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의 역설, 흔들리는 농업

입력 2015.11.15 (22:44) 수정 2015.11.1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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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녹취> "보장하라! 보장하라!"

가을 수확을 마친 농민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습니다.

일년 농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려야 할 때지만, 거리로 나와 격한 감정을 쏟아냅니다.

<녹취> "(이 정부가) 우리 농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농민들을 서울 거리로 불러올리지 않았습니까!"

직접 기른 농산물을 쌓아두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토로하는 농민들.

농산물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인터뷰> 이종협(쌀 생산 농민) : "새벽밥 먹고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로 (이런 집회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나 하나라도 . 농민들이 대접받는, 쌀값 보장받는 대회에 합류해야겠다."

<오프닝>

보시는 것처럼 제 뒤로는 올해 수확한 쌀들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에 따른 추가적인 시장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격리한 물량입니다.

올해 쌀 생산량은 모두 426만톤으로 지난해 2만톤 가량 늘어나, 풍년이 들었습니다.

풍년이 든 올해 가을,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시름이 깊어지고, 정부는 재고 관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왜 이런일이 반복되는걸까요?

그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막바지 벼 수확에 한창인 이종협 씨.

쌀 농사를 지은 지도 올해로 20년째, 해마다 이 맘 때면 한 해 땀의 대가를 얼마나 받게 될 지 늘 긴장됩니다.

<인터뷰> 이종협(쌀 생산 농민) : "올해 같은 경우는 지금 뭐..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보기 때문에. 어후. (지난해보다) 30% 정도가 수익이 빠져나간다고 보면 되는 거죠."

올해 쌀 가격은 80㎏ 한 가마에 15만 4000원 가량,

지난해 수확기 평균 가격보다 8% 가량 떨어졌습니다.

<녹취> "모든 것은 다 오르는 데 농산물 가격만 떨어지지."

급하게 식사를 하고, 수확한 벼를 팔러 가는 길.

이씨의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이씨는 인근 농협수매창고로 향했습니다.

창고는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쌀이 유통되는 경로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올해의 경우 전체 수확량 426만톤 가운데 농협이 170만톤, 정부가 59만톤을 수매하고 나머지는 민간 수매업자에 팔립니다.

이 농협은 농민들에게 쌀 40kg에 4만원 가량의 선불금을 주고, 차액은 연말에 가격을 결정한 뒤 보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영환(보령농협쌀조합법인 대표) : "이미 4년 동안 해마다 수매량이 계속 지속적으로 늘었거든요. 지금 더 많은 물량이 들어온 상태라서 쉽게 가격 결정을 하기가 어렵죠."

우리나라 쌀 농가는 모두 77만 가구.

한 농가에 평균 만 천제곱미터 가량

벼농사를 지어, 일년 평균 쌀 50가마니를 생산합니다.

쌀 농가의 한 해 평균 수입은 1600여만 원, 순 수익은 500여만 원에 불과합니다.

물가도 오르고, 전체 국민 생산량도 늘었지만, 농민의 수익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 제자리 걸음입니다.

<인터뷰> 최정례(민간 수매 업자) : "농민들한테는 쌀 값 계산해주고 뒤통수쳐다보면 안됐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농민들이 베어 가지고 오면 차라리 개나 돼지 삶아주는게 낫지 않겠냐고 그런 소리도 가끔해. 농민들 눈물 글썽 글썽 하면서 서글퍼하지."

벼 수확을 마친 늦은 저녁.

농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였습니다.

<녹취> "농민이 설 자리가 없다. 십시일반 모아서 서울에 가야된다."

올해는 사정이 더욱 절박하니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녹취> 쌀 재배 농민 : "기계값은 계속 오르는데 벼 값은 어떻게 10년, 20년 지나도 더 떨어져요? 10년 동안 아무것도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살았단 얘기예요."

농민들의 회의는 밤이 깊도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이어졌습니다.

쌀 값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은 크게 2가지입니다.

밥심으로 살아왔던 한국인들이 더이상 밥을 예전처럼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5년 한국인은 하루에 쌀 180그램, 밥 두 공기를 먹었습니다.

하루 세끼 가운데 한 끼는 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겁니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무려 절반으로 줄었을 정도로 한국인의 식습관은 급변했습니다.

또 다른 원인은 계속 늘고 있는 수입 쌀입니다.

정부는 WTO 협정에 따라 올해 의무수입물량 40만 톤을 들여왔고, 이 가운데 12만 톤을 밥쌀용 쌀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중에 팔리고 있는 중국산이나 미국산 밥 쌀은 20kg 한 포대에 평균 3만 4천 원으로 우리 쌀 보다 포대 당 만 원 가량 저렴합니다.

주로 기업체 급식이나 식당으로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지난해 9월 정부가 쌀을 관세화하면서, 올해부터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는 조항이 없어졌는데도 계속 밥쌀을 수입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임병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 "현재 우리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밥쌀용 쌀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죠. 사실 이 밥쌀용 쌀이 들어온 것은 농민들한테는 정서적이든, 실질적이든 위험한 상황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고..."

하지만 정부는 밥쌀용 쌀을 전혀 수입하지 않으면 자국의 상품과 다른 나라의 상품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무역 일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밥쌀용 쌀도 계속 들여와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만(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 "국내에서 쌀이 밥쌀용과 가공용으로 같이 유통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입되는 쌀에 대해서도 전량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경우에는 내국민 대우 원칙에 위반된다."

수확이 늘어도 수요가 크게 줄어서 낭패를 보고 있는 것은 쌀농가 뿐만이 아닙니다.

20년 넘게 젖소를 키워온 안준욱씨는 우유를 납품할 수 있는 권한, 이른바 우유 쿼터를 샀습니다.

리터당 쿼터 가격은 30만 원, 안씨는 은행대출까지 받아 모두 1억 8천여만원을 들여 매일 600리터의 우유를 공급할 수 있는 쿼터를 샀습니다.

하지만 올 봄, 조합으로부터 우유 소비가 줄어 조합의 사정이 어려우니 20리터를 줄여서 납품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안준욱(낙농민) : "황당했죠. 뭐 황당했죠. 황당해도 그나마 일반 유업체보다는 적게 깎였으니까...(앞으로) 4.5퍼센트 더 감축해야 한다고 할 때는 성질났죠. 성질나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7년전 낙농업에 뛰어든 김기달씨는 올 가을,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폐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0두 가량 키우던 젖소를 하나둘 도축해 지금은 15마리만 남겼습니다.

두 곳의 농장 가운데 한 곳은 완전히 폐업했고, 다른 한 곳도 폐업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기달(낙농민) : "예쁘죠. 그리고 또 착유소를 키우려고 하면 일단 마음도 첫번째는 이제 소를 좀 아끼면서 키우고. 이렇게 하는데. 지금 우유 사정이 굉장히 안 좋다고 하니까./ 5년 전에 4년 전에는 짜라고 하고 지금은 줄이라고 하고. 이런식으로 가서는 농가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국 낙농 조합과 유업체들은 우유 공급을 줄이기 위해 당초 올해 9천여 두의 젖소를 도축하기로 했다가 3800두를 더 도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급하게 생산량 줄이기에 나섰지만, 무리한 도축이 부작용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종광(경상남도 축산경영담당사무관) : "너무 많은 소를 도축하다보면 다음에 이 저희 우유 소비량이 늘 때 이 물량을 갑자기 조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올해 보관된 우리나라 우유 재고량은 모두 27만여 톤.

하지만 1인당 우유 소비량은 32.5kg으로 10년 전보다 4.6kg이나 줄었습니다.

우유가격연동제에 따라 농민들에게 정해진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유업체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우유업체 관계자 : "정말 이게 답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죠. 지금 뭔가 획기적인 유제품이 나오기가 쉽지 않고 그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들은 이미 수입산이 시장을 잠식해버린 상황에서..."

정부는 1차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일정 수준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부양곡창고에는 국내산 쌀 87만 톤, 수입산 쌀 50만 톤 등 모두 137만톤의 쌀이 쌓여 있습니다.

재고쌀을 관리하는 데만 해마다 5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또 40만 톤의 쌀이 남게 됐습니다.

쌀 가격이 떨어지면서 정부가 농민들에게 보조해주는 직불금 예산은 올해 모두 1조 2천 5백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천억 가까이 늘었습니다.

대북지원이나 해외원조 등을 늘려 재고쌀을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상만(농림축산부 식량정책과장) : "대북 지원 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만이 아니고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해야할 사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외원조 하는 것도 여러가지 국제규정들이있고요."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쌀 생산량을 일정 부분 줄여나가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쌀 생산을 줄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터뷰> 윤석원(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공급이) 수요에 맞추어 주면 가격이 유지될 것 같은데 지구상의 어느나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그렇게 안되는 거죠. (농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런 기능들. 가치들. 뭐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생산을 줄이는 작업은 못하는 겁니다."

지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잔치를 하는 대신 서울로 대거 올라와 분노를 토하고 있습니다.

재고를 보관해야 하는 정부, 수익이 악화된 조합 역시, 모두가 풍년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국제경쟁력 약화, 수요 감소라는 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 마련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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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년의 역설, 흔들리는 농업
    • 입력 2015-11-15 22:51:38
    • 수정2015-11-15 23:18:25
    취재파일K
<프롤로그>

<녹취> "보장하라! 보장하라!"

가을 수확을 마친 농민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였습니다.

일년 농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려야 할 때지만, 거리로 나와 격한 감정을 쏟아냅니다.

<녹취> "(이 정부가) 우리 농민들을 분노하게 했고, 농민들을 서울 거리로 불러올리지 않았습니까!"

직접 기른 농산물을 쌓아두고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토로하는 농민들.

농산물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합니다.

<인터뷰> 이종협(쌀 생산 농민) : "새벽밥 먹고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로 (이런 집회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나 하나라도 . 농민들이 대접받는, 쌀값 보장받는 대회에 합류해야겠다."

<오프닝>

보시는 것처럼 제 뒤로는 올해 수확한 쌀들이 가득 쌓여있습니다.

정부가 쌀 과잉생산에 따른 추가적인 시장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격리한 물량입니다.

올해 쌀 생산량은 모두 426만톤으로 지난해 2만톤 가량 늘어나, 풍년이 들었습니다.

풍년이 든 올해 가을,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시름이 깊어지고, 정부는 재고 관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왜 이런일이 반복되는걸까요?

그 이유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막바지 벼 수확에 한창인 이종협 씨.

쌀 농사를 지은 지도 올해로 20년째, 해마다 이 맘 때면 한 해 땀의 대가를 얼마나 받게 될 지 늘 긴장됩니다.

<인터뷰> 이종협(쌀 생산 농민) : "올해 같은 경우는 지금 뭐..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보기 때문에. 어후. (지난해보다) 30% 정도가 수익이 빠져나간다고 보면 되는 거죠."

올해 쌀 가격은 80㎏ 한 가마에 15만 4000원 가량,

지난해 수확기 평균 가격보다 8% 가량 떨어졌습니다.

<녹취> "모든 것은 다 오르는 데 농산물 가격만 떨어지지."

급하게 식사를 하고, 수확한 벼를 팔러 가는 길.

이씨의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이씨는 인근 농협수매창고로 향했습니다.

창고는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쌀이 유통되는 경로는 크게 세가지입니다.

올해의 경우 전체 수확량 426만톤 가운데 농협이 170만톤, 정부가 59만톤을 수매하고 나머지는 민간 수매업자에 팔립니다.

이 농협은 농민들에게 쌀 40kg에 4만원 가량의 선불금을 주고, 차액은 연말에 가격을 결정한 뒤 보전해주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김영환(보령농협쌀조합법인 대표) : "이미 4년 동안 해마다 수매량이 계속 지속적으로 늘었거든요. 지금 더 많은 물량이 들어온 상태라서 쉽게 가격 결정을 하기가 어렵죠."

우리나라 쌀 농가는 모두 77만 가구.

한 농가에 평균 만 천제곱미터 가량

벼농사를 지어, 일년 평균 쌀 50가마니를 생산합니다.

쌀 농가의 한 해 평균 수입은 1600여만 원, 순 수익은 500여만 원에 불과합니다.

물가도 오르고, 전체 국민 생산량도 늘었지만, 농민의 수익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 제자리 걸음입니다.

<인터뷰> 최정례(민간 수매 업자) : "농민들한테는 쌀 값 계산해주고 뒤통수쳐다보면 안됐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농민들이 베어 가지고 오면 차라리 개나 돼지 삶아주는게 낫지 않겠냐고 그런 소리도 가끔해. 농민들 눈물 글썽 글썽 하면서 서글퍼하지."

벼 수확을 마친 늦은 저녁.

농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였습니다.

<녹취> "농민이 설 자리가 없다. 십시일반 모아서 서울에 가야된다."

올해는 사정이 더욱 절박하니 해결책을 찾아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녹취> 쌀 재배 농민 : "기계값은 계속 오르는데 벼 값은 어떻게 10년, 20년 지나도 더 떨어져요? 10년 동안 아무것도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살았단 얘기예요."

농민들의 회의는 밤이 깊도록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이어졌습니다.

쌀 값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은 크게 2가지입니다.

밥심으로 살아왔던 한국인들이 더이상 밥을 예전처럼 먹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5년 한국인은 하루에 쌀 180그램, 밥 두 공기를 먹었습니다.

하루 세끼 가운데 한 끼는 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는겁니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무려 절반으로 줄었을 정도로 한국인의 식습관은 급변했습니다.

또 다른 원인은 계속 늘고 있는 수입 쌀입니다.

정부는 WTO 협정에 따라 올해 의무수입물량 40만 톤을 들여왔고, 이 가운데 12만 톤을 밥쌀용 쌀로 수입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중에 팔리고 있는 중국산이나 미국산 밥 쌀은 20kg 한 포대에 평균 3만 4천 원으로 우리 쌀 보다 포대 당 만 원 가량 저렴합니다.

주로 기업체 급식이나 식당으로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지난해 9월 정부가 쌀을 관세화하면서, 올해부터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는 조항이 없어졌는데도 계속 밥쌀을 수입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임병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 "현재 우리가 그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밥쌀용 쌀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죠. 사실 이 밥쌀용 쌀이 들어온 것은 농민들한테는 정서적이든, 실질적이든 위험한 상황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고..."

하지만 정부는 밥쌀용 쌀을 전혀 수입하지 않으면 자국의 상품과 다른 나라의 상품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무역 일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밥쌀용 쌀도 계속 들여와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상만(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 : "국내에서 쌀이 밥쌀용과 가공용으로 같이 유통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입되는 쌀에 대해서도 전량 가공용으로만 수입하는 경우에는 내국민 대우 원칙에 위반된다."

수확이 늘어도 수요가 크게 줄어서 낭패를 보고 있는 것은 쌀농가 뿐만이 아닙니다.

20년 넘게 젖소를 키워온 안준욱씨는 우유를 납품할 수 있는 권한, 이른바 우유 쿼터를 샀습니다.

리터당 쿼터 가격은 30만 원, 안씨는 은행대출까지 받아 모두 1억 8천여만원을 들여 매일 600리터의 우유를 공급할 수 있는 쿼터를 샀습니다.

하지만 올 봄, 조합으로부터 우유 소비가 줄어 조합의 사정이 어려우니 20리터를 줄여서 납품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안준욱(낙농민) : "황당했죠. 뭐 황당했죠. 황당해도 그나마 일반 유업체보다는 적게 깎였으니까...(앞으로) 4.5퍼센트 더 감축해야 한다고 할 때는 성질났죠. 성질나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7년전 낙농업에 뛰어든 김기달씨는 올 가을,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해 폐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0두 가량 키우던 젖소를 하나둘 도축해 지금은 15마리만 남겼습니다.

두 곳의 농장 가운데 한 곳은 완전히 폐업했고, 다른 한 곳도 폐업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기달(낙농민) : "예쁘죠. 그리고 또 착유소를 키우려고 하면 일단 마음도 첫번째는 이제 소를 좀 아끼면서 키우고. 이렇게 하는데. 지금 우유 사정이 굉장히 안 좋다고 하니까./ 5년 전에 4년 전에는 짜라고 하고 지금은 줄이라고 하고. 이런식으로 가서는 농가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국 낙농 조합과 유업체들은 우유 공급을 줄이기 위해 당초 올해 9천여 두의 젖소를 도축하기로 했다가 3800두를 더 도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급하게 생산량 줄이기에 나섰지만, 무리한 도축이 부작용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종광(경상남도 축산경영담당사무관) : "너무 많은 소를 도축하다보면 다음에 이 저희 우유 소비량이 늘 때 이 물량을 갑자기 조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올해 보관된 우리나라 우유 재고량은 모두 27만여 톤.

하지만 1인당 우유 소비량은 32.5kg으로 10년 전보다 4.6kg이나 줄었습니다.

우유가격연동제에 따라 농민들에게 정해진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유업체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우유업체 관계자 : "정말 이게 답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죠. 지금 뭔가 획기적인 유제품이 나오기가 쉽지 않고 그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들은 이미 수입산이 시장을 잠식해버린 상황에서..."

정부는 1차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일정 수준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정부양곡창고에는 국내산 쌀 87만 톤, 수입산 쌀 50만 톤 등 모두 137만톤의 쌀이 쌓여 있습니다.

재고쌀을 관리하는 데만 해마다 5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또 40만 톤의 쌀이 남게 됐습니다.

쌀 가격이 떨어지면서 정부가 농민들에게 보조해주는 직불금 예산은 올해 모두 1조 2천 5백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천억 가까이 늘었습니다.

대북지원이나 해외원조 등을 늘려 재고쌀을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상만(농림축산부 식량정책과장) : "대북 지원 문제는 단순한 경제문제만이 아니고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해야할 사안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외원조 하는 것도 여러가지 국제규정들이있고요."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쌀 생산량을 일정 부분 줄여나가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쌀 생산을 줄이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인터뷰> 윤석원(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공급이) 수요에 맞추어 주면 가격이 유지될 것 같은데 지구상의 어느나라도 그렇게 할 수가 없고. 그렇게 안되는 거죠. (농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런 기능들. 가치들. 뭐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쉽게 생산을 줄이는 작업은 못하는 겁니다."

지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은 잔치를 하는 대신 서울로 대거 올라와 분노를 토하고 있습니다.

재고를 보관해야 하는 정부, 수익이 악화된 조합 역시, 모두가 풍년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국제경쟁력 약화, 수요 감소라는 농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 마련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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