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책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

입력 2017.02.04 (08:20) 수정 2017.02.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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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탈북민들 상당수는 탈북 과정에서 가족을 잃거나 북에 가족을 두고 왔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아픔을 안고 산다죠?

남쪽에 가까운 친인척이 없으면 더 외롭고 의지할 곳도 없어 힘들텐데요.

그런데 한국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든 이들이 있다더군요.

탈북민들이 독서 모임을 통해 새 삶의 동반자가 될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로 의지해온 이들이 최근 특별한 나들이를 떠났다고 하는데요.

홍은지 리포터가 동행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강서구의 한 지하철 역 앞.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십 여 명의 탈북민들이 모였습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오늘 어쩐 일로 이렇게 모이신 거예요?(봉사하자고 나왔어요.)”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연령대가 정말 다양해요.)예. 탈북 대학생들하고 어머니들 같이...”

연고가 없는 탈북 대학생들과 그들을 엄마처럼 살뜰히 챙기는 탈북 여성들인데요.

이들이 함께 향한 곳은 인근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입니다.

벌써 2년 째, 명절 때 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는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서진명(대원대 4학년/탈북민) : “(저희) 할머니는 아직 북에 계시고 지금 되게 많이 아프다고 소식을 들었어요.”

<인터뷰> 송광민(고려대 2학년/탈북민) : “(할머니께서) 많이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제가 간호도 하고 하면서 살았는데...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가지고 ...”

많은 탈북민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가족들을 묻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을 위로하며 서로를 응원하던 탈북민들이 모여 오늘 하루, 그리운 부모님 대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겠다고 나섰습니다.

평일 오후, 어렵게 시간을 내 달려온 사람들.

오랜만에 뵀지만, 정정한 어르신의 모습이 반갑기만 합니다.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번에 계셨던 할머니잖아)...안녕하세요.”

이 요양원에는 백 여 분의 어르신들이 계시는데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습니다.

때마침 시작된 저녁 식사에 도우미로 나선 탈북민들.

생선 가시 하나까지 꼼꼼하게 발라서 할머니의 숟가락에 올려드립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손주 같은 학생들의 수발에 밥맛이 더 좋아지신 듯 맛있게 잡수시는데요.

<인터뷰> 위선임(요양보호사) : “젊은 분들이 오셔서 이렇게 어르신들하고 말동무 해 주시니까 참 고맙고 좋죠. 어르신들께서 생기도 많이 돌고 또 좋아하시는 같아요. 손주 같고 그러니까... ”

북에 고향을 둔 어르신들도 여럿 계셨는데요.

<인터뷰> “(어머님은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우리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살았으니까 뭐. (할머니도 회령에서 사셨어요?) 그럼.”

고향 사람을 만나니 할머니들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돕니다.

<인터뷰> 박성일(가명/숭실대 2학년/탈북민) : “고향이 같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인터뷰> “산을 헤매고 다니니까... 닷새를 왔어.”

6.25 전쟁 당시 헤어진 오빠들을 찾아 남쪽으로 왔다는 할머니의 고생담을 들으니 박성일 씨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인터뷰> 박성일(가명/숭실대 2학년/탈북민) : “제가 또 북한을 탈출해서 3국을 거쳐서 어렵게 온 부분이 뭔가 좀 비슷한 부분인 것 같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그런 게 저랑 너무 동감같이 느껴져서 저도 막 북받쳐 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거동이 많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침대에서 식사를 도와드려야 하는데요.

북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 전해들은 황지향 씨.

오늘은 할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 보입니다.

<인터뷰> 황지향(세종대 합격생/탈북민) : “할머니 생각 많이 나고 북한에도 이런 요양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긴 해요. 북한 할머니들 우대받고 이러는 데가 별로 없어 가지고... ”

두 손으로 정성껏 안마도 해 드리고,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동무도 해 드리는 사이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하고 나니 이제는 가야 할 시간.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이들의 작별 인사에 어르신들, 많이 섭섭해 하셨는데요.

<녹취> “건강하세요, 할머니...”

학생들도 친할머니를 두고 가는 듯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합니다.

<인터뷰> 황은영(홍익대 합격생/탈북민) : “자기 손녀 같다고 하면서 되게 예뻐하시는 거예요. 공부도 잘 하고 열심히 살라고 어르신이 그러셨거든요. 그게 감명 깊었어요. ”

설을 맞아 뜻깊은 봉사를 마친 이들.

처음엔 책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3년 전, 대학생 등 탈북민 20여명을 모아 독서 모임을 시작한 이혜경 씨.

매주 함께 책을 읽고 쓴 독후감들을 모아 이번에 문집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말 없는 선생님이거든요 책은. 거기에 대한 독후감을 또 써내라. 그 독후감을 받아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사실...”

북한에서 약제사로 일하다 2002년 한국에 온 그녀는 불혹의 나이에도 억척스럽게 일하고 공부해 남한에서도 약사가 되었고, 북한학 박사 학위도 땄습니다.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해 온 인생 선배로서, 또, 두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으로 연고가 없는 탈북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건데요.

이번 봉사 모임도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덜어주고자 계획한 겁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내가 너무 힘들었는데 얘네는 얼마나 힘들랴... 어떤 확신과 자신감을 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런 효과를 내개 얘네한테 줘야 되겠다...”

때론 엄한 엄마 노릇도 하지만, 학생들은 그 속에 숨은 따뜻함을 읽어냅니다.

<인터뷰> 황지향(세종대 합격생/탈북민) : “겉으로는 막 엄하시고 진짜 표정도 되게 무섭고 하시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고 잘 챙겨주시고 어머니 같이... 2년 동안 이제 대학교 준비를 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박사님이 더 기뻐하시고 축하도 많이 해 주시고 그런 것들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

좋은 책에서는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좋은 인연은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합니다.

좋은 책을 함께 읽으며 시작된 소중한 인연.

앞으로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로 서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은 새로운 터전에서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새 또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게 된 사람들.

이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곳, 이 사회를 향해서도 그 정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 가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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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책 가족’의 특별한 나들이
    • 입력 2017-02-04 08:43:44
    • 수정2017-02-04 09:05:39
    남북의 창
<앵커 멘트>

탈북민들 상당수는 탈북 과정에서 가족을 잃거나 북에 가족을 두고 왔기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아픔을 안고 산다죠?

남쪽에 가까운 친인척이 없으면 더 외롭고 의지할 곳도 없어 힘들텐데요.

그런데 한국 땅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든 이들이 있다더군요.

탈북민들이 독서 모임을 통해 새 삶의 동반자가 될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로 의지해온 이들이 최근 특별한 나들이를 떠났다고 하는데요.

홍은지 리포터가 동행했습니다.

<리포트>

서울 강서구의 한 지하철 역 앞.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십 여 명의 탈북민들이 모였습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오늘 어쩐 일로 이렇게 모이신 거예요?(봉사하자고 나왔어요.)”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연령대가 정말 다양해요.)예. 탈북 대학생들하고 어머니들 같이...”

연고가 없는 탈북 대학생들과 그들을 엄마처럼 살뜰히 챙기는 탈북 여성들인데요.

이들이 함께 향한 곳은 인근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입니다.

벌써 2년 째, 명절 때 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는데요.

그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서진명(대원대 4학년/탈북민) : “(저희) 할머니는 아직 북에 계시고 지금 되게 많이 아프다고 소식을 들었어요.”

<인터뷰> 송광민(고려대 2학년/탈북민) : “(할머니께서) 많이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때까지 제가 간호도 하고 하면서 살았는데...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 나가지고 ...”

많은 탈북민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가족들을 묻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픔을 위로하며 서로를 응원하던 탈북민들이 모여 오늘 하루, 그리운 부모님 대신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겠다고 나섰습니다.

평일 오후, 어렵게 시간을 내 달려온 사람들.

오랜만에 뵀지만, 정정한 어르신의 모습이 반갑기만 합니다.

<인터뷰> “(안녕하세요. 저번에 계셨던 할머니잖아)...안녕하세요.”

이 요양원에는 백 여 분의 어르신들이 계시는데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많습니다.

때마침 시작된 저녁 식사에 도우미로 나선 탈북민들.

생선 가시 하나까지 꼼꼼하게 발라서 할머니의 숟가락에 올려드립니다.

오랜만에 찾아 온 손주 같은 학생들의 수발에 밥맛이 더 좋아지신 듯 맛있게 잡수시는데요.

<인터뷰> 위선임(요양보호사) : “젊은 분들이 오셔서 이렇게 어르신들하고 말동무 해 주시니까 참 고맙고 좋죠. 어르신들께서 생기도 많이 돌고 또 좋아하시는 같아요. 손주 같고 그러니까... ”

북에 고향을 둔 어르신들도 여럿 계셨는데요.

<인터뷰> “(어머님은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우리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살았으니까 뭐. (할머니도 회령에서 사셨어요?) 그럼.”

고향 사람을 만나니 할머니들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돕니다.

<인터뷰> 박성일(가명/숭실대 2학년/탈북민) : “고향이 같으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인터뷰> “산을 헤매고 다니니까... 닷새를 왔어.”

6.25 전쟁 당시 헤어진 오빠들을 찾아 남쪽으로 왔다는 할머니의 고생담을 들으니 박성일 씨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인터뷰> 박성일(가명/숭실대 2학년/탈북민) : “제가 또 북한을 탈출해서 3국을 거쳐서 어렵게 온 부분이 뭔가 좀 비슷한 부분인 것 같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든지 그런 게 저랑 너무 동감같이 느껴져서 저도 막 북받쳐 오르는 게 있더라고요.”

거동이 많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침대에서 식사를 도와드려야 하는데요.

북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 전해들은 황지향 씨.

오늘은 할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 보입니다.

<인터뷰> 황지향(세종대 합격생/탈북민) : “할머니 생각 많이 나고 북한에도 이런 요양시설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긴 해요. 북한 할머니들 우대받고 이러는 데가 별로 없어 가지고... ”

두 손으로 정성껏 안마도 해 드리고, 오늘 하루 어떻게 지내셨는지 말동무도 해 드리는 사이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구석구석 청소까지 다 하고 나니 이제는 가야 할 시간.

자식 같고 손주 같은 이들의 작별 인사에 어르신들, 많이 섭섭해 하셨는데요.

<녹취> “건강하세요, 할머니...”

학생들도 친할머니를 두고 가는 듯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합니다.

<인터뷰> 황은영(홍익대 합격생/탈북민) : “자기 손녀 같다고 하면서 되게 예뻐하시는 거예요. 공부도 잘 하고 열심히 살라고 어르신이 그러셨거든요. 그게 감명 깊었어요. ”

설을 맞아 뜻깊은 봉사를 마친 이들.

처음엔 책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3년 전, 대학생 등 탈북민 20여명을 모아 독서 모임을 시작한 이혜경 씨.

매주 함께 책을 읽고 쓴 독후감들을 모아 이번에 문집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말 없는 선생님이거든요 책은. 거기에 대한 독후감을 또 써내라. 그 독후감을 받아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사실...”

북한에서 약제사로 일하다 2002년 한국에 온 그녀는 불혹의 나이에도 억척스럽게 일하고 공부해 남한에서도 약사가 되었고, 북한학 박사 학위도 땄습니다.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해 온 인생 선배로서, 또, 두 아이를 둔 엄마의 마음으로 연고가 없는 탈북 청년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건데요.

이번 봉사 모임도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덜어주고자 계획한 겁니다.

<인터뷰> 이혜경(탈북민) : “내가 너무 힘들었는데 얘네는 얼마나 힘들랴... 어떤 확신과 자신감을 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런 효과를 내개 얘네한테 줘야 되겠다...”

때론 엄한 엄마 노릇도 하지만, 학생들은 그 속에 숨은 따뜻함을 읽어냅니다.

<인터뷰> 황지향(세종대 합격생/탈북민) : “겉으로는 막 엄하시고 진짜 표정도 되게 무섭고 하시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고 잘 챙겨주시고 어머니 같이... 2년 동안 이제 대학교 준비를 해서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박사님이 더 기뻐하시고 축하도 많이 해 주시고 그런 것들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

좋은 책에서는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좋은 인연은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합니다.

좋은 책을 함께 읽으며 시작된 소중한 인연.

앞으로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로 서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은 새로운 터전에서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어느새 또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게 된 사람들.

이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곳, 이 사회를 향해서도 그 정을 나누며 희망을 키워 가도록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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