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권리와 인권의 딜레마?

입력 2014.08.10 (17:09) 수정 2014.08.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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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언론에서 범죄 피의자의 얼굴, 실명 등의 신상이 드러나는 경우를 적잖이 보셨을 겁니다.

범죄 수위에 따라 신원이 세상에 공개되기도 하고 완전히 가려지기도 하죠.

이런 가운데 언론사마다 공개 여부가 달라서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민영 기자와 함께 이 문제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이민영 기자, 이런 논란이 처음은 아닌데 최근의 경우만 보더라도 피의자 얼굴 등의 신상 공개가 사건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죠?

<답변>
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피의자들과 유대균 씨 수행원 박모 씨의 경우를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선임병들에 의한 집단적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후임병 사망.

윤 일병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들끓었지만 피의자들의 신상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군 당국도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언론도 이들의 뒷모습 정도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균 씨가 체포될 당시 경찰은 수행원 박모 씨도 함께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각 언론사들은 이를 촬영했고 박 씨의 얼굴은 물론 수갑 찬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경찰은 수갑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치운 것에 대해 실수를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언론에 촬영하게 해준 것은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험 사기로 구속수사를 받은 A씨가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된 것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겁니다.

<녹취> "3월 헌법재판소 결정문 수사관서 내에서 수사 장면의 촬영은 보도과정에서 사건의 사실감과 구체성을 추구하고 범죄 정보를 좀 더 실감나게 제공하려는 목적 외에는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

<인터뷰> 양재규(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연속교육팀장) : "얼굴이 공개될 경우에는 다른 어떤 이름이나 주소 이런 것처럼 다른 개인정보 보다도 각인 효과 낙인 효과가 심각하다 따라서 얼굴 공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런 판시를 한 바 있습니다. 얼굴 공개 부분은 다른 개인 정보보다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이번 헌재 결정의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공익적인 경우가 아닐 경우 범죄 피의자 얼굴이나 개인의 신상은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거군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 어떤 경우에 무엇이 공익이냐 하는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난 2009년 7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이른바 강호순 사건.

현장검증 당시 시민들은 얼굴을 공개하라며 격분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009-02-01) : “고개 들어”

고개를 들라는 시민들의 분노 섞인 외침을 의식한 듯 강 씨는 고개를 푹 숙였고 점퍼 컬러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강호순의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이 자체 취재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 때부터 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고 이듬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녹취> “반인륜적 극악범죄의 발생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흉악사범에 대해 얼굴 등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인터뷰> 지성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흉악범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게 되면 일단 다른 재범의 가능성이 많이 낮아집니다. 모방범행 가능성도 낮아지게 되고요. 그리고 신상이 공개됨으로 인해서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되겠다라는 위하적인 효과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반 공익적인 차원에서 보면 범죄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옳습니다.”

<질문>
2009년 강호순 사건 이전에는 얼굴을 모자로 가리거나 실명 공개를 하지 않았었죠?

<답변>
네, 중범죄자 신상공개가 법적으로 허용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 보도한 건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 7월 붙잡힌 유영철.

20명을 연쇄살해한 희대의 범죄자지만 얼굴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큰 강력사건 피의자들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94년 지존파 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의 범인들은 체포 당시부터 얼굴과 이름 등이 언론을 통해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인권 수사가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이후 2005년 10월에 제정돼 2012년에 폐지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서도 경찰서에서 피의자와 피해자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6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정남규, 2008년, 어린이 2명을 살해하고 붙잡힌 정성현도 체포 초기 얼굴을 가리고 언론에서도 정 모 씨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수사당국에서 피의자의 신분노출을 하지 않아도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피의자 신상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건마다 언론사마다 범죄 피의자 공개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2008년 숭례문에 불을 질러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채 모 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지만 체포 직후부터 곧바로 실명이 언론에 공개됐고 지난 2009년 1월 온라인상에서 경제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필명 미네르바 박 모 씨의 경우에도 일부 언론을 통해 실명 등 신상이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박 모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은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반드시 제공해야 된다 이런 중요한 민주주의적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신상 공개를 통해서 저 사람이 흉악 범죄자구나 흉악 범죄 피의자구나 저 사람이 굉장히 나쁜 사람이구나 그걸 안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다른 것을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는 거죠."

<질문>
그런데 현재 수사당국에서 일부 흉악범을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해도 언론에서 공개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그러면 언론이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답변>
현재 우리 언론에서는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세부 규정이 사실상 없어 각 언론사별로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외에서도 원칙적으로는 범죄피의자 신분 공개를 금하고 있지만 사건별, 상황별, 언론사별로 그 수위에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달 9일 미국에서 한 남성이 전 부인의 친척 6명을 총기로 살해하고 달아났습니다.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쫓는 동안 언론들은 즉시 용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abc 방송 등 주요 방송은 계속해서 용의자의 신상을 알렸습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연방대법원이 범죄자도 공인, 즉 공공의 관심 대상 인물로 판단하고 언론 기관의 보도에 악의가 없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연방검찰도 ‘수사상황 언론 공개 매뉴얼’을 통해 피의자의 인권 또한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녹취> 미국연방검찰 규정집 : "법원의 별도 명령이 없는 한 언론의 적법한 취재노력, 예컨대 사진 취재, 녹화 및 녹음, 범죄 현장 촬영 및 중계를 막아서는 안 된다."

일본 언론의 경우에도 강력 범죄 피의자의 경우 얼굴 등 전면적인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인터뷰> 문재완(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미국에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중요한 공적 논쟁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면 일단 모든 것을 다 공개하는 형태의 그런 법제를 갖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유럽에서는 헌법에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권과 그 다음에 언론에서의 보도 사이에서의 충돌에서 인격권 부분을 상대적으로 더 존중하는 그런 법제를 갖고 있고요. 우리 언론은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인권보도준칙에 관련 조항이 있지만 기준이 추상적이어서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김창룡(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 교수) : “경찰의 규정이나 이런 걸 존중해주는 범위 내에서 언론은 언론대로 언제 신원을 공개할지 말지 그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되는데 사실상 그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언론사별로 공개하는 언론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도 있어서 국민의 입장에선 굉장히 혼란스럽죠.”

취재를 하며 만난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냐 피의자의 인권이 먼저냐 이 해묵은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도 신상공개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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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 권리와 인권의 딜레마?
    • 입력 2014-08-10 17:28:47
    • 수정2014-08-10 22: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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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언론에서 범죄 피의자의 얼굴, 실명 등의 신상이 드러나는 경우를 적잖이 보셨을 겁니다.

범죄 수위에 따라 신원이 세상에 공개되기도 하고 완전히 가려지기도 하죠.

이런 가운데 언론사마다 공개 여부가 달라서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민영 기자와 함께 이 문제 살펴보겠습니다.

<질문>
이민영 기자, 이런 논란이 처음은 아닌데 최근의 경우만 보더라도 피의자 얼굴 등의 신상 공개가 사건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죠?

<답변>
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피의자들과 유대균 씨 수행원 박모 씨의 경우를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선임병들에 의한 집단적 구타와 가혹행위 그리고 후임병 사망.

윤 일병 사건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들끓었지만 피의자들의 신상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군 당국도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고 언론도 이들의 뒷모습 정도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균 씨가 체포될 당시 경찰은 수행원 박모 씨도 함께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각 언론사들은 이를 촬영했고 박 씨의 얼굴은 물론 수갑 찬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인권침해 논란이 일자 경찰은 수갑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치운 것에 대해 실수를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경찰이 피의자를 조사하는 모습을 언론에 촬영하게 해준 것은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험 사기로 구속수사를 받은 A씨가 양손에 수갑을 찬 채 조사받는 자신의 모습이 공개된 것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한 겁니다.

<녹취> "3월 헌법재판소 결정문 수사관서 내에서 수사 장면의 촬영은 보도과정에서 사건의 사실감과 구체성을 추구하고 범죄 정보를 좀 더 실감나게 제공하려는 목적 외에는 어떠한 공익도 인정하기 어렵다."

<인터뷰> 양재규(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연속교육팀장) : "얼굴이 공개될 경우에는 다른 어떤 이름이나 주소 이런 것처럼 다른 개인정보 보다도 각인 효과 낙인 효과가 심각하다 따라서 얼굴 공개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그런 판시를 한 바 있습니다. 얼굴 공개 부분은 다른 개인 정보보다 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이번 헌재 결정의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공익적인 경우가 아닐 경우 범죄 피의자 얼굴이나 개인의 신상은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거군요.

<답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 어떤 경우에 무엇이 공익이냐 하는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난 2009년 7명의 부녀자를 연쇄 살해한 이른바 강호순 사건.

현장검증 당시 시민들은 얼굴을 공개하라며 격분했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2009-02-01) : “고개 들어”

고개를 들라는 시민들의 분노 섞인 외침을 의식한 듯 강 씨는 고개를 푹 숙였고 점퍼 컬러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강호순의 얼굴을 가렸지만 일부 언론이 자체 취재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이 때부터 범죄자의 신상 공개에 대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됐고 이듬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을 경우 등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얼굴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녹취> “반인륜적 극악범죄의 발생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민의 알권리 보장 및 범죄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흉악사범에 대해 얼굴 등을 가리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인터뷰> 지성우(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흉악범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게 되면 일단 다른 재범의 가능성이 많이 낮아집니다. 모방범행 가능성도 낮아지게 되고요. 그리고 신상이 공개됨으로 인해서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야 되겠다라는 위하적인 효과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반 공익적인 차원에서 보면 범죄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 옳습니다.”

<질문>
2009년 강호순 사건 이전에는 얼굴을 모자로 가리거나 실명 공개를 하지 않았었죠?

<답변>
네, 중범죄자 신상공개가 법적으로 허용된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해 보도한 건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 7월 붙잡힌 유영철.

20명을 연쇄살해한 희대의 범죄자지만 얼굴을 모자와 마스크로 가린 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큰 강력사건 피의자들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994년 지존파 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의 범인들은 체포 당시부터 얼굴과 이름 등이 언론을 통해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때부터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인권 수사가 분위기가 확산됐습니다.

이후 2005년 10월에 제정돼 2012년에 폐지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에서도 경찰서에서 피의자와 피해자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2006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정남규, 2008년, 어린이 2명을 살해하고 붙잡힌 정성현도 체포 초기 얼굴을 가리고 언론에서도 정 모 씨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수사당국에서 피의자의 신분노출을 하지 않아도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피의자 신상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건마다 언론사마다 범죄 피의자 공개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2008년 숭례문에 불을 질러 징역 10년형이 확정된 채 모 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지만 체포 직후부터 곧바로 실명이 언론에 공개됐고 지난 2009년 1월 온라인상에서 경제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필명 미네르바 박 모 씨의 경우에도 일부 언론을 통해 실명 등 신상이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박 모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인터뷰>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은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반드시 제공해야 된다 이런 중요한 민주주의적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신상 공개를 통해서 저 사람이 흉악 범죄자구나 흉악 범죄 피의자구나 저 사람이 굉장히 나쁜 사람이구나 그걸 안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다른 것을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없는 거죠."

<질문>
그런데 현재 수사당국에서 일부 흉악범을 공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해도 언론에서 공개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그러면 언론이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답변>
현재 우리 언론에서는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세부 규정이 사실상 없어 각 언론사별로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해외에서도 원칙적으로는 범죄피의자 신분 공개를 금하고 있지만 사건별, 상황별, 언론사별로 그 수위에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달 9일 미국에서 한 남성이 전 부인의 친척 6명을 총기로 살해하고 달아났습니다.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쫓는 동안 언론들은 즉시 용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abc 방송 등 주요 방송은 계속해서 용의자의 신상을 알렸습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연방대법원이 범죄자도 공인, 즉 공공의 관심 대상 인물로 판단하고 언론 기관의 보도에 악의가 없다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연방검찰도 ‘수사상황 언론 공개 매뉴얼’을 통해 피의자의 인권 또한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녹취> 미국연방검찰 규정집 : "법원의 별도 명령이 없는 한 언론의 적법한 취재노력, 예컨대 사진 취재, 녹화 및 녹음, 범죄 현장 촬영 및 중계를 막아서는 안 된다."

일본 언론의 경우에도 강력 범죄 피의자의 경우 얼굴 등 전면적인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인터뷰> 문재완(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미국에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사회적인 중요한 공적 논쟁 과정이다라고 생각하면 일단 모든 것을 다 공개하는 형태의 그런 법제를 갖고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유럽에서는 헌법에서부터 시작이 되는데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권과 그 다음에 언론에서의 보도 사이에서의 충돌에서 인격권 부분을 상대적으로 더 존중하는 그런 법제를 갖고 있고요. 우리 언론은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인권보도준칙에 관련 조항이 있지만 기준이 추상적이어서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김창룡(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 교수) : “경찰의 규정이나 이런 걸 존중해주는 범위 내에서 언론은 언론대로 언제 신원을 공개할지 말지 그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되는데 사실상 그게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언론사별로 공개하는 언론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언론사도 있어서 국민의 입장에선 굉장히 혼란스럽죠.”

취재를 하며 만난 전문가들은 신상 공개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 어디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보였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먼저냐 피의자의 인권이 먼저냐 이 해묵은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도 신상공개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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