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40채 아파트 한 동이 내 집”…중국 ‘빈부격차’ 실태

입력 2019.02.05 (21:27) 수정 2019.02.05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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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이 최근 빈부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40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심화되는 부의 격차가 만만치 않은 겁니다.

KBS가 과거 덩샤오핑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며 개혁 개방을 선언했던 선전과,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동관 현지를 찾아, 극한 상황에 처한 중국의 빈부격차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안양봉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덩샤오핑 동상이 있는 롄화산 공원은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습니다.

40년 동안 연평균 23%씩 성장한 선전,

1,300만 주민 중 원주민은 300만 명, 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엄청난 재산입니다.

[덩○○/중국 선전 원주민 : "저는 집을 40채 가지고 있습니다. 저기 유치원 옆 1층부터 12층까지 모두 저의 집입니다."]

모두 정부가 원주민에게 불하한 토지를 외국 기업에 임대해 벌어들인 재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둘 빨간 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 불렸던 동관의 한 신발 공장입니다.

2년 전 폐업해 지금은 덩그러니 기숙사만 남았습니다.

농민공들이 삼시 세끼 밥을 먹던 회사 식당도 모두 텅 비었습니다.

[폐업 공장 경비원 : "장시, 후베이, 베트남 이곳저곳으로 떠났어요. 이곳 비용이 너무 높아요. 사장이 옮겼어요."]

뼈대만 남은 공장들. 이런 곳이 얼마나 많은지, 가는 곳 마다 '공장 임대 벽보'가 나붙었습니다.

오른 임금 탓에 외국 기업들이 잇따라 떠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공장 주변 시가지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돈 불리는 재미로 농민공들이 드나들었을 은행, 환자를 돌봤던 병원.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농민공들이 출퇴근 때 사용하던 공용 자전거는 이제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마치 전쟁을 치른 도심을 연상케 합니다.

[중국 동관 시가지 상점 주인 : "원래 15만 명이 살았어요. 전부 문 닫고 떠나고, 문 연 가게는 3곳만 남았어요."]

선전에서 가장 큰 인력시장.

한 시간 임금이 16위안 안팎, 우리 돈 2천 5백 원 정도입니다.

[중국 농민공 실직자 : "손에 쥐는 건 한 달 2천~3천 위안(40만 원 안팎)이에요. (선전인데요?) 여기는 임금이 안 높아요. 월급이 높은 줄 알았어요?"]

이러다 보니, 많은 실직자들이 주린 배를 한 끼 천 5백 원 정도의 식사로 때웁니다.

[식당 주인 : "(얼마에요?) 고기 둘, 채소 둘에 10위안(1,650원)이에요. (제일 싼 건 얼마에요?) 8위안이요."]

도심 외곽에는 하루 3천 원 안팎의 실직자 전용 숙소도 즐비합니다.

1976년, 1인당 190달러이던 국민소득이 9,900달러까지 도약한 중국.

하지만 중국 내부는 끝도 모를 빈부격차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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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40채 아파트 한 동이 내 집”…중국 ‘빈부격차’ 실태
    • 입력 2019-02-05 21:30:39
    • 수정2019-02-05 2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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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중국이 최근 빈부격차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40년,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심화되는 부의 격차가 만만치 않은 겁니다.

KBS가 과거 덩샤오핑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며 개혁 개방을 선언했던 선전과,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동관 현지를 찾아, 극한 상황에 처한 중국의 빈부격차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베이징에서 안양봉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덩샤오핑 동상이 있는 롄화산 공원은 중국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습니다.

40년 동안 연평균 23%씩 성장한 선전,

1,300만 주민 중 원주민은 300만 명, 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엄청난 재산입니다.

[덩○○/중국 선전 원주민 : "저는 집을 40채 가지고 있습니다. 저기 유치원 옆 1층부터 12층까지 모두 저의 집입니다."]

모두 정부가 원주민에게 불하한 토지를 외국 기업에 임대해 벌어들인 재산입니다.

그러나 하나둘 빨간 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의 공장이라 불렸던 동관의 한 신발 공장입니다.

2년 전 폐업해 지금은 덩그러니 기숙사만 남았습니다.

농민공들이 삼시 세끼 밥을 먹던 회사 식당도 모두 텅 비었습니다.

[폐업 공장 경비원 : "장시, 후베이, 베트남 이곳저곳으로 떠났어요. 이곳 비용이 너무 높아요. 사장이 옮겼어요."]

뼈대만 남은 공장들. 이런 곳이 얼마나 많은지, 가는 곳 마다 '공장 임대 벽보'가 나붙었습니다.

오른 임금 탓에 외국 기업들이 잇따라 떠나면서 생긴 현상입니다.

공장 주변 시가지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돈 불리는 재미로 농민공들이 드나들었을 은행, 환자를 돌봤던 병원.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농민공들이 출퇴근 때 사용하던 공용 자전거는 이제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골칫거리가 됐습니다.

마치 전쟁을 치른 도심을 연상케 합니다.

[중국 동관 시가지 상점 주인 : "원래 15만 명이 살았어요. 전부 문 닫고 떠나고, 문 연 가게는 3곳만 남았어요."]

선전에서 가장 큰 인력시장.

한 시간 임금이 16위안 안팎, 우리 돈 2천 5백 원 정도입니다.

[중국 농민공 실직자 : "손에 쥐는 건 한 달 2천~3천 위안(40만 원 안팎)이에요. (선전인데요?) 여기는 임금이 안 높아요. 월급이 높은 줄 알았어요?"]

이러다 보니, 많은 실직자들이 주린 배를 한 끼 천 5백 원 정도의 식사로 때웁니다.

[식당 주인 : "(얼마에요?) 고기 둘, 채소 둘에 10위안(1,650원)이에요. (제일 싼 건 얼마에요?) 8위안이요."]

도심 외곽에는 하루 3천 원 안팎의 실직자 전용 숙소도 즐비합니다.

1976년, 1인당 190달러이던 국민소득이 9,900달러까지 도약한 중국.

하지만 중국 내부는 끝도 모를 빈부격차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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