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人] ‘빅초이’ 최희섭의 야구 이야기

입력 2016.01.17 (23:59) 수정 2016.01.18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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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화 : 본격 스포츠지식 배양프로그램, 스포츠 대백과! 스물여섯 번째 장을 열겠습니다.

제인 : 어느 덧, 2016년 1월도 절반 이상이 지났죠.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을 세웠던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오늘의 스포츠 인은 2016년 새로운 계획을 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분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은퇴한 최희섭 선수입니다!

최희섭 : (인사)

이병진 : 전직 메이저리거가 나왔으니까 이 사람이 빠질 수 없겠죠? 메이저리그 전문가 대니얼 김 위원입니다.

대니얼 : (인사)

제인 : 또 최희섭 선수보다 1년 먼저 은퇴한~ 은퇴 선배이자 동갑내기 친구! 안치용 위원도 함께 합니다.

안치용 : (인사)

이병진 : 그런데 저는 최희섭 선수가 은퇴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1979년생이면 아직...선수로 뛰고 있는 선배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빨리 은퇴를 결심하게 된 거예요?

최희섭 :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그라운드에서 뛰면서 팀도 우승시키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가장 큰 목표였던 메이저리그도 뛰어봤고 챔피언스필드에서도 뛰어봤으니 선수로서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잔부상으로 야구도 제대로 못 하면서 후배들 자리를 뺏느니, 은퇴해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제인 : 근데 생각해보니까 최희섭 선수는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안치용 위원은 왜 그렇게 빨리 은퇴했던 거예요?

안치용 : (답변)

강승화 : 최희섭 선수가 출중했던 실력과 별개로~ 몸이 아프다보니까 뜻하지 않았던 오해나 소문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잖아요. 이제 은퇴했으니까 오늘 모든 걸 내려놓고 허심탄회한 속사정 들려주실 수 있죠?

이병진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늘 최희섭 선수와 팬들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강승화 : 자, 그러면 최희섭 선수의 야구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표제어 ①-1 메이저리거 최희섭

제인 : 한국과 미국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던 선수지만... 최희섭 선수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계실 거잖아요. 어떤 선수였는지 설명해주시죠?

대니얼 : 박찬호를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1세대. 타자로서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경기 3홈런!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최고령 100호 홈런 쳐낸! 홈런 타자였다.

이병진 : 류현진과 강정호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박병호와 김현수까지! 국내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그 원조가 최희섭 선수라 할 수 있다.

강승화 :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시조새 같은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요. 메이저리그 선배로서 후배들이 미국 야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최희섭 : (답변)

안치용 : 지금과 그때는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우리 선수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했다면, 지금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추세

이병진 : 당시에 투수들이야, 박찬호도 있었고 선배들이 있었지만... 타자로서는 최초의 도전이었는데 어떻게 “미국에 가야겠다!” 결심하게 된 거예요?

최희섭 : 어머니가 나를 메이저리거로 키우고 싶었고, 나 역시 젊고 힘 있을 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 미국으로 떠날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에는 못 돌아옵니다.” 비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제인 : 정말 의지가 대단했네요. 그런데 최희섭 선수의 의지도 의지만, 실력과 가능성이 보이니까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받은 거 아니겠어요? 안치용 위원이 동갑내기였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최희섭은 어떤 선수였나요?

안치용 : (답변)

이병진 : 최희섭 선수도 안치용 위원이 고등학생 때 어떤 선수였는지 기억나요?

최희섭 : (답변)

대니얼 : 나는 두 선수 모두 기억난다. 1998년 내가 뉴욕 메츠 직원으로 일할 때 스프링캠프에 한국 청소년 대표를 초대한 적 있다. 그때 청소년 대표 명단에 최희섭과 안치용 모두 포함돼 있었다. 이게 그때 명단이다. 최희섭 선수는 워낙 덩치가 커서 전부터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받던 선수였고 여기에 김병현 선수까지 같이 오면서 다른 구단 관계자들도 우르르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

제인 :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건, 안치용 위원 역시 고등학생 때는 정말 야구를 잘 했다는 사실인데요. 그럼 어떻게 보면 라이벌일 수도 있는 친구가 메이저리그에 간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안치용 :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인 타자가 메이저리그 경기를 뛴 적이 없기 때문에 성공할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 표제어 ①-2 마이너리거 최희섭

강승화 :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는데요. 더군다나 말도 안 통하는 20살 청년이 타지에서 꿈 하나만 보고 생활하기에는 힘든 점도 많았을 거 같아요?

최희섭 : 1999년도 처음 갔는데 다행히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탑 유망주로 자리를 잡아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데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제스처를 크게 못해 많이 혼났다. 또 콜 플레이를 할 때 우리는 마이 볼(My ball)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아이 갓 잇(I got it)이라고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낯설어서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이병진 : 메이저리그에 나가는 후배들에 좋은 팁 하나 알려줬네요. 공이 높이 뜨면 “마이 볼”이 아니라 “아이 갓 잇”라고 외쳐야 한 대요.

대니얼 : 미국은 의사소통을 확실히 해야 하고 공격적이고 오버하는 플레이를 좋아한다. 멈칫하면 자신감 없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콜 플레이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제인 : 그렇게 4년 동안의 힘든 마이너리그생활을 견디자 2002년에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최희섭 :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던 중 시카고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길도 잘 모르는 시카고에서 다섯 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야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생각에 그 다섯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또 막상 가보니까 역시 최상의 대접으로 마이너리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특히, 게임 끝나면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이병진 : 도대체 뭘 먹으라고 줬기에 그렇게 행복했어요?

최희섭 : (답변)

강승화 : 4년의 기다림 끝에 밟은 메이저리그 무대! 한 번 치기도 힘든 홈런을 세 타석 연속으로도 쳤고요. 또 고등학교 선배, 서재응 선수한테도 한 방 날렸죠?

대니얼 : 서재응과 최희섭은 광주일고 선후배. 플로리다 원정을 떠난 서재응이 경기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늘 희섭이 삼진 2~3개 잡을 거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정말 경기에 들어서서 잘 던졌는데... 7회에 최희섭에게 홈런을 맞았고 승리투수 자격도 함께 날아갔다.

제인 : 벌써부터 내년 개막전에 김현수의 볼티모어와 박병호의 미네소타가 대결한다고 관심이 높은데요. 실제로 미국에서 뛰다가 한국 선수들과 가끔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최희섭 : (답변)

대니얼 : 실제로 아까 말한 경기를 (2004년) 나는 뉴욕 메츠 덕아웃에서 보고 있었는데 상대팀 최희섭이 2루타를 쳤는데도 뉴욕 메츠의 한인 팬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탐 글래빈이 와서 한국 팬들이 지금 누구를 응원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두 선수가 모두 잘 하고 서재응이 이기길 바랄 거라고 대답해줬다.

이병진 : 팬 얘기가 나온 김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만난 기억에 남는 팬은 없나요?

최희섭 : 시카고 컵스 시절, 마이클 조던을 만났다. 농구를 정말 좋아해서 마이클 조던 팬이었는데 마이클 조던이 나보고 팬이라고 하면서 내 이름도 알고 있었다.

▶ 표제어 ①–3 OX퀴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강승화 :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더 컸고 그래서 부진에... 부상에... 실망도 컸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의 오해들을 해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병진 : 선수 시절에는 차마 말 하지 못했던! 꽁꽁 감춰뒀던 얘기들을 속 시원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제인 : 이름 하여 최희섭,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데요. 제 질문에 고민하지 말고 빠르게 OX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

Q. 처음부터 한국 무대에서 뛰었다면...
양준혁, 이승엽 선배의 기록에 도전했을 거다?
Q. 이승엽 선수에게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말한 적 있다?
Q. 때로는 야구보다 등산이 더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Q.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은 2009년 KIA 우승 때다?
Q. 나는 악성댓글이 많은 편이다?
Q. 다시 태어나도 야구 선수를 할 거다?

이병진 :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도 있었는데 솔직한 답변 잘 들었다. 그동안 쌓였던 오해들이 풀렸기를 바란다.

▶ 표제어 ①–4 다시 불어오는 ‘코리안 빅리거 시대’

강승화 :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였던 최희섭을 시작으로 이제 많은 우리 선수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 앞두고 있는데요. 그만큼 한국 야구가 성장했다는 거겠죠?

안치용 : 지금까지 한국 투수는 빅 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국내리그 타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신이 컸다. 하지만 강정호의 성공 이후 한국 타자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대니얼 :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일본보다 한국 야구 스타일이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 한국 타자들이 본인의 컬러를 살리려고 하는 모습과 공격적인 모습에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들도 관심

이병진 : 오늘 솔직담백한 최희섭 선수의 야구 인생을 들어봤는데요. 박병호나 김현수처럼 새로운 야구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있잖아요. 메이저리그에서 방망이 좀 휘둘러봤던 선배로서 좀 더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최희섭 : 미국 야구는 냉정하다. 200억, 300억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몇 백 억 선수가 방출되고 트레이드 되는 걸 봤다. 그렇기 때문에 박병호나 김현수 모두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나도 에릭 캐로스, 마크 그레이스와 경쟁하고 플래툰 시스템을 경험했다. 포지션별로 3-4명까지는 기본이고 한 포지션에 7명까지 경쟁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는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보기 때문에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을 보여줘야 한다.

대니얼 : 메이저리그에서 최희섭 선수가 아쉽게 끝난 부분 중 하나가 “멘탈”이다. 어렸을 때 외롭게 소속감 없이 일찍 성공했다가 일찍 좌절했다. 박병호나 김현수의 경우 20대 후반, 성인으로서의 완성도도 높고 야구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시점에서 진출했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제인 : 안치용 위원이나 최희섭 선수 모두~ “아~ 내가 지금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면 더 훌륭한 선수가 됐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해봤을 거 같아요?

최희섭 : (답변)

안치용 : (답변)

이병진 : 선수로서의 아쉬움은 털어내고요. 이제는 선수가 아닌 제 2의 인생에서 멋진 만루 홈런을 치길 바란다.

제인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시죠?

최희섭 : (답변)

강승화 : 최희섭 선수의 새로운 도전은 물론, 두 위원의 2016년도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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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人] ‘빅초이’ 최희섭의 야구 이야기
    • 입력 2016-01-18 06:50:27
    • 수정2016-01-18 07:53:58
    운동화
강승화 : 본격 스포츠지식 배양프로그램, 스포츠 대백과! 스물여섯 번째 장을 열겠습니다.

제인 : 어느 덧, 2016년 1월도 절반 이상이 지났죠.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계획을 세웠던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오늘의 스포츠 인은 2016년 새로운 계획을 넘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분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은퇴한 최희섭 선수입니다!

최희섭 : (인사)

이병진 : 전직 메이저리거가 나왔으니까 이 사람이 빠질 수 없겠죠? 메이저리그 전문가 대니얼 김 위원입니다.

대니얼 : (인사)

제인 : 또 최희섭 선수보다 1년 먼저 은퇴한~ 은퇴 선배이자 동갑내기 친구! 안치용 위원도 함께 합니다.

안치용 : (인사)

이병진 : 그런데 저는 최희섭 선수가 은퇴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1979년생이면 아직...선수로 뛰고 있는 선배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빨리 은퇴를 결심하게 된 거예요?

최희섭 :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그라운드에서 뛰면서 팀도 우승시키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가장 큰 목표였던 메이저리그도 뛰어봤고 챔피언스필드에서도 뛰어봤으니 선수로서 다 이뤘다고 생각했다. 잔부상으로 야구도 제대로 못 하면서 후배들 자리를 뺏느니, 은퇴해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제인 : 근데 생각해보니까 최희섭 선수는 부상이라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안치용 위원은 왜 그렇게 빨리 은퇴했던 거예요?

안치용 : (답변)

강승화 : 최희섭 선수가 출중했던 실력과 별개로~ 몸이 아프다보니까 뜻하지 않았던 오해나 소문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잖아요. 이제 은퇴했으니까 오늘 모든 걸 내려놓고 허심탄회한 속사정 들려주실 수 있죠?

이병진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늘 최희섭 선수와 팬들이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강승화 : 자, 그러면 최희섭 선수의 야구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표제어 ①-1 메이저리거 최희섭

제인 : 한국과 미국에서 4번 타자로 활약했던 선수지만... 최희섭 선수를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계실 거잖아요. 어떤 선수였는지 설명해주시죠?

대니얼 : 박찬호를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1세대. 타자로서는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선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경기 3홈런!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최고령 100호 홈런 쳐낸! 홈런 타자였다.

이병진 : 류현진과 강정호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박병호와 김현수까지! 국내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계속 도전하고 있는데~ 그 원조가 최희섭 선수라 할 수 있다.

강승화 :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시조새 같은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요. 메이저리그 선배로서 후배들이 미국 야구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최희섭 : (답변)

안치용 : 지금과 그때는 다른 점이 있다. 그때는 미국으로 넘어가는 우리 선수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했다면, 지금은 국내 프로야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추세

이병진 : 당시에 투수들이야, 박찬호도 있었고 선배들이 있었지만... 타자로서는 최초의 도전이었는데 어떻게 “미국에 가야겠다!” 결심하게 된 거예요?

최희섭 : 어머니가 나를 메이저리거로 키우고 싶었고, 나 역시 젊고 힘 있을 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 미국으로 떠날 때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메이저리거가 되기 전에는 못 돌아옵니다.” 비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제인 : 정말 의지가 대단했네요. 그런데 최희섭 선수의 의지도 의지만, 실력과 가능성이 보이니까 스카우터들의 눈도장을 받은 거 아니겠어요? 안치용 위원이 동갑내기였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최희섭은 어떤 선수였나요?

안치용 : (답변)

이병진 : 최희섭 선수도 안치용 위원이 고등학생 때 어떤 선수였는지 기억나요?

최희섭 : (답변)

대니얼 : 나는 두 선수 모두 기억난다. 1998년 내가 뉴욕 메츠 직원으로 일할 때 스프링캠프에 한국 청소년 대표를 초대한 적 있다. 그때 청소년 대표 명단에 최희섭과 안치용 모두 포함돼 있었다. 이게 그때 명단이다. 최희섭 선수는 워낙 덩치가 커서 전부터 메이저리그 구단의 관심을 받던 선수였고 여기에 김병현 선수까지 같이 오면서 다른 구단 관계자들도 우르르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

제인 :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건, 안치용 위원 역시 고등학생 때는 정말 야구를 잘 했다는 사실인데요. 그럼 어떻게 보면 라이벌일 수도 있는 친구가 메이저리그에 간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안치용 :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인 타자가 메이저리그 경기를 뛴 적이 없기 때문에 성공할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 표제어 ①-2 마이너리거 최희섭

강승화 :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는데요. 더군다나 말도 안 통하는 20살 청년이 타지에서 꿈 하나만 보고 생활하기에는 힘든 점도 많았을 거 같아요?

최희섭 : 1999년도 처음 갔는데 다행히 마이너리그 시절에는 탑 유망주로 자리를 잡아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데 분명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제스처를 크게 못해 많이 혼났다. 또 콜 플레이를 할 때 우리는 마이 볼(My ball)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아이 갓 잇(I got it)이라고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낯설어서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이병진 : 메이저리그에 나가는 후배들에 좋은 팁 하나 알려줬네요. 공이 높이 뜨면 “마이 볼”이 아니라 “아이 갓 잇”라고 외쳐야 한 대요.

대니얼 : 미국은 의사소통을 확실히 해야 하고 공격적이고 오버하는 플레이를 좋아한다. 멈칫하면 자신감 없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콜 플레이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소리를 질러야 한다.

제인 : 그렇게 4년 동안의 힘든 마이너리그생활을 견디자 2002년에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최희섭 :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던 중 시카고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길도 잘 모르는 시카고에서 다섯 시간 동안 운전하면서 야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가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생각에 그 다섯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또 막상 가보니까 역시 최상의 대접으로 마이너리그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특히, 게임 끝나면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이병진 : 도대체 뭘 먹으라고 줬기에 그렇게 행복했어요?

최희섭 : (답변)

강승화 : 4년의 기다림 끝에 밟은 메이저리그 무대! 한 번 치기도 힘든 홈런을 세 타석 연속으로도 쳤고요. 또 고등학교 선배, 서재응 선수한테도 한 방 날렸죠?

대니얼 : 서재응과 최희섭은 광주일고 선후배. 플로리다 원정을 떠난 서재응이 경기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늘 희섭이 삼진 2~3개 잡을 거다”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정말 경기에 들어서서 잘 던졌는데... 7회에 최희섭에게 홈런을 맞았고 승리투수 자격도 함께 날아갔다.

제인 : 벌써부터 내년 개막전에 김현수의 볼티모어와 박병호의 미네소타가 대결한다고 관심이 높은데요. 실제로 미국에서 뛰다가 한국 선수들과 가끔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최희섭 : (답변)

대니얼 : 실제로 아까 말한 경기를 (2004년) 나는 뉴욕 메츠 덕아웃에서 보고 있었는데 상대팀 최희섭이 2루타를 쳤는데도 뉴욕 메츠의 한인 팬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탐 글래빈이 와서 한국 팬들이 지금 누구를 응원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두 선수가 모두 잘 하고 서재응이 이기길 바랄 거라고 대답해줬다.

이병진 : 팬 얘기가 나온 김에~ 메이저리그에서 뛰다가 만난 기억에 남는 팬은 없나요?

최희섭 : 시카고 컵스 시절, 마이클 조던을 만났다. 농구를 정말 좋아해서 마이클 조던 팬이었는데 마이클 조던이 나보고 팬이라고 하면서 내 이름도 알고 있었다.

▶ 표제어 ①–3 OX퀴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강승화 :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그만큼 팬들의 기대도 더 컸고 그래서 부진에... 부상에... 실망도 컸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의 오해들을 해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이병진 : 선수 시절에는 차마 말 하지 못했던! 꽁꽁 감춰뒀던 얘기들을 속 시원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제인 : 이름 하여 최희섭,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인데요. 제 질문에 고민하지 말고 빠르게 OX로 대답하시면 됩니다. 그럼 첫 번째 질문!

Q. 처음부터 한국 무대에서 뛰었다면...
양준혁, 이승엽 선배의 기록에 도전했을 거다?
Q. 이승엽 선수에게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말한 적 있다?
Q. 때로는 야구보다 등산이 더 좋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Q. 야구 인생 최고의 순간은 2009년 KIA 우승 때다?
Q. 나는 악성댓글이 많은 편이다?
Q. 다시 태어나도 야구 선수를 할 거다?

이병진 : 대답하기 껄끄러운 질문도 있었는데 솔직한 답변 잘 들었다. 그동안 쌓였던 오해들이 풀렸기를 바란다.

▶ 표제어 ①–4 다시 불어오는 ‘코리안 빅리거 시대’

강승화 :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였던 최희섭을 시작으로 이제 많은 우리 선수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고~ 앞두고 있는데요. 그만큼 한국 야구가 성장했다는 거겠죠?

안치용 : 지금까지 한국 투수는 빅 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국내리그 타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신이 컸다. 하지만 강정호의 성공 이후 한국 타자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대니얼 : 요즘 메이저리그에서는 일본보다 한국 야구 스타일이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 한국 타자들이 본인의 컬러를 살리려고 하는 모습과 공격적인 모습에 메이저리그 구단 관계자들도 관심

이병진 : 오늘 솔직담백한 최희섭 선수의 야구 인생을 들어봤는데요. 박병호나 김현수처럼 새로운 야구에 도전하는 후배들이 있잖아요. 메이저리그에서 방망이 좀 휘둘러봤던 선배로서 좀 더 실질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최희섭 : 미국 야구는 냉정하다. 200억, 300억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몇 백 억 선수가 방출되고 트레이드 되는 걸 봤다. 그렇기 때문에 박병호나 김현수 모두 주전 자리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나도 에릭 캐로스, 마크 그레이스와 경쟁하고 플래툰 시스템을 경험했다. 포지션별로 3-4명까지는 기본이고 한 포지션에 7명까지 경쟁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는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보기 때문에 한국인 특유의 성실함을 보여줘야 한다.

대니얼 : 메이저리그에서 최희섭 선수가 아쉽게 끝난 부분 중 하나가 “멘탈”이다. 어렸을 때 외롭게 소속감 없이 일찍 성공했다가 일찍 좌절했다. 박병호나 김현수의 경우 20대 후반, 성인으로서의 완성도도 높고 야구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시점에서 진출했기 때문에 성공 확률이 높다.

제인 : 안치용 위원이나 최희섭 선수 모두~ “아~ 내가 지금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면 더 훌륭한 선수가 됐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해봤을 거 같아요?

최희섭 : (답변)

안치용 : (답변)

이병진 : 선수로서의 아쉬움은 털어내고요. 이제는 선수가 아닌 제 2의 인생에서 멋진 만루 홈런을 치길 바란다.

제인 :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시죠?

최희섭 : (답변)

강승화 : 최희섭 선수의 새로운 도전은 물론, 두 위원의 2016년도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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