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논란 부추긴 ‘역사교과서 보도’

입력 2014.01.12 (17:20) 수정 2014.01.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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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해 처음으로 이른바 보수 성향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사 검정을 통과했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쟁이 뜨거웠지만 실제로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매우 적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다뤘을까요?

역사교과서 논란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문제점, 구경하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구 기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가 만들고 교육 당국이 내용을 검정하기 시작한 지 이미 10년이 넘었는데, 이번에 크게 논란이 된 이유는 뭐죠?

<답변>

네, 지난해 정부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9종 가운데 8종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정치 성향을 분류하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리포트>

역사교과서를 이념 논쟁으로 끌어들인 건 정치권이었습니다.

<녹취> 전병헌(민주당 원내대표) : "유해물 수준의 교과서를 검정 합격시킨 이유와 배경에 대해 민주당은 끝까지 추궁할 것이고..."

<녹취> 홍문종(새누리당 사무총장) :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좌성향이라고 하는데, 유독 우성향 교과서 하나만 문제삼는 것은 산업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새누리당은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을 발족하고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을 초청했습니다.

민주당은 교육부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고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를 요구했습니다.

4개 역사단체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사실관계 오류 298개가 발견됐다는 검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이 1944년에 본격화된 것처럼 표현했고 5.18 민주화 운동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한 사실을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헌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내용, 부여의 위치를 만주가 아닌 한반도로 잘못 서술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다른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맞받았습니다.

<녹취> 권희영(한국사중앙연구원 교수/교학사 집필자) : "현재의 좌편향 교과서들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이석기 의원 같은 사태가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8종의 교과서에 대해 829건을 수정, 보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교학사를 제외한 6종의 교과서 집필진들이 교육부의 방침에 반발하며 수정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일부 수정, 보완을 거쳐 지난해 12월 중순 각 학교에 교과서가 제공됐습니다.

역사 교과서 채택을 마친 전국 약 1800개의 고등학교 중 당초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20여 곳.

<녹취> "우리 상산의 명예와 후배의 바른 역사관을 지켜주십시오."

그러나 비판 여론에 부딪히면서 대부분의 학교가 선정을 번복하거나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교학사 집필자) :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그 잔인성과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우리 국민들한테 여실하게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정치권에서는 '역사 전쟁'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이념 대립 양상을 보였는데요.

언론의 보도 역시 교과서 논란을 교육 문제보다는 이념 갈등의 양상으로 보도한 것 같아요?

<답변>

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으로 보장되는 가치인데요.

하지만 언론보도는 정치권과 정부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반면 교육 현장의 당사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리포트>

언론은 교학사 교과서를 '우편향', 그 외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분류한 정치권의 기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녹취> 경향신문(8.31.) :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최종 검정 통과 교학사 발간...우편향 논란 거셀 듯"

<녹취> 조선일보(9.24) : "좌파 일색 교과서에 처음으로 다른 목소리...맹공 당해"

하지만 과거 교과서 집필과 검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이념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 : "교과서를 놓고 어떤 역사관을 이야기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과정, 집필 준거안에 따라서 집필하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필자의 역사관이 깊이 들어가긴 사실 어렵습니다. 이번에 통과된 교과서들을 놓고 우편향, 좌편항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들이 정치권의 이념 논쟁에 휩쓸린 것은 취재원을 인용한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미디어 인사이드는 역사교과서 검정심의 결과가 발표된 지난해 8월말부터 지난 7일까지 5대 일간지 관련 기사의 취재원을 분석해봤습니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집필진, 정당이 가장 많이 인용된 취재원이었습니다.

전문지식을 가진 학계는 15%, 교과서를 사용할 당사자인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입장을 인용한 경우는 9%에 불과했습니다.

신문들은 역사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과정에서도 자사 입장을 뒷받침하는 취재원을 집중 인용해 편향성을 나타냈습니다.

언론이 교육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자사 의견을 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인터뷰>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 : "아예 색깔로 규정을 하고 교학사 문제를 접근하고, 그 교과서에 내용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검토하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방송도 있었습니다. 그건 방송사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하라고 하는 강요인 거죠."

지상파 방송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종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보도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상파 3사가 저녁 메인 뉴스에서 역사교과서 논란을 보도한 기사는 5개월간 평균 11건에 불과해, 종편 보도의 절반에 그쳤습니다.

<인터뷰> 김육훈 교사(전국역사교사모임/서울 신현고 교사) : "교과서와 관련된 건 사실 하나 정도의 사실관계 오류만 있어도 언론에서 지금까지 비중 있게 보도해 온 적이 있었고, 언론에서 찾아내서라도 고치라고 말해야 하는데 과연 언론이 얼마만큼 이 교과서를 실제로 읽어보고 심층적으로 보도하려 했는지 묻고 싶고요."

<질문>

최근 일선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교과서 선정작업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의견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언론사별로 보도 태도가 크게 엇갈리고 있죠?

<답변>

네, 특히 일부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벌인 교학사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는데요.

언론사별로, 또 한 언론사에서 사안별로 논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리포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한 학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들 학교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학생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가하면 교사, 학부모가 인터넷상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박삼옥(전주 상산고등학교 교장) : "당초 취지와 달리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불신과 분열을 초래하여 가장 소중한 학생들이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상황이 발생해 한국사 교과서 재선정 절차를 착수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나승일(교육부 차관) : "일부 시민. 교직 단체들의 항의 방문과 학교주변에서의 시위 및 시위계획 통보, 조직적인 항의전화 등이 교과서 선정 번복 결정에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인터뷰>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교학사 집필자) :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휘둘릴수록 이 혼란은 가중될 거라 생각합니다. 교육이 진영논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교육적 논의는 실종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채택 저지 운동을 구체적으로 보도해 온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수준미달의 교과서가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한겨레(1.3.) : "친일, 독재 미화 논란에 오류투성이로 밝혀진 교학사 교과서를 교재로 선택한 학교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은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여론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1.8.) : "남의 생각은 한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광기의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벌이는 데 대한 일부 언론의 평가가 사안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08년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조선일보는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교육당국의 검정을 통과한 역사왜곡 교과서가 문제가 되었을 때는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에 나선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동아일보(2005.9.1.) : "'아시아 평화와 역사 교육연대'는 국내에서 모금 운동을 벌여 일본여론에 호소하는 광고를 냈는가 하면 일본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채택 반대 캠페인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인터뷰> 안병우 교수(아시아 역사연대 대표) : "일본에 잘못된 교과서를 비판하는 것은 격려하고 긍정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의 문제가 있는 교과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채택과 관련된 행동을 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공격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보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질문>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10여 년 전부터 교육과정이 개편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데요.

갈등을 줄이려면 언론 보도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대답>

네, 그렇습니다. 교과서 문제를 이념 갈등이 아니라 교육 문제로 다루기 위해서는 언론이 교육 현장에 좀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는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일선 고등학교에 역사 교과서가 배포된 것은 지난달 중순, 새 학기 시작 2달여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학기 시작 6개월 전 교과서를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일부 학교에서 선정 결과를 번복하거나 아직도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육훈(전국역사교사모임/서울 신현고 교사) : "교육과정 자체가 바뀐 시점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충분히 공부해야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지는 건데 이번 같은 경우는 아직도 완성된 책이 아니라고 말하는 지경이니까 사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 외부 압력이 개입한다는 논란을 피하려면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터뷰>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 : "학부모나 당사자 학생이나 함께 모여서 교육과정 내용을 심의하고 교과 내용도 같이 합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고 역사 인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다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고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되도록 언론이 중심을 잡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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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념 논란 부추긴 ‘역사교과서 보도’
    • 입력 2014-01-12 17:19:15
    • 수정2014-01-22 17:53:10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지난해 처음으로 이른바 보수 성향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사 검정을 통과했죠.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쟁이 뜨거웠지만 실제로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매우 적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다뤘을까요?

역사교과서 논란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문제점, 구경하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질문>

구 기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민간 출판사가 만들고 교육 당국이 내용을 검정하기 시작한 지 이미 10년이 넘었는데, 이번에 크게 논란이 된 이유는 뭐죠?

<답변>

네, 지난해 정부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9종 가운데 8종입니다.

그런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미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정치 성향을 분류하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리포트>

역사교과서를 이념 논쟁으로 끌어들인 건 정치권이었습니다.

<녹취> 전병헌(민주당 원내대표) : "유해물 수준의 교과서를 검정 합격시킨 이유와 배경에 대해 민주당은 끝까지 추궁할 것이고..."

<녹취> 홍문종(새누리당 사무총장) : "한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좌성향이라고 하는데, 유독 우성향 교과서 하나만 문제삼는 것은 산업화의 역사를 부정하는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새누리당은 근현대사 역사교실 모임을 발족하고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을 초청했습니다.

민주당은 교육부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고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취소를 요구했습니다.

4개 역사단체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사실관계 오류 298개가 발견됐다는 검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이 1944년에 본격화된 것처럼 표현했고 5.18 민주화 운동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한 사실을 명시적으로 기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헌 헌법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내용, 부여의 위치를 만주가 아닌 한반도로 잘못 서술한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다른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맞받았습니다.

<녹취> 권희영(한국사중앙연구원 교수/교학사 집필자) : "현재의 좌편향 교과서들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이러한 것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이석기 의원 같은 사태가 다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8종의 교과서에 대해 829건을 수정, 보완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교학사를 제외한 6종의 교과서 집필진들이 교육부의 방침에 반발하며 수정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일부 수정, 보완을 거쳐 지난해 12월 중순 각 학교에 교과서가 제공됐습니다.

역사 교과서 채택을 마친 전국 약 1800개의 고등학교 중 당초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20여 곳.

<녹취> "우리 상산의 명예와 후배의 바른 역사관을 지켜주십시오."

그러나 비판 여론에 부딪히면서 대부분의 학교가 선정을 번복하거나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인터뷰>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교학사 집필자) :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지 그 잔인성과 전체주의적인 면모를 우리 국민들한테 여실하게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정치권에서는 '역사 전쟁'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며 이념 대립 양상을 보였는데요.

언론의 보도 역시 교과서 논란을 교육 문제보다는 이념 갈등의 양상으로 보도한 것 같아요?

<답변>

네,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성은 헌법으로 보장되는 가치인데요.

하지만 언론보도는 정치권과 정부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반면 교육 현장의 당사자들의 반응을 살피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리포트>

언론은 교학사 교과서를 '우편향', 그 외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분류한 정치권의 기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녹취> 경향신문(8.31.) :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최종 검정 통과 교학사 발간...우편향 논란 거셀 듯"

<녹취> 조선일보(9.24) : "좌파 일색 교과서에 처음으로 다른 목소리...맹공 당해"

하지만 과거 교과서 집필과 검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이념 성향으로 분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박찬승(한양대 사학과 교수) : "교과서를 놓고 어떤 역사관을 이야기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과정, 집필 준거안에 따라서 집필하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필자의 역사관이 깊이 들어가긴 사실 어렵습니다. 이번에 통과된 교과서들을 놓고 우편향, 좌편항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론들이 정치권의 이념 논쟁에 휩쓸린 것은 취재원을 인용한 방식에서도 드러납니다.

미디어 인사이드는 역사교과서 검정심의 결과가 발표된 지난해 8월말부터 지난 7일까지 5대 일간지 관련 기사의 취재원을 분석해봤습니다.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와, 집필진, 정당이 가장 많이 인용된 취재원이었습니다.

전문지식을 가진 학계는 15%, 교과서를 사용할 당사자인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입장을 인용한 경우는 9%에 불과했습니다.

신문들은 역사학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과정에서도 자사 입장을 뒷받침하는 취재원을 집중 인용해 편향성을 나타냈습니다.

언론이 교육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자사 의견을 전달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윱니다.

<인터뷰>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 : "아예 색깔로 규정을 하고 교학사 문제를 접근하고, 그 교과서에 내용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검토하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 방송도 있었습니다. 그건 방송사의 입장을 무조건 수용하라고 하는 강요인 거죠."

지상파 방송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종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보도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상파 3사가 저녁 메인 뉴스에서 역사교과서 논란을 보도한 기사는 5개월간 평균 11건에 불과해, 종편 보도의 절반에 그쳤습니다.

<인터뷰> 김육훈 교사(전국역사교사모임/서울 신현고 교사) : "교과서와 관련된 건 사실 하나 정도의 사실관계 오류만 있어도 언론에서 지금까지 비중 있게 보도해 온 적이 있었고, 언론에서 찾아내서라도 고치라고 말해야 하는데 과연 언론이 얼마만큼 이 교과서를 실제로 읽어보고 심층적으로 보도하려 했는지 묻고 싶고요."

<질문>

최근 일선 고등학교에서 한국사 교과서 선정작업이 이뤄지면서 비로소 교사, 학생, 학부모의 의견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언론사별로 보도 태도가 크게 엇갈리고 있죠?

<답변>

네, 특히 일부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벌인 교학사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는데요.

언론사별로, 또 한 언론사에서 사안별로 논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리포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한 학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들 학교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학생들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이는가하면 교사, 학부모가 인터넷상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박삼옥(전주 상산고등학교 교장) : "당초 취지와 달리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불신과 분열을 초래하여 가장 소중한 학생들이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상황이 발생해 한국사 교과서 재선정 절차를 착수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나승일(교육부 차관) : "일부 시민. 교직 단체들의 항의 방문과 학교주변에서의 시위 및 시위계획 통보, 조직적인 항의전화 등이 교과서 선정 번복 결정에 주요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인터뷰> 이명희(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교학사 집필자) : "정치 논리에 휘둘리면 휘둘릴수록 이 혼란은 가중될 거라 생각합니다. 교육이 진영논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교육적 논의는 실종되고 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채택 저지 운동을 구체적으로 보도해 온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수준미달의 교과서가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한겨레(1.3.) : "친일, 독재 미화 논란에 오류투성이로 밝혀진 교학사 교과서를 교재로 선택한 학교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이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등은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은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여론몰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 중앙일보(1.8.) : "남의 생각은 한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집단 광기의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벌이는 데 대한 일부 언론의 평가가 사안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 2008년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조선일보는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교육당국의 검정을 통과한 역사왜곡 교과서가 문제가 되었을 때는 교과서 채택 저지 운동에 나선 일본과 한국 시민단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동아일보(2005.9.1.) : "'아시아 평화와 역사 교육연대'는 국내에서 모금 운동을 벌여 일본여론에 호소하는 광고를 냈는가 하면 일본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채택 반대 캠페인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인터뷰> 안병우 교수(아시아 역사연대 대표) : "일본에 잘못된 교과서를 비판하는 것은 격려하고 긍정적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의 문제가 있는 교과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채택과 관련된 행동을 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공격한다면 그것은 공정한 보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질문>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10여 년 전부터 교육과정이 개편될 때마다 반복되고 있는데요.

갈등을 줄이려면 언론 보도도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대답>

네, 그렇습니다. 교과서 문제를 이념 갈등이 아니라 교육 문제로 다루기 위해서는 언론이 교육 현장에 좀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는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일선 고등학교에 역사 교과서가 배포된 것은 지난달 중순, 새 학기 시작 2달여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학기 시작 6개월 전 교과서를 선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지켜지지 못하면서 일부 학교에서 선정 결과를 번복하거나 아직도 선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육훈(전국역사교사모임/서울 신현고 교사) : "교육과정 자체가 바뀐 시점이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충분히 공부해야 질 높은 교육이 이뤄지는 건데 이번 같은 경우는 아직도 완성된 책이 아니라고 말하는 지경이니까 사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 외부 압력이 개입한다는 논란을 피하려면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터뷰> 박범이(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 : "학부모나 당사자 학생이나 함께 모여서 교육과정 내용을 심의하고 교과 내용도 같이 합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고 역사 인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습니다.

다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고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논의되도록 언론이 중심을 잡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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