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24 이슈] 류샤오보 사망 1주기…류샤는 마침내 독일행

입력 2018.07.13 (20:38) 수정 2018.07.1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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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1년 전 오늘 별세했습니다.

한편 2010년 이후 가택연금 상태였던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는 최근 독일로 출국했는데요,

중국이 왜 이런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을까요?

오늘 양영은 기자와 자세히 알아봅니다.

오늘이 류샤오보 사망 1주기라고요,

먼저 류샤오보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짚어보죠.

[기자]

네, 여기 바로 이 인물입니다.

1955년에 태어나 1982년 지린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 사범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입니다.

1989년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대에서 방문학자로 체류 중에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발발하자 귀국해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합니다.

톈안먼 시위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났는데 중국 정부가 무력 진압을 하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지죠,

이때 류샤오보는 '반혁명 선전선동죄'목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단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후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중국 민주화 운동에 본격 뛰어드는데요,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08헌장'을 발표하려다 이듬해 '국가 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게 됩니다.

그렇게 옥살이를 하다 지난해 5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얼마 후인 7월 13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앵커]

류샤오보 하면 또 생각나는 게 노벨평화상이잖아요.

[기자]

네, 사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사연이 많습니다.

먼저 화면을 보실까요?

빈 의자에 노벨평화상 메달이 놓여지는 영상, 류샤오보의 부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화면인데요,

지난 2010년의 일입니다.

[토르비요른 야글란드/노벨위원회 의장/2010년 :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중국의 근본적인 인권을 위해 오랜 비폭력 투쟁을 해온 류샤오보를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류샤오보는 이때 감옥에 수감 중이어서 시상식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빈 의자에 노벨상 메달이 놓여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게 된 거죠.

당시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이고 중국 내 인권 운동가들의 출국도 금지돼 시상식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류샤오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다른 나라에 귀화하거나 망명하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한 첫 중국인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랬던 류샤오보가 죽는 순간까지 원했던 게 있죠,

바로 아내 류샤의 '자유'라고요.

[기자]

네, 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서는 전통이 하나 있는데요,

수상자가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를 수 있다고 합니다.

류샤오보의 경우는 우여곡절 끝에 린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중국 민요 모리화와 채운추월,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을 연주했는데요,

'사랑의 인사'가 연주된 건 류샤오보와 류샤 부부의 사랑을 기린 것이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서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류샤오보는 간암 말기임에도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원했는데요,

이 또한 자기 자신의 치료보다는 아내 류샤를 가택연금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사실 류샤는 남편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가택연금에 처해져 중국 정부로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았는데요,

지난해 남편 사망 이후에는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 여행까지 가게 되면서 40여 일간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류샤오보의 아내라는 이유로 자유를 빼았겼던 건데요,

그런 류샤가 마침내 독일로 출국한 겁니다.

그동안도 독일 정부는 우울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류샤에게 출국 허용과 해외 치료를 촉구해왔지만 중국 당국은 번번이 외면했었는데요,

지난 10일 8년만에 중국을 떠나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테겔 공항 입국장에서 환하게 웃는 류샤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류샤는 이제 독일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낼 것으로 알려졌고요,

남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홀로 조용히 추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졌습니다.

[앵커]

정말 잘 됐네요,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공도 크다면서요?

네, 메르켈 총리는 진심으로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난민 문제에 대한 태도만 봐도 알 수가 있죠,

이번 류샤의 출국 허용은 메르켈 총리가 지난 9일 베를린에서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정부 대표단과 회담을 가진 이후에 결정됐습니다.

평소 메르켈 총리는 서방 지도자 중 유독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고, 그러면서도 중국입장을 고려해 조용하게 석방 노력을 추진해왔다고요,

이와 함께 타이밍도 좋았다는 분석인데요,

중국은 지금 미국과 이른바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잖아요,

때문에 중국은 유럽과 반미 전선을 형성하고 싶어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도권을 쥔 독일의 마음을 사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

그런 연유로 지금껏 미뤄오던 류샤의 석방을 전격 결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로벌 이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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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24 이슈] 류샤오보 사망 1주기…류샤는 마침내 독일행
    • 입력 2018-07-13 20:30:26
    • 수정2018-07-13 20: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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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의 인권운동가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1년 전 오늘 별세했습니다.

한편 2010년 이후 가택연금 상태였던 류샤오보의 아내 류샤는 최근 독일로 출국했는데요,

중국이 왜 이런 전격적인 결단을 내렸을까요?

오늘 양영은 기자와 자세히 알아봅니다.

오늘이 류샤오보 사망 1주기라고요,

먼저 류샤오보가 어떤 인물인지부터 짚어보죠.

[기자]

네, 여기 바로 이 인물입니다.

1955년에 태어나 1982년 지린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후 베이징 사범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입니다.

1989년 미국 뉴욕의 콜롬비아대에서 방문학자로 체류 중에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발발하자 귀국해서 민주화 운동에 동참합니다.

톈안먼 시위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났는데 중국 정부가 무력 진압을 하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지죠,

이때 류샤오보는 '반혁명 선전선동죄'목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단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후 작가로서 활동하면서 중국 민주화 운동에 본격 뛰어드는데요,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08헌장'을 발표하려다 이듬해 '국가 전복선동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게 됩니다.

그렇게 옥살이를 하다 지난해 5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얼마 후인 7월 13일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앵커]

류샤오보 하면 또 생각나는 게 노벨평화상이잖아요.

[기자]

네, 사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사연이 많습니다.

먼저 화면을 보실까요?

빈 의자에 노벨평화상 메달이 놓여지는 영상, 류샤오보의 부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화면인데요,

지난 2010년의 일입니다.

[토르비요른 야글란드/노벨위원회 의장/2010년 :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중국의 근본적인 인권을 위해 오랜 비폭력 투쟁을 해온 류샤오보를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류샤오보는 이때 감옥에 수감 중이어서 시상식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빈 의자에 노벨상 메달이 놓여지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기게 된 거죠.

당시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이고 중국 내 인권 운동가들의 출국도 금지돼 시상식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류샤오보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다른 나라에 귀화하거나 망명하지 않고 노벨상을 수상한 첫 중국인이기도 합니다.

[앵커]

그랬던 류샤오보가 죽는 순간까지 원했던 게 있죠,

바로 아내 류샤의 '자유'라고요.

[기자]

네, 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서는 전통이 하나 있는데요,

수상자가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를 수 있다고 합니다.

류샤오보의 경우는 우여곡절 끝에 린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중국 민요 모리화와 채운추월,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을 연주했는데요,

'사랑의 인사'가 연주된 건 류샤오보와 류샤 부부의 사랑을 기린 것이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서로 사랑이 각별했습니다.

류샤오보는 간암 말기임에도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원했는데요,

이 또한 자기 자신의 치료보다는 아내 류샤를 가택연금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사실 류샤는 남편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가택연금에 처해져 중국 정부로부터 감시와 통제를 받았는데요,

지난해 남편 사망 이후에는 중국 당국에 의해 강제 여행까지 가게 되면서 40여 일간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런 범법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류샤오보의 아내라는 이유로 자유를 빼았겼던 건데요,

그런 류샤가 마침내 독일로 출국한 겁니다.

그동안도 독일 정부는 우울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류샤에게 출국 허용과 해외 치료를 촉구해왔지만 중국 당국은 번번이 외면했었는데요,

지난 10일 8년만에 중국을 떠나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테겔 공항 입국장에서 환하게 웃는 류샤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류샤는 이제 독일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낼 것으로 알려졌고요,

남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홀로 조용히 추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해졌습니다.

[앵커]

정말 잘 됐네요,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공도 크다면서요?

네, 메르켈 총리는 진심으로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난민 문제에 대한 태도만 봐도 알 수가 있죠,

이번 류샤의 출국 허용은 메르켈 총리가 지난 9일 베를린에서 리커창 총리 등 중국 정부 대표단과 회담을 가진 이후에 결정됐습니다.

평소 메르켈 총리는 서방 지도자 중 유독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고, 그러면서도 중국입장을 고려해 조용하게 석방 노력을 추진해왔다고요,

이와 함께 타이밍도 좋았다는 분석인데요,

중국은 지금 미국과 이른바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잖아요,

때문에 중국은 유럽과 반미 전선을 형성하고 싶어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도권을 쥔 독일의 마음을 사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

그런 연유로 지금껏 미뤄오던 류샤의 석방을 전격 결정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로벌 이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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