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저지 작전’ 한강 방어선 전투

입력 2016.06.29 (19:21) 수정 2016.06.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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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 남침에 밀린 국군은 한때 서울을 포기해야 했는데요.

당시 서울에서 철수하면서도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6일 간 결사적으로 막아내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참전 용사를 우한솔 기자가 만나 봤습니다.

<리포트>

평온한 새벽, 예상 못한 북한군의 공격에 수도 서울은 나흘 만에 속절 없이 점령됐습니다.

한강에 방어선을 친 국군은 북한군 남하를 늦추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당시 개성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왕선구 할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이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전쟁 첫날인)25일 고향에 간다고 기차역에 나왔는데 인민군들이 기차로 내려오는 거야 기차로. 전투도 없이. 깜짝 놀랐어 그걸 보고."

열악한 장비와 인력으로 필사적인 싸움에 나선 국군은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습니다.

'한강 방어선 전투'입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인민군들은 낮에는 폭격 때문에 산에 숨어 있어. (그러다) 기관총을 막 난사를 하는데 영등포 쪽으로 간 사람들은 다 전사를 하고.."

국군은 분산됐던 병력을 수습하고, 미군 지상군과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우리가) 버티지 못했으면 유엔군이,국군이들어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것은 100만 대군보다도 더한 전과다."

전투 66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 행사에는 참전 용사와 유족,시민들이 참석해 당시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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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사의 저지 작전’ 한강 방어선 전투
    • 입력 2016-06-29 19:25:35
    • 수정2016-06-29 19: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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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6.25 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 남침에 밀린 국군은 한때 서울을 포기해야 했는데요.

당시 서울에서 철수하면서도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6일 간 결사적으로 막아내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참전 용사를 우한솔 기자가 만나 봤습니다.

<리포트>

평온한 새벽, 예상 못한 북한군의 공격에 수도 서울은 나흘 만에 속절 없이 점령됐습니다.

한강에 방어선을 친 국군은 북한군 남하를 늦추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당시 개성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왕선구 할아버지는 학도병으로 이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전쟁 첫날인)25일 고향에 간다고 기차역에 나왔는데 인민군들이 기차로 내려오는 거야 기차로. 전투도 없이. 깜짝 놀랐어 그걸 보고."

열악한 장비와 인력으로 필사적인 싸움에 나선 국군은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습니다.

'한강 방어선 전투'입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인민군들은 낮에는 폭격 때문에 산에 숨어 있어. (그러다) 기관총을 막 난사를 하는데 영등포 쪽으로 간 사람들은 다 전사를 하고.."

국군은 분산됐던 병력을 수습하고, 미군 지상군과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습니다.

<녹취> 왕선구(81살/6.25 참전 학도병) : "(우리가) 버티지 못했으면 유엔군이,국군이들어올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것은 100만 대군보다도 더한 전과다."

전투 66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 행사에는 참전 용사와 유족,시민들이 참석해 당시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습니다.

KBS 뉴스 우한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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