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제재·인권 사각지대…러시아의 北 노동자

입력 2016.12.24 (08:06) 수정 2016.12.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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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엔 총회가 이번 주 12년 연속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북한 해외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우려가 처음으로 포함돼 눈길을 끌었지만, 북한의 ‘해외 노예 노동’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은 연말 특집으로 북한의 해외노동자 실태를 2주 연속 추적하겠습니다.

오늘 그 첫 순서, 러시아 북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강나루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모스크바 북서쪽,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각종 궁전과 사원들로도 유명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입니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쯤 달리자... 공사가 한창인 대규모 경기장이 눈에 띕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건설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입니다.

여기저기 건설 자재가 쌓여있고,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바쁘게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오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경기장 건설이 한창입니다.

이 경기장 바로 길 건너편에 북한 노동자들을 위한 컨테이너 숙소가 마련돼 있습니다.

마치 적재된 화물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수십 개의 컨테이너.

가까이에서 보니 난민촌을 방불케 합니다.

외국인 인부에게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 위치를 물었습니다.

손짓하는 곳을 따라가 컨테이너 한 곳의 문을 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파견 북한 노동자 : "(중국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아니요. 우린 북한 사람들입니다."

좁디좁은 컨테이너 숙소 한 곳에 무려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2층 침대의 윗칸에 있는 사람은 몸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

이곳 월드컵 경기장의 북한 노동자들은 최근 긴급 투입됐습니다.

지지부진한 경기장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녹취> 파벨(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언론 기자) : "최근 급하게 경기장 공사를 마쳐야하는 일이 생겨서 북한인들을 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올해 완공 예정이었지만 각종 안전사고와 부패 문제로 공사가 지연됐습니다.

‘프레 월드컵’ 격인 내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개최도 불투명했던 상황.

이런 위기에 돌파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북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왜 북한 사람들 쓰는가? 일 많이 해요, 그 사람들... 그다음 빨리 끝내줘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가르쳐 줘도 빨리 못 따라가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가르쳐 주면 빨리 따라와요. 북한 사람들은 미장을 어떻게 어떻게 한다 이렇게 알려주기만 하면 재깍재깍 거기에 맞춰서..."

질 좋은 노동력에 저렴한 임금,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열악한 작업환경에 항의 한 번 안 하는 북한 노동자둘.

그러나 그만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사고도 잦습니다.

지난달에는 이곳 월드컵 경기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명이 숨졌고,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명이 분신하는 등 올 한해에만 러시아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0여명이 숨졌습니다.

<녹취> 파벨(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언론 기자) : "경기장에서 추락사건으로 숨진 북한 사람에 대한 뉴스를 듣고 (러시아인들이) 도대체 경기장 공사 현장에 북한 사람들이 왜 있느냐고 놀라기도 합니다. 내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평범한 러시아 시민에게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조건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러시아에 송출된 북한 노동자는 3만 여명.

대부분 벌목현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데, 이들은 하루 12시간에서 20시간까지 중노동과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어떤 때 보면 진짜 새벽 2시~3시까지 일할 때도 있거든요? 그렇게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두시간 정도 지나서 또 나가서 일하고요."

그러고도 한 달에 받는 돈은 50달러, 우리 돈 6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임금의 70%이상을 이른바 충성자금으로 북한 당국에 상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진짜 목젖까지 (차오를 정도로) 일했는데요. 진짜, 한가닥 희망인 돈 좀 벌겠다고. 그런데 갔다 오면 돈은 소장한테 들어가요. 그날 일했으면 얼마 줬다는 거 다 아니까 그대로 바쳐야죠."

이런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노예노동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돈줄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 해외노동자 송출은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경섭(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부센터장) : "해외 노동자 송출은 대북제재의 빈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UN에서 석탄이나 지하자원 수출을 계속 압박하고 있고 그걸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걸 계속 통제, 제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그 지하자원 수출이 막힘으로써 줄어드는 외화를 해외 노동자 송출을 통해서 그걸 충성자금으로 거두어들임으로써 벌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역 군인과 여성들까지 외화벌이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의 우델리야 시장.

중고 시장인 이곳은 값싼 물건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북적입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이곳에선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이 눈에 띕니다.

<녹취> "(북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북에서 오신 분 맞네. 어디서 오셨어요?) 평양. (여기 일하러 오셨어요?) ... (몇 년 되셨어요, 여기 나오신 지?) 2년 정도..."

해외로 송출되는 북한 노동자는 주로 가족을 북한에 남겨둘 수 있는 30대 이상 기혼자들이지만,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입니다.

<녹취> "(북한에선 장가간 사람들만 다 보낸다던데 젊은 분이네. 장가가셨어요?) 아니요. (안 가셨어요?) 네."

북한 공병대 소속 현역 군인들로 추정됩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작년 겨울에 왔는데, 그때 와 보니까 (북한군) 공병국이더라고요. 그때 물어보니까 70명 정도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모스크바에서 일감이 없으니까 밀려 들어왔어요."

군인들이라 노동 환경은 더 비참합니다.

철저한 감시 속에 단체 생활을 하는데다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공병 7총국 아이들은 식사는 어떻게 하던가요?) 우리보다 더 한심하다고 하면 한심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까요. (러시아에) 들어와서 걔(군인 노동자)는 1년 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도 처지는 비슷합니다.

러시아의 한 대형 피복 공장.

늦은 밤,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밤늦게까지 야간근무를 한 겁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여성들, 철저한 통제 속에 숙소와 공장만을 오가는 이들은 매일 충성자금 상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北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여자 분들은 옷이 없어서 제가 교회에서 걷어다가 많이 갖다 줬어요. 돈 자체, 그 사람들은 내가 1년 동안 고용해도 그 사람들 손에 돈이 루블도 간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1루블도 안 가요, 여자들한테?) 예, 간 게 없어요. 하나도."

그렇다면 이들을 감시․감독하는 간부들의 생활은 어떨까.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을 벗어나 차로 한참을 달리자 붉은색 벽돌로 쌓아올린 고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북한 노동자 400명이 소속된 인력 송출 회사 '강성'입니다.

이 곳은 상트페테르부르그 중심지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도심의 외곽 지역입니다.

바로 이 곳이 북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당 간부들의 숙소와 사무실인데요.

한 눈에 봐도 일반 노동자들의 건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주차장에서 만난 간부급으로 보이는 북한 사람들.

취재진을 보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녹취> "(괜찮으시면 여기 담당자분 계시면 한번 말씀을 여쭤보고 싶어서...) 우리는 대상(상대) 안하는데요. (네?) 우리는 대상(상대) 안하는데요. 왜 우리가 자기하고 대상(상대)해야 되나? (혹시 괜찮으시면...) 아아 괜찮지 않아요."

사무실 벨을 눌러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녹취> "(계십니까? 계세요?) 아, 필요 없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없습니다. (책임자 계시면 얘기 좀 나눠보고 싶은데...) 안됩니다. 오늘 휴식이 돼서(쉬는 날이라서) 다 나갔습니다."

난방도 안 되는 좁디좁은 컨테이너와는 상반되는 간부들의 숙소.

<인터뷰> 김승철(북한개혁방송 대표/1994년 탈북) : "간부가 입고 있는 옷도 아주 고급진 옷으로서 일반 러시아인들은 입을 수 없는 그런 고급진 옷인데, 노동자들이 정말 피땀 흘려 버는 돈으로 간부들은 너무나도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북한 당국이 돈 버는 거에만 관심이 있지 북한 근로자들의 이 생활이나 이런 뭐... 그다음에 위생조건 이런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의 배만 채우는 이 같은 ‘노예 노동’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교묘하게 계속돼 왔습니다.

지난 10월, 이곳에 무장 강도가 들어 미화 8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 5백만원을 강탈당했습니다.

<녹취> 현지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8만 달러쯤하고 개인 시계, 개인 지갑에서 돈 빼 간거고..."

이곳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벌어 북한 당국에 상납할 충성자금과 가족들에게 보낼 돈이었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작업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확히 알아보고 ‘이 사람 정확히 나온다' 그런 사람들한테만 돈(운반을 맡깁니다.)"

UN의 대북제재로 해외 금융 거래가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의 상납금을 모두 현금화해 운송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엔 이런 노예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북을 감행하는 북한 노동자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북한 노동자 10명 정도가 집단 탈북했습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북한 사람들 어제, 그제 만난 사람들도 또 누구 달아났다, 누구 달아났다, 자꾸 달아난다... 좀 도와달래서 나한테 왔다가 우리 집에서 재워놓고 버스까지 태워준 적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시와 통제는 더 삼엄합니다.

시장에서 마주친 또 다른 북한 사람들.

선글라스에, 고급 가죽점퍼를 입고 장갑을 낀 이들이 대여섯 명 씩 떼 지어 다닙니다.

다른 노동자들과는 행색이 완전히 다른 이들은 군인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보위성 요원들로 추정됩니다.

이들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녹취> "(현지인들이 있어서 위험하진 않을 텐데...) 위험한 게 아니고 말을 붙이는 게 어려워."

버스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만난 노동자들 역시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가 상당했습니다.

<녹취> 러시아 北노동자 : "촬영 하지 마세요. 저것 좀 치워주세요. 경찰 부르겠습니다. (네, 촬영 안 할게요.) 이 사람이 촬영 좀 못 하게 해주세요."

북한 노동자들의 고된 현실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녹취> 김승철(북한개혁방송 대표/1994년 탈북) :아이고~ 참 불쌍해라. 저 중에 한 사람은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 옷 좀 보이소. 신발 봤어요? (고생스러워 보이네.) 여름 신발, 여름 신발... (너무 고생스러워 보이네.)"

지난 19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2321호도 외화벌이 수단으로 내몰리는 북한의 인력 송출 문제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주의를 촉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려면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당 국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인터뷰> 오경섭(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부센터장) : "최소한 러시아가 북한의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도록 협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노동법을 적용하도록 계속 압력을 러시아 정부에 가해야 됩니다. 그걸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계속 러시아 정부에게 요구하면 러시아 정부도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갈 겁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들어가는 돈줄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 속에서 그 빈틈을 파고들고 있는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측면에서도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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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제재·인권 사각지대…러시아의 北 노동자
    • 입력 2016-12-24 07:51:14
    • 수정2016-12-24 0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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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유엔 총회가 이번 주 12년 연속으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북한 해외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 우려가 처음으로 포함돼 눈길을 끌었지만, 북한의 ‘해외 노예 노동’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클로즈업 북한>은 연말 특집으로 북한의 해외노동자 실태를 2주 연속 추적하겠습니다.

오늘 그 첫 순서, 러시아 북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강나루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모스크바 북서쪽,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과거 러시아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각종 궁전과 사원들로도 유명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입니다.

도심에서 차로 30분 쯤 달리자... 공사가 한창인 대규모 경기장이 눈에 띕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위해 건설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입니다.

여기저기 건설 자재가 쌓여있고,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바쁘게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오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경기장 건설이 한창입니다.

이 경기장 바로 길 건너편에 북한 노동자들을 위한 컨테이너 숙소가 마련돼 있습니다.

마치 적재된 화물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수십 개의 컨테이너.

가까이에서 보니 난민촌을 방불케 합니다.

외국인 인부에게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 위치를 물었습니다.

손짓하는 곳을 따라가 컨테이너 한 곳의 문을 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파견 북한 노동자 : "(중국에서 오신 분들인가요?) 아니요. 우린 북한 사람들입니다."

좁디좁은 컨테이너 숙소 한 곳에 무려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2층 침대의 윗칸에 있는 사람은 몸도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

이곳 월드컵 경기장의 북한 노동자들은 최근 긴급 투입됐습니다.

지지부진한 경기장 건설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입니다.

<녹취> 파벨(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언론 기자) : "최근 급하게 경기장 공사를 마쳐야하는 일이 생겨서 북한인들을 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경기장은 올해 완공 예정이었지만 각종 안전사고와 부패 문제로 공사가 지연됐습니다.

‘프레 월드컵’ 격인 내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개최도 불투명했던 상황.

이런 위기에 돌파구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북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왜 북한 사람들 쓰는가? 일 많이 해요, 그 사람들... 그다음 빨리 끝내줘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가르쳐 줘도 빨리 못 따라가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가르쳐 주면 빨리 따라와요. 북한 사람들은 미장을 어떻게 어떻게 한다 이렇게 알려주기만 하면 재깍재깍 거기에 맞춰서..."

질 좋은 노동력에 저렴한 임금,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열악한 작업환경에 항의 한 번 안 하는 북한 노동자둘.

그러나 그만큼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기 쉽고 사고도 잦습니다.

지난달에는 이곳 월드컵 경기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명이 숨졌고, 블라디보스톡에서는 1명이 분신하는 등 올 한해에만 러시아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0여명이 숨졌습니다.

<녹취> 파벨(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언론 기자) : "경기장에서 추락사건으로 숨진 북한 사람에 대한 뉴스를 듣고 (러시아인들이) 도대체 경기장 공사 현장에 북한 사람들이 왜 있느냐고 놀라기도 합니다. 내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러시아에서 태어난 평범한 러시아 시민에게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조건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열악한 조건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러시아에 송출된 북한 노동자는 3만 여명.

대부분 벌목현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데, 이들은 하루 12시간에서 20시간까지 중노동과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어떤 때 보면 진짜 새벽 2시~3시까지 일할 때도 있거든요? 그렇게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두시간 정도 지나서 또 나가서 일하고요."

그러고도 한 달에 받는 돈은 50달러, 우리 돈 6만 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임금의 70%이상을 이른바 충성자금으로 북한 당국에 상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진짜 목젖까지 (차오를 정도로) 일했는데요. 진짜, 한가닥 희망인 돈 좀 벌겠다고. 그런데 갔다 오면 돈은 소장한테 들어가요. 그날 일했으면 얼마 줬다는 거 다 아니까 그대로 바쳐야죠."

이런 북한 노동자들의 해외 노예노동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의 돈줄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 해외노동자 송출은 외화벌이를 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오경섭(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부센터장) : "해외 노동자 송출은 대북제재의 빈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UN에서 석탄이나 지하자원 수출을 계속 압박하고 있고 그걸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물량이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걸 계속 통제, 제재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그 지하자원 수출이 막힘으로써 줄어드는 외화를 해외 노동자 송출을 통해서 그걸 충성자금으로 거두어들임으로써 벌충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현역 군인과 여성들까지 외화벌이에 동원되고 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북쪽의 우델리야 시장.

중고 시장인 이곳은 값싼 물건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북적입니다.

북한 노동자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이곳에선 앳된 얼굴의 북한 노동자들이 눈에 띕니다.

<녹취> "(북에서 오신 분들이에요? 북에서 오신 분 맞네. 어디서 오셨어요?) 평양. (여기 일하러 오셨어요?) ... (몇 년 되셨어요, 여기 나오신 지?) 2년 정도..."

해외로 송출되는 북한 노동자는 주로 가족을 북한에 남겨둘 수 있는 30대 이상 기혼자들이지만,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정도입니다.

<녹취> "(북한에선 장가간 사람들만 다 보낸다던데 젊은 분이네. 장가가셨어요?) 아니요. (안 가셨어요?) 네."

북한 공병대 소속 현역 군인들로 추정됩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작년 겨울에 왔는데, 그때 와 보니까 (북한군) 공병국이더라고요. 그때 물어보니까 70명 정도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모스크바에서 일감이 없으니까 밀려 들어왔어요."

군인들이라 노동 환경은 더 비참합니다.

철저한 감시 속에 단체 생활을 하는데다 일반 노동자들과는 달리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공병 7총국 아이들은 식사는 어떻게 하던가요?) 우리보다 더 한심하다고 하면 한심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까요. (러시아에) 들어와서 걔(군인 노동자)는 1년 됐단 말이에요. 그런데 주머니에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도 처지는 비슷합니다.

러시아의 한 대형 피복 공장.

늦은 밤, 북한 여성 노동자들이 무리지어 건물 밖으로 나옵니다.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밤늦게까지 야간근무를 한 겁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여성들, 철저한 통제 속에 숙소와 공장만을 오가는 이들은 매일 충성자금 상납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녹취> '北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여자 분들은 옷이 없어서 제가 교회에서 걷어다가 많이 갖다 줬어요. 돈 자체, 그 사람들은 내가 1년 동안 고용해도 그 사람들 손에 돈이 루블도 간 게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1루블도 안 가요, 여자들한테?) 예, 간 게 없어요. 하나도."

그렇다면 이들을 감시․감독하는 간부들의 생활은 어떨까.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을 벗어나 차로 한참을 달리자 붉은색 벽돌로 쌓아올린 고급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북한 노동자 400명이 소속된 인력 송출 회사 '강성'입니다.

이 곳은 상트페테르부르그 중심지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도심의 외곽 지역입니다.

바로 이 곳이 북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당 간부들의 숙소와 사무실인데요.

한 눈에 봐도 일반 노동자들의 건물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이곳 주차장에서 만난 간부급으로 보이는 북한 사람들.

취재진을 보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입니다.

<녹취> "(괜찮으시면 여기 담당자분 계시면 한번 말씀을 여쭤보고 싶어서...) 우리는 대상(상대) 안하는데요. (네?) 우리는 대상(상대) 안하는데요. 왜 우리가 자기하고 대상(상대)해야 되나? (혹시 괜찮으시면...) 아아 괜찮지 않아요."

사무실 벨을 눌러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녹취> "(계십니까? 계세요?) 아, 필요 없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없습니다. (책임자 계시면 얘기 좀 나눠보고 싶은데...) 안됩니다. 오늘 휴식이 돼서(쉬는 날이라서) 다 나갔습니다."

난방도 안 되는 좁디좁은 컨테이너와는 상반되는 간부들의 숙소.

<인터뷰> 김승철(북한개혁방송 대표/1994년 탈북) : "간부가 입고 있는 옷도 아주 고급진 옷으로서 일반 러시아인들은 입을 수 없는 그런 고급진 옷인데, 노동자들이 정말 피땀 흘려 버는 돈으로 간부들은 너무나도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 같아요. 북한 당국이 돈 버는 거에만 관심이 있지 북한 근로자들의 이 생활이나 이런 뭐... 그다음에 위생조건 이런 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 당국의 배만 채우는 이 같은 ‘노예 노동’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교묘하게 계속돼 왔습니다.

지난 10월, 이곳에 무장 강도가 들어 미화 8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 5백만원을 강탈당했습니다.

<녹취> 현지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8만 달러쯤하고 개인 시계, 개인 지갑에서 돈 빼 간거고..."

이곳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벌어 북한 당국에 상납할 충성자금과 가족들에게 보낼 돈이었습니다.

<녹취>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출신 탈북자(올해 입국/음성변조) : "작업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확히 알아보고 ‘이 사람 정확히 나온다' 그런 사람들한테만 돈(운반을 맡깁니다.)"

UN의 대북제재로 해외 금융 거래가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의 상납금을 모두 현금화해 운송하고 있는 겁니다.

최근엔 이런 노예생활을 견디다 못해 탈북을 감행하는 북한 노동자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북한 노동자 10명 정도가 집단 탈북했습니다.

<녹취> '北 노동자 고용' 고려인 사업가(음성변조) : "북한 사람들 어제, 그제 만난 사람들도 또 누구 달아났다, 누구 달아났다, 자꾸 달아난다... 좀 도와달래서 나한테 왔다가 우리 집에서 재워놓고 버스까지 태워준 적 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시와 통제는 더 삼엄합니다.

시장에서 마주친 또 다른 북한 사람들.

선글라스에, 고급 가죽점퍼를 입고 장갑을 낀 이들이 대여섯 명 씩 떼 지어 다닙니다.

다른 노동자들과는 행색이 완전히 다른 이들은 군인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보위성 요원들로 추정됩니다.

이들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접근조차 어렵습니다.

<녹취> "(현지인들이 있어서 위험하진 않을 텐데...) 위험한 게 아니고 말을 붙이는 게 어려워."

버스와 같은 공공장소에서 만난 노동자들 역시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가 상당했습니다.

<녹취> 러시아 北노동자 : "촬영 하지 마세요. 저것 좀 치워주세요. 경찰 부르겠습니다. (네, 촬영 안 할게요.) 이 사람이 촬영 좀 못 하게 해주세요."

북한 노동자들의 고된 현실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모습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녹취> 김승철(북한개혁방송 대표/1994년 탈북) :아이고~ 참 불쌍해라. 저 중에 한 사람은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 옷 좀 보이소. 신발 봤어요? (고생스러워 보이네.) 여름 신발, 여름 신발... (너무 고생스러워 보이네.)"

지난 19일, 북한 해외 노동자들의 인권 상황에 우려를 표명한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됐습니다.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2321호도 외화벌이 수단으로 내몰리는 북한의 인력 송출 문제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주의를 촉구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려면 북한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국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해당 국가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인터뷰> 오경섭(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부센터장) : "최소한 러시아가 북한의 노동자의 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도록 협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노동법을 적용하도록 계속 압력을 러시아 정부에 가해야 됩니다. 그걸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계속 러시아 정부에게 요구하면 러시아 정부도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갈 겁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들어가는 돈줄을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 속에서 그 빈틈을 파고들고 있는 북한의 해외노동자 송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측면에서도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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