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여성독립운동가 266명 ‘돌아온 이름들’

입력 2015.08.08 (08:19) 수정 2015.08.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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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흔적도 없이, 이름조차 희미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광복 70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이들을 찾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이 더 절실한 시점인데요.

‘돌아온 이름들’, 잊혀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위한 특별한 전시회,

이현정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올해로 구순이 된 오희옥 할머니.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중국)유주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그때는 14살 때."

1939년, 할머니는 부모님과 함께 만주에서 조국의 독립을 외쳤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가두, 길에 가면 마이크로. 그때는 뭐 마이크가 있나. 나팔 같은 거 곽 달고 앉아서 일본 놈의 악행 그런 행동을 마이크로 선전하면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어린 소녀의 힘찬 외침.

이제는 태극기만 봐도 흐뭇해집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몇 십 년 동안 침략을 당해서 태극기도 맘대로 못 걸고... 지금 막 거니까 참 보기 좋아요. 저렇게 우리 태극기가 다 감춰서 못살았구나... 지금은 마음이 즐거워요."

하지만 할머니가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은 건 해방이 되고서도 45년이 지난 1990년,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자료 불충분하다고. 그래서 그때 김신, 지금 김구 선생님 아드님. 그분도 상을 못 탔어. 중국 가서, 대만 가서 우리 배급 탄 명단을 가져왔어. 그러니까 확실하지. 그리고선 우리가 탄 거야(유공자로 인정받은 거야)."

여성들의 경우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신순호, 오광심, 연미당... 내가 산 증인이야. 이름들 다 잘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현재 생존해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오 할머니를 포함해 겨우 4명입니다.

자신마저 떠나면 누가 이들을 기억해줄지 할머니는 안타깝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우리가 지금 (여성 독립운동의) 산 증인인데, 우리가 했던 일을 후손들이 좀 기억해 줬으면 좋겠는데..."

여성 독립운동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일제감정기 연 인원 4만여 명이 투옥되고 수백여 명이 사망한 곳 서대문 형무소.

<녹취> ‘나연아, 혜연아’

역사의 현장에서 다시, 그리고 처음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힘찬 호명으로 잊혀진 이들의 삶이 되살아납니다.

<녹취> 이정은(이화여고 1학년) : "저희가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이 없는데, 저희가 알지 못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많은 것을 보고 좀 안타깝고, 이제 좀 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나..."

<녹취> 임수빈(배화여고 2학년) : "잊혀져 가고 저도 몰랐고, 아무래도 교과서에서도 안 알려주고.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 제 나이 때도 있으실 거고. 그래서 아무래도 18살인 제가 말함으로써 조금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힘차고 정성어린 외침.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마음이 벅찹니다.

<녹취> 김연옥(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손녀) : "(독립운동가) 후손인데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도 없고 불러 본 적도 없고.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참 감회가 새롭네요."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속 26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하지만 사진이 없어 얼굴을 알 수 없거나,

이름조차 알 길이 없어 성만 남은 여성도 있습니다.

<녹취> 서해성(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예술 감독) : "김 씨란 이름으로 남았는데 성만 있고, 몇 년도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건 알아요. 왜냐하면 화성에서 (독립운동) 했을 때, 교회당에 (일본군이) 불을 질렀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누군가의 부인 김 씨인 거예요."

이곳 격벽장은 수감자들 간의 대화를 차단한 조용하고도 슬픈 운동시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직접 만날 순 없지만,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10명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녹취> "나는 권기옥이야. 비행기로 날아올라 빼앗긴 내 조국 하늘 가운데로 타고 내려와서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자 했어."

관람객의 발을 붙드는 목소리,

작은 공간 안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독백이 울려 퍼집니다.

<녹취> 변은지(안산시 상록구) : "아까 가은이가 (전시장에서) 사진을 쭉 보면서 엄마한테 물어 봤잖아. ‘왜 여자들은 없어’라고. 그러니까 여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그런 사람들을, 그 사람의 일대기를 얘기해 주는 거래."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 마음이 무거워져 옵니다.

<녹취> 이영은(서울시 광진구) : " 되게 가슴이 아프고, 참 우리가 이렇게 지금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게 다 그분들의 노력 덕분이구나라는 게, 되게 참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녹취> 서해성(광복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예술 감독) : "첫 번째는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기록해 왔다는 거고, 두 번째는 이분들이 하신 일들을 독립운동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녹취> 신영숙(여성독립운동기념회 기획위원장) : "여성독립운동가의 정신이랄까, 정말 활동이랄까 이런 걸 찾아봄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 나아갈 방향 이런 걸 알 수 있다는 거죠."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였던 이들은 아름다운 시절을 뒤로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나섰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들.

광복 70년,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이제는 찾아 불러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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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08 08:33:50
    • 수정2015-08-08 16: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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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북통일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아가는 [통일로 미래로]입니다.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흔적도 없이, 이름조차 희미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있습니다.

광복 70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이들을 찾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이 더 절실한 시점인데요.

‘돌아온 이름들’, 잊혀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위한 특별한 전시회,

이현정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올해로 구순이 된 오희옥 할머니.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중국)유주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그때는 14살 때."

1939년, 할머니는 부모님과 함께 만주에서 조국의 독립을 외쳤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가두, 길에 가면 마이크로. 그때는 뭐 마이크가 있나. 나팔 같은 거 곽 달고 앉아서 일본 놈의 악행 그런 행동을 마이크로 선전하면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어린 소녀의 힘찬 외침.

이제는 태극기만 봐도 흐뭇해집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몇 십 년 동안 침략을 당해서 태극기도 맘대로 못 걸고... 지금 막 거니까 참 보기 좋아요. 저렇게 우리 태극기가 다 감춰서 못살았구나... 지금은 마음이 즐거워요."

하지만 할머니가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은 건 해방이 되고서도 45년이 지난 1990년,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자료 불충분하다고. 그래서 그때 김신, 지금 김구 선생님 아드님. 그분도 상을 못 탔어. 중국 가서, 대만 가서 우리 배급 탄 명단을 가져왔어. 그러니까 확실하지. 그리고선 우리가 탄 거야(유공자로 인정받은 거야)."

여성들의 경우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합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신순호, 오광심, 연미당... 내가 산 증인이야. 이름들 다 잘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현재 생존해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오 할머니를 포함해 겨우 4명입니다.

자신마저 떠나면 누가 이들을 기억해줄지 할머니는 안타깝습니다.

<녹취> 오희옥(독립유공자) : "우리가 지금 (여성 독립운동의) 산 증인인데, 우리가 했던 일을 후손들이 좀 기억해 줬으면 좋겠는데..."

여성 독립운동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일제감정기 연 인원 4만여 명이 투옥되고 수백여 명이 사망한 곳 서대문 형무소.

<녹취> ‘나연아, 혜연아’

역사의 현장에서 다시, 그리고 처음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의 힘찬 호명으로 잊혀진 이들의 삶이 되살아납니다.

<녹취> 이정은(이화여고 1학년) : "저희가 알고 있는 분들도 많이 없는데, 저희가 알지 못하는 여성 운동가들이 많은 것을 보고 좀 안타깝고, 이제 좀 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나..."

<녹취> 임수빈(배화여고 2학년) : "잊혀져 가고 저도 몰랐고, 아무래도 교과서에서도 안 알려주고.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 제 나이 때도 있으실 거고. 그래서 아무래도 18살인 제가 말함으로써 조금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힘차고 정성어린 외침.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마음이 벅찹니다.

<녹취> 김연옥(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손녀) : "(독립운동가) 후손인데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도 없고 불러 본 적도 없고.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참 감회가 새롭네요."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속 26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하지만 사진이 없어 얼굴을 알 수 없거나,

이름조차 알 길이 없어 성만 남은 여성도 있습니다.

<녹취> 서해성(광복 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예술 감독) : "김 씨란 이름으로 남았는데 성만 있고, 몇 년도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건 알아요. 왜냐하면 화성에서 (독립운동) 했을 때, 교회당에 (일본군이) 불을 질렀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누군가의 부인 김 씨인 거예요."

이곳 격벽장은 수감자들 간의 대화를 차단한 조용하고도 슬픈 운동시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직접 만날 순 없지만,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10명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야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

<녹취> "나는 권기옥이야. 비행기로 날아올라 빼앗긴 내 조국 하늘 가운데로 타고 내려와서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고자 했어."

관람객의 발을 붙드는 목소리,

작은 공간 안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독백이 울려 퍼집니다.

<녹취> 변은지(안산시 상록구) : "아까 가은이가 (전시장에서) 사진을 쭉 보면서 엄마한테 물어 봤잖아. ‘왜 여자들은 없어’라고. 그러니까 여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그런 사람들을, 그 사람의 일대기를 얘기해 주는 거래."

그동안 몰랐던 이야기, 마음이 무거워져 옵니다.

<녹취> 이영은(서울시 광진구) : " 되게 가슴이 아프고, 참 우리가 이렇게 지금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게 다 그분들의 노력 덕분이구나라는 게, 되게 참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녹취> 서해성(광복7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예술 감독) : "첫 번째는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독립운동사를 기록해 왔다는 거고, 두 번째는 이분들이 하신 일들을 독립운동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녹취> 신영숙(여성독립운동기념회 기획위원장) : "여성독립운동가의 정신이랄까, 정말 활동이랄까 이런 걸 찾아봄으로써 우리가 해야 할 일, 나아갈 방향 이런 걸 알 수 있다는 거죠."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였던 이들은 아름다운 시절을 뒤로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나섰습니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여인들.

광복 70년,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이제는 찾아 불러줘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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