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현장] 원전사고 6년, 후쿠시마는 지금

입력 2017.07.01 (22:25) 수정 2017.07.0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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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도 6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4월에는 사고지 인근 마을들에 사람이 다시 와서 살아도 괜찮다는 피난 해제령도 내려졌는데요,

하지만 방사능 위험은 여전하고, 여기에 예상치 못한 위협까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후쿠시마에 돌아온 주민들은 유해조수들과 달갑지 않은 조우를 해야만 했는데요, 난감하기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피난 해제 백 일을 맞아 이승철 특파원이 직접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 광활한 터에 방사능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 논과 밭 한 가운데에 폐기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수년 동안 높은 방사능 수치를 보이는 마을 곳곳의 흙을 거두어 내는 이른바 방사능 제염 작업을 벌였고, 지난 4월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을에 대해 사람이 살아도 된다는 피난 해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인터뷰> 이시바시(후쿠시마 나미에마치 주민) : "과학자들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여기저기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이 있습니다."

와타나베 씨도 오랫동안 비워뒀던 사무실을 다시 열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 주변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터뷰> 와타나베(후쿠시마 토미오카 마치 주민) : "저기 입구 쪽...도로 쪽은 14마이크로 시버트예요, 현재도..."

비가 오면 주변 숲에서 물이 흘러내려 방사능 물질이 다시 쌓이는 겁니다.

<녹취> "(이 앞은) 오염물 제거 작업도 안되어 있어서, 허가를 받은 뒤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2km 남짓 떨어진 토미오카마치.

이쪽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지만 도로 하나만 건너도 오염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귀환 곤란 지역입니다.

피난 해제된 지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원래 주민의 10분의 1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돌아온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낯선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제방 도로.

동물 2마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

한 마리는 꼬리에 털이 빠져 병색이 완연합니다.

촬영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먹이를 먹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100kg은 돼 보이는 멧돼지가 어슬렁거립니다.

뒤를 쫓자 빈집으로 들어갑니다.

6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산 야마다 씨.

조금씩 집을 수리해가며 고향으로 돌아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뷰> 야마다(후쿠시마 나미에마치 주민) : "(전부 멧돼지가 그랬나요?) 멧돼지가 파먹은 거죠. 사람을 겁내질 않아요."

이 집은 멧돼지를 막기 위해 밭과 정원에 철책까지 둘렀습니다.

하지만 지난밤 텃밭에는 또 다른 동물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언제 발자국을 발견했나요?) 오늘 아침에요."

원전 폭발 이후 빠져나간 주민들을 대신해 마을을 채운 것은 야생 동물입니다.

시내 곳곳에는 이처럼 빈집들이 산재해 있어서 야생동물들의 번식처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긴 꼬리에 날씬한 몸, 그동안 후쿠시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흰코사향고양이입니다.

최근 개체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같은 CCTV에 이번에는 너구리 가족이 찍혔습니다.

제집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하는 낯선 동물들, 사람이 집에 돌아와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인터뷰> 마츠무라(후쿠시마 토미오카마치 주민) : "달그락달그락하면서 천장에서 동물 소리가 들려요. 흰코 사향 고양이나 너구리 새끼가 있는 것 같아요."

생태계 교란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멧돼지와 함께 있는 조금 다른 모습의 돼지 가족.

멧돼지에 비해 털빛은 검고, 집돼지라고 하기에는 털이 깁니다.

탈출한 집돼지와 야생 멧돼지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일본어로 '이노부타'라는 동물입니다.

몸속에 상당량의 세슘을 축적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생활 경계가 무너지면서 낯선 감염병에 대한 우려도 제기됩니다.

<인터뷰> 오쿠다(동물학자) : "동물 배설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 입에 들어가거나 해서 감염병에 걸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마을의 유해조수 포획반이 멧돼지 덫을 설치한 곳으로 향합니다.

<인터뷰> 타가와(나미에마치 유해조수 포획대) : "멧돼지가 쉬는 곳이 바로 저기에요."

<녹취> "(과거에는) 이 부근에 야생동물이 별로 없었어요. 사람들이 바로 주변에 있으니까요…."

나미에 마치에 설치된 멧돼지 덫은 모두 21곳,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덫으로 잡아들인 동물만 모두 830여 마리에 달합니다.

잡은 동물들은 모두 살처분합니다.

<인터뷰> 스즈키(나미에마치 사무소 직원) : "멧돼지도 나쁜 뜻이 있어서 마을에 온 건 아니잖아요. 될 수 있으면 잡아서 수를 줄이거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와야 하고..."

6년 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비운 사이, 그 자리를 채웠던 동물들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또 다른 재앙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후쿠시마에서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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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현장] 원전사고 6년, 후쿠시마는 지금
    • 입력 2017-07-01 22:33:53
    • 수정2017-07-01 22:40:36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멘트>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도 6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4월에는 사고지 인근 마을들에 사람이 다시 와서 살아도 괜찮다는 피난 해제령도 내려졌는데요,

하지만 방사능 위험은 여전하고, 여기에 예상치 못한 위협까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후쿠시마에 돌아온 주민들은 유해조수들과 달갑지 않은 조우를 해야만 했는데요, 난감하기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쿠시마 피난 해제 백 일을 맞아 이승철 특파원이 직접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후쿠시마현 나미에마치, 광활한 터에 방사능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 논과 밭 한 가운데에 폐기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수년 동안 높은 방사능 수치를 보이는 마을 곳곳의 흙을 거두어 내는 이른바 방사능 제염 작업을 벌였고, 지난 4월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을에 대해 사람이 살아도 된다는 피난 해제 지시를 내렸습니다.

<인터뷰> 이시바시(후쿠시마 나미에마치 주민) : "과학자들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여기저기 방사능 수치가 높은 곳이 있습니다."

와타나베 씨도 오랫동안 비워뒀던 사무실을 다시 열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 주변 방사능 수치를 측정해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터뷰> 와타나베(후쿠시마 토미오카 마치 주민) : "저기 입구 쪽...도로 쪽은 14마이크로 시버트예요, 현재도..."

비가 오면 주변 숲에서 물이 흘러내려 방사능 물질이 다시 쌓이는 겁니다.

<녹취> "(이 앞은) 오염물 제거 작업도 안되어 있어서, 허가를 받은 뒤에..."

후쿠시마 원전에서 2km 남짓 떨어진 토미오카마치.

이쪽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지만 도로 하나만 건너도 오염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귀환 곤란 지역입니다.

피난 해제된 지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원래 주민의 10분의 1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돌아온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낯선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제방 도로.

동물 2마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모습.

한 마리는 꼬리에 털이 빠져 병색이 완연합니다.

촬영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먹이를 먹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100kg은 돼 보이는 멧돼지가 어슬렁거립니다.

뒤를 쫓자 빈집으로 들어갑니다.

6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산 야마다 씨.

조금씩 집을 수리해가며 고향으로 돌아올 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뷰> 야마다(후쿠시마 나미에마치 주민) : "(전부 멧돼지가 그랬나요?) 멧돼지가 파먹은 거죠. 사람을 겁내질 않아요."

이 집은 멧돼지를 막기 위해 밭과 정원에 철책까지 둘렀습니다.

하지만 지난밤 텃밭에는 또 다른 동물이 찾아왔습니다.

<녹취> "(언제 발자국을 발견했나요?) 오늘 아침에요."

원전 폭발 이후 빠져나간 주민들을 대신해 마을을 채운 것은 야생 동물입니다.

시내 곳곳에는 이처럼 빈집들이 산재해 있어서 야생동물들의 번식처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내리고, 동물들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긴 꼬리에 날씬한 몸, 그동안 후쿠시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흰코사향고양이입니다.

최근 개체 수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같은 CCTV에 이번에는 너구리 가족이 찍혔습니다.

제집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하는 낯선 동물들, 사람이 집에 돌아와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인터뷰> 마츠무라(후쿠시마 토미오카마치 주민) : "달그락달그락하면서 천장에서 동물 소리가 들려요. 흰코 사향 고양이나 너구리 새끼가 있는 것 같아요."

생태계 교란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멧돼지와 함께 있는 조금 다른 모습의 돼지 가족.

멧돼지에 비해 털빛은 검고, 집돼지라고 하기에는 털이 깁니다.

탈출한 집돼지와 야생 멧돼지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 일본어로 '이노부타'라는 동물입니다.

몸속에 상당량의 세슘을 축적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의 생활 경계가 무너지면서 낯선 감염병에 대한 우려도 제기됩니다.

<인터뷰> 오쿠다(동물학자) : "동물 배설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 입에 들어가거나 해서 감염병에 걸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마을의 유해조수 포획반이 멧돼지 덫을 설치한 곳으로 향합니다.

<인터뷰> 타가와(나미에마치 유해조수 포획대) : "멧돼지가 쉬는 곳이 바로 저기에요."

<녹취> "(과거에는) 이 부근에 야생동물이 별로 없었어요. 사람들이 바로 주변에 있으니까요…."

나미에 마치에 설치된 멧돼지 덫은 모두 21곳, 지난해 3월부터 1년 동안 덫으로 잡아들인 동물만 모두 830여 마리에 달합니다.

잡은 동물들은 모두 살처분합니다.

<인터뷰> 스즈키(나미에마치 사무소 직원) : "멧돼지도 나쁜 뜻이 있어서 마을에 온 건 아니잖아요. 될 수 있으면 잡아서 수를 줄이거나 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와야 하고..."

6년 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는 주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비운 사이, 그 자리를 채웠던 동물들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또 다른 재앙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후쿠시마에서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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