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eye]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15.11.28 (08:40) 수정 2015.11.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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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제가 가슴에 달고 있는 이 열매, 기부와 나눔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인데요, 이맘때 영국에서도 시민들 가슴엔 빨간 꽃이 피어납니다.

현지에서는 포피라고 부르는 양귀비꽃인데, 해마다 11월이면 영국인들은 축구 선수, 방송인, 시민 가릴 것 없이 이 포피를 가슴에 달고 다닙니다.

포피는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상징하는데요, 이런 추모 분위기는 11월 한 달 내내 이어집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영국, 김덕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국의 중부 도시 리버풀입니다.

붉은색 물결이 거대한 건물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합니다.

가까이 가 보니 세라믹으로 만든 양귀비꽃, 포피입니다.

5천 송이가 넘습니다.

<인터뷰> 바바라(시민) : "밤에 조명을 받으면 더 예쁠 것 같아요. 정말 멋져요. 리버풀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인근의 다른 도시 웨이크필드.

이곳도 세라믹으로 만든 붉은색 포피가 물결칩니다.

눈길을 떼기 어려운 이 두 개의 전시에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전시에 사용된 포피들은 지난해 런던 타워 주변을 가득 수놓았던 88만여 송이 가운데 일부입니다.

1차 세계 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행사였는데, 포피 88만여 송이는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영연방 군인 수를 나타냅니다.

<인터뷰> 시민 : "정말 감동적이고 인상적입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5백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이 일었는데, 이에 따라 올해는 포피들을 나눠 지역 순회 전시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포피 전시관계자 : "한 단체가 전시 요청을 십여 차례 했고 결국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순회 전시를 결정했습니다."

영국 성인 남성 10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한 군의관이 전장에 묻힌 전우를 포피에 비유한 추모 시가 유명해지면서 포피는 전사자의 희생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특히 1차 세계 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이 영국의 현충일이 된 이후부터 포피는 영국의 11월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런던 시내 중심가.

한 남성이 포피를 팔고 있습니다.

가슴에 다는 종이 포피인데 행인들은 대략 1파운드, 우리 돈 천8백 원을 내고 사갑니다.

<인터뷰> 존(런던 시민) : "오늘 길거리에서 하나 샀습니다. 포피 다는 것을 좋아해서 해마다 삽니다."

시민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자들도 가슴에 종이 포피를 답니다.

축구장의 선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포피 판매가 시작된 1921년 이후 한 해 평균 4천만 개가 팔리는데, 이렇게 해서 모인 수익금 350억 원은 전사자와 유족,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쓰입니다.

<녹취> 하이드, 해리어트, 하이드(어린이) :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포피를 달았어요. 해리어트(왼쪽 어린이) 그분들이 자랑스러워요."

<녹취> 벤(시민) : "과거는 물론 현재도 전쟁터에서 숨진 군인들에 대해 존경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붉은색 군복을 차려입는 노병들의 멋진 행진.

젊은 병사 못지 않은 당당함과 힘이 느껴집니다.

현충일을 전후해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참전 기념식입니다.

<인터뷰> 맥크루덴(2차 대전 참전용사) : "전쟁에 나갔던 전우 중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기념식은 젊은 세대에게 조국에 대한 헌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려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기도 합니다.

<녹취> 현충일 행사 담당자 : "젊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기억할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전 용사에 대한 영국의 대우는 다양한 전쟁기념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 왕가의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1차대전에서 전사한 이름없는 병사의 시신이 왕들의 무덤 주변에 묻혔습니다.

이후 무명용사의 묘는 영국을 방문하는 국빈의 헌화 장소가 됐습니다.

전쟁에 동원돼 희생된 동물들도 추모 대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동물들의 기념물 건립은 물론 추모식도 거행합니다.

영국 곳곳에 세워진 전쟁기념물은 무려 5만 4천여 개.

조국을 위한 전쟁에 참여했다면 지위고하와 역할에 상관없이 기념하고 기억합니다.

<녹취> 시민 : "솔직히 애국심이 생깁니다. 참전 용사들을 (기념물을 보며) 기억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전해 숨지거나 부상당한 군인들에 대해서는 본인과 가족들에게 각종 복지 혜택이 주어집니다.

일반 환자보다 우선적으로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고 주택 배정에서도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대중교통 할인과 무료 극장 이용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영국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추모의 열기로 달아오릅니다.

현충일 행사가 시작된 지 백 년 가까이 됐지만 해가 거듭돼도 열기는 쉽게 식지 않습니다.

조국을 위한 희생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영국인들의 강력한 공감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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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eye]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입력 2015-11-28 09:41:26
    • 수정2015-11-28 10:20:25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제가 가슴에 달고 있는 이 열매, 기부와 나눔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인데요, 이맘때 영국에서도 시민들 가슴엔 빨간 꽃이 피어납니다.

현지에서는 포피라고 부르는 양귀비꽃인데, 해마다 11월이면 영국인들은 축구 선수, 방송인, 시민 가릴 것 없이 이 포피를 가슴에 달고 다닙니다.

포피는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상징하는데요, 이런 추모 분위기는 11월 한 달 내내 이어집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영국, 김덕원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영국의 중부 도시 리버풀입니다.

붉은색 물결이 거대한 건물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합니다.

가까이 가 보니 세라믹으로 만든 양귀비꽃, 포피입니다.

5천 송이가 넘습니다.

<인터뷰> 바바라(시민) : "밤에 조명을 받으면 더 예쁠 것 같아요. 정말 멋져요. 리버풀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인근의 다른 도시 웨이크필드.

이곳도 세라믹으로 만든 붉은색 포피가 물결칩니다.

눈길을 떼기 어려운 이 두 개의 전시에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전시에 사용된 포피들은 지난해 런던 타워 주변을 가득 수놓았던 88만여 송이 가운데 일부입니다.

1차 세계 대전 발발 100주년 기념행사였는데, 포피 88만여 송이는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영연방 군인 수를 나타냅니다.

<인터뷰> 시민 : "정말 감동적이고 인상적입니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5백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폭발적인 호응이 일었는데, 이에 따라 올해는 포피들을 나눠 지역 순회 전시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포피 전시관계자 : "한 단체가 전시 요청을 십여 차례 했고 결국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순회 전시를 결정했습니다."

영국 성인 남성 10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은 1차 세계대전.

당시 한 군의관이 전장에 묻힌 전우를 포피에 비유한 추모 시가 유명해지면서 포피는 전사자의 희생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특히 1차 세계 대전 종전일인 11월 11일이 영국의 현충일이 된 이후부터 포피는 영국의 11월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런던 시내 중심가.

한 남성이 포피를 팔고 있습니다.

가슴에 다는 종이 포피인데 행인들은 대략 1파운드, 우리 돈 천8백 원을 내고 사갑니다.

<인터뷰> 존(런던 시민) : "오늘 길거리에서 하나 샀습니다. 포피 다는 것을 좋아해서 해마다 삽니다."

시민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자들도 가슴에 종이 포피를 답니다.

축구장의 선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포피 판매가 시작된 1921년 이후 한 해 평균 4천만 개가 팔리는데, 이렇게 해서 모인 수익금 350억 원은 전사자와 유족,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쓰입니다.

<녹취> 하이드, 해리어트, 하이드(어린이) :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념하기 위해 포피를 달았어요. 해리어트(왼쪽 어린이) 그분들이 자랑스러워요."

<녹취> 벤(시민) : "과거는 물론 현재도 전쟁터에서 숨진 군인들에 대해 존경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붉은색 군복을 차려입는 노병들의 멋진 행진.

젊은 병사 못지 않은 당당함과 힘이 느껴집니다.

현충일을 전후해 영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참전 기념식입니다.

<인터뷰> 맥크루덴(2차 대전 참전용사) : "전쟁에 나갔던 전우 중 상당수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기념식은 젊은 세대에게 조국에 대한 헌신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려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기도 합니다.

<녹취> 현충일 행사 담당자 : "젊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기억할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전 용사에 대한 영국의 대우는 다양한 전쟁기념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 왕가의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1차대전에서 전사한 이름없는 병사의 시신이 왕들의 무덤 주변에 묻혔습니다.

이후 무명용사의 묘는 영국을 방문하는 국빈의 헌화 장소가 됐습니다.

전쟁에 동원돼 희생된 동물들도 추모 대상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동물들의 기념물 건립은 물론 추모식도 거행합니다.

영국 곳곳에 세워진 전쟁기념물은 무려 5만 4천여 개.

조국을 위한 전쟁에 참여했다면 지위고하와 역할에 상관없이 기념하고 기억합니다.

<녹취> 시민 : "솔직히 애국심이 생깁니다. 참전 용사들을 (기념물을 보며) 기억하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전해 숨지거나 부상당한 군인들에 대해서는 본인과 가족들에게 각종 복지 혜택이 주어집니다.

일반 환자보다 우선적으로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고 주택 배정에서도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대중교통 할인과 무료 극장 이용 등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영국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추모의 열기로 달아오릅니다.

현충일 행사가 시작된 지 백 년 가까이 됐지만 해가 거듭돼도 열기는 쉽게 식지 않습니다.

조국을 위한 희생은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는 영국인들의 강력한 공감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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