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두 달 만에 故 김용균 장례…“저처럼 아픔 겪지 않게”

입력 2019.02.08 (08:34) 수정 2019.02.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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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어제부터 엄수되고 있습니다.

'김용균' 이 이름 석 자는 보호받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명사가 됐죠.

하지만, 두 달동안 아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장에서 두 달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지난해 말, 입사 3개월 만에 차디찬 시신이 되어 돌아온 24살의 외동 아들.

아들이 숨을 거둔지 두달 만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어머니는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두 달 동안 냉동고에 놓여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 그렇게 놔두는 걸 원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용균이 억울한 죽음 안 되게끔 누명 벗어야 하고 그리고 용균이 동료들도 살려야 하고…."]

어제부터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애도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요.

'당신이 곧 나다.' '죽음의 외주화, 더 이상 죽을 순 없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담은 추모 메시지는 겹겹이 쌓여 커다란 꽃으로 피었습니다.

[한경희/경기도 고양시 : "개인적으로는 저의 자녀 또래예요. 그래서 사실은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내 아이 또래라서 남 일 같지 않은 그런 게 있어요."]

[박정민/경기도 수원시 : "구의역 스크린 사고부터 비정규직 외주화 그런 문제들이 계속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 장례조차 미뤄야했던 김 씨의 어머니.

자신의 아들처럼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먹고 살기도 바쁜데 TV에서 무슨 일이 나면 또 죽었구나. 마음만 아파했지 내가 직접 당할 거라고 생각 못하고 살았고 그래서 제가 벌을 크게 받나 그런 생각도 하고 그 많은 사람들한테 저도 죄인이고 용균이한테도 죄인입니다."]

아들이 몸 담았던 일터의 열악한 환경을 눈으로 확인한 어머니는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합니다.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처벌,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외치며 싸워온게 벌써 두 달이 됐습니다.

[이태의/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 "용균이가 먼저 죽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용균이 전에 이미 11명의 태안발전소에서 죽었던 분들이 있고요. 다음은 어머니는 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들의 장례까지 미뤄가며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긴 협상 끝에 설 연휴동안 협의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장례식이 치러지게 된 겁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설 전에 용균이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많이 다니면서 이야기했는데 명절 연휴 첫날부터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속 사흘동안 해서 엊그제 아침에 마무리가 됐고요."]

앞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이른바 '김용균법' 후속대책을 통해 김 씨가 일했던 연료 설비 운전 분야의 비정규직 2,400여 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습니다.

5개 발전사에서 해당 분야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을 따로 만들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계획입니다.

또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6월까지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고 개선방안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다른 사람들이 저처럼 아픔 겪게 해주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도 거기 있는 용균이 동료들 그 애들 목숨 잃지 않게끔 일할 수 있도록 해결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고 김용균 씨 가족과 동료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데요.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위험의 외주화. 죽어서도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절규에 시민들도 응답했습니다.

그동안 여섯 차례 진행된 범국민 추모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단식 농성까지 이어졌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많은 사람이 용균이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내가 김용균이다.' 그런 말 정말 가슴에 와닿아서 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이태의/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 "장례절차가 두 달가량 진행됐잖아요. 그 사이에도 수십 명이 또 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기도 하고 많은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은 용균이처럼 이렇게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김 씨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힘을 보탰습니다.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심한 사람들은 트라우마 치료도 받고, 진짜 심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병원 가서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죠."]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중간에 막 포기도 할까 그 생각도 들기는 했었어요, 솔직히. 근데 어머니 같은 경우에도 저희 잘되라고 하고 힘내라고 열심히 하시니까 그거 보고 많이 조금 힘냈던 것 같은데…."]

돌료들은 어렵게 이뤄낸 합의가 잘 이행돼 김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좀 더 위험하니까 조심해라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좀 아쉽죠. 더 챙겨줬어야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내일 오전에는 김 씨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제가 진행된 뒤. 정오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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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8 08:43:58
    • 수정2019-02-08 09: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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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이 어제부터 엄수되고 있습니다.

'김용균' 이 이름 석 자는 보호받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명사가 됐죠.

하지만, 두 달동안 아들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고 김용균 씨의 장례식장에서 두 달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금부터 따라가보시죠.

[리포트]

지난해 말, 입사 3개월 만에 차디찬 시신이 되어 돌아온 24살의 외동 아들.

아들이 숨을 거둔지 두달 만에야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어머니는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두 달 동안 냉동고에 놓여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 그렇게 놔두는 걸 원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용균이 억울한 죽음 안 되게끔 누명 벗어야 하고 그리고 용균이 동료들도 살려야 하고…."]

어제부터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애도의 발걸음이 이어졌는데요.

'당신이 곧 나다.' '죽음의 외주화, 더 이상 죽을 순 없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시민들의 마음을 담은 추모 메시지는 겹겹이 쌓여 커다란 꽃으로 피었습니다.

[한경희/경기도 고양시 : "개인적으로는 저의 자녀 또래예요. 그래서 사실은 굉장히 가슴이 아파요. 내 아이 또래라서 남 일 같지 않은 그런 게 있어요."]

[박정민/경기도 수원시 : "구의역 스크린 사고부터 비정규직 외주화 그런 문제들이 계속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는데 그에 비해서 이 문제가 빨리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 장례조차 미뤄야했던 김 씨의 어머니.

자신의 아들처럼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이들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먹고 살기도 바쁜데 TV에서 무슨 일이 나면 또 죽었구나. 마음만 아파했지 내가 직접 당할 거라고 생각 못하고 살았고 그래서 제가 벌을 크게 받나 그런 생각도 하고 그 많은 사람들한테 저도 죄인이고 용균이한테도 죄인입니다."]

아들이 몸 담았던 일터의 열악한 환경을 눈으로 확인한 어머니는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합니다.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의 처벌,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외치며 싸워온게 벌써 두 달이 됐습니다.

[이태의/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 "용균이가 먼저 죽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용균이 전에 이미 11명의 태안발전소에서 죽었던 분들이 있고요. 다음은 어머니는 그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아들의 장례까지 미뤄가며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긴 협상 끝에 설 연휴동안 협의가 이뤄지면서 비로소 장례식이 치러지게 된 겁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설 전에 용균이 장례를 치르고 싶다고 많이 다니면서 이야기했는데 명절 연휴 첫날부터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연속 사흘동안 해서 엊그제 아침에 마무리가 됐고요."]

앞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지면 이른바 '김용균법' 후속대책을 통해 김 씨가 일했던 연료 설비 운전 분야의 비정규직 2,400여 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습니다.

5개 발전사에서 해당 분야 업무를 하는 공공기관을 따로 만들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계획입니다.

또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오는 6월까지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고 개선방안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다른 사람들이 저처럼 아픔 겪게 해주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도 거기 있는 용균이 동료들 그 애들 목숨 잃지 않게끔 일할 수 있도록 해결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결과가 고 김용균 씨 가족과 동료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닌데요.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위험의 외주화. 죽어서도 차별받는 비정규직의 절규에 시민들도 응답했습니다.

그동안 여섯 차례 진행된 범국민 추모제.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단식 농성까지 이어졌습니다.

[김미숙/故 김용균 씨 어머니 : "많은 사람이 용균이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라고 '내가 김용균이다.' 그런 말 정말 가슴에 와닿아서 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주셔서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이태의/시민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 : "장례절차가 두 달가량 진행됐잖아요. 그 사이에도 수십 명이 또 현장에서 돌아가셨어요.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기도 하고 많은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은 용균이처럼 이렇게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김 씨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힘을 보탰습니다.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심한 사람들은 트라우마 치료도 받고, 진짜 심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병원 가서 받는 사람도 있고 그렇죠."]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중간에 막 포기도 할까 그 생각도 들기는 했었어요, 솔직히. 근데 어머니 같은 경우에도 저희 잘되라고 하고 힘내라고 열심히 하시니까 그거 보고 많이 조금 힘냈던 것 같은데…."]

돌료들은 어렵게 이뤄낸 합의가 잘 이행돼 김 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故 김용균 씨 동료/음성변조 : "좀 더 위험하니까 조심해라 이런 이야기를 좀 더 했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좀 아쉽죠. 더 챙겨줬어야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내일 오전에는 김 씨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제가 진행된 뒤. 정오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영결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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