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 울리는 부양의무

입력 2017.04.30 (23:39) 수정 2017.04.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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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월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

<녹취> 집주인 : "조용히 살고 월세, 공과금 하루도 안 틀리고 다 내던데…."

병을 앓는 첫째딸과 신용불량으로 취업이 안되는 둘째달을 부양하던 60대 어머니.

팔을 다쳐 실직하면서 생활고가 깊어졌지만 도움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이 가구는 세 분이 다 근로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잖아요."

생계를 잇지 못할 정도로 빈곤한 국민에게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일정 액수의 급여를 지급합니다.

송파 세 모녀는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고, 신청했더라도 어머니 소득과 근로능력 등을 이유로 탈락했을 거란 지적이 많았는데요.

사건 3년이 넘게 흘렀지만 가난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이 있다면 소득과 재산, 근로능력 등이 일정 기준 보다 더 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쪽방촌.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은 쪽방 한 칸이 70살 김태수 씨의 보금자립니다.

<녹취> "야, 끓는다."

복지단체에서 준 쌀로 밥을 지어 겨우 한 끼를 때웁니다.

공사 현장 등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버텨나갔지만 지난해부터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에서도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수(70세/기초생활수급 탈락) : "일을 안 받아주는 거예요. 다칠까봐 나이 많다고…. 일을 못하게 되니까 힘들어서 생활하기가 완전히…."

월 수입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 28만 원이 전부.

월세 20만 원을 내고 남는 8만 원으로 한달을 버티다 못해 최근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지만 또한번 좌절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뒤 20년 넘게 만난 적이 없는 딸이 부양능력이 있어서 수급 대상자가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태수(70세/기초생활수급 탈락) : "가족이 있는데 부양할 능력이 있는데 그쪽에서 연락을 해봤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자녀의 부양을) 인정하는 걸로 간주해버린 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니까 그럼 각서를 받아오라는 거예요. 부양 포기 각서를 받아오라니 고개를 흔들고 말았어요. 망신을 주려고 제도를 가지고 장난하는 걸로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내가 얼른 와서 두번 다시 전화도 안 했어요. 안 한다고 그러고."

77살 김희순 할머니도 자녀가 있긴 하지만 생계는 오로지 혼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카트를 끌고 달동네 골목길을 누비는 김 할머니.

<녹취> "여기는 없나?"

구부정한 허리에도 폐지를 모으러 나왔습니다.

<녹취> "돈 몇천 원씩 벌려고 이러다보면 허리가 빠져요."

말기암 투병중인 딸의 병 간호를 다니느라 폐지 수집을 며칠 건너 뛰었더니 평소보다는 양이 많습니다.

<녹취> "(오늘은 만족하세요?) 네, 두 집서 가져와서.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아요?) 3천 원이나 3천5백 원."

할머니는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폐지 더미를 끌고 고물상으로 향합니다.

<녹취> "63kg!"

<녹취> "(5천 원요.) 5천 원요? 신문 있어서 많이 줬구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5천 원!"

할머니의 생활은 어떨까?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한달에 10만 원 안팎.

기초연금 20만 원도 있지만 대부분 병원비로 나갑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한 30만 원 씁디다. 약 먹고 이런데 혹 있다고 혹 떼러가고. 거짓말 안 하는데 그 정도 쓰겠더라고. (거의 다 병원비예요?) 병원비지.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올 초에는 난로에 쓸 연탄을 갈다가 허벅지와 발목에 화상을 입어 피부 이식 수술에 120만 원이 들었습니다.

<녹취> "여기까지 다 데었고요. 엉덩이, 허벅지도 2,3군데…."

최저 생계비 이하로 살고 있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내가 그 동(주민센터)에 3번 갔어. 한 3년 돼요. 그래서 가니까 소용없다고 안 줍디다. 창피하고 막 가라고하니 남들은 서 있어야 한다지만 남부끄럽고…. 애들이 있다고 그러나. 비 오는데 갔어 한번은. 비도 펄펄 오더라고. 간 김에 (신청)하려고, 노력해봐야 되겠다. 비도 펄펄 오는데 한 개도 안 해주더라고."

자녀들이 있지만 아들은 일용직으로 일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딸은 암 투병중입니다.

수십년째 혼자서 생계를 유지해온 할머니는 자녀들의 부양을 받아본 적도 기대한 적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마음이 그냥…. 내가 얼마나 살면 이 세상 좋은 세상인데 굶어죽겠어? 나라에서 먹고 살다가 못 살면 마는 거지. 포기해버려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는 1촌의 직계 혈족과 그 배우자로,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위·며느리가 해당됩니다.

하지만 법과는 달리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15년 전에는 10명 중 7명은 가족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최근엔 3명 꼴로 크게 줄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근로 능력이 없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더라도 문제는 있습니다.

세 딸의 엄마인 42살 김현정 씨는 가슴 아래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13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죽음 이후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광암 수술도 받았는데 폐까지 전이되면서 몇년째 투병중입니다.

150만 원 남짓의 생계 급여와 주거 급여, 장애 수당으로 살던 네 모녀는 지난달 구청에서 날벼락같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갓 성인이 된 첫째딸이 취업을 하면서 소득이 확인돼 김 씨를 부양할 의무가 생기겼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수급비가 깎일 수도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인터뷰> 김현정(척수장애 1급·기초생활수급자) : "(첫째 딸이)나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그랬는데 큰 애가 동맥을 끊었어요. 인대가 절단나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유인 즉슨 미래가 안 보였대요."

대학에 가려고 학비를 모으려던 딸은 극단적인 시도 이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연락도 끊고 있습니다.

신고된 첫째딸의 월 소득은 200만 원.

그러나 실제 소득은 100여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소명해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등학생 두 딸이 걱정입니다.

<인터뷰> 김현정(척수장애 1급·기초생활수급자) : "둘째 아이 셋째 아이가 커 나아갈 세상에서, 벌써부터 아직 성인도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내가 내 미래를 어떻게 책임져야 되지? 걱정을 하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제가 죄인이 된 것 같아요."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 가정의 청년들이 취업으로 소득이 생기면 수급비가 끊기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겁니다.

<인터뷰>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부양의무자 기준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고요. 가족 해체에도 이를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는 누군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거나 하게 되면 모든 가족이 다 빈곤화 되는 그런 위험도 불러올 수 있는 거고요."

외국에서는 부양의무자 범위를 최소한으로 잡거나 아예 두지 않습니다.

스웨덴은 자녀의 부모 부양 의무제를 폐지했고, 일본은 계속 완화하면서 필수 요건에서 제외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자녀가 부양을 거부하면 증여를 취소하기도 합니다.

정부도 부양의무자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예산 확보가 큰 걸림돌이라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김은영(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 "한국적인 가족 상황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고요. 여기에 필요로 하는 재정이 수반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부양을 가족과 국가, 사회가 어떻게 분담을 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에 당장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연 10조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재산을 자녀에게 이전한 뒤 수급자가 되려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인터뷰>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남용 사례 보다는 사각 지대에 있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나라에서 현 단계에서의 주된 과제는 사각지대 해소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용 사례를 통제해나가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빈곤층 비율이 높은 노인이나 장애인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완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부실하다는 평가입니다.

<인터뷰> 오건호(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 : "임기 첫 해에 바로 완전 폐지가 쉽진 않겠죠. 그런 면에서 궁극적으로 이 목표에 도달하면 연 10조원이 필요한 거고. 하지만 단계적으로 몇 년 기간에 어떤 수순으로 할지에 따라서 첫 해에는 10조가 아니고 3~4조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가족에게 가난을 떠맡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부양의무자 제도, 이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빈곤층은 117만 명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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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층 울리는 부양의무
    • 입력 2017-04-30 23:51:45
    • 수정2017-04-30 23: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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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월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 사건.

<녹취> 집주인 : "조용히 살고 월세, 공과금 하루도 안 틀리고 다 내던데…."

병을 앓는 첫째딸과 신용불량으로 취업이 안되는 둘째달을 부양하던 60대 어머니.

팔을 다쳐 실직하면서 생활고가 깊어졌지만 도움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

<녹취> 주민센터 관계자 : "이 가구는 세 분이 다 근로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잖아요."

생계를 잇지 못할 정도로 빈곤한 국민에게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일정 액수의 급여를 지급합니다.

송파 세 모녀는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고, 신청했더라도 어머니 소득과 근로능력 등을 이유로 탈락했을 거란 지적이 많았는데요.

사건 3년이 넘게 흘렀지만 가난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이 있다면 소득과 재산, 근로능력 등이 일정 기준 보다 더 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쪽방촌.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찰 정도로 작은 쪽방 한 칸이 70살 김태수 씨의 보금자립니다.

<녹취> "야, 끓는다."

복지단체에서 준 쌀로 밥을 지어 겨우 한 끼를 때웁니다.

공사 현장 등에서 일용직을 전전하며 버텨나갔지만 지난해부터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터에서도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태수(70세/기초생활수급 탈락) : "일을 안 받아주는 거예요. 다칠까봐 나이 많다고…. 일을 못하게 되니까 힘들어서 생활하기가 완전히…."

월 수입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 28만 원이 전부.

월세 20만 원을 내고 남는 8만 원으로 한달을 버티다 못해 최근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신청했지만 또한번 좌절해야 했습니다.

아내와 이혼한 뒤 20년 넘게 만난 적이 없는 딸이 부양능력이 있어서 수급 대상자가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김태수(70세/기초생활수급 탈락) : "가족이 있는데 부양할 능력이 있는데 그쪽에서 연락을 해봤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결론은 (자녀의 부양을) 인정하는 걸로 간주해버린 거예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니까 그럼 각서를 받아오라는 거예요. 부양 포기 각서를 받아오라니 고개를 흔들고 말았어요. 망신을 주려고 제도를 가지고 장난하는 걸로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내가 얼른 와서 두번 다시 전화도 안 했어요. 안 한다고 그러고."

77살 김희순 할머니도 자녀가 있긴 하지만 생계는 오로지 혼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카트를 끌고 달동네 골목길을 누비는 김 할머니.

<녹취> "여기는 없나?"

구부정한 허리에도 폐지를 모으러 나왔습니다.

<녹취> "돈 몇천 원씩 벌려고 이러다보면 허리가 빠져요."

말기암 투병중인 딸의 병 간호를 다니느라 폐지 수집을 며칠 건너 뛰었더니 평소보다는 양이 많습니다.

<녹취> "(오늘은 만족하세요?) 네, 두 집서 가져와서.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아요?) 3천 원이나 3천5백 원."

할머니는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폐지 더미를 끌고 고물상으로 향합니다.

<녹취> "63kg!"

<녹취> "(5천 원요.) 5천 원요? 신문 있어서 많이 줬구만.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5천 원!"

할머니의 생활은 어떨까?

바닥 난방이 되지 않는 단칸방에서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은 한달에 10만 원 안팎.

기초연금 20만 원도 있지만 대부분 병원비로 나갑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한 30만 원 씁디다. 약 먹고 이런데 혹 있다고 혹 떼러가고. 거짓말 안 하는데 그 정도 쓰겠더라고. (거의 다 병원비예요?) 병원비지.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올 초에는 난로에 쓸 연탄을 갈다가 허벅지와 발목에 화상을 입어 피부 이식 수술에 120만 원이 들었습니다.

<녹취> "여기까지 다 데었고요. 엉덩이, 허벅지도 2,3군데…."

최저 생계비 이하로 살고 있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내가 그 동(주민센터)에 3번 갔어. 한 3년 돼요. 그래서 가니까 소용없다고 안 줍디다. 창피하고 막 가라고하니 남들은 서 있어야 한다지만 남부끄럽고…. 애들이 있다고 그러나. 비 오는데 갔어 한번은. 비도 펄펄 오더라고. 간 김에 (신청)하려고, 노력해봐야 되겠다. 비도 펄펄 오는데 한 개도 안 해주더라고."

자녀들이 있지만 아들은 일용직으로 일하고, 간호사로 일했던 딸은 암 투병중입니다.

수십년째 혼자서 생계를 유지해온 할머니는 자녀들의 부양을 받아본 적도 기대한 적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희순(77세/기초생활수급 신청 반려) : "마음이 그냥…. 내가 얼마나 살면 이 세상 좋은 세상인데 굶어죽겠어? 나라에서 먹고 살다가 못 살면 마는 거지. 포기해버려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는 1촌의 직계 혈족과 그 배우자로, 부모와 자녀 그리고 사위·며느리가 해당됩니다.

하지만 법과는 달리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습니다.

15년 전에는 10명 중 7명은 가족이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최근엔 3명 꼴로 크게 줄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 근로 능력이 없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더라도 문제는 있습니다.

세 딸의 엄마인 42살 김현정 씨는 가슴 아래 부분을 전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13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죽음 이후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방광암 수술도 받았는데 폐까지 전이되면서 몇년째 투병중입니다.

150만 원 남짓의 생계 급여와 주거 급여, 장애 수당으로 살던 네 모녀는 지난달 구청에서 날벼락같은 연락을 받았습니다.

갓 성인이 된 첫째딸이 취업을 하면서 소득이 확인돼 김 씨를 부양할 의무가 생기겼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수급비가 깎일 수도 있다고 통보했습니다.

<인터뷰> 김현정(척수장애 1급·기초생활수급자) : "(첫째 딸이)나는 어떻게 해야 되냐고 그랬는데 큰 애가 동맥을 끊었어요. 인대가 절단나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유인 즉슨 미래가 안 보였대요."

대학에 가려고 학비를 모으려던 딸은 극단적인 시도 이후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연락도 끊고 있습니다.

신고된 첫째딸의 월 소득은 200만 원.

그러나 실제 소득은 100여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소명해 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고등학생 두 딸이 걱정입니다.

<인터뷰> 김현정(척수장애 1급·기초생활수급자) : "둘째 아이 셋째 아이가 커 나아갈 세상에서, 벌써부터 아직 성인도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내가 내 미래를 어떻게 책임져야 되지? 걱정을 하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제가 죄인이 된 것 같아요."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 가정의 청년들이 취업으로 소득이 생기면 수급비가 끊기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겁니다.

<인터뷰>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부양의무자 기준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건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고요. 가족 해체에도 이를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는 누군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거나 하게 되면 모든 가족이 다 빈곤화 되는 그런 위험도 불러올 수 있는 거고요."

외국에서는 부양의무자 범위를 최소한으로 잡거나 아예 두지 않습니다.

스웨덴은 자녀의 부모 부양 의무제를 폐지했고, 일본은 계속 완화하면서 필수 요건에서 제외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자녀가 부양을 거부하면 증여를 취소하기도 합니다.

정부도 부양의무자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예산 확보가 큰 걸림돌이라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김은영(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 "한국적인 가족 상황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고요. 여기에 필요로 하는 재정이 수반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부양을 가족과 국가, 사회가 어떻게 분담을 할 것인지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에 당장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경우 연 10조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재산을 자녀에게 이전한 뒤 수급자가 되려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인터뷰>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남용 사례 보다는 사각 지대에 있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생각하고, 우리 나라에서 현 단계에서의 주된 과제는 사각지대 해소에 중점을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용 사례를 통제해나가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빈곤층 비율이 높은 노인이나 장애인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요 대선 후보들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완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부실하다는 평가입니다.

<인터뷰> 오건호(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 : "임기 첫 해에 바로 완전 폐지가 쉽진 않겠죠. 그런 면에서 궁극적으로 이 목표에 도달하면 연 10조원이 필요한 거고. 하지만 단계적으로 몇 년 기간에 어떤 수순으로 할지에 따라서 첫 해에는 10조가 아니고 3~4조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가족에게 가난을 떠맡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부양의무자 제도, 이 기준에 걸려 수급자가 되지 못한 빈곤층은 117만 명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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