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北, 쿠바 붙들기 안간힘…‘형제 관계’ 계속 될까?

입력 2016.12.10 (08:09) 수정 2016.12.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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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쿠바는 물론 남미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피델 카스트로가 최근 세상을 떠났죠?

많은 논란과 이야기 거리를 남긴 인물입니다만, 특히 김일성과의 각별한 관계는 북한과 쿠바가 지난 반세기 이른바 형제적 관계를 맺는 초석이 됐습니다.

하지만 쿠바는 북한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북한은 여전히 쿠바에 매달리는 모습인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과 쿠바의 특별한 관계를 돌아보고 쿠바의 변화가 김정은 정권에 던질 메시지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쿠바 '공산 혁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유해를 실은 차량이 추모행렬 사이로 들어선다.

900km에 이르는 쿠바 전국 순회를 마치고 고향이자 혁명의 성공을 선포했던 곳,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한 것이다.

‘20세기 가장 특이한 정치 지도자’로 불릴 만큼 논쟁적인 삶을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

그의 죽음에 지구 반대편 북한에서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일) : "최룡해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 및 국가대표단이 조의식장인 쿠바 국립극장을 찾아 조의를 표시했습니다.”

타계 소식 이틀 만에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한 공식 조문단이 쿠바로 향했고, 이들은 카스트로의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도 이례적으로 평양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찾았다.

카스트로의 영정에 깍듯이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하는 김정은.

감정을 담은 애도문도 직접 썼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28일) :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

사흘 동안의 애도기간도 선포해 주요기관에 조기까지 내걸도록 했다.

이런 분위기는 조선중앙TV를 통해 주민들에게까지 전달됐다.

<녹취> 평양시민 : “피델 카스트로 동지가 서거했다고 하니까 스스로 참 눈물이 나더라고요.”

북한이 외국 지도자의 사망을 이렇게까지 애도하며 예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과 쿠바는 1960년 수교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중심엔 형제적·동지적 관계를 과시한 김일성과 피델 카스트로, 두 나라 지도자가 있었다.

1961년,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조직된 반군이 쿠바 피그 만에 상륙하려다 실패한다.

이후 쿠바의 강력한 반미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카스트로하고 김일성하고의 혁명이라고 하는, 세계의 혁명이라고 하는 뜻이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에는 정말로 깊은 관계가 유지가 됐고 미국이 코앞에 있지 않습니까? 플로리다가 코앞에 있는데 미국이 북조선에 예를 들어 힘을 집중해서 북조선을 타격하려고 하면 쿠바에서 움직이면 전력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지 않겠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사상적, 전략적 동지를 찾은 두 지도자.

곧이어 둘의 관계를 더욱 결속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

기 싸움 끝에 소련이 쿠바 미사일 기지 설치를 취소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쿠바는 물론 북한도 유화적 태도를 보인 소련에게 더 이상 안보를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이제 쿠바는 정말 유일하게 미국을 상대로 여러 가지 대립 국면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때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를 주장하는 평양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서 아주 끈끈하고 긴밀한 관계를 일찍부터 유지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쿠바의 당 및 국가 수반 피델 카스트로 동지와 뜻깊은 상봉을 하셨습니다.”

이후 1986년, 카스트로가 평양을 방문하며두 지도자의 결속력을 과시한다.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내걸며 소련이 변혁에 들어선 시기, 두 사람은 친선·협조 조약을 체결하며 끈끈한 협력을 다진다.

당시 두 사람 간 밀약은 2013년 발간된 카스트로의 자서전에서 뒤늦게 상세히 공개됐다.

소련이 거절한 쿠바의 무기 요청을 김일성이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무기 좀 지원해 달라...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김일성이 OK! 무상지원이다 그러니까 카스트로한테는 김일성이 완전히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그런 혁명 동지라고 할 수 있죠. AK소총 10만 정 뿐만 아니라 지뢰나 박격포나 이런 곡사포 같은 저격무기들을 많이 지원을 해줍니다.”

이후 1990년을 전후한 공산권의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이후 양국은 잇따라 큰 위기를 맞는다.

소련이 무너지고 원조가 끊기면서 쿠바는 이른바 ‘특별 기간’으로 불리는 1989년 이후 쿠바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시기 경제적으로 극히 힘든 시기를 겪었다.

북한 역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경제 위기의 문턱에 섰다.

이 때 양국 지도자가 선택한 위기 극복 방법은 극명히 갈렸다.

<녹취> 피델 카스트로(1993년 12월, 쿠바 인민정권회의) : “우리는 현재 매우 시급하면서도 중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혁명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작금의 경제난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카스트로의 쿠바는 달러화 소지를 허용하고 토지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북한은 달랐다.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로 변화를 꾀했지만 결국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질 못했고, 홍수 등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기아 수준의 경제난을 겪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쿠바산 시가, 쿠바산 설탕 이거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들로써 위기를 탈출해 왔는데 북한은 그냥 앉아서 가만히 당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그 때 문호를 열어놓고 개혁 개방을 하면 중국식 개혁 개방의 물결이 휩쓸려 들어가면 북한 정권은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쿠바는 견뎌냈고 북한은 못 견뎌낸 거죠.”

이런 가운데서도 우호관계를 이어가려는 양국의 노력은 계속됐다.

김정일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1997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제14차 세계 청년 학생축전에 5백 명의 북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북한은 90년대 쿠바의 행태를 보면서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을 수밖에 없습니다. 쿠바 역시도 벗어나는구나 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쿠바를 붙잡을까 하는 그런 여러 가지 외교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했고 쿠바가 자신들의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쿠바 역시 북한에 설탕을 제공하며 성의를 보였고, 이 같은 지원은 주민들에게까지 쿠바에 대해 ‘최고 우방’이라는 두터운 호의를 갖게 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북한 사람들에게 설탕이라고 하는 것은 소금과 마찬가지로 정말 생활에 필요한 건데, 쿠바 사람들이 정말로 싼 가격이나 아니면 무상으로 배가 이따금씩 남포항에 와서 5천 톤, 만 톤을 뿌려주면 온 나라 사람들이 사탕을 한 번씩 먹어보는 거 아닙니까, 설탕을? 쿠바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감정도 굉장히 좋죠.”

북한과 쿠바의 대를 이은 우의는 김정일 사망 직후 피델 카스트로의 지위를 이어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의 북한 대사관 조문으로 다시 확인됐고, 김정은 역시 이 관계를 이어가려 안간힘을 썼다.

지난해 9월, 수교 55주년을 맞아 방북한 쿠바 대표단을 김정은이 직접 맞이하는 모습이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 성대한 축하 공연도 열었다.

<녹취> ‘김정은, 쿠바 국가대표단 접견’ 北 기록영화(지난 해 9월) : “모란봉악단의 예술인들은 <관타나메라>, 여성중창 <카프리섬>을 훌륭히 형상하여 관람자들을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무대 뒤 대형 스크린.

1986년, 김일성과 김정일이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과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을 만났던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녹취> ‘김정은, 쿠바 국가대표단 접견’ 北 기록영화(지난 해 9월) : “존경하는 피델 카스트로 동지, 라울 카스트로 동지와 상봉하시는 역사적 화폭들이 무대 배경에 정중히 모셔지자 장내는 뜨거운 격정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손혜현(국립외교원 교수) : “지금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인데, 그나마 쿠바가 북한에 대해서 호의적인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고,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쿠바와의 관계를 유지를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인거죠.”

지난해,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쿠바와 미국 간의 국교 정상화에 이은 지난 3월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

윤병세 장관의 첫 쿠바 방문 외교장관 회담까지...

쿠바가 잇따라 북한의 적대국들과 관계를 개선해가는 모습을 보이자 북한의 위기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인터뷰> 손혜현(국립외교원 교수) : “사실 쿠바와 북한과의 관계는 군사협력 관계 외에는 다른 두드러진 부분이 없습니다. 경제나 문화 교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사실상 보면 실질적인 그런 교류나 관계는 남한과의 관계가 훨씬 돈독하고 또 활발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북한으로 서는 위협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김일성과 동지적 관계였던 혁명 1세대 카스트로가 숨졌고 여기에 동생 라울 카스트로마저 2018년 퇴진을 공언한 상황.

개혁 개방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 쿠바가 북한과 과거와 같은 ‘형제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북한 매체의 대대적인 선전과 달리 외신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는 최룡해의 조문 외교 역시 이같은 관계 변화의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쿠바 입장에서 이것을 보도해야겠죠, 과거의 혈맹 관계라면. 미국에 보란 듯이, 평양과 손을 잡고 있다는... 그러나 지난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상 쿠바 입장에서는 워싱턴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이 지나면 퇴진할 것으로 지금 예상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지도자가 오른다면 쿠바와 북한간의 관계는 한층 격하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 1986년 평양, 김일성과 카스트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노동신문이 카스트로의 부고 기사에 실은 이 사진.

당시 노동신문 1면에도 실렸던 그 기념사진에서 카스트로의 얼굴만 딴 사진이었다.

대북제재로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된 지금, 이미 과거가 된 친선 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김정은이 쿠바의 변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고 행동에 옮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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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北, 쿠바 붙들기 안간힘…‘형제 관계’ 계속 될까?
    • 입력 2016-12-10 08:16:01
    • 수정2016-12-10 08: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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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쿠바는 물론 남미 사회주의 혁명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피델 카스트로가 최근 세상을 떠났죠?

많은 논란과 이야기 거리를 남긴 인물입니다만, 특히 김일성과의 각별한 관계는 북한과 쿠바가 지난 반세기 이른바 형제적 관계를 맺는 초석이 됐습니다.

하지만 쿠바는 북한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고 북한은 여전히 쿠바에 매달리는 모습인데요.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북한과 쿠바의 특별한 관계를 돌아보고 쿠바의 변화가 김정은 정권에 던질 메시지를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쿠바 '공산 혁명‘을 이끌었던 피델 카스트로의 유해를 실은 차량이 추모행렬 사이로 들어선다.

900km에 이르는 쿠바 전국 순회를 마치고 고향이자 혁명의 성공을 선포했던 곳,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한 것이다.

‘20세기 가장 특이한 정치 지도자’로 불릴 만큼 논쟁적인 삶을 살았던 피델 카스트로...

그의 죽음에 지구 반대편 북한에서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1일) : "최룡해 동지를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 및 국가대표단이 조의식장인 쿠바 국립극장을 찾아 조의를 표시했습니다.”

타계 소식 이틀 만에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한 공식 조문단이 쿠바로 향했고, 이들은 카스트로의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도 이례적으로 평양 주재 쿠바 대사관을 직접 찾았다.

카스트로의 영정에 깍듯이 고개를 숙여 조의를 표하는 김정은.

감정을 담은 애도문도 직접 썼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 달 28일) : “위대한 동지, 위대한 전우를 잃은 아픔을 안고. 김정은.”

사흘 동안의 애도기간도 선포해 주요기관에 조기까지 내걸도록 했다.

이런 분위기는 조선중앙TV를 통해 주민들에게까지 전달됐다.

<녹취> 평양시민 : “피델 카스트로 동지가 서거했다고 하니까 스스로 참 눈물이 나더라고요.”

북한이 외국 지도자의 사망을 이렇게까지 애도하며 예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과 쿠바는 1960년 수교이후 반세기 넘는 세월동안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 중심엔 형제적·동지적 관계를 과시한 김일성과 피델 카스트로, 두 나라 지도자가 있었다.

1961년,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 정부가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조직된 반군이 쿠바 피그 만에 상륙하려다 실패한다.

이후 쿠바의 강력한 반미 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카스트로하고 김일성하고의 혁명이라고 하는, 세계의 혁명이라고 하는 뜻이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에는 정말로 깊은 관계가 유지가 됐고 미국이 코앞에 있지 않습니까? 플로리다가 코앞에 있는데 미국이 북조선에 예를 들어 힘을 집중해서 북조선을 타격하려고 하면 쿠바에서 움직이면 전력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지 않겠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사상적, 전략적 동지를 찾은 두 지도자.

곧이어 둘의 관계를 더욱 결속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

기 싸움 끝에 소련이 쿠바 미사일 기지 설치를 취소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쿠바는 물론 북한도 유화적 태도를 보인 소련에게 더 이상 안보를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이제 쿠바는 정말 유일하게 미국을 상대로 여러 가지 대립 국면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때에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를 주장하는 평양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을 수밖에 없어서 아주 끈끈하고 긴밀한 관계를 일찍부터 유지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녹취> 北 기록영화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쿠바의 당 및 국가 수반 피델 카스트로 동지와 뜻깊은 상봉을 하셨습니다.”

이후 1986년, 카스트로가 평양을 방문하며두 지도자의 결속력을 과시한다.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을 내걸며 소련이 변혁에 들어선 시기, 두 사람은 친선·협조 조약을 체결하며 끈끈한 협력을 다진다.

당시 두 사람 간 밀약은 2013년 발간된 카스트로의 자서전에서 뒤늦게 상세히 공개됐다.

소련이 거절한 쿠바의 무기 요청을 김일성이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무기 좀 지원해 달라...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김일성이 OK! 무상지원이다 그러니까 카스트로한테는 김일성이 완전히 정말 가슴에 와 닿는 그런 혁명 동지라고 할 수 있죠. AK소총 10만 정 뿐만 아니라 지뢰나 박격포나 이런 곡사포 같은 저격무기들을 많이 지원을 해줍니다.”

이후 1990년을 전후한 공산권의 붕괴와 김일성의 사망 이후 양국은 잇따라 큰 위기를 맞는다.

소련이 무너지고 원조가 끊기면서 쿠바는 이른바 ‘특별 기간’으로 불리는 1989년 이후 쿠바가 극심한 경제난을 겪었던 시기 경제적으로 극히 힘든 시기를 겪었다.

북한 역시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경제 위기의 문턱에 섰다.

이 때 양국 지도자가 선택한 위기 극복 방법은 극명히 갈렸다.

<녹취> 피델 카스트로(1993년 12월, 쿠바 인민정권회의) : “우리는 현재 매우 시급하면서도 중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혁명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작금의 경제난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카스트로의 쿠바는 달러화 소지를 허용하고 토지의 사적 소유를 허용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북한은 달랐다.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로 변화를 꾀했지만 결국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질 못했고, 홍수 등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기아 수준의 경제난을 겪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쿠바산 시가, 쿠바산 설탕 이거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들로써 위기를 탈출해 왔는데 북한은 그냥 앉아서 가만히 당할 수밖에 없었죠. 왜냐하면 그 때 문호를 열어놓고 개혁 개방을 하면 중국식 개혁 개방의 물결이 휩쓸려 들어가면 북한 정권은 위험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쿠바는 견뎌냈고 북한은 못 견뎌낸 거죠.”

이런 가운데서도 우호관계를 이어가려는 양국의 노력은 계속됐다.

김정일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도 1997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제14차 세계 청년 학생축전에 5백 명의 북한 대표단을 파견했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북한은 90년대 쿠바의 행태를 보면서 상당한 이질감을 느꼈을 수밖에 없습니다. 쿠바 역시도 벗어나는구나 하는 흐름 속에서 어떻게 쿠바를 붙잡을까 하는 그런 여러 가지 외교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했고 쿠바가 자신들의 대오에서 이탈하지 않는 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쿠바 역시 북한에 설탕을 제공하며 성의를 보였고, 이 같은 지원은 주민들에게까지 쿠바에 대해 ‘최고 우방’이라는 두터운 호의를 갖게 했다.

<인터뷰> 고영환(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 “북한 사람들에게 설탕이라고 하는 것은 소금과 마찬가지로 정말 생활에 필요한 건데, 쿠바 사람들이 정말로 싼 가격이나 아니면 무상으로 배가 이따금씩 남포항에 와서 5천 톤, 만 톤을 뿌려주면 온 나라 사람들이 사탕을 한 번씩 먹어보는 거 아닙니까, 설탕을? 쿠바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감정도 굉장히 좋죠.”

북한과 쿠바의 대를 이은 우의는 김정일 사망 직후 피델 카스트로의 지위를 이어받은 동생 라울 카스트로의 북한 대사관 조문으로 다시 확인됐고, 김정은 역시 이 관계를 이어가려 안간힘을 썼다.

지난해 9월, 수교 55주년을 맞아 방북한 쿠바 대표단을 김정은이 직접 맞이하는 모습이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한 성대한 축하 공연도 열었다.

<녹취> ‘김정은, 쿠바 국가대표단 접견’ 北 기록영화(지난 해 9월) : “모란봉악단의 예술인들은 <관타나메라>, 여성중창 <카프리섬>을 훌륭히 형상하여 관람자들을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무대 뒤 대형 스크린.

1986년, 김일성과 김정일이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과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을 만났던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녹취> ‘김정은, 쿠바 국가대표단 접견’ 北 기록영화(지난 해 9월) : “존경하는 피델 카스트로 동지, 라울 카스트로 동지와 상봉하시는 역사적 화폭들이 무대 배경에 정중히 모셔지자 장내는 뜨거운 격정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손혜현(국립외교원 교수) : “지금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인데, 그나마 쿠바가 북한에 대해서 호의적인 그런 태도를 보이고 있고, 북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쿠바와의 관계를 유지를 해야 되는 그런 상황인거죠.”

지난해,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쿠바와 미국 간의 국교 정상화에 이은 지난 3월 오바마 대통령의 역사적인 쿠바 방문...

윤병세 장관의 첫 쿠바 방문 외교장관 회담까지...

쿠바가 잇따라 북한의 적대국들과 관계를 개선해가는 모습을 보이자 북한의 위기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인터뷰> 손혜현(국립외교원 교수) : “사실 쿠바와 북한과의 관계는 군사협력 관계 외에는 다른 두드러진 부분이 없습니다. 경제나 문화 교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사실상 보면 실질적인 그런 교류나 관계는 남한과의 관계가 훨씬 돈독하고 또 활발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북한으로 서는 위협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김일성과 동지적 관계였던 혁명 1세대 카스트로가 숨졌고 여기에 동생 라울 카스트로마저 2018년 퇴진을 공언한 상황.

개혁 개방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는 쿠바가 북한과 과거와 같은 ‘형제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북한 매체의 대대적인 선전과 달리 외신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있는 최룡해의 조문 외교 역시 이같은 관계 변화의 방증이라는 분석이다.

<인터뷰> 남성욱(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 “쿠바 입장에서 이것을 보도해야겠죠, 과거의 혈맹 관계라면. 미국에 보란 듯이, 평양과 손을 잡고 있다는... 그러나 지난해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상 쿠바 입장에서는 워싱턴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이 지나면 퇴진할 것으로 지금 예상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지도자가 오른다면 쿠바와 북한간의 관계는 한층 격하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지난 1986년 평양, 김일성과 카스트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노동신문이 카스트로의 부고 기사에 실은 이 사진.

당시 노동신문 1면에도 실렸던 그 기념사진에서 카스트로의 얼굴만 딴 사진이었다.

대북제재로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된 지금, 이미 과거가 된 친선 관계에 매달리고 있는 김정은이 쿠바의 변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고 행동에 옮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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