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북한 경험 살린 한방 의료 봉사

입력 2019.03.23 (08:19) 수정 2019.03.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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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는 한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부르는데요.

탈북민 중에는 한의사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 한의사라고 해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남북에서 한의사 면허를 모두 취득한 탈북민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한방 의료 봉사 단체가 있습니다.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한국 사회에 기여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얼마 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현장,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가로운 주말 오후.

서울의 한 복지관에 어르신 50여 명이 모였습니다.

비영리 단체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열고 있는 한방 의료 봉사 현장입니다.

[박세현/하나사랑협회 이사 : "어르신들 많은 노인종합복지회관과 협력을 맺어서 무상진료, 무료로 진료하는 사회 의료봉사단 법인을 만들어서 봉사하게 됐습니다. 주기적으로."]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 인력 30여 명을 포함한 총 13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자격증을 갖춘 인사들은 진단과 치료를, 일반 회원들은 경락 마사지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시원하세요?) 네 엄청. 엄청 잘하신다. 정말 시원해요. 힘이 좋은가봐."]

아픈 부위를 세심히 살피는 한 사람, 남과 북에서 면허를 모두 취득한 최초의 탈북 한의사이자 이 단체의 설립 구성원 입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2002년도에 저희가 북한에서 온 첫 대한민국 한의사에요. 국민들 세금을 받고 정착하는데 굉장히 도움을 받았는데 우리가 조금 보답해야 하지 않나."]

2004년 탈북 한의사 두 명이 시작한 봉사 활동은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의 동참이 잇따르면서 봉사자와 후원자도 늘었습니다.

처음에 다섯 명 안팎에 불과했던 봉사 대상 주민들도 지금은 평균 50명을 훌쩍 넘겼는데요.

[박안자/서울시 구로 5동 : "정말 침을 잘 놓아 주셔서 무료로 맞기에는 죄송하고 돈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열성껏 (침을) 놓아주셨어요."]

주민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접한 자원 봉사자들도 뿌듯하다는 반응입니다.

[천호범/고등학생/하나사랑협회원 : "(어른들이) 학생 참 고맙다, 내가 항상 이렇게 아팠는데 (안마) 해주니까 괜찮다. 그런 말 한마디가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자원 봉사를 마친 회원들은 소소한 뒤풀이 자리도 가졌는데요.

여기서도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단연 화젭니다.

[박세현/하나사랑협회 이사 : "그때 무릎 혹 달린 할머니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물어보면 돌아가셨어. 이런 얘기 듣잖아요? 그러면 상당히 짠해요. 아 그때 잘해드리길 참 잘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낯선 남녘땅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탈북민들에게 한방의료 봉사 활동 경험은 더욱 각별합니다.

[송민아/하나사랑협회원 : "할머니들이 저희 손이 차가우면 손을 꼭 따뜻하게 잡아주면서 밥은 먹었니 아프지 말라고... 그런 말들이 울컥하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요. 그런 것들이 기억에 되게 많이 남아요."]

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에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들의 입가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의료 봉사를 이어온 지도 어느덧 15년,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는 만큼 봉사자들의 뿌듯함도 배가 되었는데요.

회원들의 의료 봉사는 복지관 밖에서도 계속됩니다.

며칠 후, 봉사 활동에 참여했던 탈북 한의사 석영환 씨를 다시 찾았습니다.

1998년 아내와 함께 탈북해 개인 한방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석 씨는 18년 째 특별한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진료비를 받지 않고 탈북민 환자를 보고 있는 건데요.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아프다고) 제대로 표현을 하는데 (말투 때문에) 못 알아듣는 병원들이 많으니 나라도 알아주면 환자가 마음이 덜 불편하고 하소연을 좀 하죠."]

북한에서는 유능한 한의사였지만, 막상 한국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취득한 의사 면허는 대한민국에서 전혀 활용할 수 없었던 건데요.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한의대에서 입학 좀 시켜주시오. 안 됩니다. 수능 봐서 들어가세요. 공부 방식도 다른데 내가 아무리 따라가도 수능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관련 협회와 국가 기관의 문을 두드리기를 여러 번, 한의학 교수들에게 실력을 검증받은 후에야 비로소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결국, 두 번의 낙방과 3년여의 노력 끝에 남북의 한의사 면허를 모두 취득한 최초의 탈북 한의사가 되었는데요.

쉽게 풀릴 거라 기대했던 한의사로서 활동 역시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한의사 채용) 면접은 다 빵빵빵 탈락. 왜 탈락이냐. 그때 당시에는 탈북자가 (북한) 사투리 말을 빵빵 쓰지. 사람이 부드러워 보이지 않고 의사가 거칠어 보이지. 그거 북한식인데."]

개업 후에도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탈북민을 위한 무료 진료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탈북) 당시 한국 국민들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착할 수 있게끔. 그러니까 국민한테 보답해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고요. 봉사를 하면 많이 위로가 되고 좋아요. 그냥 한없이 좋아 한없이."]

2009년 탈북한 신영희 씨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은 지 오래됐지만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신영희/2009년 탈북 : "북한에 있을 때는 정말 너무 아파서 죽을 정도, 그리고 수술해야만 살 수 있는 이런 정도만 병원에 가는 걸로 알았지."]

무료 진료를 받은 지 4년, 증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영희/2009년 탈북 : "저한테 무료로 어마어마한 기적을 선사하셨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석영환 한의사, 남북 두 체제를 넘나든 전문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많은 국민들과 우리 새터민들이 따뜻한 작은 손이 하나하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이 손이 더 많이 모이면 희망을 갖고 사는 우리 탈북민들의 정착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한국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

정성어린 손길에 몸도 마음도 치유된 느낌인데요.

탈북민과 더불어 한국사회에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많은 이들의 참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문 분야에 종사했던 탈북민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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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북한 경험 살린 한방 의료 봉사
    • 입력 2019-03-23 08:57:13
    • 수정2019-03-23 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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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는 한의학을 고려의학이라고 부르는데요.

탈북민 중에는 한의사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북한 한의사라고 해도 경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남북에서 한의사 면허를 모두 취득한 탈북민들이 모여 만든 비영리 한방 의료 봉사 단체가 있습니다.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한국 사회에 기여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얼마 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 현장, 채유나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가로운 주말 오후.

서울의 한 복지관에 어르신 50여 명이 모였습니다.

비영리 단체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열고 있는 한방 의료 봉사 현장입니다.

[박세현/하나사랑협회 이사 : "어르신들 많은 노인종합복지회관과 협력을 맺어서 무상진료, 무료로 진료하는 사회 의료봉사단 법인을 만들어서 봉사하게 됐습니다. 주기적으로."]

한의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 인력 30여 명을 포함한 총 13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자격증을 갖춘 인사들은 진단과 치료를, 일반 회원들은 경락 마사지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시원하세요?) 네 엄청. 엄청 잘하신다. 정말 시원해요. 힘이 좋은가봐."]

아픈 부위를 세심히 살피는 한 사람, 남과 북에서 면허를 모두 취득한 최초의 탈북 한의사이자 이 단체의 설립 구성원 입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2002년도에 저희가 북한에서 온 첫 대한민국 한의사에요. 국민들 세금을 받고 정착하는데 굉장히 도움을 받았는데 우리가 조금 보답해야 하지 않나."]

2004년 탈북 한의사 두 명이 시작한 봉사 활동은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의 동참이 잇따르면서 봉사자와 후원자도 늘었습니다.

처음에 다섯 명 안팎에 불과했던 봉사 대상 주민들도 지금은 평균 50명을 훌쩍 넘겼는데요.

[박안자/서울시 구로 5동 : "정말 침을 잘 놓아 주셔서 무료로 맞기에는 죄송하고 돈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열성껏 (침을) 놓아주셨어요."]

주민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접한 자원 봉사자들도 뿌듯하다는 반응입니다.

[천호범/고등학생/하나사랑협회원 : "(어른들이) 학생 참 고맙다, 내가 항상 이렇게 아팠는데 (안마) 해주니까 괜찮다. 그런 말 한마디가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자원 봉사를 마친 회원들은 소소한 뒤풀이 자리도 가졌는데요.

여기서도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단연 화젭니다.

[박세현/하나사랑협회 이사 : "그때 무릎 혹 달린 할머니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물어보면 돌아가셨어. 이런 얘기 듣잖아요? 그러면 상당히 짠해요. 아 그때 잘해드리길 참 잘했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낯선 남녘땅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탈북민들에게 한방의료 봉사 활동 경험은 더욱 각별합니다.

[송민아/하나사랑협회원 : "할머니들이 저희 손이 차가우면 손을 꼭 따뜻하게 잡아주면서 밥은 먹었니 아프지 말라고... 그런 말들이 울컥하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 생각도 나고요. 그런 것들이 기억에 되게 많이 남아요."]

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에 복지관을 찾은 어르신들의 입가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의료 봉사를 이어온 지도 어느덧 15년,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는 만큼 봉사자들의 뿌듯함도 배가 되었는데요.

회원들의 의료 봉사는 복지관 밖에서도 계속됩니다.

며칠 후, 봉사 활동에 참여했던 탈북 한의사 석영환 씨를 다시 찾았습니다.

1998년 아내와 함께 탈북해 개인 한방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석 씨는 18년 째 특별한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진료비를 받지 않고 탈북민 환자를 보고 있는 건데요.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아프다고) 제대로 표현을 하는데 (말투 때문에) 못 알아듣는 병원들이 많으니 나라도 알아주면 환자가 마음이 덜 불편하고 하소연을 좀 하죠."]

북한에서는 유능한 한의사였지만, 막상 한국에서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취득한 의사 면허는 대한민국에서 전혀 활용할 수 없었던 건데요.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한의대에서 입학 좀 시켜주시오. 안 됩니다. 수능 봐서 들어가세요. 공부 방식도 다른데 내가 아무리 따라가도 수능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관련 협회와 국가 기관의 문을 두드리기를 여러 번, 한의학 교수들에게 실력을 검증받은 후에야 비로소 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결국, 두 번의 낙방과 3년여의 노력 끝에 남북의 한의사 면허를 모두 취득한 최초의 탈북 한의사가 되었는데요.

쉽게 풀릴 거라 기대했던 한의사로서 활동 역시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한의사 채용) 면접은 다 빵빵빵 탈락. 왜 탈락이냐. 그때 당시에는 탈북자가 (북한) 사투리 말을 빵빵 쓰지. 사람이 부드러워 보이지 않고 의사가 거칠어 보이지. 그거 북한식인데."]

개업 후에도 힘든 상황은 마찬가지였지만 탈북민을 위한 무료 진료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탈북) 당시 한국 국민들에게 많은 배려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착할 수 있게끔. 그러니까 국민한테 보답해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고요. 봉사를 하면 많이 위로가 되고 좋아요. 그냥 한없이 좋아 한없이."]

2009년 탈북한 신영희 씨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은 지 오래됐지만 병원에 가야한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신영희/2009년 탈북 : "북한에 있을 때는 정말 너무 아파서 죽을 정도, 그리고 수술해야만 살 수 있는 이런 정도만 병원에 가는 걸로 알았지."]

무료 진료를 받은 지 4년, 증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영희/2009년 탈북 : "저한테 무료로 어마어마한 기적을 선사하셨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병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석영환 한의사, 남북 두 체제를 넘나든 전문인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겠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석영환/하나사랑협회 이사장 : "많은 국민들과 우리 새터민들이 따뜻한 작은 손이 하나하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이 손이 더 많이 모이면 희망을 갖고 사는 우리 탈북민들의 정착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한국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기 위해 시작한 일.

정성어린 손길에 몸도 마음도 치유된 느낌인데요.

탈북민과 더불어 한국사회에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많은 이들의 참여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문 분야에 종사했던 탈북민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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