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늘렸다 줄였다’…버튼 하나로 주유량 조작

입력 2017.05.24 (08:34) 수정 2017.05.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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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주유소마다 정품, 정량을 강조하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양심 불량 업주들이 종종 적발되면서, 주유량을 못 믿는 소비자가 많아서일겁니다.

이제 일반 주유소에서 주유량 조작이 쉽지 않아서인지, 이번에는 이동식 주유 차량에서 조작 장치가 발견됐습니다.

건설현장 같은 곳을 다니며 기름을 파는 이동식 주유차에 조작 장치를 달고 주유량을 뻥튀기했습니다.

작은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주유량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16일, 서울의 한 도롯가.

한 남성이 승합차에서 내리더니 이동식 주유차량 뒤로 가서 무언가를 설치합니다.

이틀 뒤, 이 남성이 손을 본 또 다른 주유차 한 대가 공사 현장에 나타납니다.

공사장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에 경유를 넣으러 온 건데요.

이 때,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당황한 운전기사. 주머니에선 작은 리모컨이, 주유차 앞 좌석에선 낯선 장치가 발견됩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리모컨 조작을 해서 경유 정량을 미달시켜서 속여서 파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첩보를 갖고 저희가 제작 업자를 먼저 수사하기 시작했어요.”

이틀 전, 승합차에서 내린 남성은 42살 김 모 씨.

김 씨가 주유차에 설치한 건 기름을 넣은 양을 측정하는 계량기를 조작하는 원격장치였습니다.

주유소에서 이런 조작 장치를 이용해 정량을 속인 경우는 있었지만, 이동식 주유차에서 계량기 조작 장치가 발견된 건 드문 일입니다.

<인터뷰> 정천현(한국석유관리원 수도권북부본부 과장) : “이동 판매 차량에 불법 시설물을 설치해서 정량 조작 판매를 하는 신종 수법에 대한 최초 적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던 김 씨는 지난 2015년 1월, 지인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이동식 주유 차량) 업자들이 ‘전자 쪽에 있으니까 유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한번 만들어봐라. 그럼 돈이 될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인의 제안에 김 씨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주유량을 조작할 수 있는 장치를 실제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주유차에 원격 장치를 달아 시험해 봤는데,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이후 김 씨는 이동식 주유차 운전 기사들을 알음알음 소개 받아 주유량 조작 장치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계기판에 나오는 수치보다 10~15% 정도 적게 주유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대당 1백만 원~2백50만 원을 받고 팔았습니다.

<인터뷰> 윤대식(경감/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 : “20여 대를 자기가 달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백만 원에서 2백50만 원 사이에 자기가 달아준 거로 확인이 됐습니다.”

2년여 동안 김 씨가 조작 장치를 달아준 주유차는 20여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이동식 탱크로리 차량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입니다. 영세한. 조금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에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김 씨가 제작한 원격장치입니다.

리모컨에는 세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1번을 누르면 계기판은 돌아가지만 실제 주유는 되지 않습니다.

2번의 경우 계기판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주유도 되지만, 실제 주유량은 계기판에 표시된 양보다 적게 들어갑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계기판은 정상으로 돌아가면서 양이 약간 적게 10~15% 적게 공급이 된다든지 아니면 계기판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석유량이 전혀 공급이 안 되든지 하는 방식으로 범행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3번 버튼에도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 씨와 주유차 운전기사들은 이 3번 버튼으로 완전 범죄를 꿈꿨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3번을 누르면 계량기가 멈춰서 버립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어? 계량기가 왜 멈췄지?’ 이상이 있나 봐요. 계량기를 손봐야 합니다.’ 하면서 시간을 끌면서 한 3~4분 지나면 정상으로 주유가 됩니다.”

단속에 대비해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던 겁니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처음에 이 무선 원격 조종 장치를 주유 계량기판에다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점차 더 진화돼서 차량 내부에 있는 배선에 직접 연결해서 전문가들도 육안으로 정상 주유가 되는 것으로 느낄 만큼 정교한 방법으로 수법이 진화됐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현장을 덮쳤을 때도, 이들이 설치한 원격장치는 차량 내부 시트를 뜯어내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 등이 이렇게 서울과 경기도 일대 건설 현장 10여 곳을 돌며 주유한 경유는 25억 원 어치.

주유량을 조작해 최소 2억 원 이상을 부당하게 챙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동식 주유차량 운전자(음성변조) : “저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도 그 전에 들었는데 그거 뭐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고 그러던데?”

피해를 당한 중장비 기사들은 주유량 조작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짜 석유를 섞어 파는게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주유량 조작 장치까지 나오면서 이동식 주유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중장비 기사들은 걱정이 큽니다.

<녹취> 중장비 기사 A(음성변조) : “대형 중장비는 주유소 끌고 갈 수도 없잖아요. 대도시 같은 데서. 다 주유소 차가 와서 넣는 거죠.”

<녹취> 중장비 기사 B(음성변조) : “우리 같은 경우는 방법이 없어요. 도로만 나가면 불법인데. 운반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방법이 없으니까 알면서도 속는 거고…….”

경찰은 주유량 조작 장치를 제작한 김 씨와 주유차 운전 기사 서 모 씨 등 모두 12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또 건설 현장에서 주유량을 조작하는 수법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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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늘렸다 줄였다’…버튼 하나로 주유량 조작
    • 입력 2017-05-24 08:44:48
    • 수정2017-05-24 09: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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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주유소마다 정품, 정량을 강조하는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양심 불량 업주들이 종종 적발되면서, 주유량을 못 믿는 소비자가 많아서일겁니다.

이제 일반 주유소에서 주유량 조작이 쉽지 않아서인지, 이번에는 이동식 주유 차량에서 조작 장치가 발견됐습니다.

건설현장 같은 곳을 다니며 기름을 파는 이동식 주유차에 조작 장치를 달고 주유량을 뻥튀기했습니다.

작은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주유량을 마음대로 늘렸다 줄였다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16일, 서울의 한 도롯가.

한 남성이 승합차에서 내리더니 이동식 주유차량 뒤로 가서 무언가를 설치합니다.

이틀 뒤, 이 남성이 손을 본 또 다른 주유차 한 대가 공사 현장에 나타납니다.

공사장에서 작업 중인 굴착기에 경유를 넣으러 온 건데요.

이 때, 현장에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당황한 운전기사. 주머니에선 작은 리모컨이, 주유차 앞 좌석에선 낯선 장치가 발견됩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리모컨 조작을 해서 경유 정량을 미달시켜서 속여서 파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첩보를 갖고 저희가 제작 업자를 먼저 수사하기 시작했어요.”

이틀 전, 승합차에서 내린 남성은 42살 김 모 씨.

김 씨가 주유차에 설치한 건 기름을 넣은 양을 측정하는 계량기를 조작하는 원격장치였습니다.

주유소에서 이런 조작 장치를 이용해 정량을 속인 경우는 있었지만, 이동식 주유차에서 계량기 조작 장치가 발견된 건 드문 일입니다.

<인터뷰> 정천현(한국석유관리원 수도권북부본부 과장) : “이동 판매 차량에 불법 시설물을 설치해서 정량 조작 판매를 하는 신종 수법에 대한 최초 적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 제품을 취급하는 일을 하던 김 씨는 지난 2015년 1월, 지인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이동식 주유 차량) 업자들이 ‘전자 쪽에 있으니까 유량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한번 만들어봐라. 그럼 돈이 될 거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인의 제안에 김 씨는 불법인줄 알면서도 주유량을 조작할 수 있는 장치를 실제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주유차에 원격 장치를 달아 시험해 봤는데,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이후 김 씨는 이동식 주유차 운전 기사들을 알음알음 소개 받아 주유량 조작 장치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계기판에 나오는 수치보다 10~15% 정도 적게 주유할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대당 1백만 원~2백50만 원을 받고 팔았습니다.

<인터뷰> 윤대식(경감/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 : “20여 대를 자기가 달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백만 원에서 2백50만 원 사이에 자기가 달아준 거로 확인이 됐습니다.”

2년여 동안 김 씨가 조작 장치를 달아준 주유차는 20여대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이동식 탱크로리 차량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개인사업자입니다. 영세한. 조금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기 위한 욕심에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김 씨가 제작한 원격장치입니다.

리모컨에는 세 개의 버튼이 있습니다.

1번을 누르면 계기판은 돌아가지만 실제 주유는 되지 않습니다.

2번의 경우 계기판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주유도 되지만, 실제 주유량은 계기판에 표시된 양보다 적게 들어갑니다.

<인터뷰> 윤대식(서울 도봉경찰서 지능팀장) : “계기판은 정상으로 돌아가면서 양이 약간 적게 10~15% 적게 공급이 된다든지 아니면 계기판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석유량이 전혀 공급이 안 되든지 하는 방식으로 범행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3번 버튼에도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김 씨와 주유차 운전기사들은 이 3번 버튼으로 완전 범죄를 꿈꿨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3번을 누르면 계량기가 멈춰서 버립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어? 계량기가 왜 멈췄지?’ 이상이 있나 봐요. 계량기를 손봐야 합니다.’ 하면서 시간을 끌면서 한 3~4분 지나면 정상으로 주유가 됩니다.”

단속에 대비해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던 겁니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은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 유권호(서울 도봉경찰서 수사과장) : “처음에 이 무선 원격 조종 장치를 주유 계량기판에다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점차 더 진화돼서 차량 내부에 있는 배선에 직접 연결해서 전문가들도 육안으로 정상 주유가 되는 것으로 느낄 만큼 정교한 방법으로 수법이 진화됐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현장을 덮쳤을 때도, 이들이 설치한 원격장치는 차량 내부 시트를 뜯어내고서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김 씨 등이 이렇게 서울과 경기도 일대 건설 현장 10여 곳을 돌며 주유한 경유는 25억 원 어치.

주유량을 조작해 최소 2억 원 이상을 부당하게 챙긴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동식 주유차량 운전자(음성변조) : “저도 이야기는 들었어요. 저도 그 전에 들었는데 그거 뭐 돈이 굉장히 많이 든다고 그러던데?”

피해를 당한 중장비 기사들은 주유량 조작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가짜 석유를 섞어 파는게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주유량 조작 장치까지 나오면서 이동식 주유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중장비 기사들은 걱정이 큽니다.

<녹취> 중장비 기사 A(음성변조) : “대형 중장비는 주유소 끌고 갈 수도 없잖아요. 대도시 같은 데서. 다 주유소 차가 와서 넣는 거죠.”

<녹취> 중장비 기사 B(음성변조) : “우리 같은 경우는 방법이 없어요. 도로만 나가면 불법인데. 운반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방법이 없으니까 알면서도 속는 거고…….”

경찰은 주유량 조작 장치를 제작한 김 씨와 주유차 운전 기사 서 모 씨 등 모두 12명을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또 건설 현장에서 주유량을 조작하는 수법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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