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입력 2018.06.30 (08:20) 수정 2018.06.3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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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미 정상이 합의한 대로 6.25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네, 마무리가 잘 된다면 6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거죠.

무엇보다 가족들 기쁨이 제일 크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6.25 당시 우리 국군 전사자 12만 3천여 명도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이번 주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호국용사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유해 발굴 체험 캠프 현장을 소개합니다.

탈북민 출신 대학생들까지 함께 해 더욱 뜻깊었다는데요.

이다솜 리포터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6월 25일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이 잠든 이곳을 대학생 여러 명이 찾았습니다.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캠프에 참여한 건데요.

["손가락, 발가락. 이 부분밖에 남지 않으셔가지고 도저히 판별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무명용사’의 흔적.

안타까움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김필주/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우리나라 지금의 모습을 지켜주신 분들이잖아요. 현충원을 찾은 거는 최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좀 부끄러움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함도 느끼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바로 그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체험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호국용사의 귀향을 위해 발 벗고 나섰는데요.

남한과 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하기에 더욱 특별한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그 현장으로 떠나보실까요?

민통선 안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학생들.

유해를 찾으려면 배를 든든히 채워야겠죠?

그런데 메뉴부터 심상치 않네요.

바로 군인들이 실제 먹는 전투식량입니다.

["뜨거워요? 안 뜨거운데."]

["이걸 뜯고, 이걸 당기나?"]

생각지도 못한 음식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요.

과연 그 맛은 어떨까요?

[이주원/서울시 강동구 : "편의점에서 파는 편의점 도시락 같은 느낌이에요. 볶음김치가 제일 맛있습니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은 40명.

그 중 절반은 탈북민 대학생들입니다.

이들로부터 북한의 전투식량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한솔송/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북한에도) 요만한 무슨 우유가루랑 뭐 영양제로 만든 그런 과자. 먹으면 포만감 생기고 그렇다고는 하는데 몇 개 못 먹어봤어요. 별로 맛은 없었고."]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유해를 찾아야겠죠?

그런데 출발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인가 봐요.) 그런가 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군용트럭.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지만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롯이 두 다리로만 험한 산을 올라야 하는데요.

68년 전에도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이 길에 있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라 불리던 치열한 고지쟁탈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인데요.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주변의 풍경.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디엔가 묻혀있는 용사들에게는 이 풍경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요?

유해발굴현장에 도착하자 아침부터 작업을 하던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학생들을 맞이합니다.

["호국영령들께 대하여 묵념."]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였던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했던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하는데요.

이젠 직접 그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깎아서 갉아 내려가듯이. 이게 손상될 수 있으니까 살살해야 돼요."]

처음해보는 일이지만 유해발굴단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순조롭게 발굴이 진행되는데요.

단단히 박힌 나무뿌리 탓에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주일용/탈북민 : "진짜 힘듭니다.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드실지 생각이 들고.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땅을 파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류품들이 발견되는데요.

[김필주/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탄피요. 국군 탄약, 탄피. 여기는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적군, 아군. 좀 면밀히 봐야 될 것 같아요. 흙이랑 같은 색이라서 구별하기가 좀 쉽지가 않네요."]

작은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파낸 흙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합니다.

[박정효/유해 발굴 감식단 발굴팀장 : "오늘까지 해서 6일차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지금 현재까지 여섯 구의 유해를 식별하고 수습을 했습니다. 탄약류 또는 뭐 총기류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약 2000여점의 유품이 식별되고 있습니다."]

[송광현/탈북민/서울시 동대문구 : "유해의 한 부분이라도 좀 발견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너무 시간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어느덧 체험 작업을 정리해야 할 시간.

["조심히 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 인사와 응원으로 작업을 마무리해 보지만 가슴 한 구석엔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장병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가 봅니다

.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한 학생들은 과학화전투 훈련장에 들러 전쟁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기도 했는데요.

과녁을 맞힐 땐 신이 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정대훈/서울시 성북구 : "친해진 (탈북민)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가 군 생활 하고 있을 때 저도 군 생활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재작년만 하더라도 우리 둘은 서로 적군이었구나."]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다수는 이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들과 비슷한 또래들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대립해야 했던 잔인한 시간 그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평화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서로를 마주해야 합니다.

4박 5일의 유해발굴체험 캠프기간 내내 학생들은 매일 밤 토론을 엽니다.

느낀 점을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서인데요.

["적군이란 용어를 썼는데 (북한 친구들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

["(작년 캠프에서) 학도병들이 당시에 썼던 편지들이 있었어요. 이걸 보고 작년에 너무 울었는데 그 내용들이 보면 어머니 정말 무섭습니다. 막 그러면서. 그때 너무 많은 걸 느껴서 한 번 더 와서 이렇게라도 와서 뭔가 하고 싶었어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을 희생하고도 아직까지 가족을 찾지 못한 무명용사들.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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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 품으로
    • 입력 2018-06-30 08:21:47
    • 수정2018-06-30 08: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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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미 정상이 합의한 대로 6.25 당시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네, 마무리가 잘 된다면 6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거죠.

무엇보다 가족들 기쁨이 제일 크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6.25 당시 우리 국군 전사자 12만 3천여 명도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이번 주 통일로미래로에서는 호국용사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유해 발굴 체험 캠프 현장을 소개합니다.

탈북민 출신 대학생들까지 함께 해 더욱 뜻깊었다는데요.

이다솜 리포터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6월 25일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이 잠든 이곳을 대학생 여러 명이 찾았습니다.

6.25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기 위한 캠프에 참여한 건데요.

["손가락, 발가락. 이 부분밖에 남지 않으셔가지고 도저히 판별할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무명용사’의 흔적.

안타까움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김필주/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우리나라 지금의 모습을 지켜주신 분들이잖아요. 현충원을 찾은 거는 최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좀 부끄러움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감사함도 느끼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바로 그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체험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호국용사의 귀향을 위해 발 벗고 나섰는데요.

남한과 북한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하기에 더욱 특별한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그 현장으로 떠나보실까요?

민통선 안에 있는 숙소에 도착한 학생들.

유해를 찾으려면 배를 든든히 채워야겠죠?

그런데 메뉴부터 심상치 않네요.

바로 군인들이 실제 먹는 전투식량입니다.

["뜨거워요? 안 뜨거운데."]

["이걸 뜯고, 이걸 당기나?"]

생각지도 못한 음식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요.

과연 그 맛은 어떨까요?

[이주원/서울시 강동구 : "편의점에서 파는 편의점 도시락 같은 느낌이에요. 볶음김치가 제일 맛있습니다."]

이번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은 40명.

그 중 절반은 탈북민 대학생들입니다.

이들로부터 북한의 전투식량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한솔송/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북한에도) 요만한 무슨 우유가루랑 뭐 영양제로 만든 그런 과자. 먹으면 포만감 생기고 그렇다고는 하는데 몇 개 못 먹어봤어요. 별로 맛은 없었고."]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으로 유해를 찾아야겠죠?

그런데 출발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인가 봐요.) 그런가 보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군용트럭.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지만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롯이 두 다리로만 험한 산을 올라야 하는데요.

68년 전에도 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이 길에 있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노전평 전투라 불리던 치열한 고지쟁탈전에 참전했던 용사들인데요.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주변의 풍경.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디엔가 묻혀있는 용사들에게는 이 풍경이 그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요?

유해발굴현장에 도착하자 아침부터 작업을 하던 유해발굴감식단원들이 학생들을 맞이합니다.

["호국영령들께 대하여 묵념."]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제였던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했던 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짐작케 하는데요.

이젠 직접 그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깎아서 갉아 내려가듯이. 이게 손상될 수 있으니까 살살해야 돼요."]

처음해보는 일이지만 유해발굴단원들의 도움이 있기에 순조롭게 발굴이 진행되는데요.

단단히 박힌 나무뿌리 탓에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

[주일용/탈북민 : "진짜 힘듭니다.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드실지 생각이 들고.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땅을 파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류품들이 발견되는데요.

[김필주/탈북민/서울시 양천구 : "탄피요. 국군 탄약, 탄피. 여기는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적군, 아군. 좀 면밀히 봐야 될 것 같아요. 흙이랑 같은 색이라서 구별하기가 좀 쉽지가 않네요."]

작은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파낸 흙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합니다.

[박정효/유해 발굴 감식단 발굴팀장 : "오늘까지 해서 6일차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지금 현재까지 여섯 구의 유해를 식별하고 수습을 했습니다. 탄약류 또는 뭐 총기류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약 2000여점의 유품이 식별되고 있습니다."]

[송광현/탈북민/서울시 동대문구 : "유해의 한 부분이라도 좀 발견됐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아쉽기도 하고 너무 시간이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어느덧 체험 작업을 정리해야 할 시간.

["조심히 가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 인사와 응원으로 작업을 마무리해 보지만 가슴 한 구석엔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장병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가 봅니다

. 전쟁의 참상을 눈으로 확인한 학생들은 과학화전투 훈련장에 들러 전쟁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기도 했는데요.

과녁을 맞힐 땐 신이 나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도 듭니다.

[정대훈/서울시 성북구 : "친해진 (탈북민) 친구가 한 명 있어요. 그 친구가 군 생활 하고 있을 때 저도 군 생활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 재작년만 하더라도 우리 둘은 서로 적군이었구나."]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 다수는 이 캠프에 참여한 대학생들과 비슷한 또래들이었습니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대립해야 했던 잔인한 시간 그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평화의 가치를 깊이 새기고 서로를 마주해야 합니다.

4박 5일의 유해발굴체험 캠프기간 내내 학생들은 매일 밤 토론을 엽니다.

느낀 점을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서인데요.

["적군이란 용어를 썼는데 (북한 친구들이)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

["(작년 캠프에서) 학도병들이 당시에 썼던 편지들이 있었어요. 이걸 보고 작년에 너무 울었는데 그 내용들이 보면 어머니 정말 무섭습니다. 막 그러면서. 그때 너무 많은 걸 느껴서 한 번 더 와서 이렇게라도 와서 뭔가 하고 싶었어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한 몸을 희생하고도 아직까지 가족을 찾지 못한 무명용사들.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갈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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