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등 점멸 때 건너면 위반

입력 2002.03.08 (19:00)

⊙앵커: 녹색등이 깜빡거리는 상태에서 뒤늦게 횡단보도를 건너신 경험, 다들 있으실 텐데요.
이런 경우에는 사고가 나도 운전사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앵커: 보통 깜빡거리는 걸 보면 뛸까하고 아주 평소의 달리기 실력을 발휘해서 뛰는 분들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그게 위법 사실이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앵커: 뉴스7 초점, 오늘은 보행자들의 위법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성 없는 신호체계를 홍기호 프로듀서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입니다.
보행신호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녹색등이 깜빡이기 시작합니다.
보행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뒤늦게 들어선 사람들은 뛰어 건너기 일쑤입니다.
건너는 도중 빨간 불로 바뀌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주행신호로 바뀌기 무섭게 차량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옵니다.
길을 미처 다 못 건넌 한 아주머니는 오토바이에 치일 뻔합니다.
지난 2000년 11월 이 모씨는 녹색등이 깜빡일 때 길을 건너던 중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면서 출발하던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 3일 서울지방법원은 운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한문철(변호사): 도로교통법 법규상에는 파란불 깜빡거리면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단 말이에요...
⊙기자: 하지만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기자: 녹색신호가 깜빡거릴 때 건너면 그게 위법이라는 걸 혹시 알고 있으셨어요?
⊙인터뷰: 깜빡거릴 때요?
⊙기자: 네.
⊙인터뷰: 저거 떨어지면, 떨어질 때까지 아직 파란불인데요?
⊙인터뷰: 몰랐어요.
파란불이 깜빡거릴 때도 파란불에 건너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인터뷰: 모르지, 늙은이니까 모르지...
⊙인터뷰: 지금까지 그런 걸 어디서 알려준 경우도 없었던 것 같고 거의 신호가 바뀌자마자 거의 깜빡거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자: 교통당국의 홍보 부족으로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위법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고가 날 경우 보행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문철(변호사): 파란불이 깜빡거릴 때 건너더라도 중간에 빨간불로 바뀐 상태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면 엄청난 인명손실과 함께 피해자에게도 20 내지 30%의 잘못이 인정되어 손해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그러한 불이익이 있습니다.
⊙기자: 여의도에 있는 한 보행신호등입니다.
녹색등으로 바뀐 지 불과 7초 만에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는 보통 보행을 시작해 2개의 차선을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시간입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보행자는 녹색등 점멸시에는 도로에 뒤늦게 진입해서는 안 되며 이미 횡단을 시작한 경우에는 되돌아오거나 빨리 횡단을 완료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법을 준수하려면 4차선 이상 도로를 건널 경우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길을 건너다 말고 돌아와야 할 형편입니다.
⊙인터뷰: 처음부터 깜빡거리는 신호등도 있어요.
⊙인터뷰: 그렇죠.
⊙인터뷰: 그럼요.
저기 보세요.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깜빡거리잖아요.
⊙기자: 이처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교통당국은 전국 1500군데 횡단보도에 잔여시간을 알 수 있는 보조신호등을 달았습니다.
⊙경찰청 교통기획과 관계자: 근처에서 건너려고 뛰어오는 사람들을 위한 그런 게 아니냐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횡단보도에 대기하고 있다가 건너가는 사람들을 위한 보조장치입니다.
⊙기자: 하지만 이 또한 본래 취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보행자들이 보조신호등은 횡단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생각해 오히려 도로에 진입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박용훈(교통문제 전문가): 잔여시간 표시장치는 부분적으로 효과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마는 보행자가 잔여시간이 얼마 남았다는 것을 판단해서 횡단보도에 새로 진입하기 때문에 현행 도로교통법상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기자: 지난 2000년 차에 치어 사망한 보행자는 모두 3700여 명.
이 가운데 441명이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보행자들의 혼돈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련법규와 신호체계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합니다.
KBS뉴스 홍기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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