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잿더미, 산불의 경고

입력 2017.05.14 (22:59) 수정 2017.05.1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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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을 태우는 시뻘건 불길.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갑니다.

밤새 사투를 벌이지만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

마을까지 내려온 불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집어삼켰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보시는 것처럼 새까만 재만 남았습니다.

이곳 강원 동해안 지역에선 봄에 산불이 나면 이번처럼 대형 산불로 번진 경우가 많았는데요.

'봄의 불청객'으로 불리는 산불, 왜 반복되는지, 이렇게 피해가 커진 이유는 뭔지 알아봤습니다.

구름이 짙게 내려앉은 듯 뿌연 연기로 가득한 백두대간 자락.

산자락을 따라 순식간에 불길이 퍼집니다.

소방헬기가 연신 물을 뿌려보지만…

숲을 뒤흔드는 강풍 앞에선 속수무책.

세찬 바람을 따라 삽시간에 불똥이 이리저리 옮겨붙는 이른바 '도깨비 불 현상'입니다.

불이 났을 당시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21m.

어른조차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입니다.

강풍을 타고 번지는 불길을 피할 수 없었던 집들.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세찬 바람에 미처 손 쓸 틈조차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규복(마을 주민) : "너무 바람이 강하다 보니까 막 날아가면서 여기저기 붙여 버리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피해가 안 오죠."

하늘에선 헬기로 물을 뿌리고, 지상에선 군인들까지 투입돼 불과의 사투를 벌였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불은 꺼질만하면 다시 살아났습니다.

입산자의 실화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번 강릉·삼척 산불은 사흘 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산림 327만 제곱미터, 축구장 457개와 맞먹는 숲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주택 37채가 주저앉았고, 이재민 79명이 발생했습니다.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된 헬기가 추락해 정비사 47살 조 모 씨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로 일어났습니다.

왜 이렇게 피해가 커졌을까?

2005년 4월, 천 년 고찰 낙산사를 집어삼킨 양양 산불.

2000년 4월엔 강원 동해안을 덮친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80배가 넘는 산림이 초토화됐습니다.

이처럼 봄에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유난히 대형 산불이 잦은 건 이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기상 현상 때문입니다.

봄에는 남고북저형의 기압 배치가 나타나 한반도에 서풍이 불어옵니다.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대기 상층에 있는 따뜻한 공기에 눌려 압축되면서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 바람이 산맥을 넘으면 초속 30m의 돌풍으로 변하는 겁니다.

강원 양양-강릉, 양양-간성 구간에 부는 바람이라 해서 '양강지풍', '양간지풍'이라고도 부릅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항상 바람이 잦은 시기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여기서 화재가 일단 봄에 발생을 한다면, 산불이 발생을 한다면 굉장히 대형 화재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가 산불 발생 양상을 바꿔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강원 영동지역에 대형 산불이 일어난 시기는 모두 4월이었습니다.

5월에 접어들면 산불이 잠잠해지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5월에 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지난해 5월 1일부터 6일까지 일어난 산불은 단 한 건.

그런데 올해는 같은 기간에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50건이나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강원 영동지역의 올 4월 평균기온은 15.1도로, 평년보다 2.9도 웃돌며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67.5%, 3분의 2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례적인 고온 현상에 강수량까지 적어 건조했던 겁니다.

<인터뷰> 이병두(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확신은 할 수 없겠지만 기존의 어떤 기상적인 변화, 기상 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거죠. 산불 분야에 있어서도. 산불이라는 게 예전에는 산불 발생 패턴이 봄과 가을과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구분이 점점 옅어지면서 산불이 연중 발생하는 그런 현상을 보이고 있는 거죠."

올해 산림청이 당초에 정한 산불 방지 특별대책기간은 3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하지만 산불 위험이 수그러들지 않자 이례적으로 황금연휴 기간이었던 5월 3일부터 9일까지 추가로 특별대책기간을 정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이변으로 4월 대형 산불 공식이 깨진 겁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이제는 산불 비상대책기간이 기본적으로 2월부터 5월 적어도 초순까지는 이어져야 된다…"

산불을 키운 또 다른 요인은 험준한 강원도 지형.

산불은 발생 초기에 큰불을 잡는 것이 확산을 막는 관건입니다.

특히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깊은 산에서 불이 나면 소방헬기를 최대한 빨리 투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터뷰> 이병두(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산림청에서 산불 골든타임 설정한 것은 30분입니다. 결국은 이제 30분 이내에 진화 헬기가 도착해서 초기 진화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지난 6일 강원 삼척과 강릉에서 잇따라 산불이 났을 때도 곧바로 소방헬기가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같은 날 경북 상주, 충북 청주, 경기 남양주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는 점.

소방 헬기가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바람에 조기에 투입은 했지만 진화엔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특히 이번에 가장 큰 피해가 난 강원 삼척은 불이 난 곳이 해발 800m의 고지대인 데다,

소방헬기가 물을 퍼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저수지가 발화 지점에서 무려 11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 물을 뜰 수 있는 저수지가 극히 제한돼 있고 지천 급의 하천만 있기 때문에 발생지로부터 담수할 수 있는 이격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열 대의 효과를 봐야 할 것이 다섯 대밖에 효과를 못 볼 정도로 한 번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거죠."

기상과 지형 조건 못지않게 산불을 키운 원인은 바로 숲입니다.

강원 영동지역은 지역적 특성상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이 많습니다.

그런데 잎이 넓적한 활엽수와 달리 침엽수는 불에 대단히 취약합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수분 함유율이 적다라든지 또 여기에 관련된 송진 등의 여러 가지 기름 성분들, 이런 것들로 인해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굉장히 좀 취약하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이런 부분들이 화재를 더 확대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고요."

산불 진화 당국의 잘못된 판단도 문제였습니다.

강릉에서 대형 산불이 난 지 이틀째인 지난 7일.

강릉시와 산림청, 소방본부 등으로 구성된 산불통합지휘본부는 산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산불 진화인력 5,900여 명과 진화 헬기 5대가 현장에서 철수합니다.

<녹취> 강릉 산불통합지휘본부 관계자(음성변조) : "상황을 관리할 수 있나, 그런 것을 확인을 하고 그런 판단을 매뉴얼에 따른 판단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3시간 뒤 꺼진 줄 알았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고, 불이 꺼졌다는 말에 마을로 돌아갔던 주민들은 또다시 대피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김경일(강원 강릉시 성산면) : "세 시간 전에 진압이 됐다고 방송에서 얘기가 나왔어요. 너무 너무 잘못된 얘기입니다. 그것이 화재를 더 크게 만들었고..."

대형 재난 상황에 작동해야 할 재난 안전 컨트롤 타워는 이번에도 먹통이었습니다.

강원 동해안을 덮친 대형 산불로 사상 처음으로 산불 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되고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지난 7일.

피해 지역 주민들은 위기 상황을 알려주는 재난 문자를 단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고문록(피해 주민) : "핸드폰에 문자나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저희 자체적으로 그냥 빠져나오기 바빴으니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으니까요."

국가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부서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 만들어진 국민안전처.

국민안전처가 긴급 재난문자를 보내는 대상에는 지진해일과 태풍, 홍수는 물론 산불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이나 강릉시에서 문자 발송 요청을 안 했다는 겁니다.

<녹취> 국민안전처 관계자(음성변조) : "요청을 하면 저희가 승인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청이 있었으면 당연히 보냈죠."

심각한 재난 상황에도 여전히 부처간 손발이 안 맞는 정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 셈입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산불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진화는 산림청의 몫이지만 나머지 주민들, 마을과 민가를 대피시키고 미리 통보하고 구조하고 이런 종합적인 것은 바로 국민안전처 같은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전 행정력이 움직여야 재난 재해 대책이 대비가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삼척 산불을 통해서 다시금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국가적 재해 재난의 컨트롤 타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발생해 대형 피해를 안기고 있는 강동 영동 산불.

가늠하기 힘든 기상 변화와 맞물려 산불의 위험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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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식간에 잿더미, 산불의 경고
    • 입력 2017-05-14 23:28:39
    • 수정2017-05-14 23:30:20
    취재파일K
산 능선을 태우는 시뻘건 불길.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갑니다.

밤새 사투를 벌이지만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

마을까지 내려온 불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집어삼켰습니다.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보시는 것처럼 새까만 재만 남았습니다.

이곳 강원 동해안 지역에선 봄에 산불이 나면 이번처럼 대형 산불로 번진 경우가 많았는데요.

'봄의 불청객'으로 불리는 산불, 왜 반복되는지, 이렇게 피해가 커진 이유는 뭔지 알아봤습니다.

구름이 짙게 내려앉은 듯 뿌연 연기로 가득한 백두대간 자락.

산자락을 따라 순식간에 불길이 퍼집니다.

소방헬기가 연신 물을 뿌려보지만…

숲을 뒤흔드는 강풍 앞에선 속수무책.

세찬 바람을 따라 삽시간에 불똥이 이리저리 옮겨붙는 이른바 '도깨비 불 현상'입니다.

불이 났을 당시 순간 최대 풍속은 초속 21m.

어른조차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입니다.

강풍을 타고 번지는 불길을 피할 수 없었던 집들.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종잡을 수 없는 세찬 바람에 미처 손 쓸 틈조차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규복(마을 주민) : "너무 바람이 강하다 보니까 막 날아가면서 여기저기 붙여 버리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피해가 안 오죠."

하늘에선 헬기로 물을 뿌리고, 지상에선 군인들까지 투입돼 불과의 사투를 벌였지만, 거센 바람 때문에 불은 꺼질만하면 다시 살아났습니다.

입산자의 실화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이번 강릉·삼척 산불은 사흘 만에 완전히 꺼졌지만, 산림 327만 제곱미터, 축구장 457개와 맞먹는 숲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주택 37채가 주저앉았고, 이재민 79명이 발생했습니다.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된 헬기가 추락해 정비사 47살 조 모 씨가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로 일어났습니다.

왜 이렇게 피해가 커졌을까?

2005년 4월, 천 년 고찰 낙산사를 집어삼킨 양양 산불.

2000년 4월엔 강원 동해안을 덮친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80배가 넘는 산림이 초토화됐습니다.

이처럼 봄에 강원 동해안 지역에서 유난히 대형 산불이 잦은 건 이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기상 현상 때문입니다.

봄에는 남고북저형의 기압 배치가 나타나 한반도에 서풍이 불어옵니다.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대기 상층에 있는 따뜻한 공기에 눌려 압축되면서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 바람이 산맥을 넘으면 초속 30m의 돌풍으로 변하는 겁니다.

강원 양양-강릉, 양양-간성 구간에 부는 바람이라 해서 '양강지풍', '양간지풍'이라고도 부릅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항상 바람이 잦은 시기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여기서 화재가 일단 봄에 발생을 한다면, 산불이 발생을 한다면 굉장히 대형 화재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가 산불 발생 양상을 바꿔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강원 영동지역에 대형 산불이 일어난 시기는 모두 4월이었습니다.

5월에 접어들면 산불이 잠잠해지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5월에 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지난해 5월 1일부터 6일까지 일어난 산불은 단 한 건.

그런데 올해는 같은 기간에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50건이나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강원 영동지역의 올 4월 평균기온은 15.1도로, 평년보다 2.9도 웃돌며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67.5%, 3분의 2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례적인 고온 현상에 강수량까지 적어 건조했던 겁니다.

<인터뷰> 이병두(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확신은 할 수 없겠지만 기존의 어떤 기상적인 변화, 기상 패턴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거죠. 산불 분야에 있어서도. 산불이라는 게 예전에는 산불 발생 패턴이 봄과 가을과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구분이 점점 옅어지면서 산불이 연중 발생하는 그런 현상을 보이고 있는 거죠."

올해 산림청이 당초에 정한 산불 방지 특별대책기간은 3월 15일부터 4월 20일까지.

하지만 산불 위험이 수그러들지 않자 이례적으로 황금연휴 기간이었던 5월 3일부터 9일까지 추가로 특별대책기간을 정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상 이변으로 4월 대형 산불 공식이 깨진 겁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이제는 산불 비상대책기간이 기본적으로 2월부터 5월 적어도 초순까지는 이어져야 된다…"

산불을 키운 또 다른 요인은 험준한 강원도 지형.

산불은 발생 초기에 큰불을 잡는 것이 확산을 막는 관건입니다.

특히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깊은 산에서 불이 나면 소방헬기를 최대한 빨리 투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인터뷰> 이병두(국립산림과학원 임업연구관) "산림청에서 산불 골든타임 설정한 것은 30분입니다. 결국은 이제 30분 이내에 진화 헬기가 도착해서 초기 진화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고요."

지난 6일 강원 삼척과 강릉에서 잇따라 산불이 났을 때도 곧바로 소방헬기가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같은 날 경북 상주, 충북 청주, 경기 남양주 등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는 점.

소방 헬기가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바람에 조기에 투입은 했지만 진화엔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특히 이번에 가장 큰 피해가 난 강원 삼척은 불이 난 곳이 해발 800m의 고지대인 데다,

소방헬기가 물을 퍼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저수지가 발화 지점에서 무려 11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 물을 뜰 수 있는 저수지가 극히 제한돼 있고 지천 급의 하천만 있기 때문에 발생지로부터 담수할 수 있는 이격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열 대의 효과를 봐야 할 것이 다섯 대밖에 효과를 못 볼 정도로 한 번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거죠."

기상과 지형 조건 못지않게 산불을 키운 원인은 바로 숲입니다.

강원 영동지역은 지역적 특성상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이 많습니다.

그런데 잎이 넓적한 활엽수와 달리 침엽수는 불에 대단히 취약합니다.

<인터뷰> 이영주(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 "수분 함유율이 적다라든지 또 여기에 관련된 송진 등의 여러 가지 기름 성분들, 이런 것들로 인해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굉장히 좀 취약하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이런 부분들이 화재를 더 확대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보고요."

산불 진화 당국의 잘못된 판단도 문제였습니다.

강릉에서 대형 산불이 난 지 이틀째인 지난 7일.

강릉시와 산림청, 소방본부 등으로 구성된 산불통합지휘본부는 산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산불 진화인력 5,900여 명과 진화 헬기 5대가 현장에서 철수합니다.

<녹취> 강릉 산불통합지휘본부 관계자(음성변조) : "상황을 관리할 수 있나, 그런 것을 확인을 하고 그런 판단을 매뉴얼에 따른 판단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3시간 뒤 꺼진 줄 알았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고, 불이 꺼졌다는 말에 마을로 돌아갔던 주민들은 또다시 대피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김경일(강원 강릉시 성산면) : "세 시간 전에 진압이 됐다고 방송에서 얘기가 나왔어요. 너무 너무 잘못된 얘기입니다. 그것이 화재를 더 크게 만들었고..."

대형 재난 상황에 작동해야 할 재난 안전 컨트롤 타워는 이번에도 먹통이었습니다.

강원 동해안을 덮친 대형 산불로 사상 처음으로 산불 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되고 주민들이 긴급 대피한 지난 7일.

피해 지역 주민들은 위기 상황을 알려주는 재난 문자를 단 한 통도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고문록(피해 주민) : "핸드폰에 문자나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저희 자체적으로 그냥 빠져나오기 바빴으니까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나왔으니까요."

국가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부서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 만들어진 국민안전처.

국민안전처가 긴급 재난문자를 보내는 대상에는 지진해일과 태풍, 홍수는 물론 산불도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이나 강릉시에서 문자 발송 요청을 안 했다는 겁니다.

<녹취> 국민안전처 관계자(음성변조) : "요청을 하면 저희가 승인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청이 있었으면 당연히 보냈죠."

심각한 재난 상황에도 여전히 부처간 손발이 안 맞는 정부 재난 대응 시스템의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 셈입니다.

<인터뷰>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산불이 발생했을 때 현장의 진화는 산림청의 몫이지만 나머지 주민들, 마을과 민가를 대피시키고 미리 통보하고 구조하고 이런 종합적인 것은 바로 국민안전처 같은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를 중심으로 전 행정력이 움직여야 재난 재해 대책이 대비가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삼척 산불을 통해서 다시금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국가적 재해 재난의 컨트롤 타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잊을만하면 발생해 대형 피해를 안기고 있는 강동 영동 산불.

가늠하기 힘든 기상 변화와 맞물려 산불의 위험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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