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 ‘영원한 오빠’ 남진, 데뷔 50년 신곡 발표

입력 2014.04.10 (15:35) 수정 2014.04.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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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시죠. 데뷔 50년 신곡을 갖고 돌아온 우리들의 영원한 오빠 모시겠습니다.

한국의 앨비스 프레슬리 남진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남진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죠. 젊어보인다. 정말 젊어보입니다."

앵커: "젊으신 거 아니에요?"

앵커: "어제인가요, 쇼케이스 하신 게? "

남진 : "네."

앵커: "빨간색 재킷 입고. 진짜 50대 초반. 진짜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

남진 :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요."

앵커: "그러시죠. 데뷔가 올해 50년, 그러니까 50년이니까..."

앵커: "쉰 이상은 되신 거네요."

앵커: "데뷔를 그럼 5살 때쯤 하신 겁니까?"

남진 : "일찍 했습니다. 아주 소싯적에."

앵커: "40대로도 보이는데 데뷔 50년.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해 주신다면요?"

남진 : "글쎄요. 저는 옛날 그 선배님들 말씀에 세월이 번개 같다, 유수 같다 하는데 요즘 실감을 느껴요. 엊그제 데뷔한 것 같은데 한 5년 된 것 같은데 진짜 반세기가 이렇게 후딱 지나갔어요. 참 아쉽습니다."

앵커: "50년 나는 50년이 지나보니까 이제 노래를 알 것 같다. 어떻습니까?"

남진 : "이제 시작할 것 같아요."

앵커: "이제요?"

남진 : "이제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도 또 여러 가지 노하우라고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인생, 또 노래에 대한 경험을 쌓았으니까 이제부터 정말 한번 시작해 보고 싶은 그런 기분입니다."

앵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신인 같은 풋풋한 느낌이 있으세요, 진짜 말씀하시는 게."

남진 : "진심으로 제 마음입니다."

앵커: "김건모 씨랑 남진 하는 것 같습니다. 50주년 기념 새 앨범 갖고 나오셨어요. 파트너, 상사화.5곡?"

남진 : "네, 5곡 했습니다."

앵커: "저희가 유명 가수분들 모시면 꼭 부탁드립니다. 한 소절만 부탁드립니다. "

남진 : "5곡 다 부르고 싶은데."

앵커: "저희는 좋습니다."

남진 : "리듬이 조금, 요즘.. 제가 한 십 몇 년 전에 둥지라는 노래가 나왔었어요. 그때 그 시절에 제가 나이가 좀 먹어서 불렀었는데. 그 노래를 통해서 다시 젊은 세대와 가까워질 수 있었고 또 우리 세대들하고도 교감을 가졌고 해서. 그래서 이번에도 약간 이 시대에 맞는, 그때처럼 리듬이 있는, 요즘 시대는 전부 댄스를 많이 아실 것 같아서요.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도 좋아할 수 있는 댄스곡이에요. 그리고 또 우리 나이 드신 분들도 요즘 다 이렇게 어깨춤을 추고 그러시잖아요. 그런 리듬의 노래이기 때문에 좀 경쾌하게 컴온 컴온 더 이상 어떻게 좋아. 1년 365일 동안 우리는 멋진 파트너야.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최고. 둘도 없는 파트너야.그대. 그러니까 파트너죠."

앵커: "저희가 반주도 없이 외람된 부탁을 드렸는데. "

남진 : "아니요, 아니요. 노래라는 게 꼭 반주만 있으랍니까."

앵커: "여기가 스튜디오여서 댄스랑 같이 못 보는 게 아쉽습니다. "

앵커: "저희가 쇼케이스 화면도 준비했는데 쇼케이스 화면 좀 볼까요."

앵커: "이게 안무장면이 나오는군요. 정말 멋지십니다. 역시 이 곡에 가장 애착이 가시나요, 이번 앨범에서?"

남진 : "사실 이 곡을 제가 50주년 기념음반을 냈지만 장르가 5개 다 달라요. 그래서 이 곡을 다 부르고 싶은 이유가 상사화는 또 빈잔 같은 아직도 분위기 있는 노래고. 마음에 상처를 달랬는데. 그리고 또 아주 뭐라고 그럴까. 라틴스타일의 아주 또 멋있는 신기루 사랑 또 90년도에 마지막 우리 박준 선생님이 저에게 주셨던 전통 트로트를 이십몇 년 만에 이번에 정말 또 이런 사랑을 다시 할까 겁이 난다는 완전 트로트곡. 전형적인 트로트의 겁이 나. 또 요즘 시대의 트로트에 맞는 빠른 템포의 또 내 나이 50, 60. 한숨 자고 눈떠보니 육십이 웬말이냐.
이렇게 다양하게. 전혀 장르가 다섯 곡이 다 다릅니다."

앵커: "여러 가지 도전을 하셨군요."

남진 : "네."

앵커: "저희가 새 앨범 위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1965년에 정말 혜성처럼 데뷔를 하셨고요. 혹시 지금까지 내가 몇 곡이나 불렀는지 세어보신 적 있으세요?"

남진 : "한 1000곡이 넘더라고요."

앵커: "앨범이 저희가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까 앨범이 한 100장 정도?"

남진 : "그 가까이."

앵커: "가사 다 외우세요?"

남진 : "아무래도 불렀던 노래.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서 자주 불렀던 노래는 기억을 하는데 얼마 전에 한번 분명히 내 목소리인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오래전에 불렀는네도. 그래서 아무래도 사랑 많이 받은 노래만 기억이 나죠. "

앵커: "빈잔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 국민이 모두 다 알 만한 노래 한 몇 곡 뽑아보면."

남진 : "가슴 아프게."

앵커: "님과 함께."

앵커: "님과 함께가 있군요."

남진 : "미워도 다시 한 번. 또 최근에 둥지, 모르리."

앵커: "그대여 변치 마오."

앵커: "그 노래가 히트할 때 조수빈 아나운서가 몇 살이었죠?"

앵커: "저는..."

남진 : "70년대 초의 노래니까."

앵커: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하고 거의 차이가 없으시네요."

앵커: "저때가 몇 살이시죠? "

남진 : "저때 20대 때죠. 20대 중반 때는 안 됐겠네요."

앵커: "그런데 별로 달라 보이지가 않으시네요."

앵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시죠?"

남진 : "그렇죠. 청룡부대죠, 해병군에도 월남에 있었던."

앵커: "심지어 베트남전에도 다녀오고."

남진 : "그렇습니다. 저는 군대생활을 월남에서 다 했습니다. "

앵커: "그런데 요새 연예병사 문제 심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니까."

앵커: "제가 알기로 신인상 받으시고 그다음에 68년인가에 해병대에 입대하셨어요."

남진 : "그렇죠. 그때 마침 월남전이 있어서 청룡부대로 갔습니다."

앵커: "이때 안 해도 되는 입장 아니셨어요?"

남진 : "국민의 의무잖아요, 다. 그런데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때 영화에 저도 많이 출연했는데 영화를 촬영하려고 외국 나가려고 했더니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여권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빨리 갔다 와야 되겠구나. 그래서 바로 그냥 입대해서 또 어릴 때부터 가고 싶은 군대가 해병대였어요. 왜냐하면 고향에서 이렇게 보면 선배님들이 한번 휴가 나오면 해병대는 카키 옷에다가 팔각모에다가 빨간 명찰. 그리고 굉장히 강했어요. 딱 시내에서 보면 해병 두 분이 타군 몇 십명 거뜬히 다 제압하는 거예요."

앵커: "솔직히 지금 수십년 지났으니까 베트남 딱 내려가지고 후회 안 하셨어요?"

남진 : "아무래도 20대 때고 우리가 기질이. 그런데 지나고 보면 가장 내 삶 속에 보람 있었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있다면 월남전이었어요. 참 좋은 경험이었고 세상 모르고 막 하다가."

앵커: "해병대는 한 번 영원한 해병이죠. 거리에서도 새카만 해병대 후배들이 만나서 경례하고 그럽니까?"

남진 : "지금 우리 가수 김흥국 씨는 저만 보면 충성. 딱 그냥 해병의... 영원한 해병 아닙니까?"

앵커: "요즘 좀 조금 떴다 하면 군대 빠지려고 하는 그런 게 문제가 되는데 좀 많이 이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남진 : "아무래도 인기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데 그래도 한참 데뷔해서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 받을 때 갔는데 막 그때 아쉬움도 있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절이 한 남자로서도 그렇고 또 자기 삶 속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되고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죠."

앵커: "저번에 혜은이 씨가 출연하셔가지고 공연할 때 팬들이 막 보려고 하다가 2층에서 떨어지고 막 그랬대요. "

앵커: "공연하는데 사람 떨어지고."

남진 : "그럴 수 있죠. 왜냐하면 너무 많으면 밀려서. 옛날에는 공연장이 좀 그랬으니까."

앵커: "그런데 오빠부대니까 극성부대. 나는 이 정도였다."

남진 : "글쎄, 제가 뭐 얘기하는 것보다는 대충 그 시절의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거 있잖아요. 너무 취해 있으면 그걸 잘 몰라요. 실감을 못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 시절에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큰 행운을 얻었던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것을 저도 이제사 많이 느낍니다. 대단했었어요."

앵커: "부산공연에서 보니까 남진 씨 때문에 극장 담이 두 번이나 무너졌다는데."

남진 : "담이 두 번 무너지고 공단들이 시내쪽에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그때는 우리 산업전사 우리 아가씨들 많이 있었잖아요. 공장에 제가 오면 가동을 못하고 중단해야 돼요. 왜냐하면 전부 다 극장으로 와버리니까. 극장에서 저한테 좀 섭섭히 생각하셨겠지만."

앵커: "72년에 팬클럽 7000명이 결성돼서 남이섬에서 첫 공연을 가졌죠."

남진 : "야외에도 갔었죠. 아마 가수로서는 오빠부대가 형성된 적은 처음이었었고 그런 팬클럽들이 전국에 모여서 야외로 간 건 또 처음이었어요. "

앵커: "그분들이 아직도 많이들 남아계시더라고요, 어제 제가 뉴스 보니까."

앵커: "저희 어머니도 팬이세요."

남진 : "극장공연을 가면. 물론 그때도 공연장일 때 단원들이 한 30명 되죠. 밴드, 스태프들. 그 전 단원들에게 찬합에다 반찬을 해서 갖고 오신 분들이 40년, 50년 동안 지금도 공연 가면 그런 보람이 있죠.옛날 10대 소녀들이 지금 이제 아주머님들 돼서 가족들하고 이렇게 지금도 많은 거, 맛있는 거 싸가지고 오실 때 너무너무 감사하죠."

앵커: "그 팬들 많이 늙으셨겠네요."

남진 : "네, 같이 세월이 가니까."

앵커: "함께 가는 거네요."

남진 : "그러나 저를 보면 다 잊어버리죠. 옛날 그때로 돌아가니까 공연할 때 표정을 보면 그 10대 추억으로 돌아가서 즐거워하시고 그런 모습이 좋죠. "

앵커: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많이 하죠."

남진 :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앵커: "저희가 화면 하나 준비, 멋진 화면 하나 준비했습니다. 잠깐 보시겠습니다."

앵커: "느낌이 또 다르네요."

남진 : "리듬이 다르니까. 또 시대에 따라서 감성도 달라지고."

앵커: "멋있죠."

남진 : "완전히..."

앵커: "시대곡을. 물론 지금도 노래방에서 오늘 봄에도 얼마나 많이... 저 빈잔이었죠, 방금? 얼마나 많이..."

남진 : "그렇죠. 재즈 스타일로 해서 리듬을. "

앵커: "후배 가수들 중에 내 노래 가장 멋드러지게 부른다 한 명만 추천하시면?"

남진 : "다 개성이 있으니까요. 다 개성이 있으니까. 임재범 씨가 불렀던 빈잔도 아주 감동적 이었어요. 또 님과 함께 불렀던... 누구죠?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앵커: "아시는 분을..."

남진 : "빈잔 너무너무 멋있었어요."

앵커: "남진 씨 얘기하면 사실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남진 : "라이벌."

앵커: "나훈아 씨.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남진 : "그때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게 우리 팬들이 만들어주신 명라이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또 여러분들 그 시절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앵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고향도 영남, 호남 이렇게 나눠지시고 사회적 분위기도 또 그랬고."

앵커: "팬들끼리 막 싸우고."

남진 : "대단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관심을 받았죠. 저는 그 대신에 가요계 데뷔해서 첫 히트곡 경상도에서 했었고."

앵커: "부산쪽에서도."

남진 : "공연도 굉장히 성황을 이룬 쪽이 전부. 저는 또 집사람도 고향 부산입니다. "

앵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겠지만 젊을 때는 인기 경쟁이 있으니까."

남진 : "그럼요, 치열했죠."

앵커: "나훈아 씨 보면 기분이 나쁘다든지 그런 건 없었어요?"

남진 : "라이벌이라는 게 보는 분의 재미고 느낌이지 우리들은 열심히 했고 아주 좋게 지냈어요."

앵커: "괜히 팬들만 싸웠군요."

남진 : "그렇죠."

앵커: "지금 보면 나훈아 씨가 최근에 대중들과 많이 멀어지셨더라고요. 그러면 혼자 남은 남진은 어디인가 서운하다?"

남진 : "그렇죠, 아쉽죠. 왜냐하면 또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팬들이, 또 많은 팬들이 있잖아요. 기다리고 그리워할 팬들에게 가까이 와야죠."

앵커: "아무래도 연락하시기가 쉽지 않으시죠?"

남진 : "글쎄요. 아직 연락이..."

앵커: "어려운 질문이죠. 그래도 팬들은 언젠가 조만간 두 분이 함께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남진 : "그때 10대 소녀들이잖아요. 이제 세월이 50년이 흘렀죠. 같이 무대에 서서 팬들하고 함께할 때 그 팬들이 얼마나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또 그리워하고 얼마나 또..."

앵커: "미국 보면 40년, 50년 된 밴드들이 호텔에서 모여가지고 공연하잖아요.그러면 백발이 성성한 5, 60대, 70대 노인분들까지 오셔가지고 열광하시잖아요."

남진 : "세월이 지나면 추억처럼 아름답고 그리운 게 없습니다."

앵커: "영원하시네요. "

남진 : "그것을 함께하고 싶어요."

앵커: "그럼 마지막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팬들과 또 어디선가 보고 계실지 모르는 나훈아 씨에게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진 : "우리 나훈아 씨는 많은 팬들이 기다리니까 오셔야 되겠고. 50년이라는 세월까지 살아숨쉬고 노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주실 분들은 우리 전국에 계신 팬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자리를 비롯해서 다시 한 번 그분께 감사드리고 또 앞으로 더욱 잘 부탁합니다. "

앵커: "조만간 콘서트에서 또 뵐 수 있는 거죠?"

남진 : "네, 그럼요. 잘 준비하겠습니다. "

앵커: "알겠습니다. 데뷔 50년 늘 TV에 나오는 그냥 늘 익숙한 친구처럼 남아주십시오."

남진 : "그럼요."

앵커: "가수 남진 씨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오빠,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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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이슈] ‘영원한 오빠’ 남진, 데뷔 50년 신곡 발표
    • 입력 2014-04-10 15:39:15
    • 수정2014-04-10 17: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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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설명이 필요없는 분이시죠. 데뷔 50년 신곡을 갖고 돌아온 우리들의 영원한 오빠 모시겠습니다.

한국의 앨비스 프레슬리 남진 씨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남진 :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죠. 젊어보인다. 정말 젊어보입니다."

앵커: "젊으신 거 아니에요?"

앵커: "어제인가요, 쇼케이스 하신 게? "

남진 : "네."

앵커: "빨간색 재킷 입고. 진짜 50대 초반. 진짜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

남진 :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요."

앵커: "그러시죠. 데뷔가 올해 50년, 그러니까 50년이니까..."

앵커: "쉰 이상은 되신 거네요."

앵커: "데뷔를 그럼 5살 때쯤 하신 겁니까?"

남진 : "일찍 했습니다. 아주 소싯적에."

앵커: "40대로도 보이는데 데뷔 50년.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한마디로 정리를 해 주신다면요?"

남진 : "글쎄요. 저는 옛날 그 선배님들 말씀에 세월이 번개 같다, 유수 같다 하는데 요즘 실감을 느껴요. 엊그제 데뷔한 것 같은데 한 5년 된 것 같은데 진짜 반세기가 이렇게 후딱 지나갔어요. 참 아쉽습니다."

앵커: "50년 나는 50년이 지나보니까 이제 노래를 알 것 같다. 어떻습니까?"

남진 : "이제 시작할 것 같아요."

앵커: "이제요?"

남진 : "이제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도 또 여러 가지 노하우라고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인생, 또 노래에 대한 경험을 쌓았으니까 이제부터 정말 한번 시작해 보고 싶은 그런 기분입니다."

앵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신인 같은 풋풋한 느낌이 있으세요, 진짜 말씀하시는 게."

남진 : "진심으로 제 마음입니다."

앵커: "김건모 씨랑 남진 하는 것 같습니다. 50주년 기념 새 앨범 갖고 나오셨어요. 파트너, 상사화.5곡?"

남진 : "네, 5곡 했습니다."

앵커: "저희가 유명 가수분들 모시면 꼭 부탁드립니다. 한 소절만 부탁드립니다. "

남진 : "5곡 다 부르고 싶은데."

앵커: "저희는 좋습니다."

남진 : "리듬이 조금, 요즘.. 제가 한 십 몇 년 전에 둥지라는 노래가 나왔었어요. 그때 그 시절에 제가 나이가 좀 먹어서 불렀었는데. 그 노래를 통해서 다시 젊은 세대와 가까워질 수 있었고 또 우리 세대들하고도 교감을 가졌고 해서. 그래서 이번에도 약간 이 시대에 맞는, 그때처럼 리듬이 있는, 요즘 시대는 전부 댄스를 많이 아실 것 같아서요. 요즘 우리 젊은 세대들도 좋아할 수 있는 댄스곡이에요. 그리고 또 우리 나이 드신 분들도 요즘 다 이렇게 어깨춤을 추고 그러시잖아요. 그런 리듬의 노래이기 때문에 좀 경쾌하게 컴온 컴온 더 이상 어떻게 좋아. 1년 365일 동안 우리는 멋진 파트너야.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최고. 둘도 없는 파트너야.그대. 그러니까 파트너죠."

앵커: "저희가 반주도 없이 외람된 부탁을 드렸는데. "

남진 : "아니요, 아니요. 노래라는 게 꼭 반주만 있으랍니까."

앵커: "여기가 스튜디오여서 댄스랑 같이 못 보는 게 아쉽습니다. "

앵커: "저희가 쇼케이스 화면도 준비했는데 쇼케이스 화면 좀 볼까요."

앵커: "이게 안무장면이 나오는군요. 정말 멋지십니다. 역시 이 곡에 가장 애착이 가시나요, 이번 앨범에서?"

남진 : "사실 이 곡을 제가 50주년 기념음반을 냈지만 장르가 5개 다 달라요. 그래서 이 곡을 다 부르고 싶은 이유가 상사화는 또 빈잔 같은 아직도 분위기 있는 노래고. 마음에 상처를 달랬는데. 그리고 또 아주 뭐라고 그럴까. 라틴스타일의 아주 또 멋있는 신기루 사랑 또 90년도에 마지막 우리 박준 선생님이 저에게 주셨던 전통 트로트를 이십몇 년 만에 이번에 정말 또 이런 사랑을 다시 할까 겁이 난다는 완전 트로트곡. 전형적인 트로트의 겁이 나. 또 요즘 시대의 트로트에 맞는 빠른 템포의 또 내 나이 50, 60. 한숨 자고 눈떠보니 육십이 웬말이냐.
이렇게 다양하게. 전혀 장르가 다섯 곡이 다 다릅니다."

앵커: "여러 가지 도전을 하셨군요."

남진 : "네."

앵커: "저희가 새 앨범 위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1965년에 정말 혜성처럼 데뷔를 하셨고요. 혹시 지금까지 내가 몇 곡이나 불렀는지 세어보신 적 있으세요?"

남진 : "한 1000곡이 넘더라고요."

앵커: "앨범이 저희가 이것저것 계산해 보니까 앨범이 한 100장 정도?"

남진 : "그 가까이."

앵커: "가사 다 외우세요?"

남진 : "아무래도 불렀던 노래.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서 자주 불렀던 노래는 기억을 하는데 얼마 전에 한번 분명히 내 목소리인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오래전에 불렀는네도. 그래서 아무래도 사랑 많이 받은 노래만 기억이 나죠. "

앵커: "빈잔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 국민이 모두 다 알 만한 노래 한 몇 곡 뽑아보면."

남진 : "가슴 아프게."

앵커: "님과 함께."

앵커: "님과 함께가 있군요."

남진 : "미워도 다시 한 번. 또 최근에 둥지, 모르리."

앵커: "그대여 변치 마오."

앵커: "그 노래가 히트할 때 조수빈 아나운서가 몇 살이었죠?"

앵커: "저는..."

남진 : "70년대 초의 노래니까."

앵커: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하고 거의 차이가 없으시네요."

앵커: "저때가 몇 살이시죠? "

남진 : "저때 20대 때죠. 20대 중반 때는 안 됐겠네요."

앵커: "그런데 별로 달라 보이지가 않으시네요."

앵커: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시죠?"

남진 : "그렇죠. 청룡부대죠, 해병군에도 월남에 있었던."

앵커: "심지어 베트남전에도 다녀오고."

남진 : "그렇습니다. 저는 군대생활을 월남에서 다 했습니다. "

앵커: "그런데 요새 연예병사 문제 심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때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니까."

앵커: "제가 알기로 신인상 받으시고 그다음에 68년인가에 해병대에 입대하셨어요."

남진 : "그렇죠. 그때 마침 월남전이 있어서 청룡부대로 갔습니다."

앵커: "이때 안 해도 되는 입장 아니셨어요?"

남진 : "국민의 의무잖아요, 다. 그런데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때 영화에 저도 많이 출연했는데 영화를 촬영하려고 외국 나가려고 했더니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여권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빨리 갔다 와야 되겠구나. 그래서 바로 그냥 입대해서 또 어릴 때부터 가고 싶은 군대가 해병대였어요. 왜냐하면 고향에서 이렇게 보면 선배님들이 한번 휴가 나오면 해병대는 카키 옷에다가 팔각모에다가 빨간 명찰. 그리고 굉장히 강했어요. 딱 시내에서 보면 해병 두 분이 타군 몇 십명 거뜬히 다 제압하는 거예요."

앵커: "솔직히 지금 수십년 지났으니까 베트남 딱 내려가지고 후회 안 하셨어요?"

남진 : "아무래도 20대 때고 우리가 기질이. 그런데 지나고 보면 가장 내 삶 속에 보람 있었고 아름다웠던 추억이 있다면 월남전이었어요. 참 좋은 경험이었고 세상 모르고 막 하다가."

앵커: "해병대는 한 번 영원한 해병이죠. 거리에서도 새카만 해병대 후배들이 만나서 경례하고 그럽니까?"

남진 : "지금 우리 가수 김흥국 씨는 저만 보면 충성. 딱 그냥 해병의... 영원한 해병 아닙니까?"

앵커: "요즘 좀 조금 떴다 하면 군대 빠지려고 하는 그런 게 문제가 되는데 좀 많이 이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

남진 : "아무래도 인기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하는데 그래도 한참 데뷔해서 최고의 인기를 얻을 때, 받을 때 갔는데 막 그때 아쉬움도 있겠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절이 한 남자로서도 그렇고 또 자기 삶 속에서 가장 좋은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되고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죠."

앵커: "저번에 혜은이 씨가 출연하셔가지고 공연할 때 팬들이 막 보려고 하다가 2층에서 떨어지고 막 그랬대요. "

앵커: "공연하는데 사람 떨어지고."

남진 : "그럴 수 있죠. 왜냐하면 너무 많으면 밀려서. 옛날에는 공연장이 좀 그랬으니까."

앵커: "그런데 오빠부대니까 극성부대. 나는 이 정도였다."

남진 : "글쎄, 제가 뭐 얘기하는 것보다는 대충 그 시절의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거 있잖아요. 너무 취해 있으면 그걸 잘 몰라요. 실감을 못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 시절에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큰 행운을 얻었던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것을 저도 이제사 많이 느낍니다. 대단했었어요."

앵커: "부산공연에서 보니까 남진 씨 때문에 극장 담이 두 번이나 무너졌다는데."

남진 : "담이 두 번 무너지고 공단들이 시내쪽에 있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그때는 우리 산업전사 우리 아가씨들 많이 있었잖아요. 공장에 제가 오면 가동을 못하고 중단해야 돼요. 왜냐하면 전부 다 극장으로 와버리니까. 극장에서 저한테 좀 섭섭히 생각하셨겠지만."

앵커: "72년에 팬클럽 7000명이 결성돼서 남이섬에서 첫 공연을 가졌죠."

남진 : "야외에도 갔었죠. 아마 가수로서는 오빠부대가 형성된 적은 처음이었었고 그런 팬클럽들이 전국에 모여서 야외로 간 건 또 처음이었어요. "

앵커: "그분들이 아직도 많이들 남아계시더라고요, 어제 제가 뉴스 보니까."

앵커: "저희 어머니도 팬이세요."

남진 : "극장공연을 가면. 물론 그때도 공연장일 때 단원들이 한 30명 되죠. 밴드, 스태프들. 그 전 단원들에게 찬합에다 반찬을 해서 갖고 오신 분들이 40년, 50년 동안 지금도 공연 가면 그런 보람이 있죠.옛날 10대 소녀들이 지금 이제 아주머님들 돼서 가족들하고 이렇게 지금도 많은 거, 맛있는 거 싸가지고 오실 때 너무너무 감사하죠."

앵커: "그 팬들 많이 늙으셨겠네요."

남진 : "네, 같이 세월이 가니까."

앵커: "함께 가는 거네요."

남진 : "그러나 저를 보면 다 잊어버리죠. 옛날 그때로 돌아가니까 공연할 때 표정을 보면 그 10대 추억으로 돌아가서 즐거워하시고 그런 모습이 좋죠. "

앵커: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많이 하죠."

남진 :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앵커: "저희가 화면 하나 준비, 멋진 화면 하나 준비했습니다. 잠깐 보시겠습니다."

앵커: "느낌이 또 다르네요."

남진 : "리듬이 다르니까. 또 시대에 따라서 감성도 달라지고."

앵커: "멋있죠."

남진 : "완전히..."

앵커: "시대곡을. 물론 지금도 노래방에서 오늘 봄에도 얼마나 많이... 저 빈잔이었죠, 방금? 얼마나 많이..."

남진 : "그렇죠. 재즈 스타일로 해서 리듬을. "

앵커: "후배 가수들 중에 내 노래 가장 멋드러지게 부른다 한 명만 추천하시면?"

남진 : "다 개성이 있으니까요. 다 개성이 있으니까. 임재범 씨가 불렀던 빈잔도 아주 감동적 이었어요. 또 님과 함께 불렀던... 누구죠?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앵커: "아시는 분을..."

남진 : "빈잔 너무너무 멋있었어요."

앵커: "남진 씨 얘기하면 사실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남진 : "라이벌."

앵커: "나훈아 씨. 재미있는 일도 많았을 것 같아요."

남진 : "그때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게 우리 팬들이 만들어주신 명라이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또 여러분들 그 시절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앵커: "그런데 공교롭게도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고향도 영남, 호남 이렇게 나눠지시고 사회적 분위기도 또 그랬고."

앵커: "팬들끼리 막 싸우고."

남진 : "대단했어요. 그랬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관심을 받았죠. 저는 그 대신에 가요계 데뷔해서 첫 히트곡 경상도에서 했었고."

앵커: "부산쪽에서도."

남진 : "공연도 굉장히 성황을 이룬 쪽이 전부. 저는 또 집사람도 고향 부산입니다. "

앵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겠지만 젊을 때는 인기 경쟁이 있으니까."

남진 : "그럼요, 치열했죠."

앵커: "나훈아 씨 보면 기분이 나쁘다든지 그런 건 없었어요?"

남진 : "라이벌이라는 게 보는 분의 재미고 느낌이지 우리들은 열심히 했고 아주 좋게 지냈어요."

앵커: "괜히 팬들만 싸웠군요."

남진 : "그렇죠."

앵커: "지금 보면 나훈아 씨가 최근에 대중들과 많이 멀어지셨더라고요. 그러면 혼자 남은 남진은 어디인가 서운하다?"

남진 : "그렇죠, 아쉽죠. 왜냐하면 또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팬들이, 또 많은 팬들이 있잖아요. 기다리고 그리워할 팬들에게 가까이 와야죠."

앵커: "아무래도 연락하시기가 쉽지 않으시죠?"

남진 : "글쎄요. 아직 연락이..."

앵커: "어려운 질문이죠. 그래도 팬들은 언젠가 조만간 두 분이 함께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남진 : "그때 10대 소녀들이잖아요. 이제 세월이 50년이 흘렀죠. 같이 무대에 서서 팬들하고 함께할 때 그 팬들이 얼마나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또 그리워하고 얼마나 또..."

앵커: "미국 보면 40년, 50년 된 밴드들이 호텔에서 모여가지고 공연하잖아요.그러면 백발이 성성한 5, 60대, 70대 노인분들까지 오셔가지고 열광하시잖아요."

남진 : "세월이 지나면 추억처럼 아름답고 그리운 게 없습니다."

앵커: "영원하시네요. "

남진 : "그것을 함께하고 싶어요."

앵커: "그럼 마지막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팬들과 또 어디선가 보고 계실지 모르는 나훈아 씨에게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진 : "우리 나훈아 씨는 많은 팬들이 기다리니까 오셔야 되겠고. 50년이라는 세월까지 살아숨쉬고 노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주실 분들은 우리 전국에 계신 팬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자리를 비롯해서 다시 한 번 그분께 감사드리고 또 앞으로 더욱 잘 부탁합니다. "

앵커: "조만간 콘서트에서 또 뵐 수 있는 거죠?"

남진 : "네, 그럼요. 잘 준비하겠습니다. "

앵커: "알겠습니다. 데뷔 50년 늘 TV에 나오는 그냥 늘 익숙한 친구처럼 남아주십시오."

남진 : "그럼요."

앵커: "가수 남진 씨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오빠,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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