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남북 정상회담 대하는 남북 차이는?

입력 2018.04.21 (08:08) 수정 2018.04.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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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과 북, 정상은 다음 주 사상 세 번째로 마주 앉게 됩니다.

앞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정상들이 나눈 이야기를 우리는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지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북한 당국이 대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했고, 북한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태운 차량이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 근처에 멈춰 섰다.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도로 위 선명하게 그어진 노란 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 북으로 향했고, 바로 이 순간이 2007 남북정상회담의 상징적 장면이 됐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남측 지역 방문이 결정됐다.

[조명균/통일부 장관/3월29일 : "2018 남북 정상회담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

두 정상의 만남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남북이 정상회담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1월 1일,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그해 12월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1994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약속받는 성과를 얻어낸다.

[김영삼 대통령/1994년 6월 : "이제 장소하고 시간만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언제 만나자, 어디서 만나자. 이것만 이제 합의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여 앞둔 1994년 7월 8일, 상황이 급반전된다.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1994년 7월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회담 당사자인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

남북 첫 정상회담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참 아쉬운 대목이죠. 왜냐하면 그때라고 하면 북핵 개발도 가장 초기단계이고 또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인해서 북한도 다급한 상황이었거든요 만일에 그때 정상회담이 되었다고 그러면 지금 한반도 문제의 흐름은 이와는 상당히 달랐겠죠."]

4년 뒤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의지를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1998년 2월 : "북한이 원하면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정상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마침내 평양 땅을 밟았다.

분단 뒤 처음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

서울 프레스 센터에 대기 중이던 천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이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조선중앙TV /2000년 6월 : "지금부터 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 일행의 평양 도착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북한 매체의 보도 태도였다.

북한의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면에 두 정상의 상봉 장면을 싣는 등 김 씨 일가 사진만 올리던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이고 과감한 편집을 시도했고,

[조선중앙TV/2000년 6월 : "김대중 대통령과 일행을 평양 시내 연도에서 각 계층 근로자들이 환영한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조선중앙TV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소식을 담은 특집 프로그램들을 반복해 내보냈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처음 봤다는 탈북민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한다.

[최성국/평양 출신 탈북민/2011년 탈북 : "대한민국이라고 쓴 비행기를 보고 사람들이 놀랐어요. 남조선인줄 알았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처음 봤단 말이에요. 언행에 조심하고 행사차가 보이면 밝게 웃어주면서 손을 흔들어라 뭐 이런 주의도 많이 받고..."]

우리 방송 카메라에 담긴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은둔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 비밀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김 위원장이 베일을 벗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2000년 6월 : "외국 기자들도 수백 명 있는데 천여 명 기자들이 기립박수를 했다고 그래요, 우리가 공항에서 악수할 때..."]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나는 과거에 중국도 갔었고 인도네시아도 갔었고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고별 오찬에서는 자신의 주량에 대한 우리 언론 보도를 두고 농담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난 포도주밖에 안 먹는데 술 실력이야 통일부장관이 나보다 더 많이 마시는데, 어떻게 된 게 나한테 집중되는지 모르겠어."]

[김대중 대통령/2000년 6월 : "저는 네 번 정도에 나눠 마셔요."]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대통령께선 연로하시니까.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술 실력이 낫다.."]

그러나 이렇듯 농담을 건네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과 목소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탈북민의 증언이다.

[최성국/평양 출신 탈북민/2011년 탈북 : "전혀 저는 한국 와서 처음 들었고 북한에서는 김정일이가 유일하게 한 말이 열병식 군사퍼레이드 할 때 딱 한번 나와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이것 딱 한 문장이에요 그 다음에 누구도 김정일의 목소리를 몰라요."]

실제 북한 TV에선 이 기간 공식적인 회담 장면 등만을 음성을 뺀 화면으로만 보도했고, 일주일 뒤 공개한 기록영화에서도 북한 지도자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급급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영도력만을 강조했고, 6.15 공동선언 발표 역시 김정일의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北기록영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김대중 대통령과 상봉’/2000년 6월 : "북남 공동선언이 발표되게 된 것이야말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 통일 운동으로 쌓으신 불멸의 업적으로 됩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웃음을 유도하며 자신의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켰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께서 오셨는데 내가 뭐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가 없죠."]

당시 정상회담장을 수행한 전직 고위 관료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직설화법으로 돌발 상황도 발생했다고 전한다.

[백종천/세종연구소 이사장/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기자, 카메라맨들이 다 이렇게 찍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그때 들어오자마자 노 대통령 딱 보더니 아 대통령님 하루 연장하고 가시죠, 뭐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갑자기 노 대통령에게 평양에 하루 더 머물 것을 제안한 김정일 위원장.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오늘 일정 내일로 미루시고... 대통령께서 그걸 결심 못하십니까? 대통령께서 결심하시면 되잖아요."]

노 대통령은 당시 수행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돌발 제안을 임기응변으로 넘겼다.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저보다 센 데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경호실이고 하나는 의전실인데 상의해서..."]

이런 에피소드 역시 우리 방송화면엔 생생히 공개됐지만 한에서는 음성을 뺀 화면과 아나운서 목소리로만 소식이 전해졌다.

[北기록영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노무현 대통령과 상봉’ : "회담에서는 6·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이 합의되었습니다."]

[조선중앙TV/4월 11일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보고에서 이달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는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지난주, 북한도 내부 매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전했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린다며 날짜와 장소까지 공개했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날짜와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두 정상의 만남이 가까워졌고,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한을 처음 방문하는 북한 최고지도자.

이제 또 다른 관심은 김정은 위원장이 어떻게 남한 땅으로 올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2007년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었던 노무현 대통령처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커 보인다.

[백종천/세종연구소 이사장/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는데, 우리 국민한테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야, 한반도에서 앞으로 평화가 와야 되겠다, 이루어야 되겠다, 그런 걸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였던 거죠 사실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정상들이 만나서 악수한다는 거는 이건 아마 세계적인 또 이벤트일 거예요. 또 굉장히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와야 된다는 그런 메시지가 있는 건데..."]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내려가는 길에 만나게 됩니까?"]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2007년, 남북 정상의 마지막 만남.

[김정일/2007년 10월 : "수시로 만나기로 했으니까 자주 만납시다."]

자주 만나자던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어느덧 1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북한의 고립은 심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한반도에 해빙의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만남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만남은 만남자체로도 의미가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에 53년 정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안보질서, 그 다음에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에 어떤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평화의 새로운 시작.2018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발판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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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남북 정상회담 대하는 남북 차이는?
    • 입력 2018-04-21 08:22:48
    • 수정2018-04-21 08:33:11
    남북의 창
[앵커]

남과 북, 정상은 다음 주 사상 세 번째로 마주 앉게 됩니다.

앞서 두 차례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정상들이 나눈 이야기를 우리는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클로즈업 북한> 이번 주에는 지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북한 당국이 대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했고, 북한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심층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2007년 10월 2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를 태운 차량이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군사분계선 근처에 멈춰 섰다.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이제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도로 위 선명하게 그어진 노란 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 북으로 향했고, 바로 이 순간이 2007 남북정상회담의 상징적 장면이 됐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남측 지역 방문이 결정됐다.

[조명균/통일부 장관/3월29일 : "2018 남북 정상회담을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자 북한 최고 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

두 정상의 만남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남북이 정상회담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1월 1일,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고위급 회담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그해 12월 남과 북은 고위급 회담을 개최했고, 1994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약속받는 성과를 얻어낸다.

[김영삼 대통령/1994년 6월 : "이제 장소하고 시간만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언제 만나자, 어디서 만나자. 이것만 이제 합의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회담을 불과 보름여 앞둔 1994년 7월 8일, 상황이 급반전된다.

[김일성 주석 사망 발표/1994년 7월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1994년 7월 8일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회담 당사자인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

남북 첫 정상회담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참 아쉬운 대목이죠. 왜냐하면 그때라고 하면 북핵 개발도 가장 초기단계이고 또 사회주의 체제 붕괴로 인해서 북한도 다급한 상황이었거든요 만일에 그때 정상회담이 되었다고 그러면 지금 한반도 문제의 흐름은 이와는 상당히 달랐겠죠."]

4년 뒤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의지를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1998년 2월 : "북한이 원하면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북한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며 정상 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은 마침내 평양 땅을 밟았다.

분단 뒤 처음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

서울 프레스 센터에 대기 중이던 천여 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이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조선중앙TV /2000년 6월 : "지금부터 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 일행의 평양 도착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북한 매체의 보도 태도였다.

북한의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1면에 두 정상의 상봉 장면을 싣는 등 김 씨 일가 사진만 올리던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이고 과감한 편집을 시도했고,

[조선중앙TV/2000년 6월 : "김대중 대통령과 일행을 평양 시내 연도에서 각 계층 근로자들이 환영한 소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조선중앙TV 역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 소식을 담은 특집 프로그램들을 반복해 내보냈다.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처음 봤다는 탈북민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한다.

[최성국/평양 출신 탈북민/2011년 탈북 : "대한민국이라고 쓴 비행기를 보고 사람들이 놀랐어요. 남조선인줄 알았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처음 봤단 말이에요. 언행에 조심하고 행사차가 보이면 밝게 웃어주면서 손을 흔들어라 뭐 이런 주의도 많이 받고..."]

우리 방송 카메라에 담긴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도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은둔의 지도자’라 불릴 만큼 비밀스러운 행보를 보이던 김 위원장이 베일을 벗었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다.

[김대중 대통령/2000년 6월 : "외국 기자들도 수백 명 있는데 천여 명 기자들이 기립박수를 했다고 그래요, 우리가 공항에서 악수할 때..."]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은둔 생활하는 사람이 처음 나타났다... 나는 과거에 중국도 갔었고 인도네시아도 갔었고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

고별 오찬에서는 자신의 주량에 대한 우리 언론 보도를 두고 농담을 하는 여유도 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난 포도주밖에 안 먹는데 술 실력이야 통일부장관이 나보다 더 많이 마시는데, 어떻게 된 게 나한테 집중되는지 모르겠어."]

[김대중 대통령/2000년 6월 : "저는 네 번 정도에 나눠 마셔요."]

[김정일/국방위원장/2000년 6월 : "대통령께선 연로하시니까.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술 실력이 낫다.."]

그러나 이렇듯 농담을 건네는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과 목소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 탈북민의 증언이다.

[최성국/평양 출신 탈북민/2011년 탈북 : "전혀 저는 한국 와서 처음 들었고 북한에서는 김정일이가 유일하게 한 말이 열병식 군사퍼레이드 할 때 딱 한번 나와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 이것 딱 한 문장이에요 그 다음에 누구도 김정일의 목소리를 몰라요."]

실제 북한 TV에선 이 기간 공식적인 회담 장면 등만을 음성을 뺀 화면으로만 보도했고, 일주일 뒤 공개한 기록영화에서도 북한 지도자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에만 급급했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영도력만을 강조했고, 6.15 공동선언 발표 역시 김정일의 업적이라고 주장했다.

[北기록영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김대중 대통령과 상봉’/2000년 6월 : "북남 공동선언이 발표되게 된 것이야말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국 통일 운동으로 쌓으신 불멸의 업적으로 됩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2007년 정상회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정일 위원장은 거침없는 화법으로 웃음을 유도하며 자신의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켰다.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께서 오셨는데 내가 뭐 환자도 아닌데, 집에서 뻗치고 있을 필요가 없죠."]

당시 정상회담장을 수행한 전직 고위 관료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직설화법으로 돌발 상황도 발생했다고 전한다.

[백종천/세종연구소 이사장/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기자, 카메라맨들이 다 이렇게 찍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그때 들어오자마자 노 대통령 딱 보더니 아 대통령님 하루 연장하고 가시죠, 뭐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갑자기 노 대통령에게 평양에 하루 더 머물 것을 제안한 김정일 위원장.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오늘 일정 내일로 미루시고... 대통령께서 그걸 결심 못하십니까? 대통령께서 결심하시면 되잖아요."]

노 대통령은 당시 수행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돌발 제안을 임기응변으로 넘겼다.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저보다 센 데가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경호실이고 하나는 의전실인데 상의해서..."]

이런 에피소드 역시 우리 방송화면엔 생생히 공개됐지만 한에서는 음성을 뺀 화면과 아나운서 목소리로만 소식이 전해졌다.

[北기록영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노무현 대통령과 상봉’ : "회담에서는 6·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를 확대발전시켜 나가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이 합의되었습니다."]

[조선중앙TV/4월 11일 :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보고에서 이달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 집에서 개최되는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지난주, 북한도 내부 매체를 통해 주민들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전했다.

27일 판문점에서 열린다며 날짜와 장소까지 공개했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날짜와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두 정상의 만남이 가까워졌고, 북한 역시 이번 정상회담에 기대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한을 처음 방문하는 북한 최고지도자.

이제 또 다른 관심은 김정은 위원장이 어떻게 남한 땅으로 올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2007년 군사분계선을 걸어 넘었던 노무현 대통령처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커 보인다.

[백종천/세종연구소 이사장/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는데, 우리 국민한테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야, 한반도에서 앞으로 평화가 와야 되겠다, 이루어야 되겠다, 그런 걸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이벤트였던 거죠 사실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정상들이 만나서 악수한다는 거는 이건 아마 세계적인 또 이벤트일 거예요. 또 굉장히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와야 된다는 그런 메시지가 있는 건데..."]

[노무현 대통령/2007년 10월 : "내려가는 길에 만나게 됩니까?"]

[김정일/국방위원장/2007년 10월 :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2007년, 남북 정상의 마지막 만남.

[김정일/2007년 10월 : "수시로 만나기로 했으니까 자주 만납시다."]

자주 만나자던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어느덧 1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로 남북관계는 경색됐고 북한의 고립은 심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한반도에 해빙의 분위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만남이라고 입을 모은다.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만남은 만남자체로도 의미가 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에 53년 정전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매우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동북아시아의 신안보질서, 그 다음에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에 어떤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평화의 새로운 시작.2018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에 중요한 발판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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