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당신을 노린다

입력 2016.12.04 (22:42) 수정 2016.12.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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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녹취> 보이스피싱 전화 : "저는 첨단범죄 수사 1부 이철민 수사관인데요, 본인하고 연루된 명의 도용사건이 하나 있어서 몇가지 조사차 연락좀드렸습니다."

<녹취>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께요."

보이스피싱 전화네요.

누가 속을까, 싶지만 이런 전화에 속아 돈을 떼이고, 뒤늦게 가슴을 치는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초기 수법은 비교적 단순했죠,

하지만 요즘 보이스피싱은 갈수록 지능화 하고 있습니다.

그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리포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일흔살 우영택씨가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바쁘게 오갑니다.

<녹취> "집에서 1시 반쯤 나와서 여기 2시부터 거의 시작해요. 그래서 6시정도 끝납니다."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해서 버는 5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우영택 : "신문 지국에서 일한지가 한 18년 정도 됐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어서 직원 생활은 좀 어렵다고 해서 그만둔지는 한 2년 됐습니다. 그동안 했던 일이니까 새벽으로 배달이라도 해야 겠다."

이렇게 새벽일을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우 씨는 최근 천2백만 원 카드빚이 생겼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속은 겁니다.

<인터뷰> 우영택 : "안하겠다고 처음에는 몇 번 그랬어요. 그랬더니 계속 전화 오면서 도와드리려고 그러는데, 왜 그걸 안하시려고 그러냐고..."

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주겠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 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바로 돌려 줄테니 일단 8백만 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계좌에 넣었다가 그 다음날 바로 빼줄테니까, 입금시켜줄테니까, 일단 하권일 과장 앞으로 넣으래. 그러면 내가 실적이 올라간대요."

우 씨는 카드 대출을 받아 알려준 계좌로 7백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부족하다며 5백만 원을 더 입금하라고 했고 우 씨는 다시 카드 대출을 받아 돈을 보냈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처음에 7백만 원을 넣었어요. 그랬더니, 그거 갚아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위에 올렸는데 캔슬이 됐다고. 그러면서 월요일에 5백만 원을 더 넣으래요."

돈을 입금하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우 씨가 계좌를 확인해 봤을 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미 돈을 인출한 후였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그 고통이라는 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극단적인 생각을 사실 몇 번 가졌어요. 근데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까지 버텼는데..."

은행에서 한 여성이 봉투 가득 현금을 인출해 갑니다.

잠시 후, 이 여성의 집 앞에서 경찰이 한 청년을 덮칩니다.

<녹취> "당신을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청년 가방에서 오만원 권 돈다발이 쏟아져나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며 피해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가 도용돼 예금이 인출될 수 있으니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다 찾아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출금한 돈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면사무소에 가서 경찰 수사에 관련된 서류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김모 씨(보이스피싱 피해자) : "지문이 묻으면 안되니까, 일회용 장갑을 끼고 그걸 냉동고 젤 위에 넣어놓으라는거야. 왜 냉장고냐고 하니까, 그거 다른 사람 지문 묻으면 안되니까. 그래서 냉동고에 넣었지. 넣고, 면사무소에 서류를 받으러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출발했죠."

시키는대로 피해자가 돈을 찾아놓고 집을 비우자 조직원이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나오다 덜미를 잡힌 겁니다.

추적하고 있던 경찰에게 조직원이 붙잡히긴 했지만 이런 방식의 피해 사례가 지난해 10월 이후 25건이나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노인을 노렸습니다.

<인터뷰> 김대규(창원서부경찰서 수사과장) : "지금 집에 돈은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형사를 만나서 자문을 받아라, 그럼 친절하게 수사 절차를 안내해줄거다."

피해자를 낚는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

이 씨는 지난 4월, 아들을 납치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사기범 : "대신 갚아줄 돈이 5천 5백만 원정도 되는데, 아저씨 지금 5천 5백만 원 있습니까? 그럼 우리가 처리하는 방식대로 처리할게요. 사람은 죽지 않아요. 남들보다 사는 게 좀 지장있다 뿐이지."

아들의 이름까지 대며,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들 장기를 매매하겠다고 협박합니다.

<녹취> "내가 지금 돈이 어디있어요!"

<녹취> "야, 망치야! (네, 형님) 원준이 아버지 돈 없단다. 저 뭐야, 원준이 자식 마취켜라."

이씨는 다행히 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에 아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거짓 협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모씨 : "끊고나서 바로 아들한테 전화를 했죠.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받더라구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그게 얼마나 살떨리는 건지..."

과거 보이스피싱은 주로 경찰이나 검찰을 사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녹취> "사중에 본인 앞으로 연루된 사건이 있어서 전화드린 겁니다. 서울지방 경찰청이고요, 지능범죄수사팀이고요."

<녹취> 피해자 : "잠시만요. 내가 끊고 다시 바로 전화해볼게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끊지 마세요. 그냥 확인하세요. 유선으로 확인하시라고요."

<녹취> 피해자 : "몇 번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182번이라고요. (짜증내며)안들리시나요?"

<녹취> 피해자 : "잘 안들리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요? 왜 그렇게 빡빡하게 하는교, 아줌마."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어디다 대고 아줌마입니까?"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저희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으로 직접 내방하셔도 상관없으세요."

<녹취> 피해자 : "아직 나이도 많이 어리신거 같은데 이런거 말고 그냥 좋은 일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빨리 정신차리시고 좋은일 하셨으면 좋겠네요. 가슴이 아프네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가슴이 아프기는 씨.."

<녹취> 피해자 : "욕하지 마시고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그럼 나 한국 가면 일좀 시켜줘요."

<녹취> 피해자 : "빨리 오세요.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알겠어요. 끊어요."

요즘엔 이런 방식은 드뭅니다.

올해 들어선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금융회사를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할부금융회사와(32%), 상호저축은행(31%) 등 제2금융권을 사칭합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 "한마디로 정부에서도 고객님들 신용도 높여드린다, 이런 차원에서 이런 상품이 나온 거예요. 지금 고객님께서 예치금은 38만 2500원 나오시고...이해하셨죠? (네, 이해는 했는데...)"

지난해 신고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천 4백억 원.

올 상반기까지 집계된 피해액도 736억 원에 달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수법이 널리 알려지고 각종 예방책까지 나와 있지만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우선, 피해자들이 별 의심 없이 받을 만한 대표 전화번호를 확보합니다.

번호는 중국 현지 SNS를 통해 거래됩니다.

<인터뷰> 이두열(팀장/안산단원경찰서 수사과) : "중국 SNS 서비스인데요, 여기서도 공유하는 방이 또 있어요. 범죄 관련해서.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거래하는 방이 다 있거든요. 거기서도 거래를 하기도 하고, 광고를 띄우기도 하고. (국내에서는 확인이 안되겠네요?) 국외통신사 가입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죠."

전화를 걸기에 앞서 치밀한 각본도 짭니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작성한 대출 사기전화 대응 시나리오입니다.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 사용할 멘트부터 고객의 반응에 따른 대응 메뉴얼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클레임, 즉 불만 전화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작성해 놨습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금융쪽에 정확한 사람은 금융 쪽을 맡게 하고, 또 수사나 검찰 쪽에 직결된 사람은 그 팀에 배정을 하는거죠. 과거처럼 소규모로 이뤄지기보다는 상당히 전문화 되어 있다, 채용때부터 전문가적 식견이 있어야 채용을 하게 되는..."

돈을 입금받는 데 쓰이는 대포통장을 구하기 위해서 취업에 목마른 구직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최모 씨는 지난 봄, 한 구인 사이트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 원서를 냈습니다.

며칠 후, 합격됐다며 입사에 필요한 서류와 계좌번호, 출입증으로 쓸 칩을 장착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직접적으로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적어서 보내라고는 안했고, 그 보안출입카드 비밀번호를 적어서 보내라고 하는데, 아마 그걸 이용해서 출금을 하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서류와 체크카드를 보낸 직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최 씨 계좌로 입금을 했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 "은행에 찾아갔더니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계좌를 대포계좌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신고를 한 상태더라구요. 제 계좌를 사기계좌로..."

취업의 기쁨은 물거품이 됐고, 자칫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 "합격이 됐다고 했을때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죠, 좋았는데... 처음에는 엄청 혼란스러웠고, 일단은 이걸 빨리 처리해야 된다는 생각때문에 은행이랑 경찰서랑 금감원이랑 통화도 하고 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소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보이스피싱 목소리에도 특징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에게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 파일의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목소리 : "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녹취> 배명진(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 : "1초에 한 7,8음절을 했어요. 보통 발성은 한 2에서 3음절이에요."

일반적인 대화보다 빠르고 고른 목소리 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흥분하지 않고,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내면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겁니다.

<인터뷰> 배명진(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장) : "보이스피싱 목소리는 너무 달변이라는 거예요. 말이 술술술 나오고, 또 톤의 변화가 없어서 감정의 유입이 안된다는 게 특징이에요."

30분 지연 인출제 등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되찾은 비율은 30% 안팍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김범수(금감원 팀장) : "단기간에 신용등급을 향상시켜 주겠다든지, 아니면 전산 처리 작업을 통해서, 아니면 은행 관계자 청탁을 통해서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우선 사기임을 의심하셔야 되고요."

피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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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당신을 노린다
    • 입력 2016-12-04 23:14:20
    • 수정2016-12-04 23:38:21
    취재파일K
<앵커 멘트>

<녹취> 보이스피싱 전화 : "저는 첨단범죄 수사 1부 이철민 수사관인데요, 본인하고 연루된 명의 도용사건이 하나 있어서 몇가지 조사차 연락좀드렸습니다."

<녹취>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께요."

보이스피싱 전화네요.

누가 속을까, 싶지만 이런 전화에 속아 돈을 떼이고, 뒤늦게 가슴을 치는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초기 수법은 비교적 단순했죠,

하지만 요즘 보이스피싱은 갈수록 지능화 하고 있습니다.

그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리포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일흔살 우영택씨가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바쁘게 오갑니다.

<녹취> "집에서 1시 반쯤 나와서 여기 2시부터 거의 시작해요. 그래서 6시정도 끝납니다."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해서 버는 5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우영택 : "신문 지국에서 일한지가 한 18년 정도 됐었어요. 근데 나이가 들어서 직원 생활은 좀 어렵다고 해서 그만둔지는 한 2년 됐습니다. 그동안 했던 일이니까 새벽으로 배달이라도 해야 겠다."

이렇게 새벽일을 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던 우 씨는 최근 천2백만 원 카드빚이 생겼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속은 겁니다.

<인터뷰> 우영택 : "안하겠다고 처음에는 몇 번 그랬어요. 그랬더니 계속 전화 오면서 도와드리려고 그러는데, 왜 그걸 안하시려고 그러냐고..."

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주겠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 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바로 돌려 줄테니 일단 8백만 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계좌에 넣었다가 그 다음날 바로 빼줄테니까, 입금시켜줄테니까, 일단 하권일 과장 앞으로 넣으래. 그러면 내가 실적이 올라간대요."

우 씨는 카드 대출을 받아 알려준 계좌로 7백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그랬더니 돈이 부족하다며 5백만 원을 더 입금하라고 했고 우 씨는 다시 카드 대출을 받아 돈을 보냈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처음에 7백만 원을 넣었어요. 그랬더니, 그거 갚아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위에 올렸는데 캔슬이 됐다고. 그러면서 월요일에 5백만 원을 더 넣으래요."

돈을 입금하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우 씨가 계좌를 확인해 봤을 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미 돈을 인출한 후였습니다.

<인터뷰> 우영택 : "그 고통이라는 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극단적인 생각을 사실 몇 번 가졌어요. 근데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까지 버텼는데..."

은행에서 한 여성이 봉투 가득 현금을 인출해 갑니다.

잠시 후, 이 여성의 집 앞에서 경찰이 한 청년을 덮칩니다.

<녹취> "당신을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청년 가방에서 오만원 권 돈다발이 쏟아져나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며 피해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가 도용돼 예금이 인출될 수 있으니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다 찾아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출금한 돈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면사무소에 가서 경찰 수사에 관련된 서류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김모 씨(보이스피싱 피해자) : "지문이 묻으면 안되니까, 일회용 장갑을 끼고 그걸 냉동고 젤 위에 넣어놓으라는거야. 왜 냉장고냐고 하니까, 그거 다른 사람 지문 묻으면 안되니까. 그래서 냉동고에 넣었지. 넣고, 면사무소에 서류를 받으러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출발했죠."

시키는대로 피해자가 돈을 찾아놓고 집을 비우자 조직원이 집에 들어가 돈을 훔쳐 나오다 덜미를 잡힌 겁니다.

추적하고 있던 경찰에게 조직원이 붙잡히긴 했지만 이런 방식의 피해 사례가 지난해 10월 이후 25건이나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노인을 노렸습니다.

<인터뷰> 김대규(창원서부경찰서 수사과장) : "지금 집에 돈은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형사를 만나서 자문을 받아라, 그럼 친절하게 수사 절차를 안내해줄거다."

피해자를 낚는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 씨.

이 씨는 지난 4월, 아들을 납치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사기범 : "대신 갚아줄 돈이 5천 5백만 원정도 되는데, 아저씨 지금 5천 5백만 원 있습니까? 그럼 우리가 처리하는 방식대로 처리할게요. 사람은 죽지 않아요. 남들보다 사는 게 좀 지장있다 뿐이지."

아들의 이름까지 대며,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들 장기를 매매하겠다고 협박합니다.

<녹취> "내가 지금 돈이 어디있어요!"

<녹취> "야, 망치야! (네, 형님) 원준이 아버지 돈 없단다. 저 뭐야, 원준이 자식 마취켜라."

이씨는 다행히 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에 아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모든 것이 거짓 협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모씨 : "끊고나서 바로 아들한테 전화를 했죠.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받더라구요.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그게 얼마나 살떨리는 건지..."

과거 보이스피싱은 주로 경찰이나 검찰을 사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녹취> "사중에 본인 앞으로 연루된 사건이 있어서 전화드린 겁니다. 서울지방 경찰청이고요, 지능범죄수사팀이고요."

<녹취> 피해자 : "잠시만요. 내가 끊고 다시 바로 전화해볼게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끊지 마세요. 그냥 확인하세요. 유선으로 확인하시라고요."

<녹취> 피해자 : "몇 번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182번이라고요. (짜증내며)안들리시나요?"

<녹취> 피해자 : "잘 안들리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요? 왜 그렇게 빡빡하게 하는교, 아줌마."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어디다 대고 아줌마입니까?"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저희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으로 직접 내방하셔도 상관없으세요."

<녹취> 피해자 : "아직 나이도 많이 어리신거 같은데 이런거 말고 그냥 좋은 일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빨리 정신차리시고 좋은일 하셨으면 좋겠네요. 가슴이 아프네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가슴이 아프기는 씨.."

<녹취> 피해자 : "욕하지 마시고요."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그럼 나 한국 가면 일좀 시켜줘요."

<녹취> 피해자 : "빨리 오세요.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녹취> 보이스 피싱 조직원 : "알겠어요. 끊어요."

요즘엔 이런 방식은 드뭅니다.

올해 들어선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금융회사를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할부금융회사와(32%), 상호저축은행(31%) 등 제2금융권을 사칭합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 "한마디로 정부에서도 고객님들 신용도 높여드린다, 이런 차원에서 이런 상품이 나온 거예요. 지금 고객님께서 예치금은 38만 2500원 나오시고...이해하셨죠? (네, 이해는 했는데...)"

지난해 신고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천 4백억 원.

올 상반기까지 집계된 피해액도 736억 원에 달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수법이 널리 알려지고 각종 예방책까지 나와 있지만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우선, 피해자들이 별 의심 없이 받을 만한 대표 전화번호를 확보합니다.

번호는 중국 현지 SNS를 통해 거래됩니다.

<인터뷰> 이두열(팀장/안산단원경찰서 수사과) : "중국 SNS 서비스인데요, 여기서도 공유하는 방이 또 있어요. 범죄 관련해서.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거래하는 방이 다 있거든요. 거기서도 거래를 하기도 하고, 광고를 띄우기도 하고. (국내에서는 확인이 안되겠네요?) 국외통신사 가입정보를 확인할 수가 없죠."

전화를 걸기에 앞서 치밀한 각본도 짭니다.

한 보이스피싱 조직이 작성한 대출 사기전화 대응 시나리오입니다.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 사용할 멘트부터 고객의 반응에 따른 대응 메뉴얼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클레임, 즉 불만 전화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작성해 놨습니다.

<인터뷰> 이웅혁(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 "금융쪽에 정확한 사람은 금융 쪽을 맡게 하고, 또 수사나 검찰 쪽에 직결된 사람은 그 팀에 배정을 하는거죠. 과거처럼 소규모로 이뤄지기보다는 상당히 전문화 되어 있다, 채용때부터 전문가적 식견이 있어야 채용을 하게 되는..."

돈을 입금받는 데 쓰이는 대포통장을 구하기 위해서 취업에 목마른 구직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최모 씨는 지난 봄, 한 구인 사이트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 원서를 냈습니다.

며칠 후, 합격됐다며 입사에 필요한 서류와 계좌번호, 출입증으로 쓸 칩을 장착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보내라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직접적으로 체크카드 비밀번호를 적어서 보내라고는 안했고, 그 보안출입카드 비밀번호를 적어서 보내라고 하는데, 아마 그걸 이용해서 출금을 하려고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서류와 체크카드를 보낸 직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최 씨 계좌로 입금을 했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 "은행에 찾아갔더니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계좌를 대포계좌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신고를 한 상태더라구요. 제 계좌를 사기계좌로..."

취업의 기쁨은 물거품이 됐고, 자칫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인터뷰> 최모 씨(취업준비생) : "합격이 됐다고 했을때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죠, 좋았는데... 처음에는 엄청 혼란스러웠고, 일단은 이걸 빨리 처리해야 된다는 생각때문에 은행이랑 경찰서랑 금감원이랑 통화도 하고 했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게 없더라고요

소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보이스피싱 목소리에도 특징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에게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 파일의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녹취> 보이스피싱 목소리 : "피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녹취> 배명진(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 : "1초에 한 7,8음절을 했어요. 보통 발성은 한 2에서 3음절이에요."

일반적인 대화보다 빠르고 고른 목소리 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흥분하지 않고,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내면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겁니다.

<인터뷰> 배명진(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장) : "보이스피싱 목소리는 너무 달변이라는 거예요. 말이 술술술 나오고, 또 톤의 변화가 없어서 감정의 유입이 안된다는 게 특징이에요."

30분 지연 인출제 등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되찾은 비율은 30% 안팍에 불과합니다.

<인터뷰> 김범수(금감원 팀장) : "단기간에 신용등급을 향상시켜 주겠다든지, 아니면 전산 처리 작업을 통해서, 아니면 은행 관계자 청탁을 통해서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우선 사기임을 의심하셔야 되고요."

피해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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