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다시 만나자.
이번에 이산의 한을 푼 이산가족들이 오늘 헤어지면서 다짐한 말입니다.
지난 85년, 북한에 들어가 혈육을 만났던 이산가족들도 역사 똑같이 꼭 다시 만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재회는 물론 대부분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른 채 또 다른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안세득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85년 9월 21일.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간 이산가족 50명 가운데 35명이 그리운 가족을 만났습니다.
35년 만에 만남.
그러나 너무 짧았습니다.
세 차례 만났지만 전체 상봉 시간은 1시간을 넘지 못했습니다.
한참을 울고 안부 몇 마디 묻고 나니 상봉시간이 다 지나버렸습니다.
나흘 동안 여섯 차례 만나 실컷 울고 마음껏 얘기를 나눈 이번 교환 방문과 비교하면 너무나 아쉬운 만남이었습니다.
남북대치가 첨예하던 당시, 남북 양쪽 모두 대화보다 정치 선전이 앞섰습니다.
⊙85년 당시 북측 이산가족: 우리가 통일되지 못하는 건 미국놈 때문이니까 미국놈 남반부에서 내몰고 우리 조선사람들끼리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면...
⊙기자: 공동취재단도 평양 고려호텔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고장난 사건이나 북한 사회의 약점을 들춰내는데 취재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기자: 이번에 해수욕 가셨습니까?
⊙평양 시민: 예, 갔습니다.
⊙기자: 어디로 갔습니까?
⊙평양 시민: 묘향산으로 갔댔습니다.
⊙기자: 이러한 대결과 불신 때문에 결국 이산가족 상봉은 그 후 중단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어머니를 만났던 황준근 목사.
그 후 15년 동안 어머니의 건강을 빌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황 목사는 지금도 집안 구석구석에 당시 상봉사진을 걸어두고 다시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머니의 생사조차 몰라 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황준근(목사/85년 어머니 상봉): 만났고, 주소 알기 때문에 편지라도 가져가서 전해 줄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지 않겠는가...
⊙기자: 당시 친언니를 만났던 곽선구 여사.
지금도 언니를 생각하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 합니다.
⊙곽선부(85년 언니 상봉): 그 언니 생각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어.정말 만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이 자리에 지금 2차로 가는 분위기에 나처럼 서글픈 서글픈 사람은 없을 거요.
⊙기자: 눈물로 15년 세월을 보내는 동안 당시 방북한 이산가족 50명 가운데 5명은 그리움을 삭이지 못 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4명은 분단의 땅을 등지고 이민을 떠났습니다.
지난 85년 당시 사촌만 만났던 임융의 씨만 3년 전 다시 북한에 들어가 동생 2명을 만났습니다.
임 씨는 북한에서 의과대학 증축을 돕는 의료봉사를 목적으로 평양에 갔다가 뜻밖에 동생들을 만났습니다.
⊙임융의(85년/사촌 상봉 후 97년 방북): 친동생들은 45년 만에 만난 거에요.
그래서 그냥 붙잡고 실컷 우리 울자, 말 할게 뭐 있어요? 그렇죠? 그래서 그냥 붙잡고 2시간 동안 울었어요, 셋이서.
⊙기자: 만나는 기쁨은 잠깐, 이별의 고통은 너무나 길었다는 당시 이산가족들.
지금 당장 만나지 못 한다면 이제 더 늦기 전에 편지나 전화를 통해 안부라도 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KBS뉴스 안세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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