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물에 도사린 화마

입력 2017.02.12 (22:28) 수정 2017.02.1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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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영화 '타워' 중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초고층 건물.

순식간에 번진 불길에 건물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발버둥칩니다.

<녹취> "조금 있으면 더 번질 것 같아."

이런 재난 상황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난 4일,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

불이 난 곳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66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입니다.

4층 상가동에서 시작된 불이 고층 주거동으로 번졌다면, 자칫 영화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신축 건물들이 더 높아지고, 더 거대해지면서 화재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급증하고 있는 대형 복합건물의 소방 안전 실태를 점검했습니다.

부산 해운대를 따라 대규모 마천루가 형성돼 있습니다.

건축물 규정에서는 30층 이상을 고층 건물로 보고 이 중에서도 50층 이상은 초고층 건물로 분류합니다.

현재 국내 초고층 건물 80여 채 가운데 가장 많은 27채가 이곳 부산에 몰려있고, 30층 이상 준초고층 건물도 3백 채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 한 곳에서, 지난 2010년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켜 충격을 줬습니다.

<녹취> 입주민 : "밑에서부터 중간 건물과 건물 사이 중간으로 막 타고 올라갔어요."

건물 꼭대기 38층까지 불이 옮겨붙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해운대 고층 건물 들어가고, 해운대 고층 화재 이후 건설된 한 초고층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50층 높이인 이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 입주자들은 어떻게 대피할 수 있을까?

[대피 경로 있나?]

이 건물에는 맨꼭대기층에서 지상까지 통하는 특수피난계단이 설치돼있습니다.

이 계단과 연결되는 건물 중간층에는 피난안전구역이 마련돼있습니다.

17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데, 지상으로의 탈출이나 옥상 진입이 어려운 경우 화염을 피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공간 한쪽에 화재를 더 키울 수 있는 도시가스 배관이 보입니다.

<녹취>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화재와 관련이 직접적으로 돼 있는 도시가스관이 지나가거나 그런 것들이 아주 좋지가 않습니다."

피난안전구역으로 유도하는 안내 표시도 부족합니다.

<녹취>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그 층에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돼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주변에 겨우 가야 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시행된 초고층 재난관리 특별법에 따라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이런 피난안전구역을 30층마다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30층 이상 49층 이하 준초고층의 경우는 지상까지 연결되는 직통 피난계단이 있으면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예외 규정 때문에 전국 고층 건물의 97%나 되는 2천5백여 채 대부분은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안형준(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 : "요새 나오는 것이 48층, 49층짜리 건물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초고층의 제한을 안 받으려고. 48층이나 49층이나 50층 건물하고 똑같은데도..."

[자체 진화 얼마나?]

초고층 건물은 골든 타임 확보가 관건인 만큼 초기 자체 진화가 중요합니다.

이 건물 곳곳에도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 경보기가 필수로 설치돼 있습니다.

취재진이 소방당국과 함께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봤습니다.

<녹취> 박영순(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교) : "소방교 연기를 감지해서 저기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수신기로 신호를 보내주는 장비입니다."

화재 경보기도 작동시켜봤습니다.

모든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문제는 언제든 임의로 꺼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동탄 화재와 2014년 고양터미널 화재 모두 오작동을 이유로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 경보기 등을 설치해놓고도 꺼둔 게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녹취> 대피 상점 직원(음성변조) : "1-2분 사이에 연기가 자욱하게 내려와가지고 막 뛰어나왔는데 유독가스 냄새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소방시설을 꺼두는 게 흔한 일이라고 한 건물 관리업체는 증언합니다.

<녹취> 건물 관리업체(음성변조) : "많은 경우 꺼달라고 하죠. 건물주나 건물관리 대행사들 이런 쪽에서.사이렌이 울리게 되면 입주사, 매장 방문고객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매장이나 식당에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이런 것들을 건물 관리 업체들이 다 배상을 하게 돼 있거든요."

상가 운영 시간 중에 켜두는 건 사실상 소방 점검이 있을 때뿐입니다.

<녹취> 건물 관리업체(음성변조) : "점검 나올 때는 저희가 켜놔야죠. 건물주한테 그런 경우 다 얘기를 하고 잠깐이니까 켜놓고 그렇게 하죠. 그럼 또 건물주는 (소방점검) 끝났으면 다시 꺼놓으라고 하고."

['굴뚝 효과' 피할 길은?]

고층 건물은 화염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굴뚝 효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집니다.

사람이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속도보다,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속도가 12배 이상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내 최고층 건물인 제2롯데월드에서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대피 실험을 해봤습니다.

118층에서 일부는 16개 층을 걸어내려와 피난용 승강기를 이용하도록 했고, 나머지는 오로지 피난용 계단을 통해 지상까지 걸어 내려오게 했습니다.

피난용 승강기 이용자들은 21분 30초만에 건물을 빠져나온 반면, 계단만 이용할 경우, 1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승강기 활용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2년부터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피난 전용 승강기를 적어도 한 대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점검에 나선 건물처럼 주거 전용일 경우 피난용 승강기가 없습니다.

유동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축 건물은 상업용과 주거용이 공존하는 복합형 건물이 늘어나는 추셉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다중이용시설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또 이 공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있기 때문에 인명피해도 큽니다. 실제로 탈출경로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돼 있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대형쇼핑몰의 소방안전시설을 살펴봤습니다.

매장 한쪽 입점 업체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색 작업을 하며 천장의 스프링클러까지 페인트로 덮은 자국이 보입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도색이 돼서 실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스크링클러의 작동성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보장할 수 없게끔..."

이번엔 에스컬레이터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불길을 차단할 수 있는 방화셔터가 양쪽에 설치돼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이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일부가 구부러져 있습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잘 말려 올라가지 않았다면 내려와서 작동을 하는데도 일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서연기라든지 화염 같은 것들이 바깥으로 확산이 안되게 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비상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 구조인데, 비상구로 가는 통로에는 물건까지 적재돼있습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평상시에도 좁지만 비상시엔 많은 사람들이동시에 이동하거나 이럴 때는 굉장히 좁아져서 사실 피난에 장애가 될 수 있죠."

또다른 쇼핑몰도 마찬가집니다.

방화벽이 내려올 자리는 물건들이 차지했습니다.

천장에 달린 투명한 구조물은 가운데가 뻥 비어있습니다.

연기 확산을 막아 화재 감지를 빠르게 하는 제연경계벽이 망가진 겁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제연구획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경우 연기가 건물 전체로 퍼져서 화재 감지 자체가 늦어지게 되는 이런 위험성이 있어요."

특히 방화벽과 제연구획, 스프링클러 훼손은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습니다.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 역시 4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양터미널 화재 사망 모두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습니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2천5백여 채로 6년만에 3배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진압용 장비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있는 진화용 굴절 사다리차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25층에 불과합니다

소방용 헬기도 충돌 위험이 커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녹취> 안성호(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경) : "초고층건물 같은 경우에는 이런 부분들에 대응을 할 수 있는 초고층용 장비들이 아주 절실한 부분입니다. 확충할 필요가 있죠."

결국 현재로서는 소방관이 직접 걸어올라가 진화해야 하는 상황.

59층 초고층건물에 불이 난 걸 가정해 소방관이 계단으로 걸어올라가는 실험을 해봤습니다.

맨꼭대기층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0분.

실제 화재가 나면 2배 이상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 허정일(경기북부소방본부 특수대응단) : "실제 상황일 땐 심적인 부분 그런 것도 있지만 농연이라든지 아니면 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요."

공기통도 평상시에는 20분 정도 버틸 수 있지만, 호흡이 가빠지면 10분만에 공기가 다 바닥납니다.

진압 활동에 평균 80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부산 해운대 고층 화재 이후 방염 처리와 스크링 클러 설치 대상이 늘어나는 등 소방 관련 법이 더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대형화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그 원인도 이전 사고들과 꼭 닮아있습니다.

<인터뷰>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아무리 좋은 소방시설이 설치됐다 하더라도 소방시설을 설치, 유지, 관리, 운영하는 사람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면..."

건물주나 관리자뿐 아니라 실제 이용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도 필요합니다.

<인터뷰> 안형준(한국초고층건축학회 연구원장) : "제2롯데월드는 22층, 40층, 60층, 80층, 102층에 피난층이 있어요. 거기 사용자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인지하고 있는지는 저는 미지수라고 봅니다."

한 순간에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는 명백한 인재였습니다.

재난방재 시스템도 더 손봐야 하지만, 설마하는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형 참사가 언제 또다시 우리 사회를 덮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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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건물에 도사린 화마
    • 입력 2017-02-12 23:01:43
    • 수정2017-02-12 23:25:59
    취재파일K
<프롤로그>

영화 '타워' 중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초고층 건물.

순식간에 번진 불길에 건물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해 발버둥칩니다.

<녹취> "조금 있으면 더 번질 것 같아."

이런 재난 상황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지난 4일,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

불이 난 곳은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66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입니다.

4층 상가동에서 시작된 불이 고층 주거동으로 번졌다면, 자칫 영화같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리포트>

최근 신축 건물들이 더 높아지고, 더 거대해지면서 화재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급증하고 있는 대형 복합건물의 소방 안전 실태를 점검했습니다.

부산 해운대를 따라 대규모 마천루가 형성돼 있습니다.

건축물 규정에서는 30층 이상을 고층 건물로 보고 이 중에서도 50층 이상은 초고층 건물로 분류합니다.

현재 국내 초고층 건물 80여 채 가운데 가장 많은 27채가 이곳 부산에 몰려있고, 30층 이상 준초고층 건물도 3백 채가 넘습니다.

이 가운데 한 곳에서, 지난 2010년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켜 충격을 줬습니다.

<녹취> 입주민 : "밑에서부터 중간 건물과 건물 사이 중간으로 막 타고 올라갔어요."

건물 꼭대기 38층까지 불이 옮겨붙는 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해운대 고층 건물 들어가고, 해운대 고층 화재 이후 건설된 한 초고층 아파트를 찾았습니다.

50층 높이인 이 건물에 불이 났을 경우 입주자들은 어떻게 대피할 수 있을까?

[대피 경로 있나?]

이 건물에는 맨꼭대기층에서 지상까지 통하는 특수피난계단이 설치돼있습니다.

이 계단과 연결되는 건물 중간층에는 피난안전구역이 마련돼있습니다.

17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데, 지상으로의 탈출이나 옥상 진입이 어려운 경우 화염을 피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공간 한쪽에 화재를 더 키울 수 있는 도시가스 배관이 보입니다.

<녹취>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화재와 관련이 직접적으로 돼 있는 도시가스관이 지나가거나 그런 것들이 아주 좋지가 않습니다."

피난안전구역으로 유도하는 안내 표시도 부족합니다.

<녹취>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그 층에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돼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주변에 겨우 가야 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시행된 초고층 재난관리 특별법에 따라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이런 피난안전구역을 30층마다 설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30층 이상 49층 이하 준초고층의 경우는 지상까지 연결되는 직통 피난계단이 있으면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예외 규정 때문에 전국 고층 건물의 97%나 되는 2천5백여 채 대부분은 피난안전구역이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뷰> 안형준(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 : "요새 나오는 것이 48층, 49층짜리 건물들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초고층의 제한을 안 받으려고. 48층이나 49층이나 50층 건물하고 똑같은데도..."

[자체 진화 얼마나?]

초고층 건물은 골든 타임 확보가 관건인 만큼 초기 자체 진화가 중요합니다.

이 건물 곳곳에도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 경보기가 필수로 설치돼 있습니다.

취재진이 소방당국과 함께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해봤습니다.

<녹취> 박영순(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교) : "소방교 연기를 감지해서 저기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수신기로 신호를 보내주는 장비입니다."

화재 경보기도 작동시켜봤습니다.

모든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문제는 언제든 임의로 꺼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동탄 화재와 2014년 고양터미널 화재 모두 오작동을 이유로 스프링클러와 화재감지기, 경보기 등을 설치해놓고도 꺼둔 게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녹취> 대피 상점 직원(음성변조) : "1-2분 사이에 연기가 자욱하게 내려와가지고 막 뛰어나왔는데 유독가스 냄새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소방시설을 꺼두는 게 흔한 일이라고 한 건물 관리업체는 증언합니다.

<녹취> 건물 관리업체(음성변조) : "많은 경우 꺼달라고 하죠. 건물주나 건물관리 대행사들 이런 쪽에서.사이렌이 울리게 되면 입주사, 매장 방문고객들이 긴급하게 대피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매장이나 식당에서 발생하는 손해배상 이런 것들을 건물 관리 업체들이 다 배상을 하게 돼 있거든요."

상가 운영 시간 중에 켜두는 건 사실상 소방 점검이 있을 때뿐입니다.

<녹취> 건물 관리업체(음성변조) : "점검 나올 때는 저희가 켜놔야죠. 건물주한테 그런 경우 다 얘기를 하고 잠깐이니까 켜놓고 그렇게 하죠. 그럼 또 건물주는 (소방점검) 끝났으면 다시 꺼놓으라고 하고."

['굴뚝 효과' 피할 길은?]

고층 건물은 화염이 급속도로 올라가는 '굴뚝 효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집니다.

사람이 계단으로 걸어 내려오는 속도보다,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속도가 12배 이상 빠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국내 최고층 건물인 제2롯데월드에서 시민 3천명을 대상으로 대피 실험을 해봤습니다.

118층에서 일부는 16개 층을 걸어내려와 피난용 승강기를 이용하도록 했고, 나머지는 오로지 피난용 계단을 통해 지상까지 걸어 내려오게 했습니다.

피난용 승강기 이용자들은 21분 30초만에 건물을 빠져나온 반면, 계단만 이용할 경우, 1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승강기 활용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2년부터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피난 전용 승강기를 적어도 한 대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취재진이 점검에 나선 건물처럼 주거 전용일 경우 피난용 승강기가 없습니다.

유동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신축 건물은 상업용과 주거용이 공존하는 복합형 건물이 늘어나는 추셉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다중이용시설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또 이 공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있기 때문에 인명피해도 큽니다. 실제로 탈출경로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돼 있거나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대형쇼핑몰의 소방안전시설을 살펴봤습니다.

매장 한쪽 입점 업체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색 작업을 하며 천장의 스프링클러까지 페인트로 덮은 자국이 보입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도색이 돼서 실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스크링클러의 작동성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을 보장할 수 없게끔..."

이번엔 에스컬레이터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불길을 차단할 수 있는 방화셔터가 양쪽에 설치돼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이 끝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일부가 구부러져 있습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잘 말려 올라가지 않았다면 내려와서 작동을 하는데도 일부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서연기라든지 화염 같은 것들이 바깥으로 확산이 안되게 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비상구를 찾기 어려운 미로 구조인데, 비상구로 가는 통로에는 물건까지 적재돼있습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평상시에도 좁지만 비상시엔 많은 사람들이동시에 이동하거나 이럴 때는 굉장히 좁아져서 사실 피난에 장애가 될 수 있죠."

또다른 쇼핑몰도 마찬가집니다.

방화벽이 내려올 자리는 물건들이 차지했습니다.

천장에 달린 투명한 구조물은 가운데가 뻥 비어있습니다.

연기 확산을 막아 화재 감지를 빠르게 하는 제연경계벽이 망가진 겁니다.

<녹취>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제연구획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경우 연기가 건물 전체로 퍼져서 화재 감지 자체가 늦어지게 되는 이런 위험성이 있어요."

특히 방화벽과 제연구획, 스프링클러 훼손은 인명 피해를 키울 수 있습니다.

4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 역시 4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고양터미널 화재 사망 모두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습니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2천5백여 채로 6년만에 3배 이상 늘었습니다.

하지만 진압용 장비 수준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 있는 진화용 굴절 사다리차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25층에 불과합니다

소방용 헬기도 충돌 위험이 커 실효성이 떨어집니다.

<녹취> 안성호(부산 해운대소방서 소방경) : "초고층건물 같은 경우에는 이런 부분들에 대응을 할 수 있는 초고층용 장비들이 아주 절실한 부분입니다. 확충할 필요가 있죠."

결국 현재로서는 소방관이 직접 걸어올라가 진화해야 하는 상황.

59층 초고층건물에 불이 난 걸 가정해 소방관이 계단으로 걸어올라가는 실험을 해봤습니다.

맨꼭대기층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0분.

실제 화재가 나면 2배 이상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녹취> 허정일(경기북부소방본부 특수대응단) : "실제 상황일 땐 심적인 부분 그런 것도 있지만 농연이라든지 아니면 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더 힘들어요."

공기통도 평상시에는 20분 정도 버틸 수 있지만, 호흡이 가빠지면 10분만에 공기가 다 바닥납니다.

진압 활동에 평균 80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겁니다.

부산 해운대 고층 화재 이후 방염 처리와 스크링 클러 설치 대상이 늘어나는 등 소방 관련 법이 더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대형화재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그 원인도 이전 사고들과 꼭 닮아있습니다.

<인터뷰> 주승호(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 : "아무리 좋은 소방시설이 설치됐다 하더라도 소방시설을 설치, 유지, 관리, 운영하는 사람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면..."

건물주나 관리자뿐 아니라 실제 이용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도 필요합니다.

<인터뷰> 안형준(한국초고층건축학회 연구원장) : "제2롯데월드는 22층, 40층, 60층, 80층, 102층에 피난층이 있어요. 거기 사용자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되는데 인지하고 있는지는 저는 미지수라고 봅니다."

한 순간에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 화재는 명백한 인재였습니다.

재난방재 시스템도 더 손봐야 하지만, 설마하는 안전불감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대형 참사가 언제 또다시 우리 사회를 덮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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