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돌려달라” 70년의 한…2만여 명 위패 봉안
입력 2015.08.13 (06:52)
수정 2015.08.1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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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받기 위해 한 70대 노인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 뿐 아니라 한국인 2만여 명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송승룡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칠순이 넘은 동정남 씨는 일제 강점기 말 아버지가 실종된 뒤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빛바랜 흑백 사진 뿐, 동 씨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일본과 러시아 등을 찾아다닌 끝에 일본군 군속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오호츠크해 해상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10여 년 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강원도 동해시) :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저는 아버지가 없잖습니까? 제가 유복자다 보니까, 아버지가 그만큼 그리운 거예요."
아버지의 유해나 묘소를 찾아 나선 동 씨는 지난해 아버지의 위패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 씨는 신사 측을 상대로 위패 반환 소송을 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 : "꼭 찾아 와야죠. 전범들하고 같이 거기에 있을 수가 없잖습니까? 위패라도, 이름뿐이라도."
동 씨의 아버지처럼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한국인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합사 사실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동 씨처럼 반환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27명뿐입니다.
<녹취>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 "죽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이름으로 합사된다는 것은 가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일본 땅에서 떠도는 영령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승룡입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받기 위해 한 70대 노인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 뿐 아니라 한국인 2만여 명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송승룡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칠순이 넘은 동정남 씨는 일제 강점기 말 아버지가 실종된 뒤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빛바랜 흑백 사진 뿐, 동 씨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일본과 러시아 등을 찾아다닌 끝에 일본군 군속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오호츠크해 해상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10여 년 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강원도 동해시) :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저는 아버지가 없잖습니까? 제가 유복자다 보니까, 아버지가 그만큼 그리운 거예요."
아버지의 유해나 묘소를 찾아 나선 동 씨는 지난해 아버지의 위패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 씨는 신사 측을 상대로 위패 반환 소송을 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 : "꼭 찾아 와야죠. 전범들하고 같이 거기에 있을 수가 없잖습니까? 위패라도, 이름뿐이라도."
동 씨의 아버지처럼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한국인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합사 사실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동 씨처럼 반환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27명뿐입니다.
<녹취>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 "죽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이름으로 합사된다는 것은 가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일본 땅에서 떠도는 영령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승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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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 돌려달라” 70년의 한…2만여 명 위패 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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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5-08-13 06:54:11
- 수정2015-08-13 07:57:33
<앵커 멘트>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받기 위해 한 70대 노인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 뿐 아니라 한국인 2만여 명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송승룡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칠순이 넘은 동정남 씨는 일제 강점기 말 아버지가 실종된 뒤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빛바랜 흑백 사진 뿐, 동 씨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일본과 러시아 등을 찾아다닌 끝에 일본군 군속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오호츠크해 해상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10여 년 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강원도 동해시) :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저는 아버지가 없잖습니까? 제가 유복자다 보니까, 아버지가 그만큼 그리운 거예요."
아버지의 유해나 묘소를 찾아 나선 동 씨는 지난해 아버지의 위패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 씨는 신사 측을 상대로 위패 반환 소송을 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 : "꼭 찾아 와야죠. 전범들하고 같이 거기에 있을 수가 없잖습니까? 위패라도, 이름뿐이라도."
동 씨의 아버지처럼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한국인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합사 사실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동 씨처럼 반환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27명뿐입니다.
<녹취>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 "죽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이름으로 합사된다는 것은 가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일본 땅에서 떠도는 영령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승룡입니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받기 위해 한 70대 노인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제 침략과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 뿐 아니라 한국인 2만여 명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송승룡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칠순이 넘은 동정남 씨는 일제 강점기 말 아버지가 실종된 뒤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빛바랜 흑백 사진 뿐, 동 씨는 사진 한 장을 들고 일본과 러시아 등을 찾아다닌 끝에 일본군 군속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오호츠크해 해상에서 돌아가신 사실을 10여 년 전 확인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강원도 동해시) :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저는 아버지가 없잖습니까? 제가 유복자다 보니까, 아버지가 그만큼 그리운 거예요."
아버지의 유해나 묘소를 찾아 나선 동 씨는 지난해 아버지의 위패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 씨는 신사 측을 상대로 위패 반환 소송을 냈습니다.
<인터뷰> 동정남 : "꼭 찾아 와야죠. 전범들하고 같이 거기에 있을 수가 없잖습니까? 위패라도, 이름뿐이라도."
동 씨의 아버지처럼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된 한국인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대부분 합사 사실 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동 씨처럼 반환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27명뿐입니다.
<녹취>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 "죽어서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이름으로 합사된다는 것은 가족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일본 땅에서 떠도는 영령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송승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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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룡 기자 obero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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