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망연자실’…생활 터전 잃은 주민들

입력 2017.05.09 (08:35) 수정 2017.05.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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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앞서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강원도 지역 산불 소식 전해 드렸는데요.

다행히 큰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산불이 휩쓸고 간 현장은 처참했습니다.

시뻘건 불길이 덮친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집을 바라봐야 하는 이재민들.

불길에 몸을 피한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며 위로를 해보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순식간에 덮친 산불에 평생 일군 생활 터전을 속수무책으로 모두 잃어버리고, 아직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산불이 휩쓸고 간 현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강원도 강릉 일대에 산불이 난 지 사흘째인 어제.

밤사이 불길이 잡혔다가 강풍을 타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진화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이번 산불로 민가 피해가 컸던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주택 15채가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뼈대만 남은 채 내려앉은 집들.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고, 가재도구는 형체도 알아 볼수 없게 잿더미가 됐습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산골마을은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인터뷰> 김상동(산불 피해 주민) : "입은 채로 아무것도 뭐 들고 갈 생각도 못하고 차는 도피할 방향으로 차를 세워놓고 물을 조금 뿌리다가 바로 그냥 대피를 한 거죠."

주민들은 연이틀 마을 대피소에 모여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인터뷰> 김남월(산불 피해 주민) : "아휴 아들도 놀라서 나도 지금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려 말도 못 해."

여느 때 같으면 자녀들과 함께 했을 어버이날을 올해는 대피소에서 보내야만 합니다.

<인터뷰> 유동희(산불 피해 주민) : "온다고 하는 걸 절대 오지 말라고. 오면 뭘 해. 속만 아프죠."

큰 불길은 잡혔다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전진희씨 집 역시 벽돌 기둥만 남긴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속수무책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바람이 너무 불고 그냥 집이 그냥 내 눈앞에서 타는 걸 그대로 다 봤었어야 했거든요.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아무것도 없어요."

수십 년 동안 하나하나 손수 가꿨던 집은 어디가 거실인지, 부엌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저희가 정말 몇 년을 걸쳐서 정말 허리 아파서 병원 다녀가면서 제가 하나하나 다 일군 거예요. 너무 애착이 많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숯덩이가 되고 나니까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전 씨가 산불이 났다는 걸 처음 알아 차린 건 지난 6일, 토요일 오후 5시를 넘겨서입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5시 반 정도 됐을 때 시장을 가려고 나가는데 마을이 공기가 이상했어요. 나가다 보니까 저 대관령 쪽에서 막 산불 난 것처럼 연기가 자욱해서……."

설마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습니다.

점점 연기가 눈앞을 가리고. 매캐한 공기가 도로를 뒤덮었습니다.

그 순간 생각난 건 집에 남은 가족들이었습니다.

집에는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된 외손자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저희 딸이 아기를 낳아서 와있었거든요. 저희가 차를 돌려서 시장 가다가 차를 돌려 안 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산모랑 아기가. 그 생각만 하면 정말 너무 아찔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황급히 마을로 돌아왔을 땐, 시커먼 연기와 함께 집채보다 큰 불길이 무서운 속도로 마을을 집어 삼키고 있었습니다.

전 씨 가족은 갓난 아기를 들쳐안고 허겁지겁 차에 올라 탔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하나도 못 챙겼어요. 그냥 아기가 자는 채로 이불에 싸서 나가고 애 엄마 잠옷 입고 있던 채로 그냥 나가고 아무것도 못 가져갔어요."

기저귀 한 장, 분유 한 통 챙기지 못한 채 전 씨 가족은 강릉 시내 친척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전 씨 가족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주민들이 고맙게도 아기 용품을 보내줘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인터뷰> 산불 피해 주민 : "성인들은 구호 물품이란 게 있는데 신생아는 그런 게 없죠. 아무것도 없는데 아기 당장 먹일 것도 없고 그리고 산모도 필요한 게 있는데 전혀 필요한 게 없는 상황이고 이래서 너무 답답한 마음에 그때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그거를 읽어보시고 많이 이제 도와주신 상황이에요."

이웃 마을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에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잿더미만 남은 집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불길을 피한 주민들도 마냥 가슴을 쓸어내릴 수만은 없습니다.

불길이 내뿜은 강한 열기에 애써 키우던 작물들이 노랗게 말라버려 한 해 농사를 망쳤습니다.

<인터뷰> 김상동(산불 피해 주민) : "저희는 뭐 피해도 아닙니다. 집이 탔는데 뭐 나무야 뭐 그렇지 뭐. 사람 피해 없으니 다행이고..."

산 아래 까맣게 타버리고 뼈대만 남은 집 한 채.

마을에서도 예쁜 집으로 손꼽혔던 곳입니다.

은퇴 후 노후를 보내기 위해 애지중지 마련했던 전원주택이 마을로 산불이 옮겨붙은 지 10분 만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녹취> 오00(산불 피해 주민) : "2월에 이사를 왔죠. 석 달 살았는데 이렇게 돼버렸죠. 산 너머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길래 그래서 알았고 본 지 10분도 안 돼서 우리 집을 들이닥쳐서"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도 이번 불로 함께 사라져 더 힘이 듭니다.

<녹취> 오00(산불 피해 주민) : "귀중품보다 더 중요한 건 과거에 대한 기록들, 사진. 모든 것이 거기에 다 잿더미가 돼버렸습니다. 과거하고 단절돼버린 거죠. 가구들이야 나중에 돈 벌면 다시 사면 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강릉 일대에서만 7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

산불이 남긴 상처를 모두 씻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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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망연자실’…생활 터전 잃은 주민들
    • 입력 2017-05-09 08:52:15
    • 수정2017-05-09 08: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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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앞서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강원도 지역 산불 소식 전해 드렸는데요.

다행히 큰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산불이 휩쓸고 간 현장은 처참했습니다.

시뻘건 불길이 덮친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집을 바라봐야 하는 이재민들.

불길에 몸을 피한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며 위로를 해보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순식간에 덮친 산불에 평생 일군 생활 터전을 속수무책으로 모두 잃어버리고, 아직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

산불이 휩쓸고 간 현장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강원도 강릉 일대에 산불이 난 지 사흘째인 어제.

밤사이 불길이 잡혔다가 강풍을 타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면서 진화 작업은 계속됐습니다.

이번 산불로 민가 피해가 컸던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주택 15채가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뼈대만 남은 채 내려앉은 집들.

철골은 엿가락처럼 휘고, 가재도구는 형체도 알아 볼수 없게 잿더미가 됐습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산골마을은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인터뷰> 김상동(산불 피해 주민) : "입은 채로 아무것도 뭐 들고 갈 생각도 못하고 차는 도피할 방향으로 차를 세워놓고 물을 조금 뿌리다가 바로 그냥 대피를 한 거죠."

주민들은 연이틀 마을 대피소에 모여 뜬눈으로 밤을 지샜습니다.

<인터뷰> 김남월(산불 피해 주민) : "아휴 아들도 놀라서 나도 지금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려 말도 못 해."

여느 때 같으면 자녀들과 함께 했을 어버이날을 올해는 대피소에서 보내야만 합니다.

<인터뷰> 유동희(산불 피해 주민) : "온다고 하는 걸 절대 오지 말라고. 오면 뭘 해. 속만 아프죠."

큰 불길은 잡혔다지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전진희씨 집 역시 벽돌 기둥만 남긴 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속수무책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바람이 너무 불고 그냥 집이 그냥 내 눈앞에서 타는 걸 그대로 다 봤었어야 했거든요. 어쩜 이럴 수가 있는지. 아무것도 없어요."

수십 년 동안 하나하나 손수 가꿨던 집은 어디가 거실인지, 부엌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저희가 정말 몇 년을 걸쳐서 정말 허리 아파서 병원 다녀가면서 제가 하나하나 다 일군 거예요. 너무 애착이 많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숯덩이가 되고 나니까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네요."

전 씨가 산불이 났다는 걸 처음 알아 차린 건 지난 6일, 토요일 오후 5시를 넘겨서입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5시 반 정도 됐을 때 시장을 가려고 나가는데 마을이 공기가 이상했어요. 나가다 보니까 저 대관령 쪽에서 막 산불 난 것처럼 연기가 자욱해서……."

설마 했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갔습니다.

점점 연기가 눈앞을 가리고. 매캐한 공기가 도로를 뒤덮었습니다.

그 순간 생각난 건 집에 남은 가족들이었습니다.

집에는 태어난 지 3주밖에 안 된 외손자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저희 딸이 아기를 낳아서 와있었거든요. 저희가 차를 돌려서 시장 가다가 차를 돌려 안 왔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산모랑 아기가. 그 생각만 하면 정말 너무 아찔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황급히 마을로 돌아왔을 땐, 시커먼 연기와 함께 집채보다 큰 불길이 무서운 속도로 마을을 집어 삼키고 있었습니다.

전 씨 가족은 갓난 아기를 들쳐안고 허겁지겁 차에 올라 탔습니다.

<인터뷰> 전진희(산불 피해 주민) : "하나도 못 챙겼어요. 그냥 아기가 자는 채로 이불에 싸서 나가고 애 엄마 잠옷 입고 있던 채로 그냥 나가고 아무것도 못 가져갔어요."

기저귀 한 장, 분유 한 통 챙기지 못한 채 전 씨 가족은 강릉 시내 친척집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전 씨 가족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들은 주민들이 고맙게도 아기 용품을 보내줘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인터뷰> 산불 피해 주민 : "성인들은 구호 물품이란 게 있는데 신생아는 그런 게 없죠. 아무것도 없는데 아기 당장 먹일 것도 없고 그리고 산모도 필요한 게 있는데 전혀 필요한 게 없는 상황이고 이래서 너무 답답한 마음에 그때 (인터넷에) 글을 올렸고 그거를 읽어보시고 많이 이제 도와주신 상황이에요."

이웃 마을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에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잿더미만 남은 집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불길을 피한 주민들도 마냥 가슴을 쓸어내릴 수만은 없습니다.

불길이 내뿜은 강한 열기에 애써 키우던 작물들이 노랗게 말라버려 한 해 농사를 망쳤습니다.

<인터뷰> 김상동(산불 피해 주민) : "저희는 뭐 피해도 아닙니다. 집이 탔는데 뭐 나무야 뭐 그렇지 뭐. 사람 피해 없으니 다행이고..."

산 아래 까맣게 타버리고 뼈대만 남은 집 한 채.

마을에서도 예쁜 집으로 손꼽혔던 곳입니다.

은퇴 후 노후를 보내기 위해 애지중지 마련했던 전원주택이 마을로 산불이 옮겨붙은 지 10분 만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녹취> 오00(산불 피해 주민) : "2월에 이사를 왔죠. 석 달 살았는데 이렇게 돼버렸죠. 산 너머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길래 그래서 알았고 본 지 10분도 안 돼서 우리 집을 들이닥쳐서"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도 이번 불로 함께 사라져 더 힘이 듭니다.

<녹취> 오00(산불 피해 주민) : "귀중품보다 더 중요한 건 과거에 대한 기록들, 사진. 모든 것이 거기에 다 잿더미가 돼버렸습니다. 과거하고 단절돼버린 거죠. 가구들이야 나중에 돈 벌면 다시 사면 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이번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강릉 일대에서만 7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는 상황.

산불이 남긴 상처를 모두 씻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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