⊙기자: 휠체어에 의지해 평양 상봉길에 올랐던 69살 김금자 할머니.
꿈에도 그리던 오빠를 만나지 못 했지만 김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오빠를 기다리던 평양 상봉장에서 대신 만난 사람은 기억조차 가물가물 가물한 사촌 언니들.
오빠는 이미 2년 전 고혈압으로 숨졌다는 말을 전해들은 김 할머니는 또 한 번 통곡해야 했습니다.
⊙김금자(69살/오빠 사망): 거기 가 며칠 있었는데 아무리 한 달 있으니까...
그만큼 거기가 괴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 기뻐서 웃고 울고 난린데...
저만 웃음도 안 나오고...
⊙기자: 김 할머니가 오빠와 헤어진 것은 1.4 후퇴 때.
⊙김금자(69살/오빠 사망): 마지막으로 봤던 때가 오빠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이번에는 조금 늦을거다, 그렇게 하면서 구두 사주는 게 너무 고마워서...
여기까지 신고 나왔었다고 ...
그런 게 열흘이라는 게 50년이 걸렸어요.
⊙기자: 평양호텔을 나선 오늘 아침, 김 할머니는 평양 기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오빠가 살아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지만 사촌이 전해 준 소식을 사실로 알고 더 이상의 확인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김금자(69살/오빠 사망):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있다 해도 저는 안 가겠습니다.
⊙기자: 왜요?
⊙김금자(69살/오빠 사망): 가도 만나지도 못하는 거...
⊙기자: 할머니는 이제 19살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오빠의 모습만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할 생각입니다.
50년을 기다려 평양길에 오른 김희조 할머니.
할머니 역시 친동생이 이미 숨졌다는 소식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습니다.
친동생 대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촌동생을 만난 김 할머니.
할머니가 찾는 동생이 어떻게 살다, 언제 죽었는지 조차 제대로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가져간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김 할머니의 눈에는 끝내 눈물이 고이고야 맙니다.
⊙김희조(74살/동생 사망): 속상한 거 말할 수 있나요.
동생 기조만 만나고 갔으면 올 때도 딸들 보고 기분 좋아 춤추고 왔는데... 딴 사람들은 다 만났는데...
⊙기자: 기대와 설레임으로 찾았던 평양 땅.
동생과 부둥켜 안고 50년 설움을 풀어보려 했지만 할머니는 결국 한을 풀지 못하고 이렇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50년 끊긴 길을 넘어 어렵사리 찾아간 그리운 사람들.
하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 하고 돌아온 이산가족들은 또 한 번 울어야 했습니다.
KBS뉴스 이해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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