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뉴스] 황장엽 망명
입력 2016.02.14 (17:21)
수정 2016.02.14 (17:4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997년 2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에 찾아와 망명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최고위급 엘리트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인물.
그만큼 파장도 컸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이전까지 한국으로 망명을 해온 사람들이 그 핵심 계층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김일성하고 굉장히 깊은 관계고 김정일하고도 아주 깊은 관계고..."
망명신청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황 전 비서의 자필 서신이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녹취> 조선일보(1997.2.13) :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한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도왔다고 알려진 한 국내 인사를 통해 이미 1년 전부터 그의 망명 의사를 알고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위험했던게 이게 뭐 자칫 알려지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망명을 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 이후에는 이거는(서신은) 발표를 해야된다."
이후 망명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북한간의 치열한 외교전끝에 황 전 비서는 60여일 만에 우리나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녹취> 황장엽 입국 기자회견(1997.4.20) :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 뒤에도 황 전 비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2010년, 숨질때까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최고위급 엘리트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인물.
그만큼 파장도 컸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이전까지 한국으로 망명을 해온 사람들이 그 핵심 계층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김일성하고 굉장히 깊은 관계고 김정일하고도 아주 깊은 관계고..."
망명신청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황 전 비서의 자필 서신이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녹취> 조선일보(1997.2.13) :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한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도왔다고 알려진 한 국내 인사를 통해 이미 1년 전부터 그의 망명 의사를 알고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위험했던게 이게 뭐 자칫 알려지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망명을 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 이후에는 이거는(서신은) 발표를 해야된다."
이후 망명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북한간의 치열한 외교전끝에 황 전 비서는 60여일 만에 우리나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녹취> 황장엽 입국 기자회견(1997.4.20) :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 뒤에도 황 전 비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2010년, 숨질때까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그때 그 뉴스] 황장엽 망명
-
- 입력 2016-02-14 17:27:14
- 수정2016-02-14 17:41:27
1997년 2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에 찾아와 망명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최고위급 엘리트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인물.
그만큼 파장도 컸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이전까지 한국으로 망명을 해온 사람들이 그 핵심 계층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김일성하고 굉장히 깊은 관계고 김정일하고도 아주 깊은 관계고..."
망명신청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황 전 비서의 자필 서신이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녹취> 조선일보(1997.2.13) :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한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도왔다고 알려진 한 국내 인사를 통해 이미 1년 전부터 그의 망명 의사를 알고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위험했던게 이게 뭐 자칫 알려지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망명을 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 이후에는 이거는(서신은) 발표를 해야된다."
이후 망명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북한간의 치열한 외교전끝에 황 전 비서는 60여일 만에 우리나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녹취> 황장엽 입국 기자회견(1997.4.20) :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 뒤에도 황 전 비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2010년, 숨질때까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의 최고위급 엘리트로 주체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다진 인물.
그만큼 파장도 컸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이전까지 한국으로 망명을 해온 사람들이 그 핵심 계층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김일성하고 굉장히 깊은 관계고 김정일하고도 아주 깊은 관계고..."
망명신청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황 전 비서의 자필 서신이라는 문서를 공개했다.
<녹취> 조선일보(1997.2.13) : "인민이 굶어죽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
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한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기자는 황 전 비서의 망명을 도왔다고 알려진 한 국내 인사를 통해 이미 1년 전부터 그의 망명 의사를 알고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용삼(전 월간조선 편집장) : "위험했던게 이게 뭐 자칫 알려지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망명을 했다라고 공식 발표를 한 이후에는 이거는(서신은) 발표를 해야된다."
이후 망명을 성사시키려는 우리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북한간의 치열한 외교전끝에 황 전 비서는 60여일 만에 우리나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녹취> 황장엽 입국 기자회견(1997.4.20) :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미 희망을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 뒤에도 황 전 비서는 암살 위협에 시달렸지만, 2010년, 숨질때까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