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산이 된 사람들…히말라야 역대 산악사고
입력 2018.10.13 (21:18)
수정 2018.10.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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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들, 9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산악인들의 사고들을 최은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악인들에겐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마지막 도전이 됐습니다.
2011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산 남벽에서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故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
[故 박영석/대장/2011년 9월 : "암벽 등반도 해야하고, 빙벽 등반도 해야하고, 설벽 등반도 해야하고. 네 발을 써서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박 대장의 원정대는 해방 6천 500미터 지점에서 낙석이 심해 하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위성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구조대가 파견돼 열흘간 수색을 벌였지만,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박 대장과 두 대원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등정에 쓴 로프만 발견됐습니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故 고미영 대장도 히말랴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2009년 히말라야의 12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에 도전해 정상 등반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던 중 실족해 사망했습니다.
2012년엔 히말라야 동부 산맥 촐라체에서 고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등반 중 추락해 숨졌습니다.
한국 산악계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6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지만,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산악인들도 90여 명에 이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들, 9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산악인들의 사고들을 최은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악인들에겐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마지막 도전이 됐습니다.
2011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산 남벽에서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故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
[故 박영석/대장/2011년 9월 : "암벽 등반도 해야하고, 빙벽 등반도 해야하고, 설벽 등반도 해야하고. 네 발을 써서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박 대장의 원정대는 해방 6천 500미터 지점에서 낙석이 심해 하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위성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구조대가 파견돼 열흘간 수색을 벌였지만,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박 대장과 두 대원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등정에 쓴 로프만 발견됐습니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故 고미영 대장도 히말랴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2009년 히말라야의 12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에 도전해 정상 등반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던 중 실족해 사망했습니다.
2012년엔 히말라야 동부 산맥 촐라체에서 고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등반 중 추락해 숨졌습니다.
한국 산악계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6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지만,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산악인들도 90여 명에 이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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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10-13 21: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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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들, 9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산악인들의 사고들을 최은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악인들에겐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마지막 도전이 됐습니다.
2011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산 남벽에서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故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
[故 박영석/대장/2011년 9월 : "암벽 등반도 해야하고, 빙벽 등반도 해야하고, 설벽 등반도 해야하고. 네 발을 써서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박 대장의 원정대는 해방 6천 500미터 지점에서 낙석이 심해 하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위성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구조대가 파견돼 열흘간 수색을 벌였지만,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박 대장과 두 대원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등정에 쓴 로프만 발견됐습니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故 고미영 대장도 히말랴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2009년 히말라야의 12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에 도전해 정상 등반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던 중 실족해 사망했습니다.
2012년엔 히말라야 동부 산맥 촐라체에서 고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등반 중 추락해 숨졌습니다.
한국 산악계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6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지만,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산악인들도 90여 명에 이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히말라야 등정에 도전했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들, 9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히말라야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산악인들의 사고들을 최은진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악인들에겐 끝없는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때로는 마지막 도전이 됐습니다.
2011년,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산 남벽에서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故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
[故 박영석/대장/2011년 9월 : "암벽 등반도 해야하고, 빙벽 등반도 해야하고, 설벽 등반도 해야하고. 네 발을 써서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은."]
박 대장의 원정대는 해방 6천 500미터 지점에서 낙석이 심해 하산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위성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구조대가 파견돼 열흘간 수색을 벌였지만,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대원, 강기석 대원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박 대장과 두 대원은 시신도 찾지 못했고, 등정에 쓴 로프만 발견됐습니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故 고미영 대장도 히말랴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2009년 히말라야의 12번째 봉우리인 낭가파르밧에 도전해 정상 등반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하산하던 중 실족해 사망했습니다.
2012년엔 히말라야 동부 산맥 촐라체에서 고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등반 중 추락해 숨졌습니다.
한국 산악계는 히말라야 14좌 완등 6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지만, 히말라야에서 산화한 산악인들도 90여 명에 이릅니다.
KBS 뉴스 최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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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기자 ejc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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