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아흔 노병의 특별한 외출

입력 2016.06.25 (08:18) 수정 2016.07.0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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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6.25 전쟁 66주년을 맞는 날인데요...

6.25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기억하시죠?

네 천만 관객을 동원했었죠?

저도 감동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특히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나왔죠.

형의 유품을 찾는 나이든 참전 용사의 사연, 지금 생각해도 코 끝이 찡합니다.

네 6.25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 현장이었는데요...

마치 그 영화처럼 수십년째 당시 전우의 흔적을 찾는 할아버지가 계시다면서요?

네, 아흔 한 살의 노병, 서정열 할아버지의 사연인데요.

그 특별한 외출에 홍은지 리포터가 동행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가평의 어느 산길.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서정열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6.25 참전 용사인 서 할아버지. 왜 이곳까지 찾아온 걸까요?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혹시 (같은) 소속 부대 대원들이 있나 싶어서, 그 유해가 있나 싶어서 찾아왔어요. 제사를 좀 모시려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틈날 때마다 이렇게 곳곳의 격전지를 돌며 전사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데요.

그중에서도 전투 중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던 전우 한 명의 흔적을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여기를 관통해서 피가... “죽으면 안 돼!” 하고 소리 지르다가 연락병이 모기 소리만 하게 “선임 하사님...” 하고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더니 숨을 거뒀어. 고이고이 잠들라고... 시체는 두고 또 공격에 들어간 거지."

전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전우의 유해라도 찾을까,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온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녹취> "충성! (수고많습니다. 정말 참 고맙습니다.)"

지난 2천년부터 유해 발굴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입니다.

<인터뷰> 이원웅(소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2년 전에 서정열 참전 용사님께서 전우의 유해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유해 발굴 현장을 찾으셨습니다. 밤이 어두워져서 길을 잃으신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현장에서 발굴을 하던 저희 발굴팀장을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틈날 때마다 유해 발굴 현장에 동행하고 있는 할아버지.

수십 년 만에 발굴된 전사자의 군화 앞에서 감정이 복받칩니다.

<녹취>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밝은 빛을 못 보고 이렇게 험악한 곳에서 지내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정말. 혼자 살아남아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현장입니다.

서정열 할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장병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병사들...

기계로는 대신할 수 없는, 오로지 손으로만 이루어지는 숭고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해가 손상되지 않도록 대나무 칼이나 붓을 이용하고, DNA 정보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붓질 끝에 유해와 유품을 수습했습니다.

<인터뷰> 김동균(상병/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현재 식별된 유품은 전투화 두 점과 불명 철제 세 점이 식별됐고, 그 외 유해로는 허벅지 뼈나 앞 팔뼈, 뒷팔 뼈, 발가락뼈가 현재 식별된 상태입니다."

오늘은 유해 발굴 과정을 참관하기 위해 학군단 생도와 대학생들이 찾아왔는데요.

<인터뷰> 정현지(성신여대 학군단) :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뭔가 더 참혹한 현장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가슴 아픈 그런 현장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최승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 "저희가 이렇게 이 땅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마음 때문에 좀 죄송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날이 저물어갈 무렵, 오동나무 관에 모셔지는 유해와 유품.

한쪽에서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꺼내놓습니다.

사과와 배 등 손수 준비 해 오신 제수용품인데요.

<녹취> "부대 차렷! 지금부터 6.25 전사자에 대한 약식 제례를 거행하겠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전사자의 넋을 기립니다.

비록 그동안 찾아왔던 동료병사는 아니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을 전우.

할아버지는 진심을 담아 명복을 빌어줍니다.

오늘 찾은 유해를 포함해 올해 발굴한 유해는 160여 위, 그동안 모두 9천 여 위의 국군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6.25 경험자들의 고령화 때문에 유해 발굴 사업은 갈수록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있는데요.

<인터뷰> 심필순(중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과장) : "6.25(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계신 분들의 증언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6.25세대 분들이 평균 85세라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앞으로 언제까지 생존해 계실지 모르기 때문에..."

서 할아버지는 특히 북한 땅에 묻혀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고 합니다.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북쪽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북쪽에 있는 건 어려운 문제 같고,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해만이라도 좀 모셔왔으면 해요."

6.25 전쟁 전사자 16만 여 명 가운데 약 12만 4천명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는데요.

남한에 8만여 명, 비무장지대와 휴전선 너머에 4만 여명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유해발굴사업! 북쪽에 잠들어 계신 호국용사들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어렵게 수습된 유해라고 해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이원웅(소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발굴한 국군 전사자 9,100여위에 비해서 신원 확인율은 113분으로 약 1.2퍼센트밖에 안됩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통해서 비교 분석 후에 신원을 확인하고 있는데, 지금 확보되어있는 유가족분의 유전자 수도 23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의 보건소와 군 병원.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안의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가능한데요.

전사자의 친가와 외가 8촌까지 신원 확인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애타게 찾던 전우를 찾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또다른 전우를 만나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었습니다.

전우를 기리는 노병의 책임감과 이름 모를 산야까지 유해의 흔적들을 쫒는 장병들의 땀방울!

그런 마음과 노력이 온전히 결실을 맺어 호국 용사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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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아흔 노병의 특별한 외출
    • 입력 2016-06-25 08:48:48
    • 수정2016-07-08 1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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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오늘은 6.25 전쟁 66주년을 맞는 날인데요...

6.25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기억하시죠?

네 천만 관객을 동원했었죠?

저도 감동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특히 영화 처음과 마지막에 나왔죠.

형의 유품을 찾는 나이든 참전 용사의 사연, 지금 생각해도 코 끝이 찡합니다.

네 6.25 전사자들의 유해 발굴 현장이었는데요...

마치 그 영화처럼 수십년째 당시 전우의 흔적을 찾는 할아버지가 계시다면서요?

네, 아흔 한 살의 노병, 서정열 할아버지의 사연인데요.

그 특별한 외출에 홍은지 리포터가 동행했습니다.

<리포트>

경기도 가평의 어느 산길.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이르자...서정열 할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6.25 참전 용사인 서 할아버지. 왜 이곳까지 찾아온 걸까요?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혹시 (같은) 소속 부대 대원들이 있나 싶어서, 그 유해가 있나 싶어서 찾아왔어요. 제사를 좀 모시려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틈날 때마다 이렇게 곳곳의 격전지를 돌며 전사자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는데요.

그중에서도 전투 중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던 전우 한 명의 흔적을 애타게 찾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여기를 관통해서 피가... “죽으면 안 돼!” 하고 소리 지르다가 연락병이 모기 소리만 하게 “선임 하사님...” 하고는 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더니 숨을 거뒀어. 고이고이 잠들라고... 시체는 두고 또 공격에 들어간 거지."

전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전우의 유해라도 찾을까,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온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녹취> "충성! (수고많습니다. 정말 참 고맙습니다.)"

지난 2천년부터 유해 발굴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입니다.

<인터뷰> 이원웅(소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2년 전에 서정열 참전 용사님께서 전우의 유해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 유해 발굴 현장을 찾으셨습니다. 밤이 어두워져서 길을 잃으신 적이 있는데 그때 마침 현장에서 발굴을 하던 저희 발굴팀장을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틈날 때마다 유해 발굴 현장에 동행하고 있는 할아버지.

수십 년 만에 발굴된 전사자의 군화 앞에서 감정이 복받칩니다.

<녹취>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밝은 빛을 못 보고 이렇게 험악한 곳에서 지내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정말. 혼자 살아남아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현장입니다.

서정열 할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장병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병사들...

기계로는 대신할 수 없는, 오로지 손으로만 이루어지는 숭고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유해가 손상되지 않도록 대나무 칼이나 붓을 이용하고, DNA 정보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붓질 끝에 유해와 유품을 수습했습니다.

<인터뷰> 김동균(상병/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현재 식별된 유품은 전투화 두 점과 불명 철제 세 점이 식별됐고, 그 외 유해로는 허벅지 뼈나 앞 팔뼈, 뒷팔 뼈, 발가락뼈가 현재 식별된 상태입니다."

오늘은 유해 발굴 과정을 참관하기 위해 학군단 생도와 대학생들이 찾아왔는데요.

<인터뷰> 정현지(성신여대 학군단) :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접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뭔가 더 참혹한 현장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가슴 아픈 그런 현장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최승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 "저희가 이렇게 이 땅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그런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마음 때문에 좀 죄송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요."

날이 저물어갈 무렵, 오동나무 관에 모셔지는 유해와 유품.

한쪽에서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꺼내놓습니다.

사과와 배 등 손수 준비 해 오신 제수용품인데요.

<녹취> "부대 차렷! 지금부터 6.25 전사자에 대한 약식 제례를 거행하겠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전사자의 넋을 기립니다.

비록 그동안 찾아왔던 동료병사는 아니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을 전우.

할아버지는 진심을 담아 명복을 빌어줍니다.

오늘 찾은 유해를 포함해 올해 발굴한 유해는 160여 위, 그동안 모두 9천 여 위의 국군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6.25 경험자들의 고령화 때문에 유해 발굴 사업은 갈수록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있는데요.

<인터뷰> 심필순(중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과장) : "6.25(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계신 분들의 증언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6.25세대 분들이 평균 85세라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이 앞으로 언제까지 생존해 계실지 모르기 때문에..."

서 할아버지는 특히 북한 땅에 묻혀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고 합니다.

<인터뷰> 서정열(91살/6.25 참전 용사) : "북쪽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북쪽에 있는 건 어려운 문제 같고, 비무장지대에 있는 유해만이라도 좀 모셔왔으면 해요."

6.25 전쟁 전사자 16만 여 명 가운데 약 12만 4천명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는데요.

남한에 8만여 명, 비무장지대와 휴전선 너머에 4만 여명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유해발굴사업! 북쪽에 잠들어 계신 호국용사들도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어렵게 수습된 유해라고 해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노력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터뷰> 이원웅(소령/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 "발굴한 국군 전사자 9,100여위에 비해서 신원 확인율은 113분으로 약 1.2퍼센트밖에 안됩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를 통해서 비교 분석 후에 신원을 확인하고 있는데, 지금 확보되어있는 유가족분의 유전자 수도 23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전국의 보건소와 군 병원.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안의 유해발굴감식단에서 가능한데요.

전사자의 친가와 외가 8촌까지 신원 확인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도 애타게 찾던 전우를 찾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는 또다른 전우를 만나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었습니다.

전우를 기리는 노병의 책임감과 이름 모를 산야까지 유해의 흔적들을 쫒는 장병들의 땀방울!

그런 마음과 노력이 온전히 결실을 맺어 호국 용사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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