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60대 지적 장애인, 실종 9년 만에 가족 품으로

입력 2017.03.22 (08:35) 수정 2017.03.2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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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적 장애를 앓던 60대 남성이 9년 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나간 것까진 확인됐는데, 이후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실종자를 찾아 나섰지만, 9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상 포기 상태가 됐습니다.

그 사이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딸들은 성인이 돼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들에게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경찰이 9년 만에 이 남성을 찾았다고 연락이 온 건데요.

극적인 상봉을 한 이 가족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북 칠곡의 한 요양원.

한 남성이 방으로 들어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녹취> "아주버님, 형님 오셨잖아요. 알죠?"

60살 김천규 씨가 9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순간입니다.

김 씨는 부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손을 잡아줍니다.

김 씨의 아내도 9년 만에 눈앞에 나타난 남편을 보고, 참았던 눈물을 흘립니다.

<녹취> "아주버님도 고생하셨지만 형님이 고생 얼마나 하신 줄 알아요. 아주버님 없어지고 혼자 살면서……. 그래도 이렇게 찾으니 얼마나 좋아요."

9년 동안 김 씨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08년 3월 경북 예천에 살던 김 씨는 혼자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당시 매표소 관계자(음성변조) : "그날 아침에 뚜렷하게 “대구 차표 줘요.” 그날 딱 아저씨 혼자만 타고 갔는데……."

가족들의 곁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김 씨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대구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실종되기 일주일 전에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대구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었는데요. 그래서 그분이 그 사실을 알고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러 가야겠다.” 라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혼자서 대구로 가는 버스에 오른 김 씨.

그 뒤로는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인터뷰> 당시 매표소 관계자(음성변조) : "운전기사도 타는 건 알았대요. 그런데 대구까지 가다 보면 여섯 군데를 서야 하거든요. (기사는) 이 아저씨가 언제 내렸는지는 모른다고 해요."

가족들이 애타게 김 씨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도 김 씨를 찾을만한 단서가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전단을 계속 다 뿌렸거든요. 그때 (막내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울면서 “숙모, 우리 아빠 좀 찾아주세요. 아빠 좀 찾아주세요.” 그런 말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같이 많이 울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이틀 애타는 시간이 지나 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장애가 있다 보니까 주민등록번호라든지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고, 귀가 좀 어두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의사소통이 많이 좀 불편했어요."

김 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가족들의 걱정은 더 컸습니다.

농사일로 닳은 지문이 조회되지 않아 김 씨를 찾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어디에서 살아만 계시면 언젠간 찾겠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걱정을 많이 한 것은 주로 장애인들이 실종되면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잖아요. 나쁜 쪽으로 들어가서 고생하셨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죠."

경찰이 김 씨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가족들도 점점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어느 시기에 시간이 자꾸 흐르니까 나도 모르게 진짜 포기상태가 되더라고요. 신고 전화도 한 통화도 없으니까……."

그러던 중 지난달 경찰의 장기 실종자 추적팀이 김 씨를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농장이나 수용시설 등으로 김 씨가 납치된 것으로 추정했지만, 얼마 뒤, 경찰은 경북 칠곡의 한 요양원에서 김 씨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사진을 보면 눈매가 약간 좀 처져 있거든요. 얼굴 형태라든지……."

실종 당시보다 살이 빠졌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사진 속 김 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곧바로 김 씨의 사진을 찍어 가족들의 휴대전화로 보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아빠 맞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했는데 딸이 저한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숙모, 우리 아빠가 맞는 거 같죠?' 그러더라고요. 사진 딱 보는 순간에 맞는다고……."

9년이 지났지만, 다른 가족들도 한눈에 김 씨를 알아봤습니다.

<녹취> "아주버님 이제 집에 가야죠? 집에 가야지. 가고 싶죠? (집에 가고 싶대.)"

김 씨는 그동안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며, 김천규가 아닌 김정규로 살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이분이 자기 이름을 김천규가 아닌 김정규로 알고 주변 사람이 이름을 물어보면 자신을 김정규라고 소개를 했고요."

아내도 지적 장애가 있는데,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9년 동안 이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백명숙(실종자 아내) : "이 집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찾아올까 봐."

아버지를 애타게 찾던 딸은 어느새 성인이 돼, 직장을 잡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아빠가 너 알아보니?' 하니까 '웃는 거 보니까 우리 아빠 맞아요.' 아버지 없어지고 본인도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고 하니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나 봐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지만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처음에 와서는 엄마 어디 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형님한테. 안보이니까 찾으시는 거예요."

죽기 전에 아들을 만나는 게 소원이라던 어머니는 곁을 떠났지만, 이제라도 김 씨는 어머니의 산소에 인사를 올립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형님하고 그동안 10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못했던 예쁜 사랑도 좀 하시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건강하게. 건강이 최고죠."

가족들은 이제 김 씨의 웃는 모습을 보니 곁으로 돌아온 게 실감이 난다면서, 적극적으로 실종자 탐문에 나서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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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60대 지적 장애인, 실종 9년 만에 가족 품으로
    • 입력 2017-03-22 08:39:50
    • 수정2017-03-22 09: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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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적 장애를 앓던 60대 남성이 9년 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나간 것까진 확인됐는데, 이후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실종자를 찾아 나섰지만, 9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상 포기 상태가 됐습니다.

그 사이 아들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딸들은 성인이 돼 결혼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족들에게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경찰이 9년 만에 이 남성을 찾았다고 연락이 온 건데요.

극적인 상봉을 한 이 가족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북 칠곡의 한 요양원.

한 남성이 방으로 들어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녹취> "아주버님, 형님 오셨잖아요. 알죠?"

60살 김천규 씨가 9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만나는 순간입니다.

김 씨는 부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손을 잡아줍니다.

김 씨의 아내도 9년 만에 눈앞에 나타난 남편을 보고, 참았던 눈물을 흘립니다.

<녹취> "아주버님도 고생하셨지만 형님이 고생 얼마나 하신 줄 알아요. 아주버님 없어지고 혼자 살면서……. 그래도 이렇게 찾으니 얼마나 좋아요."

9년 동안 김 씨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08년 3월 경북 예천에 살던 김 씨는 혼자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당시 매표소 관계자(음성변조) : "그날 아침에 뚜렷하게 “대구 차표 줘요.” 그날 딱 아저씨 혼자만 타고 갔는데……."

가족들의 곁을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김 씨는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대구로 가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실종되기 일주일 전에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대구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었는데요. 그래서 그분이 그 사실을 알고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러 가야겠다.” 라는 말을 많이 했었습니다."

혼자서 대구로 가는 버스에 오른 김 씨.

그 뒤로는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인터뷰> 당시 매표소 관계자(음성변조) : "운전기사도 타는 건 알았대요. 그런데 대구까지 가다 보면 여섯 군데를 서야 하거든요. (기사는) 이 아저씨가 언제 내렸는지는 모른다고 해요."

가족들이 애타게 김 씨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도 김 씨를 찾을만한 단서가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전단을 계속 다 뿌렸거든요. 그때 (막내딸이)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울면서 “숙모, 우리 아빠 좀 찾아주세요. 아빠 좀 찾아주세요.” 그런 말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같이 많이 울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 이틀 애타는 시간이 지나 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장애가 있다 보니까 주민등록번호라든지 이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고, 귀가 좀 어두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 의사소통이 많이 좀 불편했어요."

김 씨는 지적장애 2급으로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가족들의 걱정은 더 컸습니다.

농사일로 닳은 지문이 조회되지 않아 김 씨를 찾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어디에서 살아만 계시면 언젠간 찾겠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걱정을 많이 한 것은 주로 장애인들이 실종되면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잖아요. 나쁜 쪽으로 들어가서 고생하셨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죠."

경찰이 김 씨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고, 가족들도 점점 희망을 잃어갔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어느 시기에 시간이 자꾸 흐르니까 나도 모르게 진짜 포기상태가 되더라고요. 신고 전화도 한 통화도 없으니까……."

그러던 중 지난달 경찰의 장기 실종자 추적팀이 김 씨를 다시 찾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농장이나 수용시설 등으로 김 씨가 납치된 것으로 추정했지만, 얼마 뒤, 경찰은 경북 칠곡의 한 요양원에서 김 씨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사진을 보면 눈매가 약간 좀 처져 있거든요. 얼굴 형태라든지……."

실종 당시보다 살이 빠졌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사진 속 김 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곧바로 김 씨의 사진을 찍어 가족들의 휴대전화로 보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아빠 맞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했는데 딸이 저한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숙모, 우리 아빠가 맞는 거 같죠?' 그러더라고요. 사진 딱 보는 순간에 맞는다고……."

9년이 지났지만, 다른 가족들도 한눈에 김 씨를 알아봤습니다.

<녹취> "아주버님 이제 집에 가야죠? 집에 가야지. 가고 싶죠? (집에 가고 싶대.)"

김 씨는 그동안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며, 김천규가 아닌 김정규로 살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정기원(경장/경북지방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 : "이분이 자기 이름을 김천규가 아닌 김정규로 알고 주변 사람이 이름을 물어보면 자신을 김정규라고 소개를 했고요."

아내도 지적 장애가 있는데,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9년 동안 이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백명숙(실종자 아내) : "이 집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이) 찾아올까 봐."

아버지를 애타게 찾던 딸은 어느새 성인이 돼, 직장을 잡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아빠가 너 알아보니?' 하니까 '웃는 거 보니까 우리 아빠 맞아요.' 아버지 없어지고 본인도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고 하니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나 봐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하지만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김 씨의 어머니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처음에 와서는 엄마 어디 갔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형님한테. 안보이니까 찾으시는 거예요."

죽기 전에 아들을 만나는 게 소원이라던 어머니는 곁을 떠났지만, 이제라도 김 씨는 어머니의 산소에 인사를 올립니다.

<인터뷰> 김화숙(실종자 제수) : "형님하고 그동안 10년이라는 공백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그때 못했던 예쁜 사랑도 좀 하시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건강하게. 건강이 최고죠."

가족들은 이제 김 씨의 웃는 모습을 보니 곁으로 돌아온 게 실감이 난다면서, 적극적으로 실종자 탐문에 나서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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