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슈퍼 엘니뇨 진원지

입력 2016.01.09 (08:30) 수정 2016.01.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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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올 겨울 유난히 따뜻한데, '슈퍼 엘니뇨'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생기고 있는데요.

스페인어인 엘니뇨(El Niño)는 '아기 예수'라는 뜻인데,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페루 연안의 바다 수온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현지 어부들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KBS 취재진이 국내 언론 최초로 페루의 탐사선을 타고 엘니뇨의 진원지를 찾아 갔습니다.

박영관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새벽 바다.

작은 어선에 탄 어부들이 밤새 쳐놓은 그물을 걷어 올립니다.

퍼덕이며 올라오는 물고기들.

<인터뷰> 어부 : "지금 가장 많이 잡히는 건 카르길라라고 부르는 생선인데 좀 희귀한 어종이고 이렇게 커요."

그물에는 이곳에서 볼 수 없던 새우도 걸려 있습니다.

<인터뷰> 어부 : "이 새우는 잘 보지 못했던 종인데 요즘 잡히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새우 조업을 할 장비가 없어요,"

반면 페루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정어리 떼는 요즘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다 생태가 바뀌고 있다는 걸 어부들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스카노(선주) : "수익이 많이 줄었습니다. 엘니뇨 때문에 물이 변했는데, 아직 새로운 어종은 많이 잡히지 않고 있어요."

이 바다에서는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취재진은 페루 해양연구소의 엘니뇨 탐사선을 타고 태평양 먼바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곳 페루와 칠레 앞바다에는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한류가 흐르고 있는데요. 갑자기 따뜻한 난류가 밀려와 수온이 올라가는 현상을 엘니뇨라고 합니다.

돌고래가 헤엄치는 페루 앞바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연구원들이 바닷물을 채취해 성분을 분석합니다.

<녹취> "이 지역의 pH는 보통 7.9입니다."

그런데 측정 결과 수소이온지수, pH는 8.18로 평소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바닷물 속 산소량도 증가하고, 플랑크톤은 평소의 1/4 이하로 줄었습니다.

생태 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측정 결과들.

연구원들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인터뷰> 디아스(페루해양연구소 연구원) : "아열대성 해류가 페루 연안으로 밀려오면서 난류성 어종이 유입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탐사선은 쉬지 않고 34시간을 항해해 한밤중에 본격 탐사 지점에 도착합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600km, 해안에서 90km 떨어진 지점입니다.

먼저 깊이에 따라 단계별로 바닷물을 채취하고, 이어서 수온과 염도 등을 측정하는 장비를 투입합니다.

<인터뷰> 도밍게스(페루 해양연구소 연구원) : "이곳에 있는 저장 장치에 수중 600m까지 내려갔던 정보가 등록됩니다. 그 다음에 컴퓨터에 연결해 온도와 염분 정보를 확인하는 거죠."

바닷속 깊이 내려갔던 장비 안에는 바다에서 일고나고 있는 변화와 이에 따른 기상이변을 설명할 기초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녹취> "(이 지역) 수온이 21도였는데 지금은 23도입니다. 지난달보다 2도 높아졌어요."

적도 부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를 측정한 자료입니다.

가장 붉게 표시된 지역의 온도는 3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예년 같으면 비슷한 시기 해수면 온도는 27도 정도니까, 30도면 평년보다 3도나 높은 겁니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올라가면 엘니뇨라고 부르니까, 지금은 그보다 훨씬 심한 단계, 즉 슈퍼 엘니뇨 상황입니다.

이 뜨거운 바닷물이 얼마나 유입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탐사선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조사 작업은 장소를 옮겨가며 밤새 계속되고 있습니다.

페루 엘니뇨 탐사선은 한 번 출항하면 보통 일주일씩, 한 달에 두 차례 페루 앞바다를 정밀 조사해 엘니뇨의 진행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강했던 1997년과 98년 슈퍼 엘니뇨 당시 페루에서는 홍수로 280여명이 숨지고, 35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이번 엘니뇨가 당시와 비슷한 강도로 알려지면서 페루 정부는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전 국토의 50%에 비상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엘니뇨 비상대책본부도 24시간 가동하고 있습니다.

엘니뇨 탐사선에서 수집한 페루 앞바다 정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나오는 엘니뇨 관련 정보가 모두 이곳에 모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8개 부처 장관이 모여 상황을 점검합니다.

<인터뷰> 베니테스(페루 농업부 장관) : "중앙 태평양 온도는 현재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며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뜨거운 태평양 바다에서 막대한 수증기가 만들어지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과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남미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는 홍수로 이미 16만 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영국과 미국 중서부도 폭우와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미국 남동부에는 때아닌 토네이도에 이어 폭설이 내렸고, 미국 북동부와 유럽에는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8년에 이어 가장 강력하다는 이번 슈퍼 엘니뇨의 영향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인터뷰> 빌 패처트(나사 기상학자) : "보는 것처럼 괴물 같습니다. 엘니뇨의 강도가 18년 전과 비슷한데, 그 영향도 18년 전과 비슷할 겁니다."

18년 전과 다른 것은 엘니뇨라는 말이 처음 생긴 페루 등 남미 태평양 연안 지역에는 아직 큰 피해가 없다는 점입니다.

남반구에 고기압이 형성돼 북쪽으로 바람이 불면서 뜨거운 해류의 남하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롤단(페루 기상청 국장) : "이 고기압이 페루와 칠레 태평양 연안에 거대한 선풍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이번 엘니뇨가 지구 남반구보다 북반구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엘니뇨가 지나가면 태평양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큽니다.

라리냐는 동남아시아에 극심한 장마를, 남아메리카에는 가뭄을, 북아메리카에는 추위를 몰고올 수 있습니다.

지구촌 기상이변이 올해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세계 각국이 슈퍼 엘니뇨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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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이 슈퍼 엘니뇨 진원지
    • 입력 2016-01-09 08:59:27
    • 수정2016-01-09 11:12:38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올 겨울 유난히 따뜻한데, '슈퍼 엘니뇨'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생기고 있는데요.

스페인어인 엘니뇨(El Niño)는 '아기 예수'라는 뜻인데,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페루 연안의 바다 수온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현지 어부들이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KBS 취재진이 국내 언론 최초로 페루의 탐사선을 타고 엘니뇨의 진원지를 찾아 갔습니다.

박영관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는 새벽 바다.

작은 어선에 탄 어부들이 밤새 쳐놓은 그물을 걷어 올립니다.

퍼덕이며 올라오는 물고기들.

<인터뷰> 어부 : "지금 가장 많이 잡히는 건 카르길라라고 부르는 생선인데 좀 희귀한 어종이고 이렇게 커요."

그물에는 이곳에서 볼 수 없던 새우도 걸려 있습니다.

<인터뷰> 어부 : "이 새우는 잘 보지 못했던 종인데 요즘 잡히고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새우 조업을 할 장비가 없어요,"

반면 페루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정어리 떼는 요즘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다 생태가 바뀌고 있다는 걸 어부들은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뷰> 레스카노(선주) : "수익이 많이 줄었습니다. 엘니뇨 때문에 물이 변했는데, 아직 새로운 어종은 많이 잡히지 않고 있어요."

이 바다에서는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취재진은 페루 해양연구소의 엘니뇨 탐사선을 타고 태평양 먼바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곳 페루와 칠레 앞바다에는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한류가 흐르고 있는데요. 갑자기 따뜻한 난류가 밀려와 수온이 올라가는 현상을 엘니뇨라고 합니다.

돌고래가 헤엄치는 페루 앞바다.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연구원들이 바닷물을 채취해 성분을 분석합니다.

<녹취> "이 지역의 pH는 보통 7.9입니다."

그런데 측정 결과 수소이온지수, pH는 8.18로 평소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바닷물 속 산소량도 증가하고, 플랑크톤은 평소의 1/4 이하로 줄었습니다.

생태 환경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는 측정 결과들.

연구원들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인터뷰> 디아스(페루해양연구소 연구원) : "아열대성 해류가 페루 연안으로 밀려오면서 난류성 어종이 유입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탐사선은 쉬지 않고 34시간을 항해해 한밤중에 본격 탐사 지점에 도착합니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600km, 해안에서 90km 떨어진 지점입니다.

먼저 깊이에 따라 단계별로 바닷물을 채취하고, 이어서 수온과 염도 등을 측정하는 장비를 투입합니다.

<인터뷰> 도밍게스(페루 해양연구소 연구원) : "이곳에 있는 저장 장치에 수중 600m까지 내려갔던 정보가 등록됩니다. 그 다음에 컴퓨터에 연결해 온도와 염분 정보를 확인하는 거죠."

바닷속 깊이 내려갔던 장비 안에는 바다에서 일고나고 있는 변화와 이에 따른 기상이변을 설명할 기초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녹취> "(이 지역) 수온이 21도였는데 지금은 23도입니다. 지난달보다 2도 높아졌어요."

적도 부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를 측정한 자료입니다.

가장 붉게 표시된 지역의 온도는 30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예년 같으면 비슷한 시기 해수면 온도는 27도 정도니까, 30도면 평년보다 3도나 높은 겁니다.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올라가면 엘니뇨라고 부르니까, 지금은 그보다 훨씬 심한 단계, 즉 슈퍼 엘니뇨 상황입니다.

이 뜨거운 바닷물이 얼마나 유입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탐사선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조사 작업은 장소를 옮겨가며 밤새 계속되고 있습니다.

페루 엘니뇨 탐사선은 한 번 출항하면 보통 일주일씩, 한 달에 두 차례 페루 앞바다를 정밀 조사해 엘니뇨의 진행 상황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강했던 1997년과 98년 슈퍼 엘니뇨 당시 페루에서는 홍수로 280여명이 숨지고, 35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이번 엘니뇨가 당시와 비슷한 강도로 알려지면서 페루 정부는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전 국토의 50%에 비상 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엘니뇨 비상대책본부도 24시간 가동하고 있습니다.

엘니뇨 탐사선에서 수집한 페루 앞바다 정보는 물론 전 세계에서 나오는 엘니뇨 관련 정보가 모두 이곳에 모입니다.

매주 월요일에는 8개 부처 장관이 모여 상황을 점검합니다.

<인터뷰> 베니테스(페루 농업부 장관) : "중앙 태평양 온도는 현재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며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뜨거운 태평양 바다에서 막대한 수증기가 만들어지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과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남미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에서는 홍수로 이미 16만 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영국과 미국 중서부도 폭우와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미국 남동부에는 때아닌 토네이도에 이어 폭설이 내렸고, 미국 북동부와 유럽에는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1998년에 이어 가장 강력하다는 이번 슈퍼 엘니뇨의 영향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인터뷰> 빌 패처트(나사 기상학자) : "보는 것처럼 괴물 같습니다. 엘니뇨의 강도가 18년 전과 비슷한데, 그 영향도 18년 전과 비슷할 겁니다."

18년 전과 다른 것은 엘니뇨라는 말이 처음 생긴 페루 등 남미 태평양 연안 지역에는 아직 큰 피해가 없다는 점입니다.

남반구에 고기압이 형성돼 북쪽으로 바람이 불면서 뜨거운 해류의 남하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롤단(페루 기상청 국장) : "이 고기압이 페루와 칠레 태평양 연안에 거대한 선풍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이번 엘니뇨가 지구 남반구보다 북반구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엘니뇨가 지나가면 태평양 바닷물이 차가워지는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도 큽니다.

라리냐는 동남아시아에 극심한 장마를, 남아메리카에는 가뭄을, 북아메리카에는 추위를 몰고올 수 있습니다.

지구촌 기상이변이 올해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 속에 세계 각국이 슈퍼 엘니뇨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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