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자백의 덫

입력 2017.02.26 (22:30) 수정 2017.02.27 (01: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

"판결하겠습니다.15년형을 선고하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피고인 최 모 씨 어머니 : "교도소에 면회 갔을 때 그냥 고개 숙이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모습이 항상 눈에서 어른거리고.."

16년 뒤 "무죄"

<녹취> 최 모 씨('약촌 오거리'사건 사법 피해자) : "아무도 안 믿어주니까 누구한테 하소연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당시에는.."

<인터뷰> 강인구(삼례3인조 사법 피해자) : "처음에는 부인을 했죠. 아니라고 하다가 폭행이 가혹행위가 심해지니까..."

17년 뒤 "무죄"

<인터뷰> 강인구(삼례3인조 사법 피해자) : "(그동안) 네가 전과자냐고..(직장생활을 할 때) 뭐 하나 잃어버리면 꼭 나한테..제품 하나 없어지면 다 나한테 말하니까.."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친 이른바 '강력범'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살인범, 3인조 강도치사범으로 네 사람이 20년 가까이 억울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이 기막힌 사건 한 가운데는 허위자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죄도 없이 거짓자백을 했을까요.

검찰은, 또 법원은 왜 이를 가려내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허위자백은 그 때, 이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요.

<리포트>

열여덟살에 '3인조 강도치사범'이 됐던 강인구씨.

이제 30대 중반이 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그가 3년 반 옥살이까지 하고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처음에 좀 힘들었죠.직장생활 때문에.. 직장생활 해도 전과자라고 하면 좀 찝찝해하죠. 최근에는 경기도 AI.. (매몰 작업 했어요)"

18년 전. 작은 동네에서 슈퍼 할머니가 3인조 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

그날 밤 경찰은 영문을 모르는 인구씨에게 수갑부터 채웠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처음엔 부인을 했죠. 무슨 소린지 모르니까. (형사가) 네가 할머니 죽였지 그래서 아니요 하니까 일단 자술서를 쓰래요"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임명선, 최대열씨가 잇따라 붙들려 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형사들이) 잘 해주려고 했더니만 거짓말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시작된 거죠. 머리를 맞고 발로 밟고.."

결국 인구씨는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자백을 했고, 가짜 자술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만약에 우리가 했으면 3명 다 자술서 썼잖아요. 그러면 (내용이) 맞아야 하는데 다 다르니까 ...나중에는 다 맞춰갔죠."

일 년 뒤 전북 익산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했던 당시 15살 최 모 군이 용의자로 지목됐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 최 군과 연결지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나도. 경찰 몇 명이 모텔로 최 군을 데려갔습니다. 머리 맞기도 많이 했고, 경찰봉으로도 많이 맞고 또 잠을 안 재웠답니다"

경찰은 끝내 최씨로 부터 허위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최 씨는 20대 중반까지 살인죄로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들은 처벌을 받을 것을 알면서 왜 거짓자백을 했을까.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사람은 지치게 돼 있죠. (추궁을 받다보면 )심리적인 에너지 소진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자포자기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차라리 저 사람이 원하는 자백을 해주고 저 사람이 이야기 하는 선처를 받자, 저 사람의 도움을 받자, 그리고 나중에 다음단계에 기소라든지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 이 자백이 잘못된 걸 주장하면 분명히 내 말을 잘 들어줄거다 하고 생각하죠."

61살 최 모 씨.

중소기업 임원으로 일했지만 지난 2001년 집으로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그날 이후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나는 (집에서) '못 나가겠다' 그 사람들은'가자' 그러니까 우리 가족들 앞에서 저를 이렇게 달랑 든 거에요."

검사와 수사관들은 최 씨가 회사를 대신해 조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추궁은 집요하고 또 가혹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나한테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면 넌 지금 빨리 집에 간다 이러더라고요. 쓰레기통에 있는 타자 친 거 폐지 나온 걸 가지고 둘둘 말아서 여기다 집어넣고 돌려요. 입에 넣고 입에 깊숙하게 넣고 돌려요. 검사가 했죠. 너무너무 아파서 진짜 고통스러웠고 그래도 나는 참아야 빨리 집에 가는가 싶어서 참았죠"

수사관들은 최 씨를 밀치고, 꿇어 앉히고, 주먹과 발로 폭행했습니다.

최 씨는 결국 공무원 4명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말했지만 최종 판결은 무죄.

유력한 증거인 최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씨는 당시 늑골이 부러지는 등 외상은 물론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다 넉달 뒤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지금은 15년 째 장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부작용으로 간질까지 생기다 보니까 장애인 2급을 받다보니까 어디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그렇다면 수사기관이 자백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수사관한테는 자백을 받아야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작용하게 됩니다. 아무리 수사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범행을 입증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자백입니다. 왜냐하면 범행을 직접 실행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정들이 있고 .."

수사 때 '선증후포'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증거를 먼저 수집한 후에 체포해 조사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발생합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자백에 대한 인식이나 비중이 매우 크게 인식이 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범죄 혐의가 조금 있다든지 의심이 간다든지 하면 데려다가 심문하면서 자백을 강요하는 이런 관행들이 생깁니다."

특히 수사 단계에서 허위자백이 이뤄지면 경찰은 물론 검찰도 편견에 빠지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심리학적으로 터널비전이라고 합니다. 터널에 들어갔을 때 터널 끝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수사도 마찬가지로 자백이 이뤄지면 수사관이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이 시각만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다 보니까 이 사람의 범죄에 반하는 증거. 이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다 무시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허위자백에 맞춰 증거를 만들고, 진범이 나타나도 체포하지 않는 경우도 벌어집니다.

18년 전 삼례 3인조 강도 사건의 현장검증 영상입니다.

강인구씨를 포함한 10대 3명이 짓지도 않은 죄를 몸으로 재연 합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경찰들 따라서 하래요. 네가 할머니 묶었지? 우리는 뭣도 모르고 가만히 멍하니 있으니까 경찰들이 툭하면 때리고.."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재연하려니까 재연이 안돼죠. 그러니까 강요를 막 하는 거고 그럼 왜 이게 그 당시에는 발각이 안됐냐면 기록상에는 순간순간 캡처한 사진이 들어있고 그 사진 설명을 또 자발적으로 재연한 것인 양 써놓기 때문에 문제점을 몰랐던 거죠.."

이렇게 강요된 허위자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세 사람 다 지적 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였다는 거, 또 그러면 보호자나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데 전혀 그런 변호인의 조력은 없었고 또 보호자조차도 본인들이 보호를 받아야 될 장애인 경우나 아주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혹행위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허위자백을 하는 사법피해자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사이의 허위자백 사례 46건의 원인을 분석하니 1990년 대에는 고문, 폭행, 협박 등이 절반을 넘었지만 2000년 대에는 회유, 유도 신문 등 물리력이 없는 상황에서 허위자백이 늘고 있는 추셉니다.

하지만 허위자백에 내몰린 사람의 기대와 달리 검찰과 법원에서 진실이 제대로 가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미국의 한 저명한 연구에 따르면 허위자백을 한 이후에 재판에 회부된다 하더라도 유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8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백자체가 갖는 신빙성이나 힘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고..."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누명을 벗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인터뷰> 강문대(대한변협 재심소위위원장) : "재판부에서는 확정된 판결을 뒤엎는 일인데 그것은 일반 법이론적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측면도 있고요, 기존 선배 법관들이해놓은 판결이 잘못됐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니까 사실 담당 판사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

대한변협은 지난해부터 재심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법률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억울하다고 모든 사건이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터뷰> 강문대(대한변협 재심소위위원장) : "우리 법원이 그 조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좁게 해석을 해서 법률상 마련돼 있는 재심제도의 활용과 이용을 상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은 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허위자백으로 인한 사법피해를 막기 위해선 피의자 신문 전 과정을 제대로 녹음 ,녹화하는 등 수사의 투명성과 적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강인구, 임명선, 최대열 누명을 벗은 '삼례 3인조'가 국회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당시 사건 판사와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고인이 18년만에 다시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인터뷰> 박범계(국회의원) : "실형을 선고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했던 사법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또 이판결문에 이름 석자를 남긴 사람으로서 사법개혁을 강력하게 누구보다도 주장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책임감과 사과, 용서를 빕니다"

배석판사였던 박 의원은 사건 기록조차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삼례 3인조는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털어놓으며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인터뷰> 최대열(사법 피해자) : "저희 딸들 놀림 안 당하게 했으면, 전과를 없앴으면 제가 그렇게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증거와 진범을 감추고, 오판하고 오심했던 당사자들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제대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허위자백, 그러나 아직도 허위자백을 강요한 수사관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있고, 재판에서도 허위 자백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자백 배제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허위자백의 덫
    • 입력 2017-02-26 23:09:04
    • 수정2017-02-27 01:03:04
    취재파일K
<프롤로그>

"판결하겠습니다.15년형을 선고하겠습니다"

<인터뷰> 당시 피고인 최 모 씨 어머니 : "교도소에 면회 갔을 때 그냥 고개 숙이고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모습이 항상 눈에서 어른거리고.."

16년 뒤 "무죄"

<녹취> 최 모 씨('약촌 오거리'사건 사법 피해자) : "아무도 안 믿어주니까 누구한테 하소연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당시에는.."

<인터뷰> 강인구(삼례3인조 사법 피해자) : "처음에는 부인을 했죠. 아니라고 하다가 폭행이 가혹행위가 심해지니까..."

17년 뒤 "무죄"

<인터뷰> 강인구(삼례3인조 사법 피해자) : "(그동안) 네가 전과자냐고..(직장생활을 할 때) 뭐 하나 잃어버리면 꼭 나한테..제품 하나 없어지면 다 나한테 말하니까.."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을 마친 이른바 '강력범'들이 최근 재심을 통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살인범, 3인조 강도치사범으로 네 사람이 20년 가까이 억울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이 기막힌 사건 한 가운데는 허위자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왜 죄도 없이 거짓자백을 했을까요.

검찰은, 또 법원은 왜 이를 가려내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허위자백은 그 때, 이 사람들만의 이야기일까요.

<리포트>

열여덟살에 '3인조 강도치사범'이 됐던 강인구씨.

이제 30대 중반이 됐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그가 3년 반 옥살이까지 하고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처음에 좀 힘들었죠.직장생활 때문에.. 직장생활 해도 전과자라고 하면 좀 찝찝해하죠. 최근에는 경기도 AI.. (매몰 작업 했어요)"

18년 전. 작은 동네에서 슈퍼 할머니가 3인조 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

그날 밤 경찰은 영문을 모르는 인구씨에게 수갑부터 채웠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처음엔 부인을 했죠. 무슨 소린지 모르니까. (형사가) 네가 할머니 죽였지 그래서 아니요 하니까 일단 자술서를 쓰래요"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임명선, 최대열씨가 잇따라 붙들려 왔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형사들이) 잘 해주려고 했더니만 거짓말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시작된 거죠. 머리를 맞고 발로 밟고.."

결국 인구씨는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거짓자백을 했고, 가짜 자술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만약에 우리가 했으면 3명 다 자술서 썼잖아요. 그러면 (내용이) 맞아야 하는데 다 다르니까 ...나중에는 다 맞춰갔죠."

일 년 뒤 전북 익산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했던 당시 15살 최 모 군이 용의자로 지목됐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 최 군과 연결지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하나도. 경찰 몇 명이 모텔로 최 군을 데려갔습니다. 머리 맞기도 많이 했고, 경찰봉으로도 많이 맞고 또 잠을 안 재웠답니다"

경찰은 끝내 최씨로 부터 허위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최 씨는 20대 중반까지 살인죄로 10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들은 처벌을 받을 것을 알면서 왜 거짓자백을 했을까.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사람은 지치게 돼 있죠. (추궁을 받다보면 )심리적인 에너지 소진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자포자기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는 사람이구나, 그러니까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차라리 저 사람이 원하는 자백을 해주고 저 사람이 이야기 하는 선처를 받자, 저 사람의 도움을 받자, 그리고 나중에 다음단계에 기소라든지 검찰이나 법원에 가서 이 자백이 잘못된 걸 주장하면 분명히 내 말을 잘 들어줄거다 하고 생각하죠."

61살 최 모 씨.

중소기업 임원으로 일했지만 지난 2001년 집으로 수사관들이 들이닥친 그날 이후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나는 (집에서) '못 나가겠다' 그 사람들은'가자' 그러니까 우리 가족들 앞에서 저를 이렇게 달랑 든 거에요."

검사와 수사관들은 최 씨가 회사를 대신해 조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했습니다.

추궁은 집요하고 또 가혹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나한테 사실대로 이야기 해주면 넌 지금 빨리 집에 간다 이러더라고요. 쓰레기통에 있는 타자 친 거 폐지 나온 걸 가지고 둘둘 말아서 여기다 집어넣고 돌려요. 입에 넣고 입에 깊숙하게 넣고 돌려요. 검사가 했죠. 너무너무 아파서 진짜 고통스러웠고 그래도 나는 참아야 빨리 집에 가는가 싶어서 참았죠"

수사관들은 최 씨를 밀치고, 꿇어 앉히고, 주먹과 발로 폭행했습니다.

최 씨는 결국 공무원 4명에게 뇌물을 전달했다고 말했지만 최종 판결은 무죄.

유력한 증거인 최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씨는 당시 늑골이 부러지는 등 외상은 물론 충격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다 넉달 뒤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지금은 15년 째 장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 모 씨(사법 피해자) : "부작용으로 간질까지 생기다 보니까 장애인 2급을 받다보니까 어디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그렇다면 수사기관이 자백에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수사관한테는 자백을 받아야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작용하게 됩니다. 아무리 수사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범행을 입증하고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바로 자백입니다. 왜냐하면 범행을 직접 실행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사정들이 있고 .."

수사 때 '선증후포'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증거를 먼저 수집한 후에 체포해 조사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발생합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자백에 대한 인식이나 비중이 매우 크게 인식이 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범죄 혐의가 조금 있다든지 의심이 간다든지 하면 데려다가 심문하면서 자백을 강요하는 이런 관행들이 생깁니다."

특히 수사 단계에서 허위자백이 이뤄지면 경찰은 물론 검찰도 편견에 빠지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심리학적으로 터널비전이라고 합니다. 터널에 들어갔을 때 터널 끝에서 빛이 들어오는 방향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수사도 마찬가지로 자백이 이뤄지면 수사관이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는 이 시각만을 가지고 접근하게 되다 보니까 이 사람의 범죄에 반하는 증거. 이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는 증거는 다 무시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허위자백에 맞춰 증거를 만들고, 진범이 나타나도 체포하지 않는 경우도 벌어집니다.

18년 전 삼례 3인조 강도 사건의 현장검증 영상입니다.

강인구씨를 포함한 10대 3명이 짓지도 않은 죄를 몸으로 재연 합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경찰들 따라서 하래요. 네가 할머니 묶었지? 우리는 뭣도 모르고 가만히 멍하니 있으니까 경찰들이 툭하면 때리고.."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재연하려니까 재연이 안돼죠. 그러니까 강요를 막 하는 거고 그럼 왜 이게 그 당시에는 발각이 안됐냐면 기록상에는 순간순간 캡처한 사진이 들어있고 그 사진 설명을 또 자발적으로 재연한 것인 양 써놓기 때문에 문제점을 몰랐던 거죠.."

이렇게 강요된 허위자백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인터뷰> 박준영(재심 담당 변호사) : "세 사람 다 지적 장애가 있거나 미성년자였다는 거, 또 그러면 보호자나 변호인의 조력이 필요한데 전혀 그런 변호인의 조력은 없었고 또 보호자조차도 본인들이 보호를 받아야 될 장애인 경우나 아주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혹행위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해도 허위자백을 하는 사법피해자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사이의 허위자백 사례 46건의 원인을 분석하니 1990년 대에는 고문, 폭행, 협박 등이 절반을 넘었지만 2000년 대에는 회유, 유도 신문 등 물리력이 없는 상황에서 허위자백이 늘고 있는 추셉니다.

하지만 허위자백에 내몰린 사람의 기대와 달리 검찰과 법원에서 진실이 제대로 가려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기수(경찰대학 교수) : "미국의 한 저명한 연구에 따르면 허위자백을 한 이후에 재판에 회부된다 하더라도 유죄판결을 받을 확률이 8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백자체가 갖는 신빙성이나 힘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고..."

재심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누명을 벗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인터뷰> 강문대(대한변협 재심소위위원장) : "재판부에서는 확정된 판결을 뒤엎는 일인데 그것은 일반 법이론적으로는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측면도 있고요, 기존 선배 법관들이해놓은 판결이 잘못됐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니까 사실 담당 판사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

대한변협은 지난해부터 재심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법률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억울하다고 모든 사건이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터뷰> 강문대(대한변협 재심소위위원장) : "우리 법원이 그 조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너무 좁게 해석을 해서 법률상 마련돼 있는 재심제도의 활용과 이용을 상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은 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허위자백으로 인한 사법피해를 막기 위해선 피의자 신문 전 과정을 제대로 녹음 ,녹화하는 등 수사의 투명성과 적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강인구, 임명선, 최대열 누명을 벗은 '삼례 3인조'가 국회를 찾았습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당시 사건 판사와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고인이 18년만에 다시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인터뷰> 박범계(국회의원) : "실형을 선고하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했던 사법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또 이판결문에 이름 석자를 남긴 사람으로서 사법개혁을 강력하게 누구보다도 주장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책임감과 사과, 용서를 빕니다"

배석판사였던 박 의원은 사건 기록조차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삼례 3인조는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털어놓으며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인터뷰> 최대열(사법 피해자) : "저희 딸들 놀림 안 당하게 했으면, 전과를 없앴으면 제가 그렇게 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허위자백을 강요하고, 증거와 진범을 감추고, 오판하고 오심했던 당사자들은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강인구(당시 피의자) :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제대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허위자백, 그러나 아직도 허위자백을 강요한 수사관은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고 있고, 재판에서도 허위 자백 증거 능력을 부정하는 자백 배제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