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전쟁을 방불케하는 미국의 참혹한 테러 앞에서 일부 아랍인들은 이를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동안 중동 분쟁의 중심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한 데 대한 분노 때문인데요, 이렇게 오랜 숙적관계를 유지해 온 미국과 아랍의 관계를 문소산 프로듀서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미 테러 대참사가 보도된 직후 팔레스타인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참혹한 테러 앞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그들을 보며 미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이번 테러에 팔레스타인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영토를 둘러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4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 80%를 차지하는 전과를 올렸고 9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유랑민으로 전락했습니다.
하지만 영토를 빼앗긴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이어졌고 가자지구 요르단 서안을 둘러싼 유혈사태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동분쟁의 중심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에서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원했습니다.
건국 초기부터 유지된 이스라엘의 친미정책과 미국 내 유태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이 그 이유였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공급한 무기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양민들이 학살됐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저항과 아랍 과격 단체들의 반미테러가 시작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인의 대립이 격해질수록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한 감정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서 다국적군의 중심에 선 미국은 군사력의 우위를 과시하며 전쟁을 100일 만에 종식시킵니다.
미국의 공습으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는 초토화됐습니다.
걸프전의 승리에 이은 구 소련의 붕괴로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이라크의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미국이 가한 경제제재 조치로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매달 6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미국이 내세운 중동평화는 결국 아랍인들 입장에서는 평화가 아닌 일방적인 간섭에 불과했습니다.
이번 테러참사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던 중동사태에 비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 집권 당시 지속됐던 중동에 대한 유화정책이 힘의 외교를 강조하는 조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무너지면서 미국에 대한 아랍인들의 증오심은 더욱 고조됐습니다.
이번 테러에 대해 미국 정부는 어떠한 보복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일부에서는 3차 대전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원한 관계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KBS뉴스 문소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