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먹잇감? 구멍 뚫린 개도국 원조 사업

입력 2017.02.19 (22:53) 수정 2017.02.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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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현재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1960년대 미국의 원조를 받아 지어졌는데요.

550만 달러에 달하는 건축자금은 미국의 공적개발원조 이른바 ODA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은 과거엔 도움을 받는 국가였지만 2010년부터는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국제적 위상이 바뀌었는데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공적개발원조 예산 역시 매년 늘어나 올해는 2조 6천여억 원에 달하는데요.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집행과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미얀마 원조사업이 등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로까지 번진 공적개발원조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해봤습니다.

<리포트>

인구 5천150만 명에 국토 면적은 남한의 7배.

1인당 GDP는 천2백 달러에 불과하지만 매년 8% 이상 성장 하고 있는 나라.

미얀마는 긴 군사독재를 거쳐 지난 2011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건설붐이 일고 있는데 상당수가 공적원조로 들어온 외국자본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역시 이런 '건설 사업'이었습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양곤 외곽 지역.

도로가 좁고 포장 상태까지 좋지 않아 차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녹취> 최정훈(미얀마 현지 교민) : "컨벤션센터 그러면 대부분이 좀 차량 이동이 편해야 되는데 거길 골목으로 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한참을 이동하자 나타나는 허름한 가건물들.

'미얀마 K-타운' 조성사업 부지로 검토됐던 곳입니다.

10만3천여 제곱미터 면적의 이 부지는 미얀마 상무부 소유인데 지금은 민간에 창고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K-타운 사업에 포함된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해 공적개발원조 시행기관인 한국의 코이카와 미얀마 상무부는 지난해 9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투입될 예산은 7백여 억원, 취재파일K가 이 사업의 조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보고서는 기존의 유사 시설물과 비교해 "입지 여건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접근성, 기반시설, 주변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사업성이 매우 취약하다"고 결론냈습니다.

이 조사에 참여한 KDI의 전직 연구원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명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타당성 조사 참여 연구원(음성변조) : "670억은 건축비만 달랑 있는데, 거기에 부대시설하고 진출입로 만들고, 수도, 전기 등 기본적인 인프라 갖추는 것만 해도 그 금액이 들 겠더라고요."

이 연구원은 또, 조사 주제조차 통보받지 못한 상태에서 미얀마 현지에 도착했을 정도로 모든 과정이 이례적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녹취> 타당성 조사 참여 연구원(음성변조) : "저도 깜짝 놀란 게, 출장 명령도 이틀 전에 받았고요.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갔어요. 노트북이고 뭐고 다 아무것도 못 갖고 들어오게 해서 몸만 갔어요. 브리핑도 공항에서 받고. 4일 만에 평가 보고서 쓰라고 하는데. 일정이 굉장히 짧게 잡혀 있었어요. 통상 타당성 조사는 4일보다는 훨씬 길게 해요."

실무진에서 강력한 반대의견이 나온 데다가 언론에 최순실 의혹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이 사업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렇다면 부지 선정부터 엉터리였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지난해 7월 5일.

미얀마 상무부 장관이 방한했을 때 컨벤션센터 건립 요청을 받았다는 겁니다.

<인터뷰> 최성호(코이카 지역사업이사) : "컨벤션센터 건립 건은 미얀마 상무부 장관이 지난해 7월에 방한해서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이후에 알게됐습니다."

외교부와 코이카에 따르면 사흘 뒤인 지난해 7월 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얀마 상무부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 요청을 외교부에 전달했습니다.

또 엿새만인 지난해 7월 14일 김인식 코이카 이사장은 실무진과 미얀마를 직접 방문해 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속전속결로 사업 검토가 이뤄졌던 겁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기 전부터 비선을 통해 물밑작업이 이뤄졌던 것 아니냐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이 확보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에는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이 공적개발원조 사업에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참여시키라고 지시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은 취재진과 만나 최순실씨가 지난해 초 공적개발원조 문건을 건네며 이익을 챙길 방법을 알아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박헌영 과장(K스포츠재단) : "특정 ODA 딱 하나를 보여주는게 아니고 여러 나라에 관련된 것들이었고. 한 프로젝트 당 보면 써있는 예산이 2억불, 1억불 이런식으로 써 있었어요. 다 해보면 5억1천6백만불이 넘어가는 것이였거든요. 그런 구상안이라고 보여줬던게 미얀마도 들어있고. (최순실의 지시는) '그거에 맞춰서 뭔가 그 예산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 그런 거였죠."

최순실 씨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씨가 최근 특검에 제출한 문건입니다.

'미얀마 컨벤션센터 건립 관련 회의결과' 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지난해 8월 청와대 관계자와 코이카 수뇌부가 모여 미얀마 K-타운 사업을 논의한 내용이 적혀 있고, 그 위에는 최 씨가 자필로 쓴 쪽지도 붙어 있습니다.

특검은 최 씨 측이 미얀마 사정에 정통한 사업가 인모 씨를 통해 이권을 챙기려 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순실씨측이 인씨가 설립한 M사의 지분 15%를 차명으로 넘겨받은 뒤 M사를 내세워 미얀마 K-타운 사업권을 따내려 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최순실 씨의 미얀마 사업 파트너였던 인씨는 언론에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인모씨(음성변조) : "제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나름대로. 그런데 이런 것에 갑자기 연루됐으니까.."

최순실씨가 공적개발원조에 개입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방식은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코리아에이드' 사업에서 이미 한차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국빈방문에서 알려진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연 단위 계획인 2016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에는 없던 사업입니다.

계획이 없었기에 예산도 없었지만 대통령 순방을 앞두고 외교부 전략사업비와 각 부처의 자체 예산 50억을 조달해 사업이 급조됐습니다.

실무는 최 씨와 측근들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회사들이 도맡았습니다.

코리아에이드 출범식의 태권도 시범 공연은 K스포츠재단에서 진행했고, 홍보 영상은 차은택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제작했습니다.

또, 아프리카 현지의 음식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비빔밥이나 쌀 가공품을 나눠줬는데 이같은 '케이밀' 사업에는 '미르재단'이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경협(의원/국회 외교통상위) : "미르재단에서 기획한 작품은 K-밀사업이라고 그래서 쌀가루나 쌀과자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이게 아프리카 실정에 맞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물이 없어서 쌀가루는 거의 타 먹지도 못하고요. 실질적으로 당장에 영양실조에 굶주리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쉽게 눈독을 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올해 책정된 공적개발원조 예산은 2조 6천여억 원에 달하고, 사업별로 보면 진행 중인 것만 천 2백여 개나 됩니다.

특히 모든 과정이 해외에서 진행되다 보니 계획 수립과 진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평가도 쉽지 않습니다.

컨트럴타워 격인 국무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지만 이 많은 사업이 몇 차례 회의만으로 통과되고, 그나마도 서면 심의가 많습니다.

지난해엔 총 5번의 심의 중 3번을 회의 없이 서면으로만 처리했습니다.

<인터뷰> 한재광(대표/발전대안 피다/구 ODA 워치) : "굉장히 많은 부서가 ODA를 나눠져 있기 때문에 '이 주제를 총괄해서 모아서 감시하는 국회 내 특별위원회가 반드시 구성이 되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요.현장이나 한국에서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더 나서야 되고."

누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도 제대로 알기도 어렵습니다.

정부는 '국제원조투명성기구'에 가입해서 공적개발원조 정보를 공개한다고 하지만 전체 공개 항목인 38개 중 필수 항목인 13개만 공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핵심 정보인 재원의 형태나 예산, 지출, 사업관계 등은 빠져 있습니다.

<인터뷰> 한재광(대표/발전대안 피다/구 ODA 워치) : "'한국국제개발협력이 얼마나 투명한지, 얼마나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잘 달성하는지를 보고하는지를 다루는 책무성 소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생각을 하고요."

이러다보니 허술한 공적개발원조 사업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지난 2009년부터 코이카와 국내기업이 추진했던 연료전지 발전소 사업입니다.

사전 타당성 조사가 예측을 빗나가면서 전력을 생산할 때마다 오히려 손실이 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3년 만에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예산 36억원만 낭비됐고 이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만 사업비를 챙긴 셈이 됐습니다.

농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페루 꼬라오마을에 지어주기로 한 감자가루 공장의 경우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 없이 일단 공사가 먼저 시작됐습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현지 자치단체가 발을 뺐고, 완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치됐습니다.

더구나 건물 공사과정에서 균열 등 부실시공까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현지 공사 업체에 공사비를 선지급해 돌려받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최성호(코이카 지역사업이사) : "감사결과보고에 대해선 코이카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도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무상원조 사업이 약 40여개 정부부처와 자치단체 이런데 분산되어서 운영되다 보니 무상원조의 분절화 현상으로 인해서 관리감독의 어려움이 있는.."

공적개발원조는 크게 유상과 무상으로 나뉘는데 유상은 기재부와 수출입은행, 무상은 외교부와 코이카가 주로 담당합니다.

수출입은행과 코이카는 개발원조 사업의 주무기관이다 보니 나름대로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다른 부처들과 자치단체 등 단독으로 이뤄지는 공적개발원조는 사업 주체들이 현지사정에 더 어둡고 경험도 더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인근의 한 초등학교.

한국의 한 민간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개발원조 예산을 받아 지난 2013년 '작은도서관' 사업을 진행했던 곳입니다.

작은 도서관은 학교 등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책과 집기 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금까지 문체부 예산 4억 5천만 원이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도서관 한켠은 텅 비었고 남은 책들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감사원은 이 사업을 주관하는 문체부가 원조사업의 합의문서인 '협의의사록'을 케냐 당국과 체결하지 않고 업무를 위탁한 민간 재단의 사업계획서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원조를 받는 국가와 긴밀한 협의가 부족해 사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농식품부에서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직접 진행했던 농촌개발협력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식품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4억여 원을 투입해 르완다 농촌에 양계장과 양어장 등을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전기부족으로 해당 시설들은 무용지물이 돼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로 실상이 알려진 이후 농식품부가 추가 예산을 투입해 보완을 하긴 했지만 시설은 수년간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됐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수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허술한 관리와 비전문성, 감시 체계 부족 등으로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제원조자금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지구촌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더 치밀한 계획과 촘촘한 감시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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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 먹잇감? 구멍 뚫린 개도국 원조 사업
    • 입력 2017-02-19 23:14:15
    • 수정2017-02-19 23:20:20
    취재파일K
<오프닝>

현재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1960년대 미국의 원조를 받아 지어졌는데요.

550만 달러에 달하는 건축자금은 미국의 공적개발원조 이른바 ODA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은 과거엔 도움을 받는 국가였지만 2010년부터는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국제적 위상이 바뀌었는데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공적개발원조 예산 역시 매년 늘어나 올해는 2조 6천여억 원에 달하는데요.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집행과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미얀마 원조사업이 등장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순실 게이트'로까지 번진 공적개발원조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해봤습니다.

<리포트>

인구 5천150만 명에 국토 면적은 남한의 7배.

1인당 GDP는 천2백 달러에 불과하지만 매년 8% 이상 성장 하고 있는 나라.

미얀마는 긴 군사독재를 거쳐 지난 2011년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건설붐이 일고 있는데 상당수가 공적원조로 들어온 외국자본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순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역시 이런 '건설 사업'이었습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양곤 외곽 지역.

도로가 좁고 포장 상태까지 좋지 않아 차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녹취> 최정훈(미얀마 현지 교민) : "컨벤션센터 그러면 대부분이 좀 차량 이동이 편해야 되는데 거길 골목으로 좀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한참을 이동하자 나타나는 허름한 가건물들.

'미얀마 K-타운' 조성사업 부지로 검토됐던 곳입니다.

10만3천여 제곱미터 면적의 이 부지는 미얀마 상무부 소유인데 지금은 민간에 창고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K-타운 사업에 포함된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해 공적개발원조 시행기관인 한국의 코이카와 미얀마 상무부는 지난해 9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투입될 예산은 7백여 억원, 취재파일K가 이 사업의 조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보고서는 기존의 유사 시설물과 비교해 "입지 여건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접근성, 기반시설, 주변 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사업성이 매우 취약하다"고 결론냈습니다.

이 조사에 참여한 KDI의 전직 연구원은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명확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녹취> 타당성 조사 참여 연구원(음성변조) : "670억은 건축비만 달랑 있는데, 거기에 부대시설하고 진출입로 만들고, 수도, 전기 등 기본적인 인프라 갖추는 것만 해도 그 금액이 들 겠더라고요."

이 연구원은 또, 조사 주제조차 통보받지 못한 상태에서 미얀마 현지에 도착했을 정도로 모든 과정이 이례적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녹취> 타당성 조사 참여 연구원(음성변조) : "저도 깜짝 놀란 게, 출장 명령도 이틀 전에 받았고요. 뭘 하는지도 모르고 갔어요. 노트북이고 뭐고 다 아무것도 못 갖고 들어오게 해서 몸만 갔어요. 브리핑도 공항에서 받고. 4일 만에 평가 보고서 쓰라고 하는데. 일정이 굉장히 짧게 잡혀 있었어요. 통상 타당성 조사는 4일보다는 훨씬 길게 해요."

실무진에서 강력한 반대의견이 나온 데다가 언론에 최순실 의혹 관련 보도가 쏟아지면서 이 사업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그렇다면 부지 선정부터 엉터리였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은 대체 어떻게 시작된 걸까.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은 지난해 7월 5일.

미얀마 상무부 장관이 방한했을 때 컨벤션센터 건립 요청을 받았다는 겁니다.

<인터뷰> 최성호(코이카 지역사업이사) : "컨벤션센터 건립 건은 미얀마 상무부 장관이 지난해 7월에 방한해서 우리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이후에 알게됐습니다."

외교부와 코이카에 따르면 사흘 뒤인 지난해 7월 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미얀마 상무부의 컨벤션센터 건립 사업 요청을 외교부에 전달했습니다.

또 엿새만인 지난해 7월 14일 김인식 코이카 이사장은 실무진과 미얀마를 직접 방문해 컨벤션센터 건립사업을 직접 챙기고 있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속전속결로 사업 검토가 이뤄졌던 겁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의 공식 요청이 있기 전부터 비선을 통해 물밑작업이 이뤄졌던 것 아니냐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이 확보한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에는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이 공적개발원조 사업에 미르와 K스포츠재단을 참여시키라고 지시한 내용이 적혀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은 취재진과 만나 최순실씨가 지난해 초 공적개발원조 문건을 건네며 이익을 챙길 방법을 알아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박헌영 과장(K스포츠재단) : "특정 ODA 딱 하나를 보여주는게 아니고 여러 나라에 관련된 것들이었고. 한 프로젝트 당 보면 써있는 예산이 2억불, 1억불 이런식으로 써 있었어요. 다 해보면 5억1천6백만불이 넘어가는 것이였거든요. 그런 구상안이라고 보여줬던게 미얀마도 들어있고. (최순실의 지시는) '그거에 맞춰서 뭔가 그 예산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 그런 거였죠."

최순실 씨의 측근이었던 고영태 씨가 최근 특검에 제출한 문건입니다.

'미얀마 컨벤션센터 건립 관련 회의결과' 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지난해 8월 청와대 관계자와 코이카 수뇌부가 모여 미얀마 K-타운 사업을 논의한 내용이 적혀 있고, 그 위에는 최 씨가 자필로 쓴 쪽지도 붙어 있습니다.

특검은 최 씨 측이 미얀마 사정에 정통한 사업가 인모 씨를 통해 이권을 챙기려 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순실씨측이 인씨가 설립한 M사의 지분 15%를 차명으로 넘겨받은 뒤 M사를 내세워 미얀마 K-타운 사업권을 따내려 했다는 겁니다.

이와 관련해 최순실 씨의 미얀마 사업 파트너였던 인씨는 언론에 잘못 알려진 내용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인모씨(음성변조) : "제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일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나름대로. 그런데 이런 것에 갑자기 연루됐으니까.."

최순실씨가 공적개발원조에 개입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방식은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코리아에이드' 사업에서 이미 한차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국빈방문에서 알려진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연 단위 계획인 2016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에는 없던 사업입니다.

계획이 없었기에 예산도 없었지만 대통령 순방을 앞두고 외교부 전략사업비와 각 부처의 자체 예산 50억을 조달해 사업이 급조됐습니다.

실무는 최 씨와 측근들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회사들이 도맡았습니다.

코리아에이드 출범식의 태권도 시범 공연은 K스포츠재단에서 진행했고, 홍보 영상은 차은택 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플레이 그라운드'에서 제작했습니다.

또, 아프리카 현지의 음식 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비빔밥이나 쌀 가공품을 나눠줬는데 이같은 '케이밀' 사업에는 '미르재단'이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김경협(의원/국회 외교통상위) : "미르재단에서 기획한 작품은 K-밀사업이라고 그래서 쌀가루나 쌀과자를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이게 아프리카 실정에 맞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물이 없어서 쌀가루는 거의 타 먹지도 못하고요. 실질적으로 당장에 영양실조에 굶주리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 쉽게 눈독을 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올해 책정된 공적개발원조 예산은 2조 6천여억 원에 달하고, 사업별로 보면 진행 중인 것만 천 2백여 개나 됩니다.

특히 모든 과정이 해외에서 진행되다 보니 계획 수립과 진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평가도 쉽지 않습니다.

컨트럴타워 격인 국무총리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계획을 수립하고 검토하지만 이 많은 사업이 몇 차례 회의만으로 통과되고, 그나마도 서면 심의가 많습니다.

지난해엔 총 5번의 심의 중 3번을 회의 없이 서면으로만 처리했습니다.

<인터뷰> 한재광(대표/발전대안 피다/구 ODA 워치) : "굉장히 많은 부서가 ODA를 나눠져 있기 때문에 '이 주제를 총괄해서 모아서 감시하는 국회 내 특별위원회가 반드시 구성이 되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요.현장이나 한국에서 제대로 감시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더 나서야 되고."

누가 어떻게 돈을 쓰는지도 제대로 알기도 어렵습니다.

정부는 '국제원조투명성기구'에 가입해서 공적개발원조 정보를 공개한다고 하지만 전체 공개 항목인 38개 중 필수 항목인 13개만 공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핵심 정보인 재원의 형태나 예산, 지출, 사업관계 등은 빠져 있습니다.

<인터뷰> 한재광(대표/발전대안 피다/구 ODA 워치) : "'한국국제개발협력이 얼마나 투명한지, 얼마나 사업들을 효과적으로 잘 달성하는지를 보고하는지를 다루는 책무성 소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생각을 하고요."

이러다보니 허술한 공적개발원조 사업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력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지난 2009년부터 코이카와 국내기업이 추진했던 연료전지 발전소 사업입니다.

사전 타당성 조사가 예측을 빗나가면서 전력을 생산할 때마다 오히려 손실이 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3년 만에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예산 36억원만 낭비됐고 이 사업에 참여한 국내 기업만 사업비를 챙긴 셈이 됐습니다.

농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페루 꼬라오마을에 지어주기로 한 감자가루 공장의 경우 제대로 된 타당성 검토 없이 일단 공사가 먼저 시작됐습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현지 자치단체가 발을 뺐고, 완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치됐습니다.

더구나 건물 공사과정에서 균열 등 부실시공까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현지 공사 업체에 공사비를 선지급해 돌려받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인터뷰> 최성호(코이카 지역사업이사) : "감사결과보고에 대해선 코이카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제도 개선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무상원조 사업이 약 40여개 정부부처와 자치단체 이런데 분산되어서 운영되다 보니 무상원조의 분절화 현상으로 인해서 관리감독의 어려움이 있는.."

공적개발원조는 크게 유상과 무상으로 나뉘는데 유상은 기재부와 수출입은행, 무상은 외교부와 코이카가 주로 담당합니다.

수출입은행과 코이카는 개발원조 사업의 주무기관이다 보니 나름대로 전문성과 축적된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다른 부처들과 자치단체 등 단독으로 이뤄지는 공적개발원조는 사업 주체들이 현지사정에 더 어둡고 경험도 더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인근의 한 초등학교.

한국의 한 민간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개발원조 예산을 받아 지난 2013년 '작은도서관' 사업을 진행했던 곳입니다.

작은 도서관은 학교 등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책과 집기 등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금까지 문체부 예산 4억 5천만 원이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도서관 한켠은 텅 비었고 남은 책들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감사원은 이 사업을 주관하는 문체부가 원조사업의 합의문서인 '협의의사록'을 케냐 당국과 체결하지 않고 업무를 위탁한 민간 재단의 사업계획서에만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원조를 받는 국가와 긴밀한 협의가 부족해 사업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겁니다.

농식품부에서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직접 진행했던 농촌개발협력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식품부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14억여 원을 투입해 르완다 농촌에 양계장과 양어장 등을 지어줬습니다.

하지만, 전기부족으로 해당 시설들은 무용지물이 돼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로 실상이 알려진 이후 농식품부가 추가 예산을 투입해 보완을 하긴 했지만 시설은 수년간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됐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는 수조 원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이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허술한 관리와 비전문성, 감시 체계 부족 등으로 세금이 줄줄 새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국제원조자금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지구촌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더 치밀한 계획과 촘촘한 감시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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