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인구절벽 일본, ‘후쿠이 모델’로 극복

입력 2017.07.22 (22:09) 수정 2017.07.2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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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신생아 수는 물론이고, 해마다 인구가 30만 명 이상 줄고 있어 고민이라는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 지방 소도시가 있습니다.

인구는 가장 적은 편에 속하지만, 가구당 실질소득은 전국 1위이고, 주민 대상 행복지수도 1,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특이한 건 침체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달리 이곳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어 한다는 건데요,

'인구 절벽' 시대, 일본 사회는 후쿠이 모델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윤석구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일본 후쿠이현의 작은 도시 사바에입니다.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지방도시들과 달리 최근 수년간 인구가 7만 명 선까지 늘어났습니다.

역 앞엔 사바에를 상징하는 안경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인구 80만 명의 작은 현 후쿠이의 생산제품 가운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품목이 14개나 됩니다.

그런 후쿠이를 이끄는 힘은 이곳 사바에처럼 작지만 강한 강소도시들입니다.

250여 개 중소기업들이 공동운영하는 안경회관입니다.

일본 국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는 사바에 안경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1990년대 중국산 제품이 대량 수입되면서 사바에 안경산업은 한때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함께 개발해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인터뷰> 시마무라(후쿠이 안경협회 사무국장) : "세계 최초로 티타늄 안경테를 개발해 수출한 사바에는 지금도 최고수준의 금속가공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티타늄 등 금속 안경테를 전문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입니다.

숙련된 75명의 직원이 200단계가 넘는 고난도의 제작공정을 모두 자체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인터뷰> 다케우치(사바에 안경테 회사 대표) : "가격 대신 품질로 도전한다는 전략으로 외부 의존 없이 자체 기술로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작지만 탄탄한 업체들의 안정된 일자리는 사바에 인구를 늘리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원래 안경테 부품을 생산해온 이 업체의 최근 주력 제품은 병원의 수술용 의료기구입니다.

6년 전 처음 이 분야에 진출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성공 비결은 오랜 기간 안경테 생산을 통해 축적한 금속가공 전문기술이었습니다.

<인터뷰> 묘돈(사바에 의료기구 업체 직원/30년 근무) : "의료기구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대부분 안경테 제작과정과 유사한 게 많아서 작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양한 의료기구까지 생산하면서 이 업체는 직원 6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지역 최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인터뷰> 호리카와(사바에 의료기구 업체 대표) : "지방을 살리기 위해선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이 가진 기존 기술에 다른 종류의 기술을 융합하면 성장산업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업체가 생소했던 의료기구 분야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대학병원과의 협력이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신제품 개발을 맡은 직원이 후쿠이 의대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뇌수술 전문가인 기쿠타 교수는 수술용 정밀가위를 업체와 공동개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의료 기구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츠바라(의료기구업체 직원) : "손잡이 부분을 지난번보다 길게 만들어 봤습니다."

<녹취> 기쿠타(후쿠이 의대 뇌신경외과 교수) : "지난번 버튼 형태보다 이게 사용이 편한 것 같습니다."

시제품을 수술현장에서 직접 사용해보고 개선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인터뷰> 키쿠타(후쿠이의대 뇌신경외과 교수) : "의료기구 분야에 진출하려는 기업의 의도와 최적화된 도구가 아쉬운 수술현장의 수요가 잘 맞아서 효율적인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지역 국립대학인 후쿠이대학 안에는 대학과 자치단체가 함께 설립한 산학관 공동연구센터가 있습니다.

<인터뷰> 나가타(후쿠이 섬유 중소기업 직원) : "대학의 설비와 기술을 빌려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회사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개별 중소기업이 가진 핵심기술을 서로 연결해 성장 잠재력이 큰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혼자 힘으론 신기술 개발이 힘든 중소기업과의 공동연구를 이끌고 자치단체와 금융기관의 지원도 주선합니다.

<인터뷰> 요네자와(후쿠이대 산학관 연계본부장) : "고용 확보를 위해선 지역 내 여러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불안정한 대기업 고용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기술력이 탄탄한 중소기업들의 안정된 일자리와 함께 후쿠이 모델의 다른 한 가지 핵심은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입니다.

여성 취업자가 많아 맞벌이 가구 비율이 높은 후쿠이 현의 가구당 실질소득은 월 640만 원으로 일본 전국 1위입니다.

이 안경테 공장 역시 직원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레이저 정밀용접 공정을 맡고 있는 마츠무라 씨.

네 살과 한 살 두 아이를 둔 그는 1년간 육아휴직을 마치고 최근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인터뷰> 마츠무라(안경테 업체 직원) : "혹시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면 언제든 회사에서 배려해주니까 안심하고 보육원에 맡기고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보육원 전쟁을 겪고 있는 대도시와 달리 후쿠이에선 언제든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길 수 있어 젊은 부부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시모토(후쿠이현 교육위원회 직원) :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숙제하거나 놀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아동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문을 연 이 중학교는 후쿠이 교육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학생 전원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도서관 등 훌륭한 시설, 그리고 과목별로 자료실을 갖춘 전용 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더욱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인터뷰> 츠도(중학교 3학년) : "교실에 들어설 때 스스로 공부하러 간다는 마음가짐이 생기고 학교생활이 즐겁습니다."

교육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 덕분에 후쿠이현은 매년 전국 학력 평가에서 10년 넘게 1, 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츠시마(후쿠이현 마루오카 미나미 중학교 교장) : "아이들이 좋아하고 다니고 싶은 학교가 되기 위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키우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48개 현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 속하는 후쿠이.

하지만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행복지수 조사에선 매년 전국 1위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와 교육환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후쿠이 모델은 인구절벽에 선 일본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후쿠이에서 윤석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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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인구절벽 일본, ‘후쿠이 모델’로 극복
    • 입력 2017-07-22 22:31:18
    • 수정2017-07-22 22:3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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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신생아 수는 물론이고, 해마다 인구가 30만 명 이상 줄고 있어 고민이라는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 지방 소도시가 있습니다.

인구는 가장 적은 편에 속하지만, 가구당 실질소득은 전국 1위이고, 주민 대상 행복지수도 1,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특이한 건 침체기를 겪고 있는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달리 이곳엔 젊은 사람들이 '와서' '살고' 싶어 한다는 건데요,

'인구 절벽' 시대, 일본 사회는 후쿠이 모델에서 희망을 찾고 있습니다.

윤석구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일본 후쿠이현의 작은 도시 사바에입니다.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지방도시들과 달리 최근 수년간 인구가 7만 명 선까지 늘어났습니다.

역 앞엔 사바에를 상징하는 안경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인구 80만 명의 작은 현 후쿠이의 생산제품 가운데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품목이 14개나 됩니다.

그런 후쿠이를 이끄는 힘은 이곳 사바에처럼 작지만 강한 강소도시들입니다.

250여 개 중소기업들이 공동운영하는 안경회관입니다.

일본 국내 생산량의 95%를 차지하는 사바에 안경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1990년대 중국산 제품이 대량 수입되면서 사바에 안경산업은 한때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함께 개발해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인터뷰> 시마무라(후쿠이 안경협회 사무국장) : "세계 최초로 티타늄 안경테를 개발해 수출한 사바에는 지금도 최고수준의 금속가공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티타늄 등 금속 안경테를 전문 생산하는 한 중소기업입니다.

숙련된 75명의 직원이 200단계가 넘는 고난도의 제작공정을 모두 자체 기술로 완성했습니다.

<인터뷰> 다케우치(사바에 안경테 회사 대표) : "가격 대신 품질로 도전한다는 전략으로 외부 의존 없이 자체 기술로 고품질 제품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처럼 작지만 탄탄한 업체들의 안정된 일자리는 사바에 인구를 늘리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원래 안경테 부품을 생산해온 이 업체의 최근 주력 제품은 병원의 수술용 의료기구입니다.

6년 전 처음 이 분야에 진출해 단기간에 자리를 잡은 성공 비결은 오랜 기간 안경테 생산을 통해 축적한 금속가공 전문기술이었습니다.

<인터뷰> 묘돈(사바에 의료기구 업체 직원/30년 근무) : "의료기구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대부분 안경테 제작과정과 유사한 게 많아서 작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다양한 의료기구까지 생산하면서 이 업체는 직원 600명 이상을 고용하는 지역 최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인터뷰> 호리카와(사바에 의료기구 업체 대표) : "지방을 살리기 위해선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기업이 가진 기존 기술에 다른 종류의 기술을 융합하면 성장산업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업체가 생소했던 의료기구 분야에 도전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 대학병원과의 협력이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신제품 개발을 맡은 직원이 후쿠이 의대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뇌수술 전문가인 기쿠타 교수는 수술용 정밀가위를 업체와 공동개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의료 기구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녹취> 마츠바라(의료기구업체 직원) : "손잡이 부분을 지난번보다 길게 만들어 봤습니다."

<녹취> 기쿠타(후쿠이 의대 뇌신경외과 교수) : "지난번 버튼 형태보다 이게 사용이 편한 것 같습니다."

시제품을 수술현장에서 직접 사용해보고 개선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인터뷰> 키쿠타(후쿠이의대 뇌신경외과 교수) : "의료기구 분야에 진출하려는 기업의 의도와 최적화된 도구가 아쉬운 수술현장의 수요가 잘 맞아서 효율적인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지역 국립대학인 후쿠이대학 안에는 대학과 자치단체가 함께 설립한 산학관 공동연구센터가 있습니다.

<인터뷰> 나가타(후쿠이 섬유 중소기업 직원) : "대학의 설비와 기술을 빌려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이 회사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센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개별 중소기업이 가진 핵심기술을 서로 연결해 성장 잠재력이 큰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혼자 힘으론 신기술 개발이 힘든 중소기업과의 공동연구를 이끌고 자치단체와 금융기관의 지원도 주선합니다.

<인터뷰> 요네자와(후쿠이대 산학관 연계본부장) : "고용 확보를 위해선 지역 내 여러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불안정한 대기업 고용에 의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기술력이 탄탄한 중소기업들의 안정된 일자리와 함께 후쿠이 모델의 다른 한 가지 핵심은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입니다.

여성 취업자가 많아 맞벌이 가구 비율이 높은 후쿠이 현의 가구당 실질소득은 월 640만 원으로 일본 전국 1위입니다.

이 안경테 공장 역시 직원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레이저 정밀용접 공정을 맡고 있는 마츠무라 씨.

네 살과 한 살 두 아이를 둔 그는 1년간 육아휴직을 마치고 최근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인터뷰> 마츠무라(안경테 업체 직원) : "혹시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면 언제든 회사에서 배려해주니까 안심하고 보육원에 맡기고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보육원 전쟁을 겪고 있는 대도시와 달리 후쿠이에선 언제든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길 수 있어 젊은 부부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시모토(후쿠이현 교육위원회 직원) :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숙제하거나 놀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아동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년 전 문을 연 이 중학교는 후쿠이 교육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학생 전원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도서관 등 훌륭한 시설, 그리고 과목별로 자료실을 갖춘 전용 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더욱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인터뷰> 츠도(중학교 3학년) : "교실에 들어설 때 스스로 공부하러 간다는 마음가짐이 생기고 학교생활이 즐겁습니다."

교육 분야에 대한 집중투자 덕분에 후쿠이현은 매년 전국 학력 평가에서 10년 넘게 1, 2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인터뷰> 마츠시마(후쿠이현 마루오카 미나미 중학교 교장) : "아이들이 좋아하고 다니고 싶은 학교가 되기 위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키우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48개 현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 속하는 후쿠이.

하지만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행복지수 조사에선 매년 전국 1위를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와 교육환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후쿠이 모델은 인구절벽에 선 일본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후쿠이에서 윤석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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