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행사에 그친 국정감사

입력 2015.10.11 (23:23) 수정 2015.10.1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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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녹취> 시민단체 : "태생적으로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너무 단기간에 감사를 하기 때문에 부실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 국정감사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일부 어느정도 수정할 수 있는 건 내부적으로 이를테면 전산으로 일부 수정을 하고 그렇거든요."

<녹취> 보좌관 "감사를 하는 기간이 20일이잖습니까? 행정부에서는 20일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고."

<오프닝>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 막을 내렸습니다.

매년 반복되던 맹탕, 막말, 부실 국감이란 비판은 올해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의원들이 지역구에 신경을 더 쏟으면서 이번 국감은 이렇다할 '국감 스타'도 눈에 띄는 '이슈'도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행정부 감시를 위해 매우 중요한 국정감사 권한을 입법부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셈인데, 문제는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점점 국정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리포트>

<녹취> 강창일 : "수석부대표란 양반이 말이야 여기와서 깽판 놓을라 그래?"

<녹취> 조원진 : "누굴 가르치는 거예요 지금?"

<녹취> 강창일 : "가르치고 있어. 가르쳐야 돼"

인격을 모독하거나 감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도 나옵니다.

<녹취> 이인영(새정치) : "노사정위원장님께서 집나간 며느리십니까?전어철이 되니까 돌아오셨어요."

<녹취> 박대동(새누리) :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게 되면 한국을 응원하십니까?"

피감 기관장이 질문이 길다며 답변을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녹취> 홍종학 : "책임을 묻는 국정감사 자리가 돼야 되는 게 마땅한 거 아닙니까? 부총리께서 의견을 얘기해주시죠"

<녹취> 최경환 : "제가 7초만에 답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저는 1문1답으로 시간 내에 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이상 답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25개 기관을 불러모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소연 한국문화정보원장은 하루종일 대기하다 단 3초의 답변을 하고 국감을 마쳤습니다.

<녹취> 박인숙(9월18일 교문위) : "빅데이터 분석 안 하나요?"

<녹취> 김소연 : "빅데이터 분석, 통계정보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25개 가운데 7개 기관장은 단 한 차례 질의도 받지 못했습니다.

질의가 집중된 곳은 5곳 정도.

나머지 10곳의 기관은 답변 시간이 1분에 못 미쳤습니다.

<인터뷰> 홍금애(NGO모니터단 집행위원장) : "나머지 15개는 정밀하게 했느냐 보면 그건 아니에요. 어쨌든 통계적으로 10개는 안 하고 넘어갔다는 거죠. 그러면 10개는 빼고 15개만 하지 왜 이걸 다 불렀나라는 이게 국정감사를 정밀하게 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부재인 것 같아요."

지난달 10일 시작한 국감은 중간 휴지기를 제외하고 모두 22일 간 진행됐습니다...

여기서 주말을 빼고 위원회별로 보통 4일 이상을 자료정리 등 명목으로 쉬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감사 기간은 12일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 기간 동안 15개 위원회가 감사한 정부 부처와 기관은 708곳.

지난해 672곳 보다 30곳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위원회별로 하루 평균 6곳 가량을 감사한 꼴입니다.

여야가 국감 일정을 시작 20일 전에 확정하다 보니 면밀한 검토없이 대상 기관을 정한 탓입니다.

이런 와중에 일반 증인을 대거 불러 정작 피감 기관 감사는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습니다.

정무위원회의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일반증인 20명과 참고인 8명을 불러 감사 시간 절반 이상을 증인신문에 할애하면서 기관 감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윤소라(법률소비자연맹 대외협력부장) : "적정한 수의 피감기관이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적정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논의를 국회에서 사실 좀 심도있게 논의를 하고서 시작을 해야 하는데 늘 국회 일정 그리고 여야 간의 여러가지 문제들 때문에 국정감사를 쫓기듯이 해서"

하루 10개 이상의 피감기관을 모아 놓고 진행한 국감이 21차례.

하루 5개 이상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국감이 진행된 경우는 전체 국감 중 43%에 달했습니다.

무리한 일정에서 비롯된 불똥은 피감 기관에 튑니다.

팩스로 피감기관에 전송된 의원들의 질의서 요약본.

국감 당일 새벽 2시에 보낸 것도 보입니다.

이 질의서를 기다리던 공무원들은 답변을 새벽 4시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인터뷰> 이홍기(서울시공무원노조위원장) : "이걸 어느 직원들이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과다하다 이런 거고 원래 이게 저희들이 알기로는 7일 전에 저희들한테 요구하면 저희가 자료를 만들어서 보내는 거고 이렇게 돼 있는데 그것까지도 위반하는 거잖아요"

피감기관은 의원들에게 제출하는 자료와 별도로 이를 취합한 책자를 위원회 전체 의원들에게 배포해야합니다.

그 양이 수천 페이지에 이릅니다.

요구 자료 가운데는 의원의 실제 질의에 쓰이지도 않을 불특정 자료도 많다는 게 피감기관측의 주장입니다.

<인터뷰> 윤석희(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부장) : "수신송신, 보내고 받는거 이런 거를 전체를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런 것들도 있고 기간이 한 당해년도만 하면되는데 실질적으로 몇년도에 걸쳐서...굉장히 광범위하게 요구를 국회의원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의원이나 피감기관 모두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의원은 맹탕 질문에 호통만 치고 피감기관의 답변은 임기응변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이연주(모니터단 대학생) : "앉아있는 시간보다 나가계시는 시간이 더 기신 분들도 있고 질문을 하시는 시간에도 정확히 취지가 뭔지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고"

해마다 비슷한 질의와 답변이 형식적으로 오고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18대와 19대 국회의 국정감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똑같은 내용을 지적하면서 시정조치를 요구한 건수는 모두 869건.

<녹취> 김재윤(국방위) : "(정신과)의사 수도 왜 이렇게 적습니까? 이것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녹취> 김일생(당시 병무청장) : "예, 인정합니다."

<녹취> 유승민(국방위) : "정신과 검사가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 충분히 보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좀 해 주시겠습니까?"

<녹취> 박창명(병무청장) : "필요합니다. 정신과 의사도 좀 더 늘리고"

피감기관들도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이제는 데이터가 쌓여 있어서 이 정도 수준에서 내보내면 되겠구나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축적이 돼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전년도 수준, 내부적인 어떤 공공연한 지침이 있는 거죠."

법사위 의원실 요구에 따라 제출된 공소장.

개인신상 정보와 무관한 담당검사와 변호사, 장소 등 곳곳을 삭제한 채 제출했습니다.

이유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A보좌관 : "종결됐던 사안이 어느날 갑자기 수사 중으로 살아난 거죠. 종결됐으면 종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 아니기 때문에 국정감사와 조사의 법률상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이게 갑자기 수사 중이 돼 버리니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국정감사를 할 수 없지 않냐"

국회 증언감정 등에 대한 법률에는 군사 외교 등 국가기밀을 제외하고는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피감기관들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따로 만들어 제출 여부를 정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경우에 한하여 제공한다거나 사전협의를 거쳐 제공한다는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기준이 곳곳에 보입니다.

<녹취> A비서관 : "국세청 자료를 봐야하는데 감사원에는 자료를 제출합니다. 근데 국회에는 제출 안 해요. 그러니까 법 위에 가이드 라인이 있는 거죠. 사실상"

요구하는 자료를 순순히 내주지 않는 게 피감 기관의 능력처럼 굳어졌다는 얘기입니다.

피감기관 간에 말 맞추기로 자료 제출 수준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한 피감기관 직원은 털어놓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연결된 산하기관들끼리 전화를 해요. 어디까지 내보내냐 우리 이거 나가면 안된다 그러면 너희도 이정도 수준에서 보내라 우리도 이 정도 수준에서 보낼게 이렇게 사실은 담합"

심지어 허위 자료를 만들어 제출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어떤 사안에 대해서 대책을 언제까지 마련하기로 했으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근데 그런 거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것 같은 어떤 뉘앙스가 있으면 그걸 작년 10월에 마련을 했다. 그렇게 해 놓고 작년 10월 날짜로 기안문을 만들면 되는 거거든요."

자료요구권을 통해 국감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국회로서는 자료의 허위, 부실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려워 정부와 그 산하단체를 견제하기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 이번 국감은 이른바 '맹탕'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녹취> A비서관 : "올해 같은 경우 4년차잖아요. 4년차는 국회의원들 레임덕이 있거든요. 레임덕이 있기 때문에 뭐 자료제출을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편법적으로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의원들이 국정감사보다 내년 총선에 마음이 기울어 있다보니 국감에 주력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인터뷰> 윤소라(NGO 평가단) : "저희가 늦게 끝나고 집에 갈 때쯤이면 의원회관을 보면 예년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어요. 10시에 끝나건 12시에 끝나 건. 그리고 주말에도 다 나와서 일을 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확실히 요즘에는 그렇게 불이 켜져 있는 의원실이 적어지고"

공격수인 의원들도 방어해야 할 피감기관들도 서로서로 요령만 늘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녹취> B비서관 : "저희도 요령이 늘지만 그 쪽도 요령이 많이 늘고, 주세요 주세요 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제지할 수 있는 뭔가 수단이 필요할 것 같긴 해요. 실질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수단."

국감에 비협조적일 경우 국회는 자료 제출을 거부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녹취> A비서관 : "국회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공무원에도 징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국회가 그런데 실제로 징계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겉으로는 다투는 듯 하다가도 뒤로는 서로 잇속 챙기는 행태도 국감을 무력화하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전문가는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광재(매니페스토 사무총장) : "국회의원이 어떤 이해에 따라서 윽박과 고성을 지르고 난 이후에 어떤 후원금을 받겠다고 하든지 이런 것들이 국민들 눈에 보여서는 고성과 윽박 질렀다는 게 그렇게 좋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지적만 있고 시정은 없는 지금의 시스템이 그대로 간다면 국감 무용론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인터뷰> 홍금애 : "전담하는 부서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하다보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거든요. 그거를 시정조치 사항을 시정조치 실명제라고 그래서 질문한 의원의 이름을 거기다 달아 준다든지 아니면 시정조치 사항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는 데는 예산을 깎는다든지 하는 그런 거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없어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감사가 보다 실속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치권 밖의 감시가 더 활발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혜경(모니터단 대학생) :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저는 굉장히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정책이라는 것이 계속 감시가 이뤄져야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면 자연히 충실하지 못한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원들에게는 1년의 숙제로, 피감기관에게는 잠시 버티면 지나가는 연례행사가 돼 버린 국정감사.

후진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국정감사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개혁하는 작업은 내년에 새롭게 구성될 20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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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례행사에 그친 국정감사
    • 입력 2015-10-11 23:25:44
    • 수정2015-10-12 00:13:30
    취재파일K
<프롤로그>

<녹취> 시민단체 : "태생적으로 너무 많은 피감기관을 너무 단기간에 감사를 하기 때문에 부실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 국정감사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일부 어느정도 수정할 수 있는 건 내부적으로 이를테면 전산으로 일부 수정을 하고 그렇거든요."

<녹취> 보좌관 "감사를 하는 기간이 20일이잖습니까? 행정부에서는 20일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고."

<오프닝>

19대 국회 마지막 국감이 막을 내렸습니다.

매년 반복되던 맹탕, 막말, 부실 국감이란 비판은 올해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의원들이 지역구에 신경을 더 쏟으면서 이번 국감은 이렇다할 '국감 스타'도 눈에 띄는 '이슈'도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행정부 감시를 위해 매우 중요한 국정감사 권한을 입법부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셈인데, 문제는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 점점 국정감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리포트>

<녹취> 강창일 : "수석부대표란 양반이 말이야 여기와서 깽판 놓을라 그래?"

<녹취> 조원진 : "누굴 가르치는 거예요 지금?"

<녹취> 강창일 : "가르치고 있어. 가르쳐야 돼"

인격을 모독하거나 감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질문도 나옵니다.

<녹취> 이인영(새정치) : "노사정위원장님께서 집나간 며느리십니까?전어철이 되니까 돌아오셨어요."

<녹취> 박대동(새누리) :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게 되면 한국을 응원하십니까?"

피감 기관장이 질문이 길다며 답변을 거부하는 상황도 벌어집니다.

<녹취> 홍종학 : "책임을 묻는 국정감사 자리가 돼야 되는 게 마땅한 거 아닙니까? 부총리께서 의견을 얘기해주시죠"

<녹취> 최경환 : "제가 7초만에 답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저는 1문1답으로 시간 내에 하기로 했기 때문에 더이상 답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25개 기관을 불러모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소연 한국문화정보원장은 하루종일 대기하다 단 3초의 답변을 하고 국감을 마쳤습니다.

<녹취> 박인숙(9월18일 교문위) : "빅데이터 분석 안 하나요?"

<녹취> 김소연 : "빅데이터 분석, 통계정보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25개 가운데 7개 기관장은 단 한 차례 질의도 받지 못했습니다.

질의가 집중된 곳은 5곳 정도.

나머지 10곳의 기관은 답변 시간이 1분에 못 미쳤습니다.

<인터뷰> 홍금애(NGO모니터단 집행위원장) : "나머지 15개는 정밀하게 했느냐 보면 그건 아니에요. 어쨌든 통계적으로 10개는 안 하고 넘어갔다는 거죠. 그러면 10개는 빼고 15개만 하지 왜 이걸 다 불렀나라는 이게 국정감사를 정밀하게 하고자 하는 시스템의 부재인 것 같아요."

지난달 10일 시작한 국감은 중간 휴지기를 제외하고 모두 22일 간 진행됐습니다...

여기서 주말을 빼고 위원회별로 보통 4일 이상을 자료정리 등 명목으로 쉬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감사 기간은 12일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 기간 동안 15개 위원회가 감사한 정부 부처와 기관은 708곳.

지난해 672곳 보다 30곳 이상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위원회별로 하루 평균 6곳 가량을 감사한 꼴입니다.

여야가 국감 일정을 시작 20일 전에 확정하다 보니 면밀한 검토없이 대상 기관을 정한 탓입니다.

이런 와중에 일반 증인을 대거 불러 정작 피감 기관 감사는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습니다.

정무위원회의 경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일반증인 20명과 참고인 8명을 불러 감사 시간 절반 이상을 증인신문에 할애하면서 기관 감사는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윤소라(법률소비자연맹 대외협력부장) : "적정한 수의 피감기관이 어느 정도인가 그리고 적정 기간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한 논의를 국회에서 사실 좀 심도있게 논의를 하고서 시작을 해야 하는데 늘 국회 일정 그리고 여야 간의 여러가지 문제들 때문에 국정감사를 쫓기듯이 해서"

하루 10개 이상의 피감기관을 모아 놓고 진행한 국감이 21차례.

하루 5개 이상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국감이 진행된 경우는 전체 국감 중 43%에 달했습니다.

무리한 일정에서 비롯된 불똥은 피감 기관에 튑니다.

팩스로 피감기관에 전송된 의원들의 질의서 요약본.

국감 당일 새벽 2시에 보낸 것도 보입니다.

이 질의서를 기다리던 공무원들은 답변을 새벽 4시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인터뷰> 이홍기(서울시공무원노조위원장) : "이걸 어느 직원들이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과다하다 이런 거고 원래 이게 저희들이 알기로는 7일 전에 저희들한테 요구하면 저희가 자료를 만들어서 보내는 거고 이렇게 돼 있는데 그것까지도 위반하는 거잖아요"

피감기관은 의원들에게 제출하는 자료와 별도로 이를 취합한 책자를 위원회 전체 의원들에게 배포해야합니다.

그 양이 수천 페이지에 이릅니다.

요구 자료 가운데는 의원의 실제 질의에 쓰이지도 않을 불특정 자료도 많다는 게 피감기관측의 주장입니다.

<인터뷰> 윤석희(전국공무원노조 경기지부장) : "수신송신, 보내고 받는거 이런 거를 전체를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이런 것들도 있고 기간이 한 당해년도만 하면되는데 실질적으로 몇년도에 걸쳐서...굉장히 광범위하게 요구를 국회의원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의원이나 피감기관 모두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의원은 맹탕 질문에 호통만 치고 피감기관의 답변은 임기응변식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이연주(모니터단 대학생) : "앉아있는 시간보다 나가계시는 시간이 더 기신 분들도 있고 질문을 하시는 시간에도 정확히 취지가 뭔지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많이 하시고"

해마다 비슷한 질의와 답변이 형식적으로 오고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이 18대와 19대 국회의 국정감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똑같은 내용을 지적하면서 시정조치를 요구한 건수는 모두 869건.

<녹취> 김재윤(국방위) : "(정신과)의사 수도 왜 이렇게 적습니까? 이것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녹취> 김일생(당시 병무청장) : "예, 인정합니다."

<녹취> 유승민(국방위) : "정신과 검사가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 충분히 보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좀 해 주시겠습니까?"

<녹취> 박창명(병무청장) : "필요합니다. 정신과 의사도 좀 더 늘리고"

피감기관들도 국회의원의 자료 제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이제는 데이터가 쌓여 있어서 이 정도 수준에서 내보내면 되겠구나 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축적이 돼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전년도 수준, 내부적인 어떤 공공연한 지침이 있는 거죠."

법사위 의원실 요구에 따라 제출된 공소장.

개인신상 정보와 무관한 담당검사와 변호사, 장소 등 곳곳을 삭제한 채 제출했습니다.

이유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A보좌관 : "종결됐던 사안이 어느날 갑자기 수사 중으로 살아난 거죠. 종결됐으면 종결된 사안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 아니기 때문에 국정감사와 조사의 법률상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이게 갑자기 수사 중이 돼 버리니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국정감사를 할 수 없지 않냐"

국회 증언감정 등에 대한 법률에는 군사 외교 등 국가기밀을 제외하고는 증언이나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피감기관들은 자체 가이드라인을 따로 만들어 제출 여부를 정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경우에 한하여 제공한다거나 사전협의를 거쳐 제공한다는 등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기준이 곳곳에 보입니다.

<녹취> A비서관 : "국세청 자료를 봐야하는데 감사원에는 자료를 제출합니다. 근데 국회에는 제출 안 해요. 그러니까 법 위에 가이드 라인이 있는 거죠. 사실상"

요구하는 자료를 순순히 내주지 않는 게 피감 기관의 능력처럼 굳어졌다는 얘기입니다.

피감기관 간에 말 맞추기로 자료 제출 수준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한 피감기관 직원은 털어놓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연결된 산하기관들끼리 전화를 해요. 어디까지 내보내냐 우리 이거 나가면 안된다 그러면 너희도 이정도 수준에서 보내라 우리도 이 정도 수준에서 보낼게 이렇게 사실은 담합"

심지어 허위 자료를 만들어 제출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녹취> 피감기관 직원 : "어떤 사안에 대해서 대책을 언제까지 마련하기로 했으나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어요. 근데 그런 거 관련된 질문이 나올 것 같은 어떤 뉘앙스가 있으면 그걸 작년 10월에 마련을 했다. 그렇게 해 놓고 작년 10월 날짜로 기안문을 만들면 되는 거거든요."

자료요구권을 통해 국감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국회로서는 자료의 허위, 부실 여부를 검증하기도 어려워 정부와 그 산하단체를 견제하기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게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 이번 국감은 이른바 '맹탕'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합니다.

<녹취> A비서관 : "올해 같은 경우 4년차잖아요. 4년차는 국회의원들 레임덕이 있거든요. 레임덕이 있기 때문에 뭐 자료제출을 거부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편법적으로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의원들이 국정감사보다 내년 총선에 마음이 기울어 있다보니 국감에 주력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인터뷰> 윤소라(NGO 평가단) : "저희가 늦게 끝나고 집에 갈 때쯤이면 의원회관을 보면 예년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었어요. 10시에 끝나건 12시에 끝나 건. 그리고 주말에도 다 나와서 일을 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확실히 요즘에는 그렇게 불이 켜져 있는 의원실이 적어지고"

공격수인 의원들도 방어해야 할 피감기관들도 서로서로 요령만 늘었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녹취> B비서관 : "저희도 요령이 늘지만 그 쪽도 요령이 많이 늘고, 주세요 주세요 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제지할 수 있는 뭔가 수단이 필요할 것 같긴 해요. 실질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수단."

국감에 비협조적일 경우 국회는 자료 제출을 거부한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녹취> A비서관 : "국회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당 공무원에도 징계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국회가 그런데 실제로 징계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겉으로는 다투는 듯 하다가도 뒤로는 서로 잇속 챙기는 행태도 국감을 무력화하는 핵심적인 이유라고 전문가는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광재(매니페스토 사무총장) : "국회의원이 어떤 이해에 따라서 윽박과 고성을 지르고 난 이후에 어떤 후원금을 받겠다고 하든지 이런 것들이 국민들 눈에 보여서는 고성과 윽박 질렀다는 게 그렇게 좋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지적만 있고 시정은 없는 지금의 시스템이 그대로 간다면 국감 무용론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인터뷰> 홍금애 : "전담하는 부서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하다보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거든요. 그거를 시정조치 사항을 시정조치 실명제라고 그래서 질문한 의원의 이름을 거기다 달아 준다든지 아니면 시정조치 사항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는 데는 예산을 깎는다든지 하는 그런 거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없어질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감사가 보다 실속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치권 밖의 감시가 더 활발해질 필요도 있습니다.

<인터뷰> 김혜경(모니터단 대학생) :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저는 굉장히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정책이라는 것이 계속 감시가 이뤄져야하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해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감시하는 사람이 없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면 자연히 충실하지 못한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원들에게는 1년의 숙제로, 피감기관에게는 잠시 버티면 지나가는 연례행사가 돼 버린 국정감사.

후진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국정감사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으로 개혁하는 작업은 내년에 새롭게 구성될 20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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