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10년간 5,700억 피해…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입력 2015.12.02 (21:15) 수정 2015.12.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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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녹취> “서울중앙지검 000수사관입니다. 000씨 되시죠? 얼마전 000씨 관련 명의도용 사건이 발생해서요.”

이런 보이스피싱 전화, 한번쯤 받아 보셨죠.

우리나라에서 보이스피싱이 처음으로 신고된 것이 2006년이니까 올해로 등장 10년째입니다.

그 동안 5만 3천여 건에 피해 금액만 5700억 원에 달합니다.

보도도 자주 돼 이제는 그야말로 전 국민이 다 아는 범죄가 됐는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이 알려졌는데도 피해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겁니다.

범죄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인데, 요즘엔 어떤 수법이 쓰이는지 신지혜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돈 인출해 숨겨놓으라더니…”▼

<리포트>

아파트에서 배낭을 메고 나오는 이 남성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입니다.

"통장 명의가 도용됐으니 집에 돈을 모두 보관해 놓으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집에서 현금 3천만 원을 몽땅 챙겨 나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가족 : "돈을 다 안 뽑으면, 잘못하면 누가 인출해 갈 수 있으니까 현금을 찾아 놔라, (어디) 맡겨 놓지 말고 숨겨 놔라..."

이렇게 사기범이 직접 피해자를 찾아가 버젓이 현금을 훔쳐오는 범죄는 올해 초만 해도 한 건도 없었지만 지난달에는 36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김용실(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 팀장) : "대포통장을 활용하기가 상당히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인출 창구 자체를 차단하다 보니까 현금 수취형으로 진화하는 추세입니다."

수상한 전화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전화 대신 새로운 수법을 쓰는 사기도 늘고 있습니다.

사건에 연루됐다며 위조한 검찰 소환장을 우편으로 보내고, 가짜 콜센터 번호로 전화를 유도해 돈을 빼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녹취> 실제 보이스피싱 통화 내용(음성변조) : "(전화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거든요?) 전화 저희 쪽으로 주세요. 아니면 공문 보내 드릴까요?"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고전적인 수법은 여전합니다.

수사 기관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까지 사칭 기관도 2012년 이후 10곳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속수무책▼

<기자 멘트>

요즘 보이스피싱 사기범들, 대상에 따라, 또 세대에 따라 사기 수법도 다릅니다.

취업에 목마른 20대엔 "취업이 됐으니 통장과 현금 인출 카드를 보내라"고 해 대포통장을 확보합니다.

금융거래가 많은 3, 40대에게는 정보 유출이나 대출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됐다고 얘기하고, 50대 이상에는 "당신의 노후자산이 위험하다"고 불안을 조성한 뒤에 통장을 비우라고 부추기죠.

피해자들의 심리를 공략하는 겁니다.

감독당국이 100만 원 이상 이체된 돈은 30분 이상 인출을 못 하도록 하는 지연인출제를 시행하고 대포통장 단속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예 직접 만나서 돈을 받는 대면 피싱으로 단속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보이스피싱 근절을 추진하는 실무 책임자 이름을 내세워 사기를 치는 대범함도 보입니다.

몰라서 속은 게 아니라는 게 실제 피해자들 얘기죠.

<인터뷰> 보이스피싱 피해자 : "진짜 같아 진짜야. 그런 말도 제가 했거든요. 그쪽에서 일한 사람이 있지 않는 한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지? 명의도용에 가능성이 있다고 옛날부터 생각을 해왔고, 한 순간에 믿은 거죠. 그런 사건들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의 대책들이 훔친 돈을 옮기기 어렵게 막는 것이었다면 아예 훔치는 행위 자체를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이 새로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김경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금융기관·통신사 나서야 원천차단▼

<리포트>

지난 3월, 보이스피싱 조직이 한 직장인의 예금 5백만 원을 인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은행 시스템이 예금주의 평소 거래 습관과 전혀 다른 이상한 거래 시도를 파악하고, 계좌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녹취> 김OO(금융정보 도난 피해자) : "은행 계좌를 매일 매일 확인하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줬기 때문에 추가적인 피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은행의 이상거래시스템, FDS만 제대로 작동해도 범죄를 원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을 설치만 해놓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는 은행들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검찰이나 국세청과 같은 공공기관 번호로 발신 번호를 조작하는 행위를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리 송금 계좌와 한도를 정해두는 입금계좌 지정제, 이른바 '안심 통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인터뷰> 김승주(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돈을 찾을 수 없게 됨으로써 범행이 발각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레터 피싱과 큐싱을 감시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깔고, 발신 정보를 알려주는 앱도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KBS 뉴스 김경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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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02 21:16:15
    • 수정2015-12-02 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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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서울중앙지검 000수사관입니다. 000씨 되시죠? 얼마전 000씨 관련 명의도용 사건이 발생해서요.”

이런 보이스피싱 전화, 한번쯤 받아 보셨죠.

우리나라에서 보이스피싱이 처음으로 신고된 것이 2006년이니까 올해로 등장 10년째입니다.

그 동안 5만 3천여 건에 피해 금액만 5700억 원에 달합니다.

보도도 자주 돼 이제는 그야말로 전 국민이 다 아는 범죄가 됐는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이 알려졌는데도 피해가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겁니다.

범죄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인데, 요즘엔 어떤 수법이 쓰이는지 신지혜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돈 인출해 숨겨놓으라더니…”▼

<리포트>

아파트에서 배낭을 메고 나오는 이 남성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입니다.

"통장 명의가 도용됐으니 집에 돈을 모두 보관해 놓으면 안전한 곳으로 옮겨 주겠다"고 속여 피해자 집에서 현금 3천만 원을 몽땅 챙겨 나왔습니다.

<인터뷰> 피해자 가족 : "돈을 다 안 뽑으면, 잘못하면 누가 인출해 갈 수 있으니까 현금을 찾아 놔라, (어디) 맡겨 놓지 말고 숨겨 놔라..."

이렇게 사기범이 직접 피해자를 찾아가 버젓이 현금을 훔쳐오는 범죄는 올해 초만 해도 한 건도 없었지만 지난달에는 36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인터뷰> 김용실(금융감독원 서민금융지원국 팀장) : "대포통장을 활용하기가 상당히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인출 창구 자체를 차단하다 보니까 현금 수취형으로 진화하는 추세입니다."

수상한 전화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전화 대신 새로운 수법을 쓰는 사기도 늘고 있습니다.

사건에 연루됐다며 위조한 검찰 소환장을 우편으로 보내고, 가짜 콜센터 번호로 전화를 유도해 돈을 빼내는 게 대표적입니다.

<녹취> 실제 보이스피싱 통화 내용(음성변조) : "(전화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거든요?) 전화 저희 쪽으로 주세요. 아니면 공문 보내 드릴까요?"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고전적인 수법은 여전합니다.

수사 기관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까지 사칭 기관도 2012년 이후 10곳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속수무책▼

<기자 멘트>

요즘 보이스피싱 사기범들, 대상에 따라, 또 세대에 따라 사기 수법도 다릅니다.

취업에 목마른 20대엔 "취업이 됐으니 통장과 현금 인출 카드를 보내라"고 해 대포통장을 확보합니다.

금융거래가 많은 3, 40대에게는 정보 유출이나 대출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됐다고 얘기하고, 50대 이상에는 "당신의 노후자산이 위험하다"고 불안을 조성한 뒤에 통장을 비우라고 부추기죠.

피해자들의 심리를 공략하는 겁니다.

감독당국이 100만 원 이상 이체된 돈은 30분 이상 인출을 못 하도록 하는 지연인출제를 시행하고 대포통장 단속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아예 직접 만나서 돈을 받는 대면 피싱으로 단속을 피해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서 보이스피싱 근절을 추진하는 실무 책임자 이름을 내세워 사기를 치는 대범함도 보입니다.

몰라서 속은 게 아니라는 게 실제 피해자들 얘기죠.

<인터뷰> 보이스피싱 피해자 : "진짜 같아 진짜야. 그런 말도 제가 했거든요. 그쪽에서 일한 사람이 있지 않는 한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지? 명의도용에 가능성이 있다고 옛날부터 생각을 해왔고, 한 순간에 믿은 거죠. 그런 사건들이 있었으니까."

지금까지의 대책들이 훔친 돈을 옮기기 어렵게 막는 것이었다면 아예 훔치는 행위 자체를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이 새로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김경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금융기관·통신사 나서야 원천차단▼

<리포트>

지난 3월, 보이스피싱 조직이 한 직장인의 예금 5백만 원을 인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은행 시스템이 예금주의 평소 거래 습관과 전혀 다른 이상한 거래 시도를 파악하고, 계좌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녹취> 김OO(금융정보 도난 피해자) : "은행 계좌를 매일 매일 확인하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선제적으로 대응을 해줬기 때문에 추가적인 피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은행의 이상거래시스템, FDS만 제대로 작동해도 범죄를 원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을 설치만 해놓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고 있는 은행들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검찰이나 국세청과 같은 공공기관 번호로 발신 번호를 조작하는 행위를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

미리 송금 계좌와 한도를 정해두는 입금계좌 지정제, 이른바 '안심 통장'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인터뷰> 김승주(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 "돈을 찾을 수 없게 됨으로써 범행이 발각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스마트폰 이용자는 레터 피싱과 큐싱을 감시하는 애플리케이션 등을 깔고, 발신 정보를 알려주는 앱도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국가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KBS 뉴스 김경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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