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돌아온 숭례문’

입력 2013.11.08 (22:50) 수정 2013.11.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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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K입니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건 역사를 바라보는 눈, 즉 역사, 사실을 해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형체가 있는, 그러니까 유형의 역사를 복원하는 문제에서도 우리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취재파일K 이슈는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입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던 2008년 2월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십니까?

또 성대하게 복원식을 치렀던 바로 지난 5월의 ‘돌아온 숭례문’을 보시면서 가슴 벅차했던 기억을 갖고 계십니까?

이 숭례문이 복원하고 채 반 년도 지나지 않아 부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긴급점검, 돌아온 숭례문, 홍희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질문> 홍기자, 앞서 영상을 봤습니다만 당시 화재 상황 먼저 짚어볼까요?

<답변>

네, 지난 2008년 2월 10일, 저녁 8시 50분쯤 첫 화재신고가 119에 접수됐습니다.

당시 소방차량 90여 대가 동원됐는데, 불을 끄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초기엔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만 피어오르는 정도였는데 나중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불길은 누각 1층을 집어삼켰고, 새벽 1시에는 뒤쪽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곤 불이 나고 5시간쯤 뒤인 새벽 2시 무렵 결국 숭례문이 불길 속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질문> 불을 쉬 끄지 못하고 그리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나요?

<답변>

네, 무엇보다 소방당국이 목조건물, 그 것도 문화재인 숭례문의 건축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도면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출동 40분만에 불길을 잡았다고 오판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불씨, 불길이 지붕 기와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갑자기 커진 불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겁니다.

3시간이 지나서야 기와를 뜯어내고 불을 끄려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웠습니다.

진화가 어려웠던 사정, 당시 문화재청 건축과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김상구(당시 문화재청 건축과장) : "소방서에서는 손 쓸 방법도 없고, 장비도 없고, 인력도 없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질문>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소실된 숭례문을 지난 5월에, 5년 3개월에 걸쳐 복원을 했는데, 지금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 않습니까?

시청자들도 트위터를 통해 단청도 일본 안료를 썼다던데, 뭐가 전통 방식이라는 건지 궁금하다는 의견 등을 주셨는데요, 먼저 단청 문제, 살펴볼까요?

<답변>

네, 숭례문 관리일지를 보면 지난 5월 26일에 단청이 뜨는 현상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네, 거의 준공 직후부터 단청이 뜨는 현상, 그러니까, 박락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단청 훼손의 위치와 자세한 모습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새로 복원된 숭례문 모습입니다.

성곽 곳곳에 보이는 짙은 색 돌은 불에 타지 않고 남은 옛날 자재를 다시 쓴 것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단청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1층 누각 안쪽에서 보면 부연 위를 덮는 부연개판의 연꽃 무늬 모양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1층 누각 왼쪽을 보면 목재에 있는 옹이에서 송진이 흘러나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층 누각의 단청에서도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꽃 무늬 단청의 칠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청 훼손의 위치를 보면, 건물 정면, 그러니까 남쪽 방향의 서까래 머리 부분이 주로 훼손됐습니다.

또, 아래층보다는 위층에 단청 훼손이 집중돼 있습니다.

문화재청의 1차 종합점검 결과 모두 여든 한 곳에서 단청의 훼손이 나타났습니다.

문화재청은 단청면을 현미경으로 촬영해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단청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곳도 추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질문> 칠하고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단청이 떨어져나가는 등 훼손이 되는지 잘 납득이 안 가는데요, 그 이유, 취재가 됐습니까?

<답변>

네, 복원작업 당시 다른 건 몰라도 단청 채색은 좀 미루자, 이런 의견이 나왔었다는 사실이 이번 취재에서 드러났는데요,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청 훼손이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는 얘기나 다름없는거죠.

단청작업을 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길래 작업을 늦추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는지, 박석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단청이 떨어져 나간 곳을 살펴보면 주로 연꽃 문양 부분입니다.

특히 분홍색 꽃잎에서 박락, 즉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심했습니다.

이 분홍색은 사람 피부색이라고 해서 육색으로도 불립니다.

육색은 붉은색과 흰색 안료를 섞어서 만드는데, 입자 크기가 서로 달라서 혼합이 어렵습니다.

<녹취> 권현규(충북 무형문화재 단청장) : "혼합이 잘 안 되다 보니깐 색깔이 한 번에 나오면 시공이 편리한데, 이게 은폐가 돼요, 이 안료가. 해서 밑에 것이 안 보일 정도로 후채(두껍게 색칠) 되고 (바탕색이) 안 보여야 되는데 그게 안 되고 색이 비치니까, 이러면 안 되잖아요."

때문에 이번 단청 작업에서는 바탕 녹색 위에 흰색을 덧칠한 뒤, 그 위에 다시 육색을 칠하는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녹취> 홍창원(숭례문 단청장) : "녹색 바탕에 붉은색을 칠하게 되면 칙칙하거든요. 선명도가 잘 안 나와요. 그러다보니까 조개 가루, 호분 바탕을 미리 문양에다 그려 놓고 하면 색이 밝게 살아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 흰색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화를 불렀다는 게 단청 책임자의 분석입니다.

<녹취> 홍창원(숭례문 단청장) : "호분을 두 번 칠하다 보니까 안료 층이 두꺼워져가지고 그 부분에서 탈락(박락)이 되는 거죠. 피막이 두꺼워지다 보니까 떨어져 갈라지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왜 숭례문 단청에서만 호분의 두께가 문제가 됐을까?

조개 가루인 호분을 나무에 칠하려면 접착제 성분이 필요한데, 이번 숭례문 단청에는 아교가 사용됐습니다.

아교는 동물 가죽 등을 끓여서 만듭니다.

단점은 습기에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단청용 안료를 시험 분석해서 아교와 아크릴 수지의 장단점을 세세히 분석했고, 이 이후부터 아교보다는 아크릴 수지를 사용하는 게 보편화됐습니다.

현재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에도 단청 안료 배합표에 아교와 함께 아크릴 수지가 명기돼 있습니다.

<녹취> 권현규(충북 무형문화재 단청장) : "(74년도에 이미 그럼 아크릴 수지가 지정이 됐습니까?) 그렇지, 권장 안료가 있었어요, 접착제도. 어느 회사 것까지도 지정이 돼있었습니다."

그런데,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숭례문 복원에서만큼은 전통 방식에 따라 아교를 쓰기로 한 겁니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2011년 넉 달여 동안 아교와 아크릴 수지를 비교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아교를 사용할 경우 수분이 유입되면 결합력이 떨어지고 안료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전통 복원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게 평가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미 아교 생산이 중단됐다는 것.

<녹취> 복구단장 : "생산만 중단된 것뿐만 아니고 기법 자체도 사라졌는데, 2009년에 아교를 재현했다고 발표가 나서 그 방법대로 아교를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서 우리가 접착 실험을 하니까 접착력이 약해져서 그 아교를 사용할 경우에는 단청 안료가 나무에 붙어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안으로 일본산 아교를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 우리 것이 아닌 일본 재료를 써야 하는 모순에 빠진 겁니다.

그리고 아크릴 수지에 의존하던 국내 단청 기술은 아교를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고, 결국 얼마 안 가 단청이 벗겨지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번 숭례문 단청에는 전통기술 보존을 위해 천연 안료를 쓴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남 담양에 있는 한 안료 업체가 석간주, 즉 검붉은 색 안료를 공급했습니다.

<녹취> 조규성(홍익천연물연구소 연구소장) : "산화철이 함유된 광물을 초미세 분쇄한 후에 가마에다가 850도의 열을 줘서 장시간 소성한 강제 산화시킨 안료입니다."

하지만 단청의 바탕색인 녹색을 비롯한 다른 색 안료들은 색감이 좋다는 이유로 일본산이 수입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들여온 안료는 인공색소와 돌가루를 섞어서 만든 이른바 수간분채로, 사실상 합성안료입니다.

숭례문 단청을 통해 전통 천연 안료를 복원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녹취> 박미례(문화재전문위원) : "성분을 보면, 수간분채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재료가 화학 성분 안료에 분채를 혼합해서 다시 가공한 안료기 때문에, 수간분채를 다시 적용할 이유는 전혀 없거든요. 그러면 수간분채에 대한 연구를 우리가 해야될 이유도 없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숭례문 단청 작업을 했더라면, 우리 기술로 복원한 전통 재료를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질문> 단청 말고 다른 쪽은 어떻습니까?

목재나 기와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네, 숭례문 기와가 퇴색이 됐다, 목재가 충분히 건조가 되지 않아 갈라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냥 넘어갈 사안들은 분명 아닙니다.

한승연 기자가 기와와 목재 부분을 집중 취재했는데, 보시죠.

<리포트>

대규모 한옥 체험단지를 짓는 공사 현장입니다.

곳곳에서 목재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 목재는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에서 자란 금강송.

험난한 풍파를 견뎌내면서 자란 최고급 목재로 터지거나 뒤틀림 현상이 덜합니다.

그럼에도, 3년 이상 자연건조하고 한번 잘라낸 뒤 뒤틀리면 다시 잘라내서 변형을 최소화시킵니다.

<녹취> 김만섭(대목수) :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늘한 곳에서 그늘진 곳에서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말리는 게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숭례문에 쓰인 목재는 어떨까.

2층 문루의 기둥이 위아래로 1미터 이상 크게 갈라져 있습니다.

삼척 금강송을 자연상태에서 말린 거지만, 얼마나 건조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숭례문에 쓰인 목재는 모두 15만여 재.

이 가운데 만여 재를 민간에서 기증받았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을 급히 맞추려다 보니 이 목재들이 적합한 지 제대로 검증을 못했고, 그러다 보니 부실한 목재도 적잖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기간이 짧죠. 기간이.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수율, 즉 목재가 수분을 머금고 있는 비율도 애초부터 기준이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숭례문 목재의 함수율 기준은 24퍼센트, 일반 목조 건축물의 함수율 기준인 18에서 20퍼센트 보다도 높습니다.

그만큼 덜 말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그것이 계속 갈라지는 거예요. 세월이 가면서. 아무래도 속에 건조가 덜 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되살리려 가장 중점이 두어졌던 기와.

공장제 기와에 밀려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었던 전통 수제 기와가 숭례문에 쓰였습니다.

이 숭례문에 쓰인 기와를 생산했던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기와 장인인 고 한형준 선생이 지휘하며 만들어낸 수제 기와들이 숭례문에 보내졌습니다.

모두 2만 3천여 장.

이 기와는 물을 흡수하는 정도인 흡수율이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보통의 전통 수제 기와의 흡수율 기준은 9퍼센트, 숭례문에 쓰인 기와는 10에서 15퍼센트 사이였습니다.

흡수율이 높으면 그만큼 물을 많이 머금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한겨울에는 얼어서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녹취>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일반적으로 다른 기와를 굽는 분들은 수제로 하더라도 9%까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흡수율이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건 어떤 기준에서 그런가."

그래도 제작자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녹취> 김창대 : "어떻게 바라보면 동파가 우려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부에 있는 물까지 빨아 당겨가지고 증발시켜버립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기처럼 숨 쉰다는 말을 할 수 있겠죠."

다만, 지난해 여름 폭우 때 가마의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구워진 일부 기와는 불량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창대 : "온도가 안 올라가서 안 굽혔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차 집어넣어서 구워서 올려보냈는데 한두 장 완벽한 게 다 올라갔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 거죠. 대신 최대한 선별해가지고 다시 구울 건 굽고..."

고 한형준 제와장이 80대의 고령이었고, 그래서 이번 숭례문 기와를 만든 제자들이 기와 제작기법을 제대로 전수받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습니다.

<녹취>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한 선생님이 여기서 감독을 얼마나 했어요?"

<녹취> 김창대(전수조교) : "한형준 선생님께서 계속 여기 오가시면서 하셨습니다. 2주마다 오셔가지고."

숭례문이 복원된 뒤 관리 직원이 기록한 일지입니다.

7월 21일, 기와가 시공 때보다 퇴색되고 있다, 25일, 현판 글씨가 변색되고 있다, 8월 28일, 기와 1, 2층 변색이 계속 진행중이다.

직원은 기와와 현판의 문제를 여러 차례 기록했습니다.

<녹취> 숭례문 관리 직원(음성변조) : "보는 시각 차이가 있잖아요. 나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때도 묻고 약간 차이점들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확 달라지는 거는 아니고."

문화재청은 기와의 변색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섭씨 1000도 이상에서 구운 기와는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현판도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는 것이라며 색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조상순(문화재청 학예연구사/10월 17일) : "지금 제가 육안으로 봤을 때는 어디에도 노란색의 기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지 기록 직원이)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육안으로 약간의 노란 끼가 있다는 걸 파악하기는 굉장히 힘들다고 전 생각합니다."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숭례문의 기와와 목재.

역시, 기한을 맞추느라 서두른 흔적이 역력합니다.

문제가 현실화되기 전에 보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질문> 여러 곳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대부분 복원을 서두르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런 진단이 나오는데, 근본 원인이랄까요, 어떻게 봐야할까요?

<답변>

네, 취재를 하면서 저희 취재팀도 그런 물음을 하고 답을 찾아 다녔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 복원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들어보시죠.

<녹취> "(총체적으로 봤을 때 제일 큰 문제점은 뭐예요?) 5년 3개월이 걸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준공을 하려고 했잖아요? 근데 그때 못했죠. 왜냐면 준비가 안됐는데 어떻게 합니까. 결국에는 가장 큰 건 조급증. (감리는 왜 제대로 안했을까요?) 젊은 현장 기술자들이, 문화재 보수 기술자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래된 숙련 장인에 대해서 감리를 제대로 한다?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사실상 이런 감리제도도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죠."

<질문> 제가 2003년쯤에 독일에 갔었는데요, 옛 동독지역인 드레스덴에서 2차 대전 때 파괴됐던 프라우엔 교회를 복원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20년째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땀한땀 정교하게 복원해가는 노력을 하는 건데, 이에 비해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이런 얘기군요.

<답변>

네, 숭례문 준공행사 계획안을 보면 행사일은 화재 5년째 되는 날, 또,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인 지난 2월 10일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미뤄지면서 당시 문화재청 차장이 고위관계자로부터 크게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문화재청 차장은 이 일로 인해 사흘간 휴대전화도 꺼 놓은채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3일은 연가 처리했는데요, 이 일을 전화를 해서 물어봤습니다.

<녹취> 당시 문화재청 고위관계자 : "(3일 연가 내셨던 것은 맞죠?) 네, 개인적인 일로 낸 것입니다. 다 오해예요."

본인은 부인하는데, 그러나 당시 공사현장에도 이 이야기는 파다하게 퍼졌었다고 합니다.

신응수 대목장에게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왜 이렇게 빨리 안됐느냐, 그래서 혼이 났다 이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더라."

이 밖에도 하도급 과정에서 공사 비용의 집행이 제대로 안 됐다는 등 갖가지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질문> 이제 앞으로가 문젠데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검토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답변>

네, 문화재청은 단청 훼손 부분에 있어서는 단청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칠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강경환 문화재보존국장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정확히 점검해서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그 원인에 따라서 보수하는 바에 따라서 아마 전부 새로 칠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세부적인 부분만 보수하면 될지 그런 부분이 아마 그렇게 결정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녹취> "저희가 사실 전통방식으로 복구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만, 저희가 조금 미숙하거나 간과한 부분은 전통방식의 복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단절돼 있었는지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 얘기를 조금 돌려보죠.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요?

이 부분도 한번 짚어볼까요?

<답변>

네, 이번에 설익은 전통기술까지 동원해서 숭례문 복원에 나섰던 것은 국보1호라는 상징성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1호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거나, 가장 가치가 높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정근 기자가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과정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조선 초 창건된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1934년 관보.

조선총독부가 보물 1호로 남대문을, 보물 2호로 동대문을 지정한 사실이 명기돼 있습니다.

숭례문을 첫손에 꼽은 이유에 대해선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녹취> 김왕직(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 "번호를 붙일 때 서울을 기준으로 지방, 쭉 내려가면서 붙여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퍼스트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편의상 지정하기 위해서 번호를 부여했다.."

<녹취>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조선 출병, 임진왜란 당시에 이 문으로 (일본 장수인) 가토 기요마사가 출입했다라는 기록을 분명히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국보 1호 지정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것이죠."

총독부의 결정은 해방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1962년, 한국 정부는 총독부의 지정을 그대로 참고해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변경하자는 요구가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일제의 일방적 지정이었다는 문제에다, 역사, 예술적 가치와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섭니다.

2005년에는 감사원이 국보 1호를 변경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2005.11.8.) : "감사원은 1호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재로 대체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도 변경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었습니다.

<녹취> 유홍준(당시 문화재청장) :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하고, 그럴 바에는 1호만이라도 바꿔달라고 하는 여론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가 변경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은 물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당시 문화재위원장이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취재파일 K와의 전화 통화에서, "1호라는 숫자가 가장 중요한 국보라는 취지는 아니며, 변경에 따른 혼란이 우려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불에 타 원형을 잃고 다시 세워진 숭례문, 국보 1호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옵니다.

<녹취> 문화재 전공 00대학 교수 : "숭례문이 국보 1호라서 소중하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얘기예요. 암만 국민 여론이 어떻든 간에 불탄 걸 어떡해? (즉시 국보에서) 해제하고, 그걸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전통기법으로 복원했다는 건) 등 떠밀려서 쇼한 것밖에 아니다... "

이번 복원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보 1호라는 불변의 지위를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번 숭례문 복원 과정의 문제들, 짚어보고나니, 참 한숨도 나오고 그러네요.

네, 차근차근 복원과정을 취재하다보니까 우리 행정이 이른바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앵커 멘트>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재 복원 전반에 대한 연구와 지원 체계 등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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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급점검! ‘돌아온 숭례문’
    • 입력 2013-11-08 20:02:14
    • 수정2013-11-09 11:10:13
    취재파일K
<앵커 멘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취재파일 K입니다.

최근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건 역사를 바라보는 눈, 즉 역사, 사실을 해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형체가 있는, 그러니까 유형의 역사를 복원하는 문제에서도 우리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취재파일K 이슈는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입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던 2008년 2월의 그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십니까?

또 성대하게 복원식을 치렀던 바로 지난 5월의 ‘돌아온 숭례문’을 보시면서 가슴 벅차했던 기억을 갖고 계십니까?

이 숭례문이 복원하고 채 반 년도 지나지 않아 부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긴급점검, 돌아온 숭례문, 홍희정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질문> 홍기자, 앞서 영상을 봤습니다만 당시 화재 상황 먼저 짚어볼까요?

<답변>

네, 지난 2008년 2월 10일, 저녁 8시 50분쯤 첫 화재신고가 119에 접수됐습니다.

당시 소방차량 90여 대가 동원됐는데, 불을 끄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초기엔 숭례문 지붕에서 연기만 피어오르는 정도였는데 나중에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습니다.

불길은 누각 1층을 집어삼켰고, 새벽 1시에는 뒤쪽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곤 불이 나고 5시간쯤 뒤인 새벽 2시 무렵 결국 숭례문이 불길 속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질문> 불을 쉬 끄지 못하고 그리 어려움을 겪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나요?

<답변>

네, 무엇보다 소방당국이 목조건물, 그 것도 문화재인 숭례문의 건축구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도면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출동 40분만에 불길을 잡았다고 오판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불씨, 불길이 지붕 기와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갑자기 커진 불길을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겁니다.

3시간이 지나서야 기와를 뜯어내고 불을 끄려했지만 이마저도 어려웠습니다.

진화가 어려웠던 사정, 당시 문화재청 건축과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김상구(당시 문화재청 건축과장) : "소방서에서는 손 쓸 방법도 없고, 장비도 없고, 인력도 없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질문>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소실된 숭례문을 지난 5월에, 5년 3개월에 걸쳐 복원을 했는데, 지금 여러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 않습니까?

시청자들도 트위터를 통해 단청도 일본 안료를 썼다던데, 뭐가 전통 방식이라는 건지 궁금하다는 의견 등을 주셨는데요, 먼저 단청 문제, 살펴볼까요?

<답변>

네, 숭례문 관리일지를 보면 지난 5월 26일에 단청이 뜨는 현상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네, 거의 준공 직후부터 단청이 뜨는 현상, 그러니까, 박락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단청 훼손의 위치와 자세한 모습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새로 복원된 숭례문 모습입니다.

성곽 곳곳에 보이는 짙은 색 돌은 불에 타지 않고 남은 옛날 자재를 다시 쓴 것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단청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1층 누각 안쪽에서 보면 부연 위를 덮는 부연개판의 연꽃 무늬 모양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1층 누각 왼쪽을 보면 목재에 있는 옹이에서 송진이 흘러나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층 누각의 단청에서도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꽃 무늬 단청의 칠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청 훼손의 위치를 보면, 건물 정면, 그러니까 남쪽 방향의 서까래 머리 부분이 주로 훼손됐습니다.

또, 아래층보다는 위층에 단청 훼손이 집중돼 있습니다.

문화재청의 1차 종합점검 결과 모두 여든 한 곳에서 단청의 훼손이 나타났습니다.

문화재청은 단청면을 현미경으로 촬영해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단청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곳도 추가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질문> 칠하고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단청이 떨어져나가는 등 훼손이 되는지 잘 납득이 안 가는데요, 그 이유, 취재가 됐습니까?

<답변>

네, 복원작업 당시 다른 건 몰라도 단청 채색은 좀 미루자, 이런 의견이 나왔었다는 사실이 이번 취재에서 드러났는데요,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청 훼손이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는 얘기나 다름없는거죠.

단청작업을 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길래 작업을 늦추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는지, 박석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단청이 떨어져 나간 곳을 살펴보면 주로 연꽃 문양 부분입니다.

특히 분홍색 꽃잎에서 박락, 즉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심했습니다.

이 분홍색은 사람 피부색이라고 해서 육색으로도 불립니다.

육색은 붉은색과 흰색 안료를 섞어서 만드는데, 입자 크기가 서로 달라서 혼합이 어렵습니다.

<녹취> 권현규(충북 무형문화재 단청장) : "혼합이 잘 안 되다 보니깐 색깔이 한 번에 나오면 시공이 편리한데, 이게 은폐가 돼요, 이 안료가. 해서 밑에 것이 안 보일 정도로 후채(두껍게 색칠) 되고 (바탕색이) 안 보여야 되는데 그게 안 되고 색이 비치니까, 이러면 안 되잖아요."

때문에 이번 단청 작업에서는 바탕 녹색 위에 흰색을 덧칠한 뒤, 그 위에 다시 육색을 칠하는 방식이 적용됐습니다.

<녹취> 홍창원(숭례문 단청장) : "녹색 바탕에 붉은색을 칠하게 되면 칙칙하거든요. 선명도가 잘 안 나와요. 그러다보니까 조개 가루, 호분 바탕을 미리 문양에다 그려 놓고 하면 색이 밝게 살아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 흰색 호분이 두껍게 칠해져 화를 불렀다는 게 단청 책임자의 분석입니다.

<녹취> 홍창원(숭례문 단청장) : "호분을 두 번 칠하다 보니까 안료 층이 두꺼워져가지고 그 부분에서 탈락(박락)이 되는 거죠. 피막이 두꺼워지다 보니까 떨어져 갈라지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왜 숭례문 단청에서만 호분의 두께가 문제가 됐을까?

조개 가루인 호분을 나무에 칠하려면 접착제 성분이 필요한데, 이번 숭례문 단청에는 아교가 사용됐습니다.

아교는 동물 가죽 등을 끓여서 만듭니다.

단점은 습기에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197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단청용 안료를 시험 분석해서 아교와 아크릴 수지의 장단점을 세세히 분석했고, 이 이후부터 아교보다는 아크릴 수지를 사용하는 게 보편화됐습니다.

현재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에도 단청 안료 배합표에 아교와 함께 아크릴 수지가 명기돼 있습니다.

<녹취> 권현규(충북 무형문화재 단청장) : "(74년도에 이미 그럼 아크릴 수지가 지정이 됐습니까?) 그렇지, 권장 안료가 있었어요, 접착제도. 어느 회사 것까지도 지정이 돼있었습니다."

그런데, 40년 세월이 지난 지금, 숭례문 복원에서만큼은 전통 방식에 따라 아교를 쓰기로 한 겁니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2011년 넉 달여 동안 아교와 아크릴 수지를 비교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아교를 사용할 경우 수분이 유입되면 결합력이 떨어지고 안료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전통 복원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게 평가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미 아교 생산이 중단됐다는 것.

<녹취> 복구단장 : "생산만 중단된 것뿐만 아니고 기법 자체도 사라졌는데, 2009년에 아교를 재현했다고 발표가 나서 그 방법대로 아교를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서 우리가 접착 실험을 하니까 접착력이 약해져서 그 아교를 사용할 경우에는 단청 안료가 나무에 붙어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안으로 일본산 아교를 사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전통을 살리기 위해 우리 것이 아닌 일본 재료를 써야 하는 모순에 빠진 겁니다.

그리고 아크릴 수지에 의존하던 국내 단청 기술은 아교를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고, 결국 얼마 안 가 단청이 벗겨지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번 숭례문 단청에는 전통기술 보존을 위해 천연 안료를 쓴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남 담양에 있는 한 안료 업체가 석간주, 즉 검붉은 색 안료를 공급했습니다.

<녹취> 조규성(홍익천연물연구소 연구소장) : "산화철이 함유된 광물을 초미세 분쇄한 후에 가마에다가 850도의 열을 줘서 장시간 소성한 강제 산화시킨 안료입니다."

하지만 단청의 바탕색인 녹색을 비롯한 다른 색 안료들은 색감이 좋다는 이유로 일본산이 수입됐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들여온 안료는 인공색소와 돌가루를 섞어서 만든 이른바 수간분채로, 사실상 합성안료입니다.

숭례문 단청을 통해 전통 천연 안료를 복원한다는 애초의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녹취> 박미례(문화재전문위원) : "성분을 보면, 수간분채를 이루고 있는 주요 재료가 화학 성분 안료에 분채를 혼합해서 다시 가공한 안료기 때문에, 수간분채를 다시 적용할 이유는 전혀 없거든요. 그러면 수간분채에 대한 연구를 우리가 해야될 이유도 없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숭례문 단청 작업을 했더라면, 우리 기술로 복원한 전통 재료를 사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질문> 단청 말고 다른 쪽은 어떻습니까?

목재나 기와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답변>

네, 숭례문 기와가 퇴색이 됐다, 목재가 충분히 건조가 되지 않아 갈라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냥 넘어갈 사안들은 분명 아닙니다.

한승연 기자가 기와와 목재 부분을 집중 취재했는데, 보시죠.

<리포트>

대규모 한옥 체험단지를 짓는 공사 현장입니다.

곳곳에서 목재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 목재는 강원도 삼척과 경북 울진에서 자란 금강송.

험난한 풍파를 견뎌내면서 자란 최고급 목재로 터지거나 뒤틀림 현상이 덜합니다.

그럼에도, 3년 이상 자연건조하고 한번 잘라낸 뒤 뒤틀리면 다시 잘라내서 변형을 최소화시킵니다.

<녹취> 김만섭(대목수) :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늘한 곳에서 그늘진 곳에서 바람 잘 통하는 곳에서 그렇게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말리는 게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숭례문에 쓰인 목재는 어떨까.

2층 문루의 기둥이 위아래로 1미터 이상 크게 갈라져 있습니다.

삼척 금강송을 자연상태에서 말린 거지만, 얼마나 건조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숭례문에 쓰인 목재는 모두 15만여 재.

이 가운데 만여 재를 민간에서 기증받았습니다.

그런데 공사기간을 급히 맞추려다 보니 이 목재들이 적합한 지 제대로 검증을 못했고, 그러다 보니 부실한 목재도 적잖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기간이 짧죠. 기간이.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수율, 즉 목재가 수분을 머금고 있는 비율도 애초부터 기준이 엄격하지 못했습니다.

숭례문 목재의 함수율 기준은 24퍼센트, 일반 목조 건축물의 함수율 기준인 18에서 20퍼센트 보다도 높습니다.

그만큼 덜 말려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그것이 계속 갈라지는 거예요. 세월이 가면서. 아무래도 속에 건조가 덜 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되살리려 가장 중점이 두어졌던 기와.

공장제 기와에 밀려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있었던 전통 수제 기와가 숭례문에 쓰였습니다.

이 숭례문에 쓰인 기와를 생산했던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기와 장인인 고 한형준 선생이 지휘하며 만들어낸 수제 기와들이 숭례문에 보내졌습니다.

모두 2만 3천여 장.

이 기와는 물을 흡수하는 정도인 흡수율이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보통의 전통 수제 기와의 흡수율 기준은 9퍼센트, 숭례문에 쓰인 기와는 10에서 15퍼센트 사이였습니다.

흡수율이 높으면 그만큼 물을 많이 머금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한겨울에는 얼어서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녹취>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일반적으로 다른 기와를 굽는 분들은 수제로 하더라도 9%까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흡수율이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건 어떤 기준에서 그런가."

그래도 제작자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녹취> 김창대 : "어떻게 바라보면 동파가 우려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부에 있는 물까지 빨아 당겨가지고 증발시켜버립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기처럼 숨 쉰다는 말을 할 수 있겠죠."

다만, 지난해 여름 폭우 때 가마의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구워진 일부 기와는 불량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녹취> 김창대 : "온도가 안 올라가서 안 굽혔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차 집어넣어서 구워서 올려보냈는데 한두 장 완벽한 게 다 올라갔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는 없는 거죠. 대신 최대한 선별해가지고 다시 구울 건 굽고..."

고 한형준 제와장이 80대의 고령이었고, 그래서 이번 숭례문 기와를 만든 제자들이 기와 제작기법을 제대로 전수받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습니다.

<녹취>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한 선생님이 여기서 감독을 얼마나 했어요?"

<녹취> 김창대(전수조교) : "한형준 선생님께서 계속 여기 오가시면서 하셨습니다. 2주마다 오셔가지고."

숭례문이 복원된 뒤 관리 직원이 기록한 일지입니다.

7월 21일, 기와가 시공 때보다 퇴색되고 있다, 25일, 현판 글씨가 변색되고 있다, 8월 28일, 기와 1, 2층 변색이 계속 진행중이다.

직원은 기와와 현판의 문제를 여러 차례 기록했습니다.

<녹취> 숭례문 관리 직원(음성변조) : "보는 시각 차이가 있잖아요. 나도 전문가가 아니니까. 때도 묻고 약간 차이점들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확 달라지는 거는 아니고."

문화재청은 기와의 변색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섭씨 1000도 이상에서 구운 기와는 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현판도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는 것이라며 색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녹취> 조상순(문화재청 학예연구사/10월 17일) : "지금 제가 육안으로 봤을 때는 어디에도 노란색의 기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일지 기록 직원이)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육안으로 약간의 노란 끼가 있다는 걸 파악하기는 굉장히 힘들다고 전 생각합니다."

전통방식으로 제조된 숭례문의 기와와 목재.

역시, 기한을 맞추느라 서두른 흔적이 역력합니다.

문제가 현실화되기 전에 보다 엄밀한 검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질문> 여러 곳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대부분 복원을 서두르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런 진단이 나오는데, 근본 원인이랄까요, 어떻게 봐야할까요?

<답변>

네, 취재를 하면서 저희 취재팀도 그런 물음을 하고 답을 찾아 다녔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 복원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문가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들어보시죠.

<녹취> "(총체적으로 봤을 때 제일 큰 문제점은 뭐예요?) 5년 3개월이 걸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준공을 하려고 했잖아요? 근데 그때 못했죠. 왜냐면 준비가 안됐는데 어떻게 합니까. 결국에는 가장 큰 건 조급증. (감리는 왜 제대로 안했을까요?) 젊은 현장 기술자들이, 문화재 보수 기술자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오래된 숙련 장인에 대해서 감리를 제대로 한다?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사실상 이런 감리제도도 한번 되씹어 볼 필요가 있죠."

<질문> 제가 2003년쯤에 독일에 갔었는데요, 옛 동독지역인 드레스덴에서 2차 대전 때 파괴됐던 프라우엔 교회를 복원하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는데, 20년째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한땀한땀 정교하게 복원해가는 노력을 하는 건데, 이에 비해 우리는 너무 조급했다, 이런 얘기군요.

<답변>

네, 숭례문 준공행사 계획안을 보면 행사일은 화재 5년째 되는 날, 또,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인 지난 2월 10일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사가 미뤄지면서 당시 문화재청 차장이 고위관계자로부터 크게 질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문화재청 차장은 이 일로 인해 사흘간 휴대전화도 꺼 놓은채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화재청은 이 3일은 연가 처리했는데요, 이 일을 전화를 해서 물어봤습니다.

<녹취> 당시 문화재청 고위관계자 : "(3일 연가 내셨던 것은 맞죠?) 네, 개인적인 일로 낸 것입니다. 다 오해예요."

본인은 부인하는데, 그러나 당시 공사현장에도 이 이야기는 파다하게 퍼졌었다고 합니다.

신응수 대목장에게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녹취> 신응수(대목장) : "왜 이렇게 빨리 안됐느냐, 그래서 혼이 났다 이런 얘기가 있었던 것 같더라."

이 밖에도 하도급 과정에서 공사 비용의 집행이 제대로 안 됐다는 등 갖가지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질문> 이제 앞으로가 문젠데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검토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답변>

네, 문화재청은 단청 훼손 부분에 있어서는 단청을 모두 뜯어내고 다시 칠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재청 강경환 문화재보존국장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정확히 점검해서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그 원인에 따라서 보수하는 바에 따라서 아마 전부 새로 칠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부 세부적인 부분만 보수하면 될지 그런 부분이 아마 그렇게 결정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녹취> "저희가 사실 전통방식으로 복구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만, 저희가 조금 미숙하거나 간과한 부분은 전통방식의 복구가 얼마나 심각하게 단절돼 있었는지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지 않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 얘기를 조금 돌려보죠.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거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어요?

이 부분도 한번 짚어볼까요?

<답변>

네, 이번에 설익은 전통기술까지 동원해서 숭례문 복원에 나섰던 것은 국보1호라는 상징성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1호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다거나, 가장 가치가 높다는 것은 아닙니다.

최정근 기자가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된 과정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조선 초 창건된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1934년 관보.

조선총독부가 보물 1호로 남대문을, 보물 2호로 동대문을 지정한 사실이 명기돼 있습니다.

숭례문을 첫손에 꼽은 이유에 대해선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녹취> 김왕직(명지대 건축학과 교수) : "번호를 붙일 때 서울을 기준으로 지방, 쭉 내려가면서 붙여나가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퍼스트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냥 편의상 지정하기 위해서 번호를 부여했다.."

<녹취>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조선 출병, 임진왜란 당시에 이 문으로 (일본 장수인) 가토 기요마사가 출입했다라는 기록을 분명히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국보 1호 지정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것이죠."

총독부의 결정은 해방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1962년, 한국 정부는 총독부의 지정을 그대로 참고해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숭례문을 국보 1호에서 변경하자는 요구가 여러 차례 제기됐습니다.

일제의 일방적 지정이었다는 문제에다, 역사, 예술적 가치와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섭니다.

2005년에는 감사원이 국보 1호를 변경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KBS 뉴스9(2005.11.8.) : "감사원은 1호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문화재로 대체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도 변경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었습니다.

<녹취> 유홍준(당시 문화재청장) :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하고, 그럴 바에는 1호만이라도 바꿔달라고 하는 여론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가 변경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은 물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당시 문화재위원장이던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취재파일 K와의 전화 통화에서, "1호라는 숫자가 가장 중요한 국보라는 취지는 아니며, 변경에 따른 혼란이 우려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불에 타 원형을 잃고 다시 세워진 숭례문, 국보 1호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지만, 다른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옵니다.

<녹취> 문화재 전공 00대학 교수 : "숭례문이 국보 1호라서 소중하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얘기예요. 암만 국민 여론이 어떻든 간에 불탄 걸 어떡해? (즉시 국보에서) 해제하고, 그걸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전통기법으로 복원했다는 건) 등 떠밀려서 쇼한 것밖에 아니다... "

이번 복원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보 1호라는 불변의 지위를 곰곰이 되돌아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번 숭례문 복원 과정의 문제들, 짚어보고나니, 참 한숨도 나오고 그러네요.

네, 차근차근 복원과정을 취재하다보니까 우리 행정이 이른바 ‘보여주기식’의 형식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앵커 멘트>

이번 기회를 통해 문화재 복원 전반에 대한 연구와 지원 체계 등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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