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평등 ‘삐걱’…차별 고착화?

입력 2016.01.16 (08:34) 수정 2016.01.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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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입니다.

모두 6가지 색깔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색깔을 사용한 국기라고 합니다.

흑인과 백인, 전통과 근대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통일과 단결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22년 전 극단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것도 국기의 의미와 맞아 떨어집니다.

그런데 수많은 희생 끝에 이뤄진 인종 평등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흑인이 백인보다 불리한 현실은 여전해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민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천 명 넘는 흑인들이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10km의 대장정은 남아공의 상징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흑인은 백인이 사는 곳에 갈 수 없고, 이용하는 공공시설도, 받는 교육도 정치 활동도 제약을 받았던 나라, 남아공.

1994년 이 정책이 공식 철폐될 때까지 차별에 맞서 싸웠던 만델라 대통령은, 지금도 이 땅의 영웅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카라렐로(남아공 시민) :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함으로써 우리는 남아공의 진정한 자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됐죠."

극단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 어느덧 22년.

남아공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를 '무지개의 나라'로 부릅니다.

여러 색이 모여 무지개를 이루듯 남아공은 다양성의 나라라는 겁니다.

남아공은 그동안 상당한 수준의 흑백 평등, 그리고 흑인 인권의 신장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파르트헤이트가 남아공에서 완전히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빈민가.

낡은 판잣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습니다.

18살 바타노의 집은 딱 잠만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엄마와 둘이 사는데 침대와 가스레인지만으로도 집 안이 꽉 찹니다.

동네에 전기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엄마는 침대에서, 바타노는 바닥에서 잡니다.

<인터뷰> 바타노(고등학생) : "비가 올 때는 천장에서 비가 새 집 안으로 빗물이 들어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잘 만한 다른 곳을 찾아야 하죠."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하는 집을 얻는 것, 컨테이너 박스에 다섯 가족이 사는 로렌스도 무상 지원 집을 얻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뒤 정부가 빈민들에게 150만 호의 집을 공짜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10%도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는 로렌스가 돈을 벌어 집을 사는 것은 더 어려운 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로렌스(소웨토 주민) : "적절한 집을 사거나 구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게 내가 정부에서 집을 얻기를 기다리는 이유예요."

남아공의 실업률은 25%.

고급 일자리보다 일용직 경쟁률이 더 치열합니다.

한 고급 주택가 앞 공터, 아침부터 허름한 차림의 흑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대형 공사가 있는 지역 주변에는 어김없이 노동자 수십 명이 몰리는 인력 시장이 형성됩니다.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이 나타나 데려갈 때까지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 수준이지만, 그나마도 일감을 얻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침부터 나와 일감을 기다렸지만, 다들 정오가 되도록 허탕입니다.

이들에게 먹거리를 파는 노점 상인만 돈을 벌어 갔습니다.

<인터뷰> 모카과나(실업자) : "일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녀 봤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포기했어요. 여기 오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밖에 올 데가 없었죠."

이 사람은 탄광과 공장을 돌아다녀 봤지만 아무 데도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학생 시절 차별 정책은 모두 없어졌지만, 교육 기회만 넓어졌지 자신 같은 흑인에게는 교육받을 돈이 없었고, 결국, 변변한 직장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게 이 사람의 말입니다.

<인터뷰> 모카과나(실업자) : "좋은 직업을 얻고 싶었지만,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들죠. 돈이 없었으니 지금 이런 데 와 있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빈부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정치는 흑인들이 장악했지만 주요 경제 부문은 모두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의 경우 빈곤층 비율이 1%에 불과한 반면, 흑인 빈곤 비율은 40%에 육박합니다.

남아공 기업 임원진의 3분의 2는 백인인데, 흑인은 20%도 안 됩니다.

차별 정책 시절 교육을 받지 못했던 흑인들에겐 가져갈 수 일자리가 처음부터 제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백인의 지위를 나눠가진 돈 많은 일부 흑인들을 제외한 대다수 흑인들에게는 빈곤이 결국 대물림 됐습니다.

<인터뷰> 트루디 마카야(경제학자) : "대학을 못 가면 거기서 그냥 끝입니다. 기술을 배울 기회도 사라지게 되는거죠.그래서 그들은 발전 속도가 느린 저임금 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해 10월, 남아공 주요 도시들에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가 번져나갔습니다.

20년 만의 대규모 시위.

경찰과 거센 충돌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학들이 이듬해 등록금을 한꺼번에 10% 이상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학생들은 연평균 우리 돈 8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또 올리면 가난한 흑인부터 교육에서 배제될 거라고 반발했습니다.

<인터뷰> 대학생 : "등록금을 올린다는 건 평균적인 흑인 학생인 저와 제 미래의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공부하게 될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계속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아요."

이 시위를 처음 주도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의 학생회장 놈펜둘로는 올해 22살.

차별 정책 폐지 이후 자유로운 흑인으로 태어난, 이른바 '본 프리' 세대지만, 차별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놈펜둘로 음카촤(위트워터스랜드대학 학생회장) : "지금은 흑백을 구별하는 표지판이라든가, 흑인은 특정 대학만 가야 한다는 구분은 사라졌죠. 하지만 여전히 경제 체제를 통해 차별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그늘인 빈부격차는 엉뚱하게도 흑인들 사이에서마저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요하네스버그의 한 마을에서는 흑인 주민들이 최근 이곳으로 집단 이주한 다른 지역 흑인들을 내보내 달라며 정부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인은 정부가 흑인들을 위해 싸게 내 주는 집.

흑인 주민이 늘어나면 그만큼 집 얻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코자(지역 주민) : "국가가 제공하는 주택을 얻기 위한 시위입니다. 지금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위를 벌이는 겁니다."

흑백 갈등 대신 가난한 흑인들끼리 경쟁하는 흑흑 갈등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까지 번졌습니다.

남아공 흑인들이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일터를 불태우기 시작한 겁니다.

<인터뷰> 남아공 시민 :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떠나야 해요. 합법적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모두 여기서 나가야 해요. 그래야 우리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공포에 외국인 상당수는 남아공을 떠났고 외교 문제로까지 번졌지만, 다른 나라 흑인을 일자리 경쟁 상대로 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무스와칸(남아공 시민) : "이제는 회사들이 외국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어요. 정부가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국민들에 대해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는 내 소망이다. 그런 소망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차별 철폐에 평생을 바친 만델라의 위대한 명언은 남아공 땅에서 아직도 미완의 과제입니다.

차별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만델라의 후예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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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 평등 ‘삐걱’…차별 고착화?
    • 입력 2016-01-16 08:44:54
    • 수정2016-01-16 09:32:11
    특파원 현장보고
<앵커 멘트>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입니다.

모두 6가지 색깔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색깔을 사용한 국기라고 합니다.

흑인과 백인, 전통과 근대 등 다양한 요소가 합쳐져 통일과 단결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22년 전 극단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것도 국기의 의미와 맞아 떨어집니다.

그런데 수많은 희생 끝에 이뤄진 인종 평등이 삐걱대는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흑인이 백인보다 불리한 현실은 여전해 차별이 사라지기는커녕 고착화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민 순회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천 명 넘는 흑인들이 남아공화국 요하네스버그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10km의 대장정은 남아공의 상징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서거 2주기를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흑인은 백인이 사는 곳에 갈 수 없고, 이용하는 공공시설도, 받는 교육도 정치 활동도 제약을 받았던 나라, 남아공.

1994년 이 정책이 공식 철폐될 때까지 차별에 맞서 싸웠던 만델라 대통령은, 지금도 이 땅의 영웅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카라렐로(남아공 시민) :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함으로써 우리는 남아공의 진정한 자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됐죠."

극단적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된 지 어느덧 22년.

남아공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를 '무지개의 나라'로 부릅니다.

여러 색이 모여 무지개를 이루듯 남아공은 다양성의 나라라는 겁니다.

남아공은 그동안 상당한 수준의 흑백 평등, 그리고 흑인 인권의 신장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과연 아파르트헤이트가 남아공에서 완전히 사라졌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빈민가.

낡은 판잣집들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습니다.

18살 바타노의 집은 딱 잠만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입니다.

엄마와 둘이 사는데 침대와 가스레인지만으로도 집 안이 꽉 찹니다.

동네에 전기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엄마는 침대에서, 바타노는 바닥에서 잡니다.

<인터뷰> 바타노(고등학생) : "비가 올 때는 천장에서 비가 새 집 안으로 빗물이 들어옵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잘 만한 다른 곳을 찾아야 하죠."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하는 집을 얻는 것, 컨테이너 박스에 다섯 가족이 사는 로렌스도 무상 지원 집을 얻고 싶습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뒤 정부가 빈민들에게 150만 호의 집을 공짜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년이 지나도록 10%도 지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는 로렌스가 돈을 벌어 집을 사는 것은 더 어려운 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로렌스(소웨토 주민) : "적절한 집을 사거나 구하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게 내가 정부에서 집을 얻기를 기다리는 이유예요."

남아공의 실업률은 25%.

고급 일자리보다 일용직 경쟁률이 더 치열합니다.

한 고급 주택가 앞 공터, 아침부터 허름한 차림의 흑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대형 공사가 있는 지역 주변에는 어김없이 노동자 수십 명이 몰리는 인력 시장이 형성됩니다.

일을 시키려는 사람들이 나타나 데려갈 때까지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 수준이지만, 그나마도 일감을 얻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아침부터 나와 일감을 기다렸지만, 다들 정오가 되도록 허탕입니다.

이들에게 먹거리를 파는 노점 상인만 돈을 벌어 갔습니다.

<인터뷰> 모카과나(실업자) : "일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돌아다녀 봤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포기했어요. 여기 오고 싶지 않았지만, 여기밖에 올 데가 없었죠."

이 사람은 탄광과 공장을 돌아다녀 봤지만 아무 데도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학생 시절 차별 정책은 모두 없어졌지만, 교육 기회만 넓어졌지 자신 같은 흑인에게는 교육받을 돈이 없었고, 결국, 변변한 직장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게 이 사람의 말입니다.

<인터뷰> 모카과나(실업자) : "좋은 직업을 얻고 싶었지만, 교육에는 돈이 많이 들죠. 돈이 없었으니 지금 이런 데 와 있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빈부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정치는 흑인들이 장악했지만 주요 경제 부문은 모두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의 경우 빈곤층 비율이 1%에 불과한 반면, 흑인 빈곤 비율은 40%에 육박합니다.

남아공 기업 임원진의 3분의 2는 백인인데, 흑인은 20%도 안 됩니다.

차별 정책 시절 교육을 받지 못했던 흑인들에겐 가져갈 수 일자리가 처음부터 제한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백인의 지위를 나눠가진 돈 많은 일부 흑인들을 제외한 대다수 흑인들에게는 빈곤이 결국 대물림 됐습니다.

<인터뷰> 트루디 마카야(경제학자) : "대학을 못 가면 거기서 그냥 끝입니다. 기술을 배울 기회도 사라지게 되는거죠.그래서 그들은 발전 속도가 느린 저임금 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해 10월, 남아공 주요 도시들에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시위가 번져나갔습니다.

20년 만의 대규모 시위.

경찰과 거센 충돌까지 벌어졌습니다.

대학들이 이듬해 등록금을 한꺼번에 10% 이상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학생들은 연평균 우리 돈 8백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또 올리면 가난한 흑인부터 교육에서 배제될 거라고 반발했습니다.

<인터뷰> 대학생 : "등록금을 올린다는 건 평균적인 흑인 학생인 저와 제 미래의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공부하게 될 학생들에게는 공부를 계속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아요."

이 시위를 처음 주도한 위트워터스랜드 대학의 학생회장 놈펜둘로는 올해 22살.

차별 정책 폐지 이후 자유로운 흑인으로 태어난, 이른바 '본 프리' 세대지만, 차별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놈펜둘로 음카촤(위트워터스랜드대학 학생회장) : "지금은 흑백을 구별하는 표지판이라든가, 흑인은 특정 대학만 가야 한다는 구분은 사라졌죠. 하지만 여전히 경제 체제를 통해 차별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그늘인 빈부격차는 엉뚱하게도 흑인들 사이에서마저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요하네스버그의 한 마을에서는 흑인 주민들이 최근 이곳으로 집단 이주한 다른 지역 흑인들을 내보내 달라며 정부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원인은 정부가 흑인들을 위해 싸게 내 주는 집.

흑인 주민이 늘어나면 그만큼 집 얻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코자(지역 주민) : "국가가 제공하는 주택을 얻기 위한 시위입니다. 지금 여기로 이사 온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위를 벌이는 겁니다."

흑백 갈등 대신 가난한 흑인들끼리 경쟁하는 흑흑 갈등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까지 번졌습니다.

남아공 흑인들이 짐바브웨, 나이지리아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일터를 불태우기 시작한 겁니다.

<인터뷰> 남아공 시민 : "외국인들은 우리나라를 떠나야 해요. 합법적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모두 여기서 나가야 해요. 그래야 우리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공포에 외국인 상당수는 남아공을 떠났고 외교 문제로까지 번졌지만, 다른 나라 흑인을 일자리 경쟁 상대로 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무스와칸(남아공 시민) : "이제는 회사들이 외국인들을 고용하기 시작했어요. 정부가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보다) 자국민들에 대해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갖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는 내 소망이다. 그런 소망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차별 철폐에 평생을 바친 만델라의 위대한 명언은 남아공 땅에서 아직도 미완의 과제입니다.

차별의 뿌리를 완전히 잘라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만델라의 후예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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